악덕 사장이 되었다
악덕 사장이 되었다
거울을 바라보았다."..."거울 속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불룩 튀어나온 배.두툼한 턱살.칙칙한 피부.듬성듬성 비어있는 정수리.거울은 건너편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그러니까 이게 내 모습이란 말이지."미치겠군."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며 탄식을 금치 못했다.어딘가 익숙한 모습.이 생김새만 보더라도 이 사내가 누군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악덕 사장 강태성.내가 플레이하려던 게임의 악역 캐릭터다.NTR로 유명한 게임 '미소를 보여줘'에 등장하는 빌런.나름 비중도 적지 않은 캐릭터다. 굳이 따지자면 챕터 보스, 그러니까 조연 중에서도 대장 격이라고 해야 할까.문제는 이 녀석이 주인공에게 격퇴당해 몰락하는 역할이라는 것이었다.남의 여자를 빼앗는 것이 취미인 강태성은 주인공의 연인인 히로인에게 손을 댔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게임에서 영영 퇴장한다.'대체 왜…?'대체 왜 빙의당한 걸까?게임에 악평을 남긴 것도 아니고, 그저 재미있게 플레이했을 뿐인데.그것도 하필 몰락하는 악역으로?'...어쩔 수 없지.'현실 부정은 오래가지 않았다.거울 속 개성적인 외모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내가 게임 속 강태성이 되었다는 사실을.'아니, 이게 서른다섯 얼굴이라고?'올해 강태성의 나이는 서른다섯.지갑 속 주민등록증까지 확인했지만 믿기지 않았다.누가 봐도 마흔 중반은 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뒤룩뒤룩 찐 살 때문인지 더 노안으로 보였다.이 모든 것이 합쳐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음흉한 인상을 완성하고 있었다.원작에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욕했던 바로 그 얼굴.짜증나는 마음에 퉁퉁하게 불어터진 뱃살을 잡아당겼다.출렁."...씨발."충격적이었다.나도 운동을 즐겨 했던 것은 아니다.현대인 평균 정도일까.운동 부족에 시달리는 평범한 직장인 수준의 몸이었다.하지만 이 몸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게임 속에서는 흔한 캐릭터 모델에 불과했지만 직접 당사자가 되고 보니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계단 몇 층만 올라가도 숨이 턱 막힐 것 같았다.이 상태로 살다가 정말 심장마비라도 오는 거 아니냐?주인공이 등장하기도 전에 성인병으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었다.생각해 보면 전생도 심장마비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을 만한 이유라면 심장 문제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그런데 환생하자마자 또 심장병 후보 몸이라고?농담도 정도가 있었다.‘...그래도 아직은 괜찮아.’강태성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금은 게임 초반부.정확히는 강태성이 계열사 사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원작에서 벌어질 참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놀랍게도 아직 아무 여자에게도 본격적으로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물론 인간쓰레기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회장인 아버지의 눈치를 보느라 여직원들에게 성희롱이나 일삼고 있었지만, 원작에서 문제가 되었던 범죄까지는 저지르지 않았다.'그나마 다행인가.'적어도 아직은 돌이킬 수 있다.기억을 들여다볼수록 기가 찼다.사장으로서 처리해야 할 업무는 산더미인데, 머릿속에는 온통 남의 여자 생각뿐이었다.'참 대단한 인간이군.'한심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나는 강태성이지만 강태성이 아니다.원작대로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일단 살부터 빼자."회사는 그다음이었다.모든 것은 결국 내 생존을 위한 일이었으니까.우선 살아야 했다.*다음 날, 회사 식당.나는 아침 메뉴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원래 강태성의 식단은 파멸적이기 그지없었다.베이컨, 소시지.버터에 구운 식빵 세 장.달달한 밀크셰이크.이게 아침이었다.거기에 끼니 사이마다 간식.세 끼를 다 먹고 난 뒤에는 야식.믿기 어려웠지만 식당 아주머니에게 몇 번이고 확인하며 들은 이야기였으니 사실이었다."이게 사람 식단이냐?"일부러 이렇게 먹기도 힘들어 보였다.어찌 보면 이것도 재능이었다.삼시세끼 기름과 설탕으로 이루어진 인간.습관이 무섭다고 벌써부터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입에 침이 고였다.달고 짜고 혈당이 치솟는 음식들을 넣어달라고 몸이 아우성을 쳤다."씁, 안 돼."하지만 오늘은 달랐다.삶은 달걀에 닭가슴살.샐러드, 드레싱은 저당으로.늘 먹던 밀크셰이크 대신 아메리카노.덩치가 있는 만큼 양은 조금 많이 담았지만 그게 전부였다.갑작스러운 식단 변화에 식당 아주머니가 눈을 깜빡였다."...사장님?""예.""몸 안 좋으세요?""왜요?""아니... 식사가..."잠시 침묵했다.도대체 평소에 얼마나 먹고 다녔으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지금 담은 것도 적은 양은 아니었는데."건강 관리 좀 하려고요."나는 아주머니를 향해 최대한 밝게 웃어주었다.사장으로서 직원에게 보내는 격려 차원의 미소이자, 걱정해주어서 고맙다는 의미에서였다.씨익.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에, 에그머니나!"아주머니가 화들짝 놀랐다.하마터면 들고 있던 바구니를 떨어뜨릴 뻔했다."죄, 죄송합니다! 사장님! 먼저 가보겠습니다!""아니..."심심하니 말동무나 해주었으면 했는데 아주머니는 그대로 도망치듯 사라졌다.그제야 내 실수를 깨달았다.강태성의 얼굴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고려하지 못했다.가만히 있어도 살벌한 얼굴인데, 거기다 미소까지 지었으니.아주머니의 딸을 겁탈하려드는 산적처럼 보였어도 이상하지 않을 몰골이었겠지.상대 입장에서는 공포영화였을 것이다."하아..."살을 빼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적어도 얼굴을 덮고 있는 살 정도는 빼야 사람들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나는 맛없는 샐러드를 묵묵히 씹어 삼켰다.…첫 주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배가 고팠다.그냥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다.정말 미칠 듯이 배가 고팠다.이 몸은 이미 야식에 절여져 있었다.30년이 넘게 이렇게 살고 있던 걸 하루아침에 바꾸려드는 것이다.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내 예상보다 더 고통스러웠다.밤 11시.나는 습관처럼 냉장고 문을 열었다.머리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맥주, 족발, 치킨, 피자.인간이 아니라 돼지 사육장 수준이었다.애초에 이런 큰 냉장고가 집에 있을 수가 있나?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식욕에 눈이 돌아간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으윽..."10초, 20초, 30초.숨 막히는 눈치싸움 끝에 결국 냉장고 문을 닫았다."안 먹는다."냉장고부터 당장 치우기로 했다.음식들이 아깝게 느껴졌지만 괜히 눈돌아가서 폭식하는 것보단 이게 나았다.그날 밤은 배고파서 잠을 설쳤다.*회사 지하 헬스장.나는 러닝머신 위에 서 있었다.정확히 5분 만에 땀범벅이 되었다.10분 만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15분이 지나자 죽을 것 같았다.문제는 단 한 번도 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나는 그저 걷고 있었을 뿐이었다."...하."막막함에 한숨을 내쉬던 순간이었다."사장님?"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강태성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중년 남자. 그러나 강태성과는 전혀 다른 탄탄한 근육질 육체.보안팀장이었다."예.""여기서 뭐 하십니까?""...운동.""예?""보면 모르겠습니까. 운동합니다."너무 힘들어서 말투가 퉁명스럽게 나갔다.하지만 원래 강태성이 그런 인간이었기 때문일까.경비팀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신기한 것을 본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았다.하긴, 원래 강태성은 엘리베이터로 한 층도 안 걸어 다니던 인간이었다.그런데 러닝머신? 이상하게 보는 게 당연했다."취미가 생기셨습니까?"나는 귀찮은 마음 반, 진지한 마음 반 섞어 대답했다."죽기 싫어서요.""..."경비팀장은 별말없이 헬스장에서 떠나갔다.아니, 운동하러 온 거 아니었나.어쩌다보니 내가 쫓아낸 그림이 되었다. 지금이라도 부담갖지 말고 옆에서 운동하라고 해야할까?“헥… 헥….”그러나 몸뚱이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모르겠다, 내 코가 석잔데 남 신경쓸 겨를도 없다.보안팀장은 알아서 운동하겠지.…그렇게 2주 후, 다시 체중계 위에 올라섰다.112kg.처음 빙의했을 때는 124kg이었다.2주 만에 12kg 감량이라.초고도비만이라서 그런지 감량 속도가 무척 빨랐다."...오."솔직히 기분이 좋았다.외형적으로 엄청난 변화는 없었다.여전히 배는 나와 있었고, 불독 같은 턱살 또한 여전했다.맨들맨들한 머리 역시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달라진 것도 있었다.턱선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붓기가 빠지면서 얼굴도 정돈되었다.무엇보다."혈색이 좋아졌어."곧 죽을 것처럼 보이던 얼굴색에서 핏기가 도는 얼굴로 변했다.인상이 좋아졌다는 소리다.몸도 훨씬 가벼워졌다.계단 몇 층 정도는 숨을 헐떡이지 않고 오를 수 있게 되었다.거울 속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할만한데?"전생에도 다이어트를 시도한 적은 많았다.그러나 늘 작심삼일이었다.이번에는 달랐다.살을 빼지 못하면 죽는다. 그것도 진짜로.동기부여가 너무 강력해서 그런지 멈출 수가 없었다.문득 원작 기억이 떠올랐다.원래 이 시기는, 강태성이 슬슬 욕구를 못이기고 회사원에게 손을 대는 시점이었다.‘강태성이 파멸하기 시작하는 시점….’거울 속 내 모습을 다시 바라보았다.그런 미래는 이제 없을 터였다.최소한 건강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그렇다면 이제 다음 차례였다.‘회사.’애초에 내가 살기 위해서는 건강만 챙겨서는 안 된다.강태성이라는 인간이 파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회사가 무너졌기 때문이니까.원작에서 KJ그룹은 수년간의 비리와 방만한 운영으로 서서히 곪아 있었다.직원들을 협박해 부려먹고. 충성파들을 요직에 꽂아 넣고.회사 돈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등.문제가 터질 때마다 힘으로 눌러버린다.그 결과가 결국 파산이었다."슬슬 회사 일도 봐야겠네."나는 물병을 집어 들었다.건강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이제부터는 회사에 손을 대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띠링.갑작스레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갑작스러운 메시지에 걸음이 멈췄다.[조건 달성][악역 육성 시스템 활성화]"...뭐야?"눈을 비볐다.그래도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오히려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NTR 포인트 시스템이 개방됩니다.][NTR 상점이 개방됩니다.][현재 NTR 포인트 : 0][구매 가능 아이템 ….]"뭐?"왜 갑자기?그리고, 그 밑으로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메시지가 나타났다.[축하합니다.][당신은 이제 진정한 악덕 사장의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아니 왜."살도 빼고.악덕 사장이 안 되려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대체 왜?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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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엄청나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