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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

히로인들이 집착하는 야겜 속 악덕 사장 — novelpia.com · All chapters

정상화

회의실 문이 하나둘 열리기 시작했다.철컥.임원들이 느긋한 걸음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생산본부장.영업본부장.구매본부장.인사실장.재무실장.회사를 책임지는 핵심 간부진들이 웅성거리며 회의실로 들어오고, 회의실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사장님이 직접 회의를 소집했다던데.""허, 얼굴이나 보자는 이야기를 거창하게도 하는군."피식.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회사의 최고 결정권자인 사장이 긴급 소집했다기엔 과히 태평한 모습이었다."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시려나."누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흐흐, 어디 좋은 데라도 데려가려고 그러시는 거 아니겠습니까?""그럼 나쁠 건 없죠.”“크하하핫!”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회의실 분위기는 한없이 느슨했다.생산, 영업, 재무, 인사.회사의 핵심 부서가 모두 모였음에도 긴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강태성이 회의를 소집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몇 마디 덕담이나 하고 말겠지.애매한 지시나 내리고 말겠지.어느 부서에 누가 예쁘다며 그 여직원 이름이 뭐냐고 묻는 게 전부일 터였다.직원들이 사장을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객관적으로, 그동안 봐온 강태성의 모습이 그러했으니."...쯧."회의실 한편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기획실장 최성욱이었다.그 곁에 앉은 송태진 상무도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회장님 계실 적엔 이런 일이 없었는데.'강백호.KJ그룹을 지금의 자리까지 키워낸 창업주이자 회장.그가 직접 회사를 이끌던 시절에는 저런 인간들이 요직을 차지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성과가 없는 자는 내려왔고, 실력 있는 자는 올라갔다.엄격한 원칙과 분명한 상벌.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절이었다.계속해서 시험의 자리에 놓이고 그 능력치에 부합하는 자만이 임원이 될 수 있었으니.그러나, 강백호 회장의 건강이 악화되고 그가 사망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정확히는, 아들 강태성이 사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강태성.’그 혐오스러운 몰골을 떠올린 송태진 상무가 이를 악물었다.강태성은… 자신이 충성을 바쳤던 강백호 회장의 아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능했다.그저 무능하기만 했다면 회사가 이렇게 흔들리지는 않았을 터였다.강태성은 무능하고 게을렀으며, 탐욕스러웠다.아첨하는 자들이 하나둘 승진했고 능력보다 줄이 우선이 되었으며 책임감 없는 자들이 조직 곳곳을 차지했다.독이 스며드는 데는 오래 걸렸지만, 썩는 것은 순식간이었다.어느새 이 회의실조차 그런 인간들로 절반 이상 채워져 있었다.'호부견자(虎父犬子)...'호랑이 같은 아버지 밑에서 어찌 저런 자식이 나왔단 말인가.송태진 상무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그 순간이었다.철컥-회의실 문이 열렸다."사장님 들어오십니다."비서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바지사장이라고 해도 사장은 사장.이 순간만큼은 모두의 잡담이 끊겼다.시선이 일제히 문으로 향했다.‘이번엔 또 살이 얼마나 쪘을까?’‘아… 피곤한데 그냥 빨리 끝내줬으면.’‘또 평소처럼 배를 내민 채 터벅터벅 걸어오겠지.’대부분의 임원들이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어?"누군가 자신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흘렸다.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문턱을 넘어섰다.구두 굽이 바닥을 두드렸다.뚜벅뚜벅.걸음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언제나 흐트러져 있던 어깨는 반듯하게 펴져 있었고, 고개도 흔들림 없이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뭐지?’그저 걸어올 뿐인데, 회의실의 공기가 묘하게 가라앉았다.웃음을 띠던 임원들의 입꼬리가 하나둘 내려갔다.그는 강태성이었다.험악한 얼굴도 비대한 몸집도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그런데 이상했다.같은 사람이 맞는데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마치 잠들어 있던 맹수가 처음으로 눈을 뜬 것처럼.말없이 걸어오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회의실을 짓눌렀다."커흠.""꿀꺽...."누군가는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고, 누군가는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강태성은 아무 말 없이 회의실 중앙을 가로질렀다.그리고 회의실 가장 안쪽, 사장의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탁.수첩을 내려놓는 짧은 소리.그 한 번의 소리가 이상하리만치 크게 울렸다.회의실은 어느새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져 있었다."...다들 모이신 것 같네요."담담한 목소리."예, 사장님."가장 먼저 대답한 것은 송태진 상무였다.하지만 대답을 내뱉는 순간, 스스로도 의아함을 느꼈다.'...왜지?'왜 강태성 사장의 말에 호응했을까? 이 자리가 누구보다 못마땅한 것은 송태진 상무 자신이었을텐데.‘방금 그 한마디.’아주 오래전, 강백호 회장이 임원 회의를 열던 시절.회의실을 가득 채우던 그 묵직한 분위기부터 천천히 입을 열며 임원들을 둘러보는 모습까지.그게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익숙해서,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대답해버린 것이었다.'착각인가.'송태진은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그때였다.강태성이 회의실을 천천히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회의, 시작하겠습니다."*어으, 떨려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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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떻게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는 성공했다.수십 명의 시선이 한꺼번에 나를 향하는 상황은 익숙하지 않았다.전생에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질색이었다.하물며 지금은 KJ그룹의 핵심 임원들이 전부 모인 자리.'침착하자.'애써 긴장한 기색을 감췄다.다행히도 이럴 때만큼은 강태성의 외모가 도움이 되었다.툭 튀어나온 턱.살이 잔뜩 오른 얼굴.험상궂게 처진 눈매.조금만 무표정을 지어도 사람들은 내가 긴장한 게 아니라 화가 난 것으로 받아들였다.덕분에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좋아.'천천히 회의실을 둘러보았다.생산본부장.영업본부장.구매본부장.인사실장.재무실장.그리고 송태진 상무까지.내가 강태성이 된 지도 어느덧 한 달.직원들 눈에는 그저 다이어트를 시작한 사장 정도로 보였겠지만, 그 한 달 동안 내가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그 반대였다.운동을 마치고 출근.퇴근 후에는 새벽까지 서류를 뒤졌다.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비밀 감사팀을 꾸렸다.강태성의 권한을 이용해 외부 회계법인 출신 감사 인력을 비밀리에 영입했고, 기존 감사실과도 별개로 회사 내부를 샅샅이 조사했다.그 결과는... 참담했다.'썩을 대로 썩었군.'나는 준비해 온 서류철을 펼쳤다.회의실에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간단합니다."잠시 뜸을 들였다.모든 시선이 내게 쏠렸다."감사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몇몇 임원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첫 장을 넘겼다."생산본부."생산본부장의 어깨가 움찔했다."협력업체 선정 과정에서 리베이트 수수.""...!""금액은 1억 2천만 원."생산본부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나는 곧바로 다음 장을 넘겼다."구매본부."구매본부장이 마른침을 삼켰다."원자재 단가 조작, 차액 횡령, 허위 계약서 작성."이번에는 영업본부장을 바라보았다."법인카드 사적 사용, 거래처 접대비 허위 청구."한 명. 또 한 명.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회의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제 발 저린 이들이 손끝을 떨었고 식은땀을 훔쳤다.애써 태연한 척하던 얼굴들이 하나같이 거무죽죽하게 변해 갔다.반면 아무런 문제가 없던 임원들은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마지막 서류를 덮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여러분. 그동안 제가 운동만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셨습니까?"회의실은 죽은 듯 고요했다."유감스럽게도."나는 임원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말했다."그 한 달 동안 여러분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사장이 직접 조사하여 비리를 밝혀냈다. 그 충격적인 사실에 모두가 사태 파악을 하던 와중이었다."말도 안 됩니다!"생산본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사장님께서... 감사를 하셨다고요?""그럴 리가 없습니다!""누가 사장님을 속인 겁니다!"회의실 곳곳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이건 오해입니다!"“하하, 사장님! 장난이 심하십니다!”“그, 그렇지! 제가 아는 좋은 바가 있는데 그곳으로 가시죠! 거기 가서 제 얘기를 들어주시면-.”...나는 어이가 없어 그들을 바라봤다.'이 녀석들.'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지금 이들은 비리가 발각된 것보다 내가 이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강태성이 뒤에서 사람을 심어 감사를 진행했다.증거를 모았다.한 달 동안 입을 다문 채 덫을 놓았다.그 사실 자체가 이들에게는 가장 큰 충격인 모양이었다.생각해 보면 이해는 갔다.'해가 서쪽에서 뜬 것 같은 일이니까.'원래의 강태성이었다면? 회사 일에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기껏해야 여자나 찾고, 술이나 마시고 마음에 안 드는 직원에게 화풀이나 했겠지.그러니 이들은 안심하고 회사를 좀먹고 있었다.사장이 멍청할수록,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믿으면서.'참 편하게도 해 먹었군.'나는 회의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이 자리에 모인 임원은 스물두 명.그중,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비리와 연루되어 있었다.횡령.배임.뇌물 수수.협력업체 리베이트.허위 계약.법인카드 유용.죄목도 가지가지였다.당장 저들을 모두 잘라내면 회사는 한동안 혼란에 빠질 것이다.업무 공백도 생기겠지.하지만, 그렇다고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썩은 가지를 방치하면 결국 나무 전체가 죽는다.나는 준비해 둔 서류를 한 장 꺼내 들었다."앞서 호명된 분들은."담담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오늘부로 직무에서 배제됩니다.""...!""감사실과 법무팀에 자료를 넘겼습니다. 법과 사규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회의실이 술렁거렸다."사장님! 잠깐만요!""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오해입니다!""조작입니다! 누군가 음해하고 있는 겁니다!"아까까지 여유를 부리던 얼굴들은 온데간데 없었다.이제 남은 것은 창백한 얼굴과 다급한 변명뿐이었다.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끝까지 듣지 않았다."우선."회의실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회사의 등골을 빼먹는 버러지들부터 처리하겠습니다."회의실은 이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