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Crawler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

히로인들이 집착하는 야겜 속 악덕 사장 — novelpia.com · All chapters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

점심시간, KJ그룹 사내식당."여기 자리 있다."쟁반을 든 이주희가 먼저 자리에 앉았고, 뒤이어 박소영과 최유리가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비록 근무하는 부서는 달랐지만, 점심만큼은 웬만하면 셋이 함께 먹었다."아, 진짜 오늘 죽는 줄 알았어."이주희가 국부터 한 숟갈 떠먹으며 한숨을 쉬었다."왜?"박소영이 고개를 들었다."우리 팀장님 또 시작했잖아.""이번엔 또 뭔데?""기획안 수정. 지겹다, 지겨워.""몇 번째?""아홉 번째.""...미쳤네."박소영이 헛웃음을 터뜨렸다."그러니까!"이주희는 기다렸다는 듯 젓가락을 흔들었다."분명 어제는 좋다고 해놓고 오늘 와서는 또 감성이 부족하대.""감성이 부족하다고? 광고 기획안에 무슨 감성이야.""내 말이!"둘이 투닥거리듯 대화를 이어가자.옆에서 조용히 밥을 먹던 최유리가 풋 웃었다."그래도 주희 언니 팀장님은 말씀이라도 해주시잖아요. 저희 팀은 그냥 다시 가져오라고만 하세요.""그게 더 나쁘네.""그러게."세 사람 모두 웃음이 터졌다.평소와 다름없는 점심시간.거의 항상 이런 식이었다.수다쟁이 이주희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박소영이 적당히 받아주고 막내인 최유리가 웃으며 맞장구를 친다."아, 맞다."그러다 이주희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린 듯 눈을 반짝였다."너희 그 얘기 들었어?""무슨 얘기?"박소영의 물음에 이주희가 입을 열었다가."사장님이-""..."곧바로 말이 뚝 끊겼다.'아.'뒤늦게 생각난 것이다. 지난번 점심시간의 일이.그때 강태성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박소영은 답지 않게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냈었다.'괜히 얘기했네. 아으… 이 화상아.'이주희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최유리도 미묘하게 눈치를 살폈다.분위기를 읽은 박소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괜찮아. 사장님 얘기 해도 돼."두 사람이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박소영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보니까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더라.""어?"이주희의 눈이 동그래졌다.박소영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주희 네가 전에 했던 말. 사람이 변했을 수도 있다고 했지.""...응.""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식탁 위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이주희와 최유리는 서로 얼굴을 한 번 쳐다봤다.둘 다 같은 생각이었다.'의외다.'아니, 의외라는 말로는 부족했다.입사 후 지금까지 박소영은 남자 직원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물론 남자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같은 회사 영업팀의 이준호.그가 있었기에 다른 남자들과 불필요하게 가까워질 이유도 없었다.회식에서도 적당한 선을 지켰고, 남자 직원이 친한 척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끊어냈다.

d3kza0VLSVdxajZ6L09aWC8xUnR2SlFMTjdWQzBXc3FlZ25NVW9yVWFvRDJZL2U5M24yeEdrem16OFRReVdnag

자신의 남자친구인 이준호 대리 말고는 다른 남자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법도 없었고, 다른 남자들을 칭찬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우리 준호 오빠가 최고라면서-.평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그런 박소영이 강태성을 좋게 평가한다고?"잠깐잠깐."무언가 냄새를 맡은 이주희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갑자기 왜… 사장님에 대한 평가가 좋아진 거지?”최유리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요, 소영 언니가 그런 말씀하시는 건 정말 의외예요. 사장님이랑 혹시 무슨 일 있으셨어요?""...!"순간, 박소영의 머릿속에 그날 밤이 떠올랐다.늦은 퇴근길, 으슥한 골목.자신을 둘러싸던 불량배들.아무 말 없이 자신의 앞을 막아섰던 거대한 등.'집 앞까지 데려다드리겠습니다.'그날 이후, 야근을 하고 어쩌다 퇴근 시간이 맞는 날이면.강태성은 자연스럽게 자신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 밖으로 걸어 나왔다.-오늘도 늦으셨네요. 갑시다.그리고 아무 말 없이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처음에는 부담스럽고 불편했다.혹시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몇 번이나 의심했다.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집 앞에 도착하면.-수고하셨어요. 내일 봅시다.그 한마디만 남기고 그대로 돌아섰다.꼭, 오래된 사내 커플이 퇴근길을 함께 걷는 것처럼.‘무, 무…무슨!’이어진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박소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아, 아무 일도 없었거든!"갑작스러운 반응에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깜빡였다."그냥!"박소영은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그냥... 일을 열심히 하잖아."그녀가 애써 변명거리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회사도 많이 바뀌고. 그래서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야.""...그래?"이주희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하긴, 요즘은 진짜 일 열심히 하시는 것 같긴 해."최유리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경영지원팀에서도 다들 그러세요. 사장님이 요즘 결재도 엄청 꼼꼼하게 보시고 성과 좋은 사람은 바로 챙겨주신다고요.""우리 팀도 그래. 사람이 변했다더라. 덕분에 다들 의욕 장난아니야.”박소영도 동의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사실이었다.회사의 수뇌부인 사장이 변하자, 회사 내부의 분위기가 변했다.사장인 강태성이 아니라, 강태성이란 사람 자체도… 이전과 다르게 변한 느낌이었다."..."강태성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문득 그 단단한 팔뚝이 떠올랐다.자신을 감싸주던 커다란 손. 그 듬직하고 뜨거운 손이-.'...미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박소영은 얼른 고개를 숙여 밥을 한 숟갈 떠먹었다.그 모습을 본 이주희가 최유리를 힐끗 바라봤다.최유리 역시 아주 미세하게 눈을 마주쳤다.둘 다 말은 하지 않았다.그럼에도 통하는 게 있었다.'이것 봐라?''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요!'평소의 박소영이라면.강태성을 저렇게까지 감싸줄 리 없었다.게다가 아까 얼굴까지 붉어진 반응은....둘은 더 묻지 않았다.친구가 말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 캐묻고 싶지는 않았으니까.다만, 호기심만큼은 이전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안녕하세요, 사장님!"인포데스크 직원이 활짝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오셨습니까!"나도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오늘도 고생 많으십니다.""하핫, 아닙니다! 좋은 운동 되세요!"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풍경이었다.원래의 강태성이라면 직원의 인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무시하기 일쑤였을 테니까.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인사 한마디 하는 게 뭐 어렵다고.나는 회원 카드를 찍고 사내 헬스장 안으로 들어갔다."오랜만이네."저녁 운동은 정말 오랜만이었다.빙의 직후만 해도 나는 하루 두 번 운동을 했다.아침 출근 전, 그리고 퇴근 후.하루도 빠짐없이 1일 2회 운동을 수행한다.한시라도 빨리 살을 빼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이었다.덕분에 몸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불룩했던 뱃살은 많이 들어갔고 숨만 헐떡이던 체력도 꽤 좋아졌다.문제는 그 뒤로 너무 바빠졌다는 것이었다."회사 일이 너무 많았어."회사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일이 쏟아졌다.보고서 검토, 회의,결재 등등.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야근이 몇 주째 계속되면서 자연스럽게 저녁 운동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아침 운동만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었으니.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저녁이 있는 삶을 얻은 것이었다.'드디어 정시 퇴근이다.’'최근 들어 업무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적어도 오늘처럼 저녁 시간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생겼다.탈의실을 나온 나는 스트레칭을 하며 운동기구 쪽으로 걸어갔다.문득, 박소영 대리가 떠올랐다.'오늘도 야근하는 것 같던데.'요즘은 퇴근 시간이 맞으면 함께 회사를 나서는 일이 자연스러운 루틴처럼 되어 버렸다.처음엔 그냥 걱정되서였다.이곳은 야겜 속 세상이었으니.내 소중한 노동 자원이 밤늦게 퇴근하다가 안좋은 일이라도 당하면 그건 그것대로 마음도 안좋고 손해가 막심했기에.그래서 시간이 맞는 날이면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오늘은 괜찮겠지.'혼자서 퇴근하더라도 괜찮을만큼 대비를 해두었다.보안 업체와도 추가 계약을 맺었다. 가로등 설치도 했고.예전보다는 훨씬 안전해졌을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오늘은 나도 쉬고 싶어.'오랜만에 땀을 흠뻑 흘리고 집에 가서 샤워한 뒤, 푹 자고 싶었다.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하루일 터.러닝머신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때였다."유리 씨, 내가 잘 알려준다니까?"어딘가 음흉한 남자의 목소리."처음 운동 시작할 때 혼자 하면 다쳐요, 응?""으음, 그게….""맨날 러닝머신만 탈 순 없잖아. 내가 기구 쓰는 법 하나하나 알려줄게."무심코 시선이 향했다."...."낯익은 얼굴이었다.긴 생머리에 단정한 운동복.곤란한 듯 미소를 짓고 있는 미인.'최유리였나.'박소영 대리와 늘 점심을 함께 먹던 직원.사내에서도 꽤 예쁘기로 유명한 직원이라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반면, 그 옆에 붙어 있는 남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어느 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도 꽤 있어보였고.무엇보다 직급이 최유리보다 높은 모양이었다."...아하하."최유리가 어색하게 웃었다."그러면… 알려주시겠어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오히려 난처함이 그대로 묻어나왔다.남자는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그냥 무시하는 건지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처음엔 누구나 배우면서 하는 거야. 내가 자세도 하나하나 봐줄게.""...."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봤다.아무래도, 좋은 의도로 접근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근거는 남자의 시선이었다.대화하는 내내 최유리의 얼굴보다 몸을 훑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운동을 알려주겠다는 사람보다는, 먹잇감을 살피는 짐승의 눈빛에 가까웠다."아하하…."최유리는 웃고 있었다.그러나 내가 보기엔 억지웃음으로 보였다.'거절을 못 하는 성격인가.'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나이 차이에 직급 차이.거기에 헬스장이긴 하지만 회사라는 공간.괜히 단호하게 거절했다가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도 있다는 부담감.신입이나 저연차 직원이라면 흔히 겪는 상황이었다.'저런 타입은 강하게 선을 그어야 하는데.’'나는 괜히 신경이 쓰였다.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는, 오직 나만 알고 있었으니까.겉보기엔 헬스장에서 흔히 벌어질 법한 평범한 일상이다.그러나 조금만 틈이 생기면, 언제든 야겜다운 이벤트가 벌어지는 세계라서.‘괜히 찝찝하네.’나는 러닝머신 위에 올라서면서도, 시선 한쪽만큼은 계속 최유리 쪽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