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회귀.
나는 어렸을 적부터 축구가 좋았다. 어느 날, 술에 취하신 아버지가 최신형 게임기를 대신하여 들고 오신 축구공.그것이 내가 축구에 빠져들게 된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솔직한, 마음으로는 가정용 콘솔 게임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했지만.“우…. 우와! 축구공이다! 아빠 최고!”“찬혁아, 미안 아빠가 게임기 살려고 매장 갔는데, 게임기가 다 팔렸더라.”“아니야! 축구공이 더 좋아!”가난한 어린 시절 탓에 일찍 철이 들었던 나는 혹여나, 아버지가 속상해하실까 괜히 더 밝은 표정으로 축구공을 건네받았다.“이번 주 일요일에는 아빠랑 같이 축구할까?”“응!”그날 이후, 매일 같이 아버지와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내 꿈은 자연스럽게 축구 선수가 되었다.하지만.축구 선수를 꿈꾸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나는 재능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박찬혁, 오늘은 훈련하러 안 가?”“아니, 나 축구 그만두려고.”“어? 왜?!”“그냥, 나랑 안 맞는 거 같아서.”조금 슬프지만, 이 세상에는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있더라고.‘축구 지능은 월클 하지만 피지컬은 K5. 프로 구단에 입단 할 수 있으면 기적인가….’자기객관화만큼은 확실했던 나는 어떠한 프로 팀에서도 지목받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고, 중학교 3학년을 끝으로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한 뒤, 남들보다 빠르게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이제 뭐 해 먹고 사냐…. 이럴 줄 알았으면 어렸을 때 공부 좀 해둘 걸.’하지만 내 어린 시절은 축구 선수라는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쭈욱 달려왔던 터라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이 막막했다. 특히, 공부 그중 수학은 악마의 학문이 분명했다. 내가 직접 푸는 것보다 3번으로 찍는 게 점수가 더 잘 나올 지경이었으니까.‘에헤이, 조졌네 이거.’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고민이 커지던 시기.성적표를 받아 든 나는 쓰린 속을 달래고자 밤새도록, 사커 매니저를 플레이했다.“야. 이놈아! 성적이 이 모양인데 게임이 손에 잡히냐!?”“엄마, 잠시만 이것만 하고!”“축구 선수 이름만 띡 적어놓은 그게 뭐가 그리 재밌다고! 차라리, 축구 감독을 해라 이것아!”그리고 이른 아침 어머니에게 등짝을 얻어맞으며 깨달음을 얻었다.‘선수로서는 재능이 부족하지만 감독은 괜찮지 않을까?’나는 곧장 중학생 감독님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선생님…. 축구 감독이 되고 싶어요.”“그걸 왜 나한테 와서 그래, 감독하고 싶으면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에 지도자 자격증부터 따.”그리고 이 당시의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찬혁아, 너 지도자 자격증 땄다고 했지?”“네. KFA C요.”“벌써?”“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D급 땄고, 군대 다녀와서 바로 C급 땄습니다.”“새끼, 드럽게 성실하네. 혹시 프로 구단 유소년 코치 자리 있다는 데, 관심 있으면 추천해 줄 테니까. 면접 한번 볼래?”“역시, 제자를 생각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덕장은 박! 철! 웅! 감독님입니다!”“지랄…. 남들은 군대 다녀오면 철 들던데, 이 새끼는 군대 다녀오더니 정신 머리가 이상해졌어.”나는 군대를 다녀온 이후 중학교 축구부의 감독님이자 은사인 박철웅 감독님의 추천으로 2부 리그이긴 하지만 프로 구단 유스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말이 프로 팀 산하 유소년 코치지…. 사실상 관리를 방치한 축구 교실 스태프구나.’구단에 처음 출근했을 때는 구단의 시설 상태에 현타가 강하게 느껴졌지만, 멘탈을 부여잡은 나는 열정적으로 유소년들을 가리치며, 스포츠 심리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를 끊임없이 공부했다.그리고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구단 관계자는 훗날 A급 자격증을 취득한 나에게 R리그 감독직을 제안했다. 뭐. 우수한 성적으로 지도자 자격증 강의를 수료한 것도 도움이 되었으리라.아무튼, 나는 구단의 제의를 수락하여 R 리그(리저브 팀)의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리저브 팀인지라 경기 관중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훗날 팀의 중심이 될 유소년을 키우는 구단 내 중책이었으며, 나름 감독으로써 귀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자리였다.그렇게 감독 경력을 쌓아가던 어느 날.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이 경질되었고, 수석 코치조차 임시 감독직을 거부하자 구단은 나를 임시 감독으로 선임했다.나는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2부이긴 하지만 프로 팀 감독 대행에 나섰다. ‘비선출’임을 고려하면 이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진급이었다. 그 당시, 모기업 재정이 좋지 않아 내려주는 지원금을 대폭 삭감되지 않았다면, 아마 내가 선임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뭐. 어쨌든, 감독 대행으로 나름 준수한 성적을 냈다. 그리고 그 성적을 바탕으로 이후 구단과 정식으로 감독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다음 시즌에는 기념비적인 구단 역사상 첫 1부 리그 승격까지 이루어냈지.’타이거스가 위치한 연고지에서는 1부 리그 승격과 동시에 축구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1부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킨 타이거스, 가장 중요한 것은 박찬혁 감독의 거취.]국내 축구 팬들은 약팀으로 강팀을 두들겨 패는 나의 ‘(물리) 공격 축구 철학’에 서서히 빠져들었다.[타이거스 박찬혁 감독, 거친 축구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자. “축구는… 아파야 합니다.”]└ …찰리 아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레저스포츠 ㅇㅈㄹ은 안 했네 ㅋㅋㅋㅋㅋ└ 그건 똘아이라도 감당이 안 되지 ㅋㅋㅋㅋㅋ가난한 시민 구단의 한계 탓에, 스쿼드가 빈약했고, 시즌 후반이 다가갈 수록 주전 선수들이 퍼지며 아쉽게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타이거스 감독 박찬혁, 2부 리그로 강등 당한 자이언트를 조롱? “다음 시즌은 부디 그들이 잔류할 수 있기를 기도하겠다.”]└ 이 새끼가?└ 긁?└ 내가 하고 싶은 말 대신 해 줘서 고맙다고 ㅎㅎ└ 잘 가세요~ 잘 가세요~~└ 기자들한테 우리 함께 다음 시즌 자이언트의 잔류를 기도합시다 ㅇㅈㄹ한 게진짜 광기 ㅋㅋ시즌 내내 치러진 화려한 인터뷰로 나는 단번에 스타감독에 등극할 수 있었다.[타이거스 감독 박찬혁의 말, 말, 말. 계속되는 구설수 논란에 사과문을 올린 박찬혁.]└ 이딴 게 사과문?└ ㅅㅂㅋㅋ 팩트를 전달한 건데 상처 받을 줄은 몰랐다. 근데 이미 내뱉은 말이니 그냥 용서해 줘라 ㅇㅈㄹ└ 해석: 그래서, 상처받았으면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는데.뭐. 그로 인해 악명이 조금 높아지긴 했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감독은 결과로 증명하는 자리였으니까.[박찬혁 매직? 원정 좌석 매진.]└ 왜 타이거스는 매번 홈 팬보다 원정 팬들이 더 많냐?└ ㅅㅂ 이 새끼가 꼴 받게 하잖아요.아가리질 한 번 할 때마다 튀어 오르는 원정 팀 관중 수입이 내 방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어쨌거나, 무플보다는 악플이 더 낫듯이, 무명보다는 악명이 더 나은 법이다.[축구 협회,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박찬혁 고려….]└ 이 듣보 새끼는 누구임?└ 타이거스 감독임. └ 아니 국내 감독 ㅇㅈㄹ하지 말고 닥치고 외국인 감독 데리고 오라고;;실제로, 악명을 바탕으로 차기 국가대표 팀 감독 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되지 않았던가.[박찬혁 타이거스 감독, 국가대표 팀 감독 자리에 대해 욕심을 드러내다.“내 축구는 세계에서도 먹힐 것.”]└ 안 된다 ㅠㅠ 협회놈들아 우리 감독 데려가지 마라 ㅠㅠ└ 내놓기 너무 부끄러운 감독 제발 타이거스에 그대로 있어 주세요 ㅠㅠ└찬└혁└종.└신.해당 기사를 본 당일 나는 대표팀을 맡아 좋은 성적을 거둬 유럽에 진출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고급 어휘로 행복 회로를 돌렸단 뜻이다.지금에 와서는 전부 부질없는 계획이었지만 말이다.행복의 순간은 지나치게 짧았고, 불행은 한 번에 찾아왔다.[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에 2002년 전설 홍만보 감독 선임.]국가대표 팀 감독직 후보에서 한국 축구의 전설이라 불리는 인물에게 밀려 탈락했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축구 협회에서는 나를 방패막이로 사용한 것 같다.나는 흔히 축구 협회의 메인스트림이라 말하는 고대 라인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항의할 수도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감독직 아니 축구로 밥 먹고 살려면, 협회를 거슬러서는 안 됐다. 뭐. 대중들이 나에게 힘을 보태준다면, 협회를 들이 박아 보겠지만.[홍만보 감독 선임에 여론 부글부글….]└ 그래도, 박찬혁 보단 만보가 낫다;;└ ㄹㅇㅋㅋ 만보형은 코리안 리그 우승이라도 해봤지.유감스럽게도, 나에 대한 대중의 민심은 좋지 못한 편이었다.워낙 입을 털어놓은 탓에, 인터뷰를 했다가 괜히 패드립이나 안 먹으면 다행인 수준인 것.거기에, 들이박을 명분도 부족했다. 협회가 방패막이로 사용했다는 것은 오로직 심증일뿐이었으니까.- 으메, 우리 아들이 국가대표여?아들이 국가를 대표한다며 좋아하시던 부모님은 내가 국가대표 감독직 후보에서 탈락하고 며칠 뒤 돌아가셨다. 국가대표 감독 후보에서 탈락한 아들 위로해주겠다며, 서울로 올라오시던 중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이다.‘축구 감독이 되지 말았어야 했나.’우울증과 자책감 속에서 부모님을 하늘 나라로 보내드리고, 횡단보도 신호를 허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무렵.나는 돌연 가슴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꺄아아악─!- 거기, 검은 모자 쓰신 분 119에 신고해주세요!- 제, 제가요?주변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어수선해지는 것을 끝으로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번쩍.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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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기가 되어 있었다.아주 평범한 회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