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터 각성.
스카우터 각성.
***토요일 저녁.박영만은 피곤해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본래라면 업무가 끝이 나고 회식 자리로 끌려갈 예정이었지만, 아이가 있는 가장들은 가서 육아를 도와주라는 애처가 사장의 지시로 퇴근할 수 있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내와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회식 있다더니 일찍 왔네요?”“그렇게 됐어.”영만은 아내를 한 번 안아주고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다가 갔다.“찬혁아, 아빠 왔다.”아들 찬혁은 어린 시절부터 다른 아이들과 많이 달랐다.워낙 조용했던 터라 혹시 병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을 정도였다.‘애가 크게 될 것 같네.’시도 때도 없이 우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찬혁은 정말 필요할 때만 찾는 느낌이 강했다. 오죽했으면 육아가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따가!”아들은 볼을 비비는 아빠의 수염이 따가웠는지, 손으로 얼굴을 마구 때렸다. 아들의 손이 제법 매웠던 터라, 영만은 빠르게 얼굴을 뒤로 뺐다.그러고는 민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찬혁이, 축구 볼까?”온종일 종이에 괴상한 그림만 그리고 노는 아들이 걱정되어, 큰 마음먹고 구매한 최신형 TV였다.TV를 구매한 뒤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만화 영상을 틀어줬지만, 찬혁이는 전혀 흥미를 갖지 않았다.우연히 축구 중계를 틀어 주고 나서야, TV에 관심을 드러냈다.세상만사 귀찮은 표정을 짓는 아들이었지만, 축구를 볼 때만큼은 달랐다. 축구를 틀어놓으면 두 눈을 반짝였다.이미 수차례 반복해서 본 재방송이었지만, 아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경기를 바라봤다.“나중에, 찬혁이가 축구 선수가 되려고 그러나?”축구에 몰입하기 시작한 아들을 이불 위에 내버려 둔 채, 아내와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의 미래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고된 삶 속에서 그가 얻는 자그마한 행복이었다.“근데, 예체능은 돈 많이 든다던데….”아내의 말에 영만은 웃으며 말했다.“내가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되지.”대한민국의 경제가 고도 성장하던 시기였다.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어제보다 내일이 더 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했다.“여보….”“정희야.”“영만씨.”한편 그 시각.‘어휴. 또 시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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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애정행각을 목격한 찬혁은 조용히 혀를 차며, 축구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어린아이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시간은 느리지만 꾸준히 흘러갔고, 나는 어느덧 6살이 되었다.[문민정부 출범.]나는 아버지가 구독하신 신문을 바라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이 시기의 주식과도 같은 돈되는 정보를 자세히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웠다. 나는 평범한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뭐, 설령 자세히 알고 있다고 해도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부터 난관이었을 것이다.대체할 수 없는 투자처가 존재했으니까.이 시기에는 은행에 저축하기만 해도 이자가 무려 8.5%나 보장됐다.아마, 회귀하기 전의 내가 이 사실을 발견했다면 이러고 놀라지 않았을까?‘뭐? 손해 없이 8.5%나 보장해준다고? 세상에 그딴 게 어딨어.’전 재산을 미국 주식에 박아놨다가, 지구GM 트황상의 정상화에 안색이 주식 계좌처럼 새파랗게 질렸던 미래의 내가 떠오른다.‘투자의 신 버핏이 경고할 때 따라서 뺄 걸.’나는 씁쓸함을 뒤로한 채, 신문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했다.어쨌든. 회귀하긴 했지만 축구 감독이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유럽이면 몰라도, 한국에선 더 이상 안 하지.’소비할 컨텐츠가 없어서 종이에 전술 노트를 작성하고 있긴 하지만. 지난 생에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던 탓에, 한국에선 더 이상 축구와 관련된 일하고 싶지 않았다.미래 지식을 활용하여 부자가 된 다음, 부모님에게 효도하며 사는 것이 이번 생의 내 목표였다.회귀자가 손에 꼽힐 거부가 되는 것은 ‘명백한 운명’인 만큼, 훗날 EPL의 구단주까지는 상상해봤다.‘그래도, 감독은 아니지.’하지만 나를 회귀 시킨 위대한 존재께선 이런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미션: 감독으로 빅이어를 들어 올리세요.]실패 시: 회귀 전 상황으로 돌아갑니다.어느 날, 퀘스트라며 터무니없는 목표를 제시해 왔다.나는 차마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다만, 욕설 타이밍이 조금 절묘했다.“정희야.”“영만씨.”“찌랄하고 짜빠쪄네.”하필 부모님이 애정 표현을 시작하실 때, 욕설을 내뱉은 것.순식간에 침묵이 자리하고, 엄마와 아빠의 싸늘한 시선이 나에게 향한다.“라고 쩌번에 아빠가 그래써!”나는 인생 2회차에 걸맞은 재빠른 순발력으로 위기를 모면했다.“내가 애 앞에서 욕하지 말랬지!”“아니, 나 욕한 적 없는데….”나는 아버지를 제물로 바쳐 붉은 눈의 김정희를 소환했다.그리고 도움을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눈빛은 차갑게 외면했다.뭐.이것도 나름 우리 가족의 추억이 될 것이다.***미션창을 받고 한동안 패닉에 빠졌던 것도 잠시, 나는 정신을 차리고, 능력을 찾아보기 시작했다.갑작스럽게 미션을 쥐어 준 만큼,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지금이다.’어머니가 저녁 준비하고 있을 무렵,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외쳤다.“상태창!”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생각해 보니, 미션은 축구 선수로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닌 감독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스카우터…?”그 순간.시야에 반 투명한 홀로그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나는 두근 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바라봤다.‘알고 봤더니 세계를 씹어 먹을 재능을 지녔으면 어떡하지?’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이름: 박찬혁.]-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아 정확한 평가 불가능.- 지난 생 기준으로 평가를 진행함.- 한줄평: 선수 말고 다른 직업을 찾는 걸 추천함.평가는 생각보다 냉혹했다.***나는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했다.아무래도, 발밑 감각 훈련 같은 건,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것이 좋았으니까.‘내가 다시 축구하게 될 줄은 몰랐네.’목표는 감독으로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 것임에도, 힘들게 훈련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첫 번째로 아시아는 축구의 변방이다.이곳에서 축구를 한다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유럽에서 감독이 될 수 없었다.유럽에서 감독을 하기 위해선 적어도, 유럽에서 뛰어본 적이 있는 선수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그곳 선수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테니까.‘한국 선수도 비선출이라고 하면 개무시했는데, 유럽은 더 하면 더 하지 덜 하지는 않겠지.’유럽에서 축구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유럽으로 축구 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가난한 우리 집에서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뭐. 그래도 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 한국 축구 협회에서 우수선수 해외 유학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이다. 해외 유학 프로그램에서 발탁만 된다면, 협회 돈으로 유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나는 해외 유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도중, 유럽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라이센스 자격증을 딸 생각이다.'내가 돈만 많았어도! 이런 개짓거리 안 해도 됐을 텐데!'두 번째로는 주어진 능력인 스카우터를 잘 사용하기 위해선 여러 데이터가 필요했다.스카우터를 통해 알아낸 것이 있다면, 한국에 생각보다 축구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 대부분이 자기 재능을 찾지 못한 채 밤새도록 공부하고 있거나, 구시대적인 훈련 방식으로 인해 자기 성장 잠재력이 깎이고 있었다.여러모로 아쉬웠지만, 훈수를 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어린아이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어른은 없었으니까.“지금부터 오리 걸음을 실시한다!”나는 실시간으로 축구 유망주들의 잠재력이 깎여나가고 있는 걸 애써 외면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하면 무릎 다 박살 나는데….사실, 저번에 훈수를 두려고 했더니 감독이라는 양반이 다짜고짜 어린아이의 뺨을 때리려고 해서 깜짝 놀랐다.‘과연, 야만의 90년대….’그날, 이후로 나는 섣불리 훈수를 두지 않고 있었다.타인의 몸보단 내 몸이 훨씬 소중했으니까.“다녀왔습니다.”어쨌든, 집에 들어서자 평상시와 분위기가 달랐다.“찬혁아,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찬혁이가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착하게 지내서 선물로 주셨데.”1회차에선 존재하지 않았던, 동생의 임신 소식이 전해진다.이게 왜 내 크리스마스 선물이야라는 불효자스러운 생각은 ‘절대’하지 않았다.뭐, 사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그걸 매일 같이 하시는데, 동생이 안 생기면 그게 이상한 거지.최대한 조용히 한다고 하셨겠지만, 방 하나짜리 단칸방에서 그게 쉽겠는가.‘두 분의 나이가 전생의 나보다 어리다는 게 놀랍네.’내가 한 것이라곤 정신 연령 연장자로서 편하게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뿐이다.‘아.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진보된 성진국 문화를 두루 섭렵한 나의 감상으로는 아버지에게 훈수를 두고 싶었다고만 말해 두겠다.아무튼, 원 역사와 달리 부모님은 꾸준히 사랑을 나눈 결과, 동생을 임신했고. 오늘 그 사실을 밝히며 내 반응을 살피셨다.아마, 어디선가 동생에게 관심이 쏠리면, 첫 째가 질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같다.뭐. 인생 2회차인 나로서는 부모님으로부터 관심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그래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반경이 조금은 더 늘어날 테니까.“동생이 생겨서 좋아?”어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응.”손가락 하나로 부려 먹을 수 있는 ‘도구’가 생긴다는 사실에 기대가 됐다.지난 생에는 외동이었던 터라, 심부름 좀 시킬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으니까.“여동생이 좋아? 남동생이 좋아?”“남동생!”객관적으로 남동생이 도구로서 쓰임새가 더 많았기에, 나는 남동생을 희망했다.***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동생이 태어났다.아쉽게도 여동생이었다.“정아가 의젓한 게 찬혁이 어렸을 때랑 똑같네.”“그러게.”보자기에 싸인 여동생은 어딘가 비범해 보였는데.그 순간, 회귀자로서의 감이 움찔거렸다.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동생의 귓가에 속삭였다.“하일 히틀러, 우리 시대의 평화, make again great america, 넌 나를 존중해야 한다. siuuuuuu─!”움찔.‘뭐지….?’방금 묘하게 반응이 이상했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