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악의 패륜아.
지상 최악의 패륜아.
***“정신병자가 여기 있었네.”박정아는 오빠의 말이 들린 순간 겁에 질렸다.‘역시, 안 믿는 건가?’이대로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미래가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그려진 탓이다.박정아는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짓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손과 발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숨이 막힐 것 같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던 순간.“괜찮아. 실은 나도 회귀자야.”오빠의 충격적인 말이 이어졌다.“응?”오빠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박정아의 리액션이 고장 났다.박정아는 ‘근데 왜 우리 집 꼴이 아직도 이 모양이야?’라는 말을 필사적으로 삼켜냈다.여기서 초치는 말하면 맞는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까닭이다.애초에, 박정아는 남의 말에 태클을 거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이 중요한 순간에 그런 말이 떠오른 것도 오빠라는 인물과 같이 지내며 물든 탓이었다.“나도 회귀자라고.”어쨌거나,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와 함께 눈물이 흘렀다. 정신적으로 성인인 자신이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에 창피했지만, 어린 나이 때문인지 눈물샘을 조절할 수 없었다.오빠는 조용히 다가와 안아줬다.멀리서 보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오빠가 동생을 위로하는 아주 감동스러운 장면이었지만.“오빠도 회귀자라고?”“응.”“거짓말 아니지?”“진짜인데?”“그럼 왜 우리 집 아직도 가난한 건데.”“로또도 없는데 어떻게 부자가 되냐.”“소설 같은 거 보면 알아서 다 잘하던데.”실상은 서로 알고 있는 미래 지식을 확인하기 바빴다.“미국 다음 대통령 누가 되는데.”“오바마.”“…조지 부시가 이기긴 하는데, 오빠가 회귀한 건 알겠다. 덤으로 우리 집이 왜 아직 가난한 지도.”믿기 힘들지만, 오빠가 회귀자라는 사실이 증명되자.‘…그럼 그게 다 큰 성인이 했던 짓이라고?’박정아의 머릿속에서 그동안 당했던 괴롭힘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걸음마가 시작되자마자 시작된 물 심부름부터, 프리킥 벽으로 활용한 것까지.그 모든 것이 다 큰 성인의 발상이라는 사실에 믿을 수가 없었다.‘이럼… 안 되는데?’사실, 박정아는 오늘 자신이 전생자임을 밝히며, 오빠와의 관계를 새로 세울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시작되기도 전에 무너졌다.‘아니야, 아직 희망은 남아 있어.’그녀는 희망을 놓지 않은 채 오빠를 향해 물었고.“오빠, 회귀하기 전에는 몇 살이었어?”“37살. 너는?”“…안 알랴줌.”동생의 운명을 조용히 받아들였다.***나는 전생자임을 밝힌 동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각 자 전생에 무슨 일을 했는지도 이야기했는데.뭐, 특이할 것은 없었다.“전생에 아이돌이었다며, 무슨 그룹이었는데?”아이돌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잘 모르는 그룹이었다.생각보다 유명하지 않은 그룹이었나보다.“우리를 모른다고?!”“모든 사람이 너를 알 거라고 생각하는 그거 연예인 병이다?”내 말이 끝나자마자 씩씩 거리던 박정아는 진정제(주먹)를 보여주자 순식간에 침착해졌다. 이래서 조기교육이 중요한 모양이다.솔직히, 동생이 전생자라고 밝히고 대하는 게 조금 어색해지긴 했다.하지만 이번 생에선 변함없는 내 동생이었다. 동생이 전생자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동안 쌓아온 유대감과 사소한 추억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야. 목마르다.”“좀 직접 떠다 먹어라!”“물.”“…다녀올게.”내가 아는 아이돌이었다면 조금이라도 대우가 올라갔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모르는 아이돌이었기에 거리낌 없었다.그리고 동생 역시, 전생자임을 밝히기전과 다를 바 없이 편하게 대해주는 오빠의 모습에 편안함을 느낀 모양이다.‘…잠깐만 그럼 옛날에 물 쏟은 것도 일부러 그런 건가?’불편한 진실을 인지하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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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마셔.”동생이 물을 가져왔다.“그럼, 너는 이번 생에 뭐 하게? 다시 아이돌?”나는 동생을 바라보며,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아직,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으니까.“으. 싫어. 아이돌 두 번 다신 안 해.”“응? 미션 같은 거 없어?”“무슨 미션?”“나는 감독으로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라던데.”“나는 그런 거 없는데?”그 과정속에서, 능력인 ‘스카우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축구 선수들의 잠재력을 볼 수 있다고?”“응.”그 순간, 여동생은 마치 마르지 않는 금맥을 발견한 것처럼 두 눈을 반짝였다.“오빠, 축구 선수 몸 값 비싸지?”“응? 어. 비싸긴 하지. 공 좀 찬다 싶으면 기본 1000억이 넘었으니까.”“그럼, 우리 구단 하나 인수해서 유망주 키워 팔까?”“비트 코인만 적당히 사도 평생 쓰고 남을 정도인데 굳이?”내가 박정아의 돈 욕심이 상상 이상으로 많구나 생각할 무렵.“오빠! 미래는 우리 때문에 변할 수도 있지만, 능력은 다르잖아!”“능력도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데.”“나 믿으라니까? 능력 절대 안 사라져! 느낌이 와!”그녀는 갑자기 망상 풀엑셀을 밟기 시작했다.나는 21세기 노예 상인으로 전직하려는 여동생을 진정시켰다.“그 전에, 로또 번호나 말해줘. 내가 부모님 설득할 테니까.”“아. 맞다.”***나는 회귀를 준비한다며 로또 번호를 외우고 살아가던 ‘정신병자’ 여동생으로부터 로또 번호를 건네받은 뒤, 전장에 나서는 장군의 심정으로 방문을 나섰다.문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두 손으로 화이팅을 하는 동생의 모습이 보이고.‘오빠, 화이팅.’‘나만 믿어라.’우리는 생각이 통한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참고로, 내가 엄마를 설득할 비장의 무기가 있다고 해서 대표로 나서게 됐다.거실로 향하자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동생이 적어 준 6개의 숫자가 적힌 종이를 건네며 필사기를 꺼내 들었다.“엄마,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로또 번호 알려 줬어.”미신을 믿는 우리 엄마는 이 말 한마디면 높은 확률로 통할 것이 분명….“그게 무슨 소리니? 아빠랑 아버님 두 분다 멀쩡히 살아계시는데?”응?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시다는 소리에 내 머릿속에선 에러가 났고.“아. 아직, 살아계셨구나?”나는 최악의 말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아. 아직, 살아계셨구나?”오빠 박찬혁의 모습을 보고 박정아가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저 새끼는 도대체 뭐지?’박정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순식간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부자가 될 기회가 날아갔다는 허탈함부터, 멍청한 오빠를 향한 분노와 차라리 자신이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는 후회까지.그녀의 마음은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고.“오빠!!”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방으로 돌아온 오빠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려던 순간.“동생아, 따라와라.”박찬혁이 말했다.그리고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로또를 판매하는 동네 마트였다.“오빠, 오빠가 객관적으로 얼굴이 삭긴 했는데, 성인으로 볼 정도는 아닌데.”“동생아, 닥치고 작전 설명해 줄 테니 얌전히 들어라.”“…응.”“타이밍 맞춰서 내가 꼬집을 테니까 너는 울면 돼. 그러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게.”솔직히 신뢰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빠를 한 번 더 믿어볼 수밖에.***‘어쩔 수 없지.’평상시의 나라면 계획이 꼬인 순간 포기했겠지만, 회귀 이후 15년 만에 찾아온 인생 역전의 기회를 손쉽게 놓칠 수는 없었다.“동생아, 따라와라.”나는 동생을 데리고, 주변 로또 판매점으로 향했다.어른이 술과 담배를 사 오라고 심부름 보냈다고 말하면 미성년자 아이에게 담배와 술을 건네주던 낭만의 시대다.최근, 정부에서 집중 단속하여, 미성년자에게 술, 담배, 복권 등을 판매 거부하는 곳이 늘어났지만.거의 도X에몽급 만능 도구인 ‘여동생’만 있다면, 손쉽게 로또를 구매할 자신이 있었다.“어머, 부모님 심부름 왔니?”슈퍼 마켓 안으로 들어서자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겨 줬다. 내 얼굴이 조금 나이 들어 보이긴 했지만, 아직 앳된 티를 벗지는 못했다.“네, 복권 한 장이랑 담배 한 갑 주세요.”“스읍. 어떡하지, 이제 부모님 심부름이라고 해도 아이들한테 판매하면 안 된다고 해서.”슈퍼 마켓 주인이 판매하기를 꺼려하자, 나는 동생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으, 으아아아앙─! 아빠아아아─!”갑작스러운 통증에 동생은 울음을 터트렸다.“괜찮아. 아빠가 때릴려고하면 오빠가 지켜 줄게.”박정아는 내가 안아주자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그 모습에, 슈퍼 마켓 주인의 마음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이번에만 판매해 줄 테니까. 부모님한테 다음부터는 안 된다고 꼭 말씀드리고.”“감사합니다!”“로또 번호는 어떻게 해 줄까?”“수동이요. 이 번호로 해주세요.”졸지에, 우리 아버지는 애들이나 패는 쓰레기라는 동네 평판을 얻게 되었지만.괜찮다.로또 1등 당첨이라면, 아버지도 자기 평판이 쓰레기가 된 걸 용서해 줄 것이 분명했다.성공적으로 슈퍼마켓에서 로또를 사서 나오고, 집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 “오빠, 담배는 왜 샀어?”여동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내가 필려고.”“응?”“고맙다, 동생아. 안 그래도 금단 증상 와서 힘들었는데 덕분에 해결했다.”여동생의 싸늘한 시선이 나에게 향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저녁 늦은 시각.오늘도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두 아이의 아버지 박영만.“담배 하나 주세요.”“쯧.”그는 쌀쌀맞은 슈퍼마켓 사장의 태도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 했다.‘…뭐지? 부부 싸움이라도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