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만료.
계약 만료.
***우리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곳은 도심에 지어진 신축 아파트였다.독일 적응을 위한 첫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부유한 사람들은 외곽 지역 단독 주택에 머무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독일인이 그들과 같다고 생각하면, 언젠가 화를 입기 마련이니까.그리고 사실 부모님도 베를린의 남서쪽에 위치한 달렘Dahlem지역과 같은 부촌도 알아봤지만.워낙 소시민적이고 북적북적한 삶을 살아왔던 탓에, 고요하고 지나치게 정적인 동네 분위기가 불편하셨던 모양이다.“지금 아니면 언제 아파트에 살아보겠니. 단독 저택은 나중에 더 나이 먹고 시골 가서 살아도 괜찮다. 그때쯤이면 한국도 조용해지겠지.”한국인이라 그런지 단독 저택보단 아파트를 선호하셨기도하고.‘아직, 젊으셔서 그런가.’뭐… 이곳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특히, 집 주변에 한인 마트를 비롯한 식료품 상점 등이 있어서 어머니가 만족하셨다.“어휴, 말도 마라. 온갖 사람들이 달려들더라. 오죽 했으면 연락 끊겼던 사람들한테도 연락이 오더라니까?”“고생하셨네요.”“그래서, 찬혁이 너는 요즘 어떠니?”어쨌든, 우리 가족은 새 집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오손도손 이야기했다.“음…. 저는 지도자 라이센스를 준비 중이에요.”“지도자 자격증은 선수 은퇴하고 준비하는 거 아니니?”나는 어머니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고, 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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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혁이 너가 알아서 잘하겠지. 아빠랑 엄마는 언제나 믿고 있다.”아버지의 말씀에 문득, 끝까지 지지해주시던 지난 생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다.‘박정아의 전생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300억이라는 거금이 생겼음에도, 이전과 변함없이 화목한 가족의 모습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그리고 막말로 찬혁이가 공부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잖니.”“….”여기서, 갑자기 팩트로 때리시네.“흠흠. 어쨌든 축구를 인생의 목표로 정했으면 쭉 밀고 가거라. 이제는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갑자기 팩트 폭력을 당하긴 했지만, 내 가슴속의 감동은 여전했고.“역시 엄마, 김치가 최고네요.”나는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막기 위해 말을 돌렸다.“응? 그거 한인 마트에서 산건데?”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자.‘어쩐지, 김치가 맛있더라.’***동생은 베를린에 위치한 그룬트슐레(Grundschule) 다니기로 결정됐고 곧바로 그룬트슐레(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공립 학교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뭐. 적응하지 못하면 그때 국제학교로 옮기겠지.왕따를 당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었지만, 인생 2회차인데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아…학교 가기 싫다. 또래 애들 유치해서 개극혐.”“쯧쯧. 초딩 새끼.”“나이 많아서 좋으시겠어요.”“많기는 개뿔, 너무 적어서 오히려 문제다. 감독하려면 앞으로 10년은 더 굴러야 할 것 같은데.”“응? 그렇게 오래 걸려?”“너 같으면 20대한테 감독직을 맡기겠냐? 유소년 코치부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는데도 한 세월이겠네.”“그럼 내가 말했던 것처럼 구단 하나 인수해서 거기서 감독 커리어 시작하던가. 영국 하부 리그 인수해서 우리 맘대로 하는 건 상관없잖아.”“…그럴까?”여동생의 말에 나는 잠시 혹했다.구단주가 되면, 감독이 되기까지 많은 단계를 생략할 수 있으니까.거기에, 감독의 권위를 위해 굳이 선수들과 기 싸움을 안 해도 되는 장점이 존재했다. 어? 감히 감독 겸 구단주한테 개겨?바로, 관세 200%…가 아니라. 생각하는 의자(벤치)에 처박으면 된다. 거기에, 고액 주급자를 벤치에 박았다고 지랄할 구단주도 없다.“박정아.”“왜.”“오빠가 항상 너 믿고 있는 거 알지?”내 칭찬에 여동생이 매우 역겹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오늘만큼은 넓은 마음으로 넘어가 주었다.아무튼.나는 다시 축구 전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감독직을 맡기 위해선, 하부 리그에서 감독을 맡기 위해선 최소 지도자 자격증 A는 필요했으니까.목표까지 아직 갈 길이 멀었다.***며칠 가족들의 품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 나는 다시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왔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센스 시험이 있었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유소년 코칭을 위한 자격은 아주 기초적인 것들이었으니까.한국과 독일의 축구 문화가 차이가 있었던 만큼, 조금 다른 부분(체벌)도 있었지만, 주요 뼈대는 같았기에 시험을 통과하는데 상당히 큰 어려움이 ‘존재’했다.‘와. 떨어질 뻔.’유럽에선 유소년을 가르치는 데는 지도자의 인성이 생각보다 더 중요시됐고. 인성 부분에서 낙제점을 받을 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아무래도, 내가 지난 10년간 한국식 교육에 지나치게 물든 모양이다.말 안 듣는 아이를 어떻게 훈계할 것이냐는 질문에 뺨을 갈긴다라고 대답하자 면접관이 야만인 바라보듯 쳐다본 눈빛은 앞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지금의 한국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그나저나, 조금 신기한 것은 투헬이었다.‘투헬은 인성 검사를 어떻게 통과한 거지?’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어쨌든.현시점을 기준으로 유럽에선 아이들이 즐겁게 훈련할 수 있는 게임과 비슷한 방안 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럽과 아시아의 축구는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된다.뭐. 독일은 아시아 상대로 월드컵에서 2 대회 연속 패배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말이다.‘그렇다고 해서, 독일이 좆밥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선수 개개인의 이름 만큼은 강팀인 것이 분명했으니까.“Scheiße! 얼간이 같은 새끼들!”“또 보드진이랑 싸웠어?”내가 코치 자격증을 딴 것과는 별개로, 최근 구단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정확히는 슈투트가르트 U19 감독인 토마스 투헬과 보드진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투헬의 전술 철학에 지속해서 껴드는 구단 보드진의 행태에 불만을 느낀 투헬이 보드진을 들이박은 탓이다.투헬을 보고 느낀 점은 진짜 축구에 미친 돌아이라는 것이다.나도 지난 생에 구단에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살긴 했지만.그건 내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불가능한 지점으로 올라오고 나서였다.즉, 각을 재다가 대가리를 들이밀었다고 볼 수 있었다.하지만 토마스 투헬은 진짜 중에 진짜였다.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감독이 아니라 유소년 감독인데 그래도 구단에 ‘숙여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겠지만.투헬은 일단 대가리부터 들이 박았다.자기 자신이 정한 가이드 라인에서 한 치도 굽힐 줄 모르는 성격 때문이었다.‘인간 마지노선이 여기 있었네.’과연, 커리어 내내 보드진과 갈등이 자주 나는 이유가 있었다.‘근데 왜 마지노선이 독일에 있지.’토마스 투헬이 프랑스 혈통인가 의아해하는 사이.“찬혁, 놔! 그 대머리 자식을 죽여 버리고 말 거야!”슈투트가르트 보드진과 토마스 투헬 사이의 감정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명색이 축구를 배우러 독일에 왔는데 독일어만 느는 것 같다.이제는 토마스 투헬도 내 독일어 발음을 인정해 줄 정도였다.“억양이 약간 올드하긴 하지만 이제 제법 들을 만 하군.”그거야, 히틀러와 괴벨스의 연설을 듣고 연습했으니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사실, 감독을 준비하는 후보생들에게 개인적으로 필수 시청 영상 자료라고 생각한다.동기부여와 선동은 글자 수 차이에 불과했으니까.‘…어? 그래서 독일이 축구를 잘했던 건가?’아무튼, 시각은 빠르게 흘러 토마스 투헬의 슈투트가르트 U19팀은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그리고 나의 축구 유학이 종료되는 시기가 다가왔다.사실, 지금쯤 계약 협상에 나서야 했지만, 아무래도 슈투트가르트 구단은 나를 붙잡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뭐. 슈투트가르트가 계약을 제안 하지 않았다고 해서, 구단에 유감스러운 감정은 없었다.구단도 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린 것이니까.나도 지난 생에 기량이 떨어진 애제자를 방출한 적이 있는 만큼 충분히 구단의 입장을 이해한다.구단의 처지에선 아무래도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나와 계약할 필요가 없었겠지.‘안 그래도 재정이 열악하잖아.’그래도 다행인 것은 슈투트가르트로부터 계약을 제안 받지 못했다고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가족이 이민 오기 전이라면 비자 문제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겠지만, 다행히 가족이 독일로 넘어오지 않았던가.베를린에서 천천히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면 되겠지.그렇게 슈투트가르트와의 이별을 준비하던 2004년 7월.“Scheiße! 좆 같아서 못 해먹겠네.”토마스 투헬이 돌연 사표를 던졌다.“…엥?”과연, 토마스 투헬은 보법 자체가 남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