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7시가 되고 2부 방송.네크의 전체 스토리를 정리하려 했다.“스토리는 원래 제작자가 만들어도 독자가 완성하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죠?”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떡밥이 어떻게 풀렸는지 분석하는 시간.전체 줄거리를 알고 있어서 자세히는 안 다룰 예정이었다.문제는 사람들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던 것.- 스토리 한 번에 끝내길래 바로 던전 갈 줄 알았더니 ㅅㅂ- 엄마! 나 가지 싫어한다고 했잖아!!- 시브랄거 끓여도 맹물도 안 나올 사골을 또 끓이네네크 스토리, 재미… 없나?하루 쉬면서 마인드맵도 만들고, 관계도도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설명에 필요한 짤들도 준비해 왔는데?근데 생각보다 반발이 심했다.켜자마자 들어온 50여 명의 시청자들이 아우성쳤다.정말 진행하면 안 되나 잠깐 고민했지만.“네크 좋아한다며. 해보지도 않고 뭐라 했다고 욕했잖아.”그냥 들어봐. 재밌게 해줄게.- ㅅㅂ 욕은 수직충이 하고 고통은 다 같이 받네- 이게 연대책임인가 그거냐?- 메일 주소 좀요. 욕한 놈들 닉 보내드림. - 그놈들은 없으면 영밴 때려야 함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그럼 들어가 보자.대주제나 작가의 의도 같은 것은 그냥 넘겼다.작가의 의도 추측하기?그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손 놓는 거다.아무리 재밌게 설명하려 해도 교양 수업 같기도 했고.PPT까지 동원할 예정인데 수업 같으면 나 같아도 졸릴 것 같다.게다가 저 사람들은 리액션을 보러 다니며 수없이 봤을 이야기.그 때문에 나름 이런저런 이야기와 비유를 준비했다.각 파트와 주요 캐릭터들을 유명 컨텐츠에 대입하는 식.“1장에 용병단 창설 에피 기억하죠? 창설 자금 부족해서 잡일 하는 퀘스트 있잖아요. 그러고도 부족할 때 여기. 이 상인이 나와요.”욕심 많은 상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일러를 띄웠다.초반에 지나가는 밉살맞은 캐릭터.그 후 바로 달라진 일러스트를 띄웠다.“갑자기 샤로크가 눈을 착하게 떠. 이게 도적단 토벌 이후거든요? 근데 이상하단 말이에요.”“님들 사람이 갑자기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감명받아서?”그러자 끝나면 깨워라 같은 채팅이나 치던 사람들이 반응했다.- 그럴 리가 있나 ㅋㅋ- 자는데 말시키지 마쇼-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니다~- 뭔일 있었다고?“제작진이 진짜 지독한 놈들인 게,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숨어있어요. 여기여기 첫 일러스트에 장신구들 잘 보세요. 붉은 보석 박혀있는 장신구요. 그리고… 여기.”스토리 진행 영상에서 용병단 창설 자금을 내는 장면을 틀었다.대화와 함께 작은 그림 몇 개가 휙휙 지나갔다.“여기! 여기에 붉은 보석 박힌 장신구가 골드 밑에 깔려있는 거 보이죠? 이거 보고 확신했어요.”“정신 교육을 받았구나.”“존심 때문인지 뭔지 끝까지 빌려주는 거라고 한단 말이야? 그럼 용병단에 빚이 있는 거예요. 채무 관계가 형성이 됐다고.”“근데 님들 이후에 샤로크 스토리 본 적 있어요?”거기까지 말하자 드디어 사람들이 좀 웃었다.- ㅋㅋㅋㅋㅋ- ㅋㅋㅋ 담궜다고?- 미친 새끼세요? ㅋㅋㅋㅋ준비한 게 통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말을 이었다.“스토리에 안 나왔어도 뭐 뒤에서 해결했을 수도 있죠.”“그런데 말입니다.”그렇게 말을 이으며 화면을 전환했다.네크가 켜지고 맵을 켜서 어디 있는지 보여줬다.1장의 배경이 된 로델린 왕국의 수도. 그중에서도 공동묘지 맵이었다.귀신 소동 서브 퀘스트하고 나면 갈 일 없는 장소.“혹시 해서 묘지들 다 돌아다녔는데, 여기서 이런 걸 발견했어요.”[ 샤로크 ]샤이닝로드의 초기 자금을 지원한 선견지명을 가진 상인묘지를 찾은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샤로크와 관련된 이야기를 검색하던 중에 누가 올린 글을 봤다.얘는 또 언제 죽었대? 하는 종류의 글.초반에 지나가는 NPC라서 떡밥이 구르지는 않았다.그걸 이렇게 가져왔다.“사람이 죽었어요! 아니, 이건 그냥 강도질이랑 차원이 다른 일이잖아! 이거 진짜 백퍼 누가 담군 거야. ‘자금을 지원한’이라고 적힌 거 봐요. 진짜 백프로야 이거.”그렇게 펄펄 뛰며 이야기를 계속했다.누가 했을지 추측도 해보고 이거랑 비슷한 일이 또 있는지 등등.- 스토리 정리한다매 미친새기야 ㅋㅋㅋㅋ- 정리버 : 샤이닝로드는 범죄 집단- 이걸 이딴 식으로 해석하는 미친놈이 어딨어 ㅋㅋㅋ사람들의 반응이 점점 살아난다.시청자는 저번보다 한참 적긴 하다.[시청자 211명]실망하지 않았다.이미 이하나가 말해줬다.첫날이야 많은 사람 수 자체가 어그로가 되었을 거라고.‘세 자릿수도 힘들 수도 있어. 근데 그것도 큰 거야. 알지?’당연히 안다. 군대에서 우리 중대가 100명 정도였다.그게 둘인데, 얼마나 많아.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한 덕에 태연히 콘텐츠를 계속할 수 있었다.큰 줄기는 크게크게 설명.곳곳에 담긴 디테일을 온갖 망상으로 엮으며 놀았다.혼자 하던 망상을 풀어내도 될까 망설였는데, 다행이다.주기적으로 혼자 생각한 걸 이야기로 풀어볼 생각이다.- 2장은 또 뭐 있냐?- 여기서 끝낸다고?- 던전에는 뭐 썰 없음?반응도 괜찮으니까.하루 만에 다 푸는 것은 어려워서 대충 핑계를 댔다.“이거 시리즈물이야. 정리버의 스토리 추측, 뭐 이런 거 어때요?”- 네이밍 ㅈ구린대요.- 틀이세요?- 민증 까라. 니 뒷자리 1로 시작할 거 같은데 “되게 뭐라 그러네. 아무튼, 나도 정리 좀 하고 나중에 이어서 해볼게요.”거기까지 말하고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또 오기 쉽게, 온에어리는 팔로우, 라캐는 즐찾, 미튜브는 구독 부탁드립니다.”두 번 눌렀다느니 하는 사람들과 떠들며 던전 갈 준비를 했다.- 수직단 기사아아앙- 수평을 어디까지 퍼먹이는겨- 재밌긴한데 역시 네크는 던전이지어디 얼마나 재밌나 해보자.* * * *약 일주일이 흘렀다.한참 네크 장비를 만들고 방송을 끝내기 전.내일은 시험이라 간단하게 공지했다.“님들 저 내일은 시험 있어요. 그래서 아마 못 올 듯? 아니 못 와요.”- 뭔 시험을 본다고.“저 낮에는 토익 공부하잖아요. 미리 접수해둔 거 있어요.”- ㅅㅂ 스머가 무슨 토익이냐고그 말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말을 골랐다.내 방송 보러 온 사람한테 돈 가지고 뭐라 하기가 쉽지 않았다.‘방송 규모가 컸으면 이런 말 안 해도 됐으려나?’순화해서 한 말은 조금은 뻔한 말이었다.“현실을 완전히 외면하기는 힘들잖아요. 약간 보험? 그런 거죠.”천원, 만원 후원을 종종 받기는 했다.정말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방송 수익이 아직은 다 던지고 매달려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할까.방송에서 진지한 얘기는 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트수가 거지라 미안해 ㅠㅠ- 아~ 어디 회장님 없나~ - 남자라 회장님 붙기가 쉽지 않음- 대기업이 엄살은 ㅅㅂ서로 민망해지니까.“내가 무슨 대기업이야? 하꼬지.”100명~ 300명을 왔다 갔다 한다.던전을 돌면 귀신 같이 100명대로 내려가고.스토리 얘기를 하면 300명 정도가 본다.어쨌든, 그러다 보니 받는 후원도 한계가 있었다.- 니 밑으로 방송이 얼마나 많은데 이럴 때 읽기 힘든 채팅은 무시.전업 방송인에 대해 얘기할 즈음 후원이 나왔다.[ 레문뜌땨이 님이 50,000원 후원 ]전업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거구나“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가내 두루 평안하시고!”- 그래그래 5만 원이면 극존칭 나와야지- 허리 한 번만 굽히는 게 맞나…- 잘해주지 마십쇼 곧 방접할 놈임- 먹튀한다고 예고해도 돈을 주시다니“뭔 방접이야? 나 방송 진짜 열심히 하는데.”- 하긴 하는데- 그게 최선이면 좀“아이씨, 그만해요. 큰 후원 해주신 분 계신데 초치지 말고.” 무료 눈깔 죽는다는 소리가 막 올라왔다.이제 익숙해졌다.처음에는 정말 차별로 받아들이나 철렁했는데, 진짜 그냥 하는 소리였다.이후에는 조금 진지한 훈수가 이어졌다.- 비지니스 메일이라도 열던가- 미튜브도 운영해야 돈을 벌지- RPG는 돈 못 벌어 현상 유지가 끝이야.내용 자체는 진지하게 받아들였고.장난처럼 두루뭉술하게 반응했다.아무튼, 그런 짧은 일이 있고 다음 날.시험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메일 알람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온에어리에서 방송하는 네루나입니다.]훈수 중에 정말 쓸모 있는 게 있었다는 걸 알았다.비지니스 메일로 정말 섭외가 왔으니까.당장 돈이 되는 것은 아니라도, 뭐.네루나가 누군지는 대충은 안다.내가 오열하는 영상이 그 방송에 갔다가 리액션을 담고 돌아왔을 때 알았다.= 방금 말한 떡밥들이 말하신 대로 빅토리아를 살릴 단서이기도 한데….스토리에 대한 것을 자세히 아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지금은 여러 게임을 하는, 스트리머 선배.그녀가 제안한 방송은 역시 스토리 관련이었다.[ 스토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 그걸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 썰을 푸는 것보다 같이 얘기하는 게 더 좋아 보인다.
d3kza0VLSVdxajZ6L09aWC8xUnR2RGQ2Q3RXTkZGSlRNNVFlVVRCT3JYVnh2M3d6ODJWenJIU3NoMHB6dHlSeA
이런 생각을 방송에서 말하면 또 난리가 나겠지?- 그래 우리는 그냥 텍스트야.-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지- 화면 너머에 사람이 있다고!!!버스에서 혼자 킥킥대다가 급히 표정을 관리했다.요즘 방송을 끄고도 방송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뭘 하면 재밌을까, 뭘 하면 반응이 좋을까 등.고민해서 한 게 통하면 뿌듯하고, 아니면 민망하고.그나저나….시험은 완전히 조진 거 같다.확신을 가지고 푼 문제가 거의 없다.시험 본다고 방송까지 쉬고 왔는데. “하….”공부 시간을 늘리려고 할 때, 게임 방송을 시작해서 그렇다.내가 공부 머리가 없을 리가 없지.일단 할 수 있는 거나 하자.[ 섭외 감사드립니다! 재미있을 것 같은 콘텐츠에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네루나에게 답장을 보냈다.시험 때문에 시무룩하기에는 좋은 기회였다.네크 4대 여신 출신이 같이 방송하자는데, 뜸을 들일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