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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 세상이 잠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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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 세상이 잠긴 날

오전 7시 42분.

백시현은 평소보다 12분 늦게 눈을 떴다.

“……아, 망했다.”

휴대전화 화면에 표시된 시간을 확인하자 시현은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입사한 지 이제 겨우 6개월.

스물다섯 살의 신입사원에게 지각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시현은 세수도 대충 끝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냉장고에서 어제 사둔 삼각김밥을 꺼내 입에 물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우우우웅―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커졌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땅속 깊은 곳에서 울부짖는 듯한 소리였다.

“……뭐야?”

시현은 아파트 복도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늘이 갈라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구름 사이에 검은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균열은 서울의 하늘을 가로지르며 점점 넓어졌다.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들어 촬영했고, 누군가는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저거 뭐야?”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야, 저거 진짜 같은데?”

시현 역시 휴대전화를 꺼냈다.

하지만 카메라를 켜기도 전에 화면이 검게 변했다.

[연결이 종료되었습니다.]

낯선 문장이 나타났다.

“……뭐?”

시현이 화면을 두드렸다.

그러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기존 세계의 질서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차원 경계 손상률: 87.4%]

[일곱 봉인의 유지에 실패했습니다.]

[제1차 대침수가 시작됩니다.]

시현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무슨 게임도 아니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멀리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시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한강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치는 모습을.

그 높이는 주변의 고층 건물들을 훌쩍 넘어섰다.

마치 한강 전체가 하늘을 향해 일어서는 것 같았다.

“……미친.”

물기둥이 무너졌다.

그리고 거대한 파도가 서울을 향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오전 7시 49분.

서울은 지옥으로 변했다.

“도망쳐!”

“으아아악!”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서로 충돌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는 이미 지하철역과 도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시현은 본능적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22층이었다.

평소라면 엘리베이터를 탔겠지만, 이미 전기가 끊어진 상태였다.

“하아…… 하아…….”

계단에는 수많은 주민이 몰려 있었다.

아이를 안고 뛰는 여자.

지팡이를 짚은 노인.

맨발로 뛰어 올라오는 학생.

그들의 얼굴에는 똑같은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빨리 올라가요!”

시현은 앞에서 넘어질 뻔한 노인을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고, 고맙네…….”

“옥상으로 가세요! 빨리!”

그때 아래층에서 비명이 들렸다.

“물이 들어온다!”

쿠구구구궁!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시현은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계단실 창문 너머로 흙탕물이 밀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자동차가 장난감처럼 떠내려갔다.

가로등이 부러지고, 상가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한강이 범람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이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마치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아저씨!”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현이 고개를 돌렸다.

계단 중간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주저앉아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발목을 붙잡은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제발…… 우리 애 좀…….”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현은 잠시 아래를 바라보았다.

물이 올라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지금 멈추면 나도 죽을 수 있어.'

하지만 시현은 몸을 돌렸다.

“애부터 업을게요.”

그는 아이를 등에 업었다.

“이름이 뭐야?”

“미, 민준이요…….”

“민준아. 형 목 꽉 잡아.”

아이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네…… 네!”

세 사람은 다시 계단을 올랐다.

한 층.

두 층.

세 층.

시현의 다리가 비명을 질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마침내 옥상 출입문이 보였다.

쾅!

시현은 어깨로 문을 밀어젖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잃었다.

서울이 사라지고 있었다.

오전 8시 03분.

옥상에는 이미 수십 명의 주민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난간에 매달린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파트 주변의 도로는 완전히 잠겨 있었다.

건물의 낮은 층은 보이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들 사이로 거대한 파도가 밀려다녔다.

시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게 서울이라고?”

한강도, 도로도, 공원도 없었다.

오직 물뿐이었다.

그때 중년 남성이 다가왔다.

“학생, 괜찮나?”

“네…….”

“나는 박정호라고 하네. 여기 주민 대표를 맡고 있었어.”

정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살아남은 사람들부터 확인하고 있었네.”

시현은 등에 업고 있던 민준을 내려놓았다.

민준의 어머니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아니에요.”

시현은 짧게 대답했다.

그에게는 감사 인사를 받을 여유가 없었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발.”

시현은 몇 번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화면에는 같은 문장만 반복해서 나타났다.

[통신망에 연결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은 서울 밖에 살고 있었다.

지금 그곳도 이런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시현은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

그때였다.

띠링!

눈앞에 푸른 창이 나타났다.

[세계 시스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생존자 여러분께 안내합니다.]

[일곱 바다의 경계가 붕괴했습니다.]

[인간계와 신화계의 융합이 시작됩니다.]

시현은 눈을 크게 떴다.

휴대전화 화면이 아니었다.

허공에 떠 있는 창이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보여요?”

“무슨 글자가 떠 있는데?”

“나도 보여!”

푸른 창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신격과 계약하십시오.]

[자신의 잠재력을 각성하십시오.]

[혹은 인간의 지혜와 기술로 생존하십시오.]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하나의 선택입니다.]

시현은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신격? 각성?'

게임에서나 보던 단어들이었다.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현재 지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지역 위험도: 급격히 상승 중]

[주의: 신화종의 활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신화종?”

그 순간.

쿵.

아파트 아래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쿵!

이번에는 더 강했다.

사람들이 난간으로 몰려갔다.

“뭐야?”

“배 같은 게 부딪혔나?”

시현 역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물속에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아파트 한 동보다 길어 보이는 그림자였다.

그것은 천천히 건물 주위를 돌고 있었다.

“……저게 뭐야?”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콰아아앙!

검은 촉수가 수면을 뚫고 솟구쳤다.

촉수에는 수십 개의 흡반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흡반 사이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나 있었다.

“으아아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촉수는 건물 외벽을 휘감았다.

콘크리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현의 눈앞에 붉은 창이 나타났다.

[신화종이 출현했습니다.]

[개체명: 심연의 촉수]

[위험 등급: 측정 불가]

[권장 행동: 즉시 도주]

시현은 허탈하게 웃었다.

“……도주?”

사방이 물이였다.

어디로 도망치라는 말인가.

그때 괴물의 촉수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옥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오전 8시 11분.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옥상 난간에 가까이 있던 남성이 촉수에 붙잡혔다.

“살려줘!”

그가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촉수는 남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첨벙!

그것이 끝이었다.

시현은 얼어붙었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였지만, 분명 자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말도 안 돼.”

시현의 손이 떨렸다.

괴물은 다시 촉수를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민준이 있는 방향이었다.

“엄마!”

민준이 울음을 터뜨렸다.

시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엎드려!”

그는 민준과 어머니를 밀쳐냈다.

콰앙!

촉수가 두 사람이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콘크리트 바닥이 갈라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시현은 바닥을 굴렀다.

팔꿈치가 찢어졌다.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일어날 틈도 없었다.

괴물의 촉수가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죽는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번에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정확히는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공중에 떠 있던 콘크리트 파편.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

옥상을 향해 내려오던 촉수.

모든 것이 정지했다.

오직 시현만 움직일 수 있었다.

“……뭐야?”

그때 눈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특이 개체가 감지되었습니다.]

[대상: 백시현]

[신격 적합성 분석 중……]

[분석 실패.]

[원인: 알 수 없는 간섭]

푸른 창이 붉게 변했다.

[경고.]

[대상자의 영혼 내부에서 미확인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해당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습니다.]

시현은 멍하니 창을 바라보았다.

“……내 영혼?”

그 순간.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군.』

시현은 고개를 들었다.

『분명 평범한 인간이어야 할 텐데.』

목소리는 하늘에서도, 바다에서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시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백시현.』

시현의 몸이 굳었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네가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겠다.』

눈앞의 창이 바뀌었다.

[특수 시련이 발생했습니다.]

[시련명: 용왕의 첫 번째 시련]

[시련 제공자: 동해 용왕]

[목표: 심연의 신화종으로부터 10분간 생존]

[성공 보상: 동해 용왕과의 계약 자격]

[실패: 사망]

시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10분?”

그 괴물을 상대로?

무기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장난해?”

하지만 목소리는 담담했다.

『선택은 네 몫이다.』

“선택이라고?”

시현이 소리쳤다.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데?”

『시간은 다시 흐른다.』

그 말에 시현은 입을 다물었다.

시간이 다시 흐른다면 괴물의 촉수가 자신을 덮칠 것이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시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알았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해보겠다고.”

그 순간.

[시련을 수락했습니다.]

[제한 시간: 10분]

[시련이 시작됩니다.]

세상이 다시 움직였다.

콰아아앙!

촉수가 옥상을 강타했다.

시현은 가까스로 몸을 굴렸다.

거대한 충격파가 온몸을 때렸다.

그는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다리는 떨렸고, 팔에서는 피가 흘렀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10분.'

시현은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난간.

옥상 출입문.

물탱크와 환기 시설.

그리고 공포에 질린 주민들.

'싸워서는 못 이겨.'

괴물의 크기는 아파트와 비슷했다.

자신이 가진 힘으로는 상처 하나 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도망치면서 버틴다.'

시현은 소리쳤다.

“다들 출입문 쪽으로 물러나세요!”

박정호가 그를 바라보았다.

“학생, 자네는?”

“저놈이 저를 노리고 있어요!”

시현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괴물의 촉수는 이상하리만큼 자신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붉은 눈.

그 안에 수십 개의 검은 동공이 있었다.

눈동자가 시현을 향했다.

그리고.

『……찾았다.』

낯선 목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시현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크윽!”

『드디어…… 찾았다.』

괴물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흔들렸다.

『일곱 바다가 기다려 온……』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금지된 그릇.』

그 순간 시현의 눈앞에 붉은 경고창이 떠올랐다.

[경고.]

[시련 대상자의 정보가 외부에 노출되었습니다.]

[미확인 존재가 대상자를 인식했습니다.]

[생존 확률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시현은 고개를 들었다.

괴물의 촉수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수십 개의 촉수가 아파트를 향해 솟구쳤다.

시현은 피 묻은 손을 꽉 쥐었다.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왜 신들이 자신을 주목하는지.

그리고 일곱 바다의 봉인이 무너진 이유가 무엇인지.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살아남아야 했다.

부모님의 생사도 확인해야 했고, 눈앞의 사람들도 지켜야 했다.

그것이 지금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목표였다.

시현은 무너진 난간 너머의 괴물을 노려보았다.

“……좋아.”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디 한번 해보자.”

눈앞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 09분 59초]

[09분 58초]

[09분 57초]

그리고 바다가 다시 한번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