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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 잠들어 있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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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 잠들어 있던 바다

『……또다시 그 노래를 듣게 되는군.』

낯선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백시현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심장이 뛰는 느낌이 아니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거대한 생물이 눈을 뜨는 것처럼.

[경고.]

[미확인 존재의 활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영혼 봉인 해제율: 0.003%]

[계약 신격의 권한으로 제어할 수 없습니다.]

“……뭐야.”

시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손등의 푸른 용 문양 아래에서 검은빛이 번지고 있었다.

그때 세이렌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깨어나는 거야?』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빛났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시현은 고개를 들었다.

“……넌 대체 뭘 알고 있는 거야?”

『궁금해?』

세이렌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럼 나와 함께 가자. 네가 누구인지 알려줄게.』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믿지 않아도 돼.』

세이렌이 미소 지었다.

『어차피 넌 나와 함께 가게 될 테니까.』

그 순간 검은 바다가 솟구쳤다.

거대한 물의 손이 청해목선을 향해 뻗어왔다.

“……젠장!”

시현은 쓰러진 청린을 끌어안았다.

콰아아앙!

검은 물결이 갑판을 강타했다.

선체가 크게 기울었다.

“으아아악!”

선실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현은 난간을 붙잡았다.

청린은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청린!”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눈꺼풀 아래로 푸른빛이 희미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시현은 고개를 들어 세이렌을 바라보았다.

“너!”

그가 소리쳤다.

“청린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세이렌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저 기억을 보여줬을 뿐이야.』

“기억?”

『그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기억.』

세이렌은 즐겁다는 듯 웃었다.

『용궁의 공주님에게도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더라고.』

시현은 청린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라버니.”

시현의 표정이 굳었다.

'오라버니?'

하지만 지금은 그 의미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검은 물결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학생!”

박정호가 선실 입구에서 소리쳤다.

“배 밑에서 물이 들어오고 있어!”

시현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요?”

“아래쪽 창고가 잠기고 있네!”

시현의 얼굴이 굳었다.

청해목선은 신성으로 움직이는 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서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세이렌의 공격으로 선체 일부가 손상된 것이다.

그때 눈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청해목선 상태]

[선체 내구도: 63%]

[보호 결계 출력: 28%]

[하부 선실 침수 진행 중]

[경고: 보호 결계 유지가 어렵습니다.]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결계까지.'

청린이 쓰러진 탓이었다.

그녀가 유지하던 신성이 약해지면서 배 전체가 위험해지고 있었다.

시현은 정호에게 소리쳤다.

“사람들 전부 위쪽 선실로 이동시켜 주세요!”

“알겠네!”

“그리고 물이 들어오는 곳은 천이나 나무판으로라도 막아주세요!”

정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시현은 다시 청린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자신이 가진 능력은 고작 몇 가지였다.

수중 호흡.

수분 친화.

해류 감지.

그리고 동해 용왕의 가호.

세이렌과 싸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세이렌이 입을 열었다.

『백시현.』

시현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배에 탄 인간들을 살리고 싶어?』

“……당연하지.”

『그럼 간단해.』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너만 내게 오면 돼.』

시현은 입을 다물었다.

세이렌은 미소 지었다.

『네가 순순히 따라오면 나머지는 보내줄게.』

“……정말이야?”

『물론.』

시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세이렌의 미소가 멈췄다.

“넌 이미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잖아.”

『……후후.』

세이렌은 다시 웃었다.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검은 바다에서 수십 개의 손이 솟구쳤다.

사람의 손처럼 생겼지만 손가락이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그 손들이 청해목선을 붙잡았다.

끼기기긱!

선체가 비명을 질렀다.

[경고.]

[선체 내구도: 51%]

[하부 선실 침수 가속]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젠장.”

그 순간.

머릿속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고작 저런 것에게 쫓기고 있는가.』

시현의 몸이 굳었다.

'……너.'

『한심하군.』

시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목소리는 분명 자신의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너 누구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 질문은 아직 이르다.』

'그럼 왜 내 안에 있는 건데?'

『그것 역시 네가 알아낼 일이다.』

시현은 어이가 없었다.

'장난해? 지금 죽게 생겼는데!'

그 순간 목소리가 낮게 웃었다.

『죽고 싶지 않으냐?』

'당연하지!'

『그렇다면 내게 맡겨라.』

시현의 표정이 굳었다.

'……뭘?'

『네 몸을.』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싫어.'

『이유는?』

'널 믿을 수 없으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현명한 판단이다.』

시현은 당황했다.

'……뭐?'

『하지만 네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군.』

그 말과 동시에 청해목선이 크게 흔들렸다.

콰아앙!

검은 손 하나가 갑판을 뚫고 올라왔다.

시현은 청린을 끌어안고 뒤로 물러났다.

[선체 내구도: 39%]

[보호 결계 붕괴 임박]

그 순간 목소리가 속삭였다.

『선택해라.』

『네가 죽을 것인지.』

『아니면 잠시 내게 맡길 것인지.』

시현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을 도우려는 것인지, 이용하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눈앞에는 청린이 쓰러져 있었다.

선실 안에는 자신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이 있었다.

민준도 있었다.

박정호도 있었다.

'……선택지가 없네.'

시현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얼마나 맡겨야 하는데?'

『아주 잠깐이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

『알겠다.』

'청린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아이 역시 해치지 않겠다.』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좋아.'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딱 한 번이야.'

그 순간.

[경고.]

[미확인 존재와의 접촉이 감지되었습니다.]

[영혼 봉인 해제율: 0.007%]

[계약자의 의식 통제권이 흔들립니다.]

시현의 몸에서 검은빛이 솟구쳤다.

세이렌의 표정이 변했다.

『……어?』

그녀는 시현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평범한 인간처럼 보였던 남자.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시현의 눈동자가 천천히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서 바닷물이 거꾸로 솟구쳤다.

『……설마.』

세이렌의 입술이 떨렸다.

『정말로……?』

시현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이전과 달랐다.

두려움도.

분노도.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저 차갑고 고요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시끄럽군.”

목소리 역시 달라져 있었다.

낮고 깊은 울림.

마치 바다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세이렌이 한 걸음 물러났다.

『너…… 누구야?』

시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질문을 할 자격이 네게 있느냐?”

그 순간.

검은 바다가 멈췄다.

정확히는 세이렌이 조종하던 물결이 움직임을 잃었다.

『……뭐?』

세이렌이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말도 안 돼……!』

시현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물러나라.”

단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청해목선을 붙잡고 있던 검은 손들이 일제히 부서졌다.

바닷물이 거대한 충격파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세이렌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크윽!』

그녀는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시현을 바라보았다.

두려움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 힘은.』

시현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노래할 생각이냐?”

세이렌은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바다 위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검은 물결이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영혼해의 침식이 밀려나고 있었다.

[경고.]

[현재 해역의 신성 구조가 강제로 변경됩니다.]

[미확인 권능이 발동 중입니다.]

[권능의 출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시현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돌아가라.”

그의 목소리가 바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세이렌의 주변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잠깐!』

세이렌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야!』

시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명령?”

『그래! 널 데려오라는……!』

그 순간.

세이렌의 목에 검은 문양이 나타났다.

『……윽!』

그녀가 목을 움켜쥐었다.

검은 문양이 빠르게 번졌다.

마치 누군가 그녀의 입을 막으려는 것 같았다.

시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입막음인가.”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시현의 몸이 갑자기 흔들렸기 때문이다.

[경고.]

[계약자의 신체가 미확인 권능을 견디지 못합니다.]

[신체 손상률 증가]

[의식 통제권 회복 시도]

시현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쯧.”

그가 낮게 혀를 찼다.

“이 몸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군.”

그 순간 황금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현의 의식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그만.'

머릿속에서 시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려줘.'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낯선 존재가 대답했다.

『……좋다.』

그 순간 황금빛이 사라졌다.

시현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쿵!

그는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커헉!”

피가 입 밖으로 쏟아졌다.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미확인 권능이 종료되었습니다.]

[의식 통제권을 회복했습니다.]

[영혼 봉인 해제율: 0.007%]

[경고: 추가 사용 시 심각한 신체 손상이 예상됩니다.]

시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미친.”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무거웠다.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백시현!”

청린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의식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창백했다.

“……청린?”

시현이 힘겹게 웃었다.

“일어났네요.”

청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시현의 손등을 향해 있었다.

푸른 용의 문양 아래에서 검은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방금.”

청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시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청린은 그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더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시현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일단 쉬어라.”

그녀는 시현을 부축했다.

“지금 네 몸은 정상이 아니다.”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바다 아래에서 세이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시현과 청린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세이렌은 검은 물결 속에 서 있었다.

그녀의 목에는 여전히 검은 문양이 남아 있었다.

『너희는 이미 영혼해에 들어왔어.』

청린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뜻이지?”

세이렌은 천천히 웃었다.

『여기서는 도망치는 것조차 허락받아야 해.』

그 순간.

청해목선 주변의 바다가 다시 검게 물들었다.

멀리서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이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의 목소리였다.

[경고.]

[영혼해의 심층 영역에 진입했습니다.]

[주변에서 다수의 영혼 반응이 감지됩니다.]

[청해목선의 항로가 변경되었습니다.]

시현은 눈을 크게 떴다.

“……항로가 바뀌었다고?”

청린이 급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서울의 건물들이 사라져 있었다.

사방에는 검은 바다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결계다.”

“네?”

“우리가 이동한 것이 아니다.”

청린은 이를 악물었다.

“이 바다 자체가 우리를 삼킨 것이다.”

그 순간.

멀리 검은 안개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척의 낡은 배.

부서진 돛.

그리고 갑판 위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의 형상.

하지만 그들에게는 얼굴이 없었다.

시현의 눈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미확인 해역 발견]

[해역명: 영혼의 회랑]

[위험 등급: 측정 불가]

[특이 사항: 살아 있는 자의 출입이 금지된 영역]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경고.]

[이곳에서 죽은 자는 영혼해의 일부가 됩니다.]

시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죽으면 끝이라는 거네.”

청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검은 안개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서.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청린.』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오랜만이구나.』

청린의 입술이 떨렸다.

“……오라버니?”

검은 안개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