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화 - 영혼해의 집행자
제 8화 - 영혼해의 집행자
『네 영혼을 회수하겠다.』
검은 바다 깊은 곳.
얼굴 없는 거인이 거대한 낫을 들어 올렸다.
백시현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경고.]
[영혼해의 집행자가 적대 의사를 드러냈습니다.]
[위험 등급: 측정 불가]
[현재 계약자의 생존 가능성: 극히 낮음]
“……젠장.”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조금 전까지는 영혼의 닻만 파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앞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행자는 천천히 낫을 움직였다.
『그릇이여.』
낮은 목소리가 물속에 울려 퍼졌다.
『저항하지 마라.』
시현은 주변을 살폈다.
뒤에는 수많은 망령.
앞에는 집행자.
그리고 머리 위에는 거대한 영혼의 닻이 있었다.
도망칠 길은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시현은 손등의 문양을 내려다보았다.
동해 용왕의 가호.
수중 호흡.
수분 친화.
해류 감지.
지금 자신이 가진 능력은 그것뿐이었다.
그때 집행자가 낫을 휘둘렀다.
스으윽.
소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콰아아앙!
검은 참격이 바다를 갈랐다.
시현의 바로 옆을 지나간 참격이 거대한 바위에 부딪혔다.
바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맞으면 끝이다.'
그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집행자는 다시 낫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격하지 않았다.
『이상하군.』
시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뭐가?”
『네 영혼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한다.』
시현의 눈이 커졌다.
“무슨 소리야?”
집행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시현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 존재하는 것이지?』
그 순간 시현의 머릿속에 낯선 장면이 떠올랐다.
검은 바다.
부서진 왕좌.
그리고 하늘을 가득 채운 거대한 그림자.
'……또 이 장면.'
시현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경고.]
[미확인 기억이 활성화됩니다.]
[영혼 봉인 해제율: 0.008%]
집행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설마.』
그는 시현을 바라보았다.
『봉인이 아직 남아 있었나.』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거든!”
집행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모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 순간 낫이 다시 움직였다.
청해목선의 갑판.
청린은 검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오래 걸린다.”
그녀의 어깨에서는 여전히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세이렌의 공격으로 영혼이 손상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상처보다 시현이 걱정이었다.
[청해의 보호막 유지 시간: 01분 48초]
청린의 표정이 굳었다.
'……곧 한계다.'
그때 세이렌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걱정돼?』
청린은 고개를 돌렸다.
세이렌은 검은 물결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목에는 여전히 검은 문양이 남아 있었다.
청린은 차갑게 말했다.
“그를 어디로 보냈지?”
『내가 보낸 게 아닌데?』
“거짓말하지 마라.”
세이렌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인간이 스스로 뛰어들었잖아.』
청린은 이를 악물었다.
“네가 이 바다를 조종하고 있지 않느냐.”
그 순간 세이렌의 미소가 사라졌다.
『……조종?』
그녀는 잠시 청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게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청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 뜻이지?”
세이렌은 검은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이곳의 주인이 아니야.』
“……뭐?”
『그저 노래하는 존재일 뿐이지.』
세이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진짜 주인은 따로 있어.』
청린의 표정이 굳었다.
그 순간.
바다 깊은 곳에서 거대한 충격이 전해졌다.
콰아아아앙!
청해목선이 크게 흔들렸다.
청린은 급히 난간을 붙잡았다.
'……백시현!'
검은 바다 속.
시현은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집행자의 낫이 지나갈 때마다 주변의 물이 갈라졌다.
콰아앙!
거대한 충격이 시현의 몸을 밀어냈다.
“크윽!”
등이 바위에 부딪혔다.
눈앞이 흐려졌다.
[청해의 보호막 유지 시간: 01분 21초]
[수중 호흡 잔여 시간: 06분 37초]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없어.'
집행자를 쓰러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목표를 바꿔야 했다.
'저 닻만 부수면 돼.'
시현은 고개를 들어 영혼의 닻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닻에서는 수많은 검은 사슬이 뻗어 있었다.
사슬들은 망령선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집행자가 움직일 때마다 사슬들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시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집행자의 낫이 지나간 자리.
그 주변의 사슬들이 검은빛을 내며 반응하고 있었다.
'저놈의 힘이 닻에도 연결되어 있는 건가?'
그때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해류 감지 Lv.1이 활성화됩니다.]
[주변의 신성 흐름을 일부 감지합니다.]
시현의 눈이 커졌다.
물의 흐름 사이로 희미한 검은 선들이 보였다.
집행자.
영혼의 닻.
그리고 망령선.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저걸 끊어야 해.'
시현은 주변을 살폈다.
닻의 아래쪽에는 작은 균열이 있었다.
그곳에서 검은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약점인가?'
그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집행자가 그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었다.
“수분 친화!”
작은 물줄기가 집행자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촤아악!
하지만 집행자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물줄기는 그의 갑옷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하찮군.』
집행자가 낫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시현은 웃었다.
“……알아.”
그는 몸을 아래로 던졌다.
“애초에 널 맞히려던 게 아니거든!”
집행자의 눈앞에서 물줄기가 흩어졌다.
그 틈에 시현은 닻 아래쪽으로 파고들었다.
[청해의 보호막 유지 시간: 00분 49초]
시현은 거대한 닻의 균열 앞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보니 균열 안쪽에는 작은 수정이 박혀 있었다.
검은빛을 내는 수정.
그것이 주변의 사슬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영혼의 닻 핵심부를 발견했습니다.]
[핵심부 상태: 불안정]
[외부 충격에 취약]
시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찾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수정을 향해 내리쳤다.
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젠장!”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퍽!
손등에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수정에는 작은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때 집행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리석은 짓이다.』
시현은 고개를 돌렸다.
집행자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 신성 유물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시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어떻게.'
그 순간 머릿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흐름을 보아라.』
시현의 몸이 굳었다.
'……너.'
자신의 몸속에 잠들어 있던 존재였다.
『힘으로 부수려 하지 마라.』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럼 뭘 하라는 건데?'
『저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물건이 아니다.』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빌린 힘으로 유지되는 껍데기일 뿐이지.』
시현은 눈을 크게 떴다.
'……빌린 힘?'
그는 다시 해류 감지를 활성화했다.
그러자 검은 수정에서 뻗어 나오는 흐름이 보였다.
그 흐름은 집행자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럼 저 연결을 끊으면.'
그 순간 목소리가 말했다.
『정답이다.』
시현은 손을 뻗었다.
“수분 친화!”
주변의 물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이 부족했다.
[경고.]
[계약자의 신성 출력이 부족합니다.]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더!'
그때 손등의 푸른 용 문양이 빛났다.
[동해 용왕의 가호가 반응합니다.]
[신성 출력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시현은 손을 비틀었다.
검은 수정 주변의 물이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가 수정과 사슬 사이의 흐름을 흔들기 시작했다.
집행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무슨 짓을!』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끊어져라!”
그 순간.
콰직!
수정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시현의 눈이 커졌다.
'……된다!'
하지만 바로 그때.
[청해의 보호막 유지 시간: 00분 10초]
시현의 표정이 굳었다.
'……시간이 없어.'
집행자가 낫을 들어 올렸다.
『멈춰라!』
거대한 검은 참격이 시현을 향해 날아왔다.
시현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 힘을 짜냈다.
“부서져!”
콰아아아앙!
검은 수정이 폭발했다.
청해목선 위.
청린은 갑자기 바다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
검은 안개 속에서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다.
망령선들이 하나둘 흔들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부서졌던 배들이 더 이상 재생하지 않았다.
세이렌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청린은 눈을 크게 떴다.
“영혼의 닻이…….”
그 순간.
콰아아아앙!
검은 바다 깊은 곳에서 거대한 빛이 솟구쳤다.
청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해냈구나!”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빛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쳤기 때문이다.
거대한 낫.
검은 갑옷.
그리고 얼굴 없는 머리.
영혼해의 집행자였다.
그는 바다 위로 떠올랐다.
『감히……!』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영역을 훼손하다니!』
청린의 표정이 굳었다.
“……집행자?”
세이렌 역시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 돼.』
그녀가 중얼거렸다.
『저 존재까지 깨어나면……!』
집행자는 청해목선을 바라보았다.
『그릇을 내놓아라.』
청린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동해 용왕의 계약자다!”
집행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동해 용왕?』
그의 목소리에 조소가 섞였다.
『그 늙은 용이 아직도 왕을 자처하는가.』
청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아버님을 모욕하지 마라!”
하지만 집행자는 그녀를 무시했다.
『그릇은 어디 있느냐.』
청린은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시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경고.]
[계약자 백시현의 생체 반응이 불안정합니다.]
[수중 호흡 잔여 시간: 04분 12초]
[청해의 보호막이 소멸했습니다.]
청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백시현!”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려 했다.
하지만 세이렌이 그녀의 앞을 막았다.
『가지 마.』
청린의 표정이 굳었다.
“비켜라.”
세이렌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려가면 너도 죽어.』
“비키라고 했다!”
청린의 손끝에서 푸른빛이 솟구쳤다.
하지만 세이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처음으로 두려움이 드러나 있었다.
『저 집행자는 단순한 신화종이 아니야.』
청린의 움직임이 멈췄다.
세이렌은 낮게 말했다.
『영혼해의 법칙을 집행하는 존재야.』
“……법칙?”
『살아 있는 자가 영혼해의 심층에 들어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해.』
청린은 이를 악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세이렌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인간은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어.』
검은 바다 깊은 곳.
시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주변에는 부서진 닻의 잔해가 떠다니고 있었다.
온몸이 아팠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하아.”
그는 힘겹게 숨을 들이마셨다.
수중 호흡 덕분에 아직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몸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경고.]
[영혼해의 심층 침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계약자의 영혼 안정도: 72%]
[영혼 안정도 지속 감소 중]
시현은 눈을 크게 떴다.
'……영혼 안정도?'
그때 주변의 검은 물이 움직였다.
수많은 손이 나타났다.
그 손들은 시현의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뭐야!”
시현은 몸부림쳤다.
하지만 손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강하게 그를 붙잡았다.
그 순간 집행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망칠 수 없다.』
시현의 몸이 굳었다.
『영혼의 닻을 파괴한 대가를 치러라.』
검은 손들이 시현을 바다 깊은 곳으로 끌어당겼다.
[경고.]
[영혼 안정도: 61%]
[영혼 안정도: 54%]
시현은 이를 악물었다.
'……안 돼.'
그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때 머릿속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한심하군.』
시현은 눈을 감았다.
'……또 너냐.'
『고작 이런 바다에 영혼을 빼앗길 생각인가.』
'그럼 도와주든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목소리가 낮게 웃었다.
『좋다.』
시현의 몸속에서 검은빛이 번졌다.
[경고.]
[미확인 존재가 영혼 침식에 저항합니다.]
[영혼 봉인 해제율: 0.009%]
그 순간 검은 손들이 일제히 멈췄다.
『……!』
집행자의 움직임도 멈췄다.
그는 천천히 바다 깊은 곳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냈다.
『……이 기운은.』
검은 바다 아래에서 황금빛 눈동자가 떠올랐다.
『설마…… 아직 살아 있었단 말인가?』
시현의 머릿속에서 낯선 존재가 속삭였다.
『기억해라, 백시현.』
『이 바다는 결코 죽은 자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시현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미확인 기억의 일부가 해금됩니다.]
[기억명: 첫 번째 바다]
그리고 그의 시야가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