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폭동
2화 - 폭동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던 갤러리 시스템에 반기를 들며 등장해 하루아침에 제국을 대혼란에 빠트린, 이른바 뒷담 갤러리 사태. 그 사상 초유의 사태는, 당연하게도 얼마 안 가 기존의 갤러리를 독점하고 있던 마그니아 제국의 황제에게도 전해졌다. [익명: 제국 주딱 새끼 아무것도 못 하죠? ㅋㅋ][익명: 황제 <<< 탈모 점점 심해지는 거 같으면 개추][익명: 루아벨 황녀 <<< 실은 마조라는 거 진짜임?][익명: 으럇으럇! 황녀는 내 아이를 배어랏!] 물론 뒷담 갤러리에 무차별적으로 올라오고 있던, 불경하기 짝이 없는 글들과 함께 말이다. “큿…!” 금지옥엽처럼 키우던 황녀가 보고서로 올라온 그 모욕적인 내용들을 보며, 얼굴을 붉힌 채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은 황제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덕분에 핏발이 선 눈으로 한참을 노발대발하던 황제는, 그날 제국 전역을 상대로 지엄한 황명을 선포했다. "그 흉측한 게시판에 접속하는 이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색출해서 엄벌에 처하라!”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판이었다. 무언가를 홍보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바로 그 무언가를 금지하는 것이니까. “아바마마….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아이고, 루아벨. 너무 맘 상하지 말고 푹 쉬거라.”“알겠사와요….” 그리고 호기심에 한 번이라도 뒷담 갤러리에 이끌린 사람은, 절대적인 익명성이 제공해 주는 도파민을 잊지 못하고 반드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철컥…. 회의가 끝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침실에 복귀해서 문을 걸어 잠근 루아벨 황녀가, 바로 그 산증인이었다. "흐흫…." 살짝 붉어진 얼굴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엎드린 그녀가, 남몰래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미소를 짓는다. [싱글벙글 제국촌 뒷담 갤러리] 그런 황녀의 눈앞에 떠올라 있던 것은, 방금 막 아버지의 황명으로 금지된 뒷담 갤러리. [익명: 루아벨 황녀<<< 자빠트리는 순간 1인 역성혁명 씹가능 ㅋㅋㅋ] 어째 잠시 뜸해졌던 황녀를 성희롱하는 글들이, 바로 그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금 제국 뒷담 갤러리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 [공지: 최근 제국이 용하지 않은 갤러리에 접속한 모든 이들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유의하라.] “얼씨구.” 신성한 갤러리를 망친 자들을 벌하기 위해, 제국촌 뒷담 갤러리를 개설한 지 약 일주일 뒤. 나는 제국 갤러리에 업로드된 황제의 지엄한 포고령을 보고는, 코웃음을 치며 뒷담 갤러리에 공지를 하나 작성했다. -----------[공지: 최근 제국 전역에 선포된 황제 폐하의 지엄한 경고에 대하여.] 작성자: 뒷담갤지우개 뒷담 갤러리 활동자분들은 아무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갤 대머리 주딱은 절대로 활동자들의 정체를 추측할 수 없습니다. 실수로 자기 스스로 신분을 밝히는 머저리 짓만 하지 말고 평화롭게 갤러리를 즐겨주세요.----------- 그리고 불과 몇 분 뒤, 제국촌 뒷담 갤러리에 올라오기 시작한 뜨거운 반응들. [✪뒷담갤지우개 <<< 제국의 영웅이면 개추 ㅋㅋㅋ][✪나의 빛, 나의 소금, 나의 사랑, 뒷담갤지우개….][✪오늘부터 뒷담갤지우개의 지지를 철회한다. 지지관계에서 벗어나 한 몸으로 일체가…(중략)][✪제국에 10억명의 뒷담갤지우개 팬이 있다면, 나는 그 중에 한 명…(중략)] 그렇다. 뒷담 갤러리의 유일한 완장으로서 활동하게 된 나는, 어느새 제국민들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완장질도 은근히 할 만한데…?’ 솔직히 지배층에 대한 복수가 목적이었던 나는, 이번 생에는 갤러리를 즐기는 것을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넘어선 환영과 찬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그런 생각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작성자: 루아벨 황녀) [익명: 오늘의 일기) 산책하고 밥 먹고 침대에서 뒹구는 중 ㅋㅋ] “시발, 또 시작이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불만이 없어진 건 아니다. (작성자: 루아벨 황녀) [익명: 오늘의 식사) 오늘은 다이어트 할 겸 샐러드 먹음] (작성자: 루아벨 황녀) [익명: 오늘의 산책) 산책하던 중에 길쭉한 돌 발견 ㅋㅋ] (작성자: 루아벨 황녀) [익명: 오늘의 반찬) 길쭉한 돌 챙겨옴 ㅎㅎ] 한번 상상해 보라. 만인에게 동경 받는 병약하고 순수한 황녀가, 남몰래 뒷담갤에 기어들어와서 끊임없이 똥글을 싸지르는 모습을. 뒷담갤을 왜 자기 일기장으로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분이 고스란히 보여서 무시하기도 힘들다. 뒷담갤지우개: 계속 갤기장으로 쓰면 차단함.ㄴ(루아벨 황녀): 오, 너 좀 강압적이다. ㄴ(루아벨 황녀): 너 마음에 드는데 누나랑 현실 좆목할래? ㅋㅋ 하지만 황녀님의 무차별적인 똥글 투척을 통제해 보려던 시도는, 오히려 유저들에게 장작을 던져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ㄴ(북부 변경백 아델하이트): 쩝…. 이러면 대머리 제국 주딱이랑 다를 게 뭐지…. ㄴ(서쪽의 마녀): 자꾸 완장질하면 너 집 찾아간다? 결국 흉흉해지기 시작한 민심에, 나는 황녀님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에휴….” 덕분에 스트레스가 쌓이긴 했지만, 그래도 완장의 무게를 짊어진 이상 책임은 져야 했다. 재미없는 실명제 갤러리에서 활동하는 것보다는, 뒷담갤의 분탕충들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더 나았으니까. (작성자: 유리안 공녀) [익명: 귀족 영애 뒷담 갤러리를 만들어 주시와요!] (작성자: 서쪽의 마녀) [익명: 국제 마법사 갤러리 <<< 여기에도 뒷담갤 만들 수 있음?] (작성자: 하이엘프 시그리아) [익명: 인간들 또 재밌는 거 하네? 근데 이종족 관련 뒷담 갤러리는 안 만들어주나? ㅎㅎ] (작성자: 신성교단 성녀) [익명: 실례합니다. 혹시 교단 뒷담 갤러리를 만들 생각이 있으신지요…?] 그리고 그건, 슬슬 뒷담갤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유저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벌써부터 다양한 신분의 유저들로부터, 내게 특정 갤러리의 뒷담 갤러리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요청대로 다 만들고 싶은데….’ 하지만 문제는, 지금 뒷담 갤러리를 관리하는 사람이 나 한 명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홀로 감당하고 있지만, 개설되는 갤러리가 늘어날수록 나 혼자서는 통제할 수 없을 터. ‘아직은 시기상조야.’ 그렇기에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다소 진지한 공지글을 하나 업로드했다. -----------[공지: 신규 뒷담 갤러리 개설 요청에 대하여] 작성자: 뒷담갤지우개 최근 신규 뒷담 갤러리의 개설 요청이 늘고 있습니다.당연히 저 하나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그러니 추후에 관리자를 모집하기 전까지 신규 갤러리는 개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무분별한 신청은 자제해주시고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 익명1: 야이 시발년아, 지금 장난해?익명2: 사람 안달 나게 해놓고 유기하네 ㅅㅂ익명3: 완장 그거 그냥 아무한테나 주라고!!!익명4: 뒷담갤지우개 <<< 다시 생각해 보니 그냥 최악의 완장 ㅇㅇ----------- 그리고 그 시점부터 뒷담갤에 푹 빠져있던 활동자들은 일제히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작성자: 유리안 공녀) [✪밥만 축내던 노예들을 활용할 시간인 것이와요!] (작성자: 서쪽의 마녀) [✪지배의 낙인으로 노예 역류기 만드는 법 공유] (작성자: 기사단장 시엘) [✪싱붕이 역류기 노예 사러 암시장 가는 중 ㅋㅋ] (작성자: 상인길드 후계자 로잘린) [✪노예 깡통계정 105개 장전 완료 ㅋㅋㅋ] 이른바, 제 1차 뒷담 갤러리 폭동 사태. 그 사태에서 내가 등골이 오싹해진 점은, 다수의 귀족 유저들이 무려 소유하고 있는 노예를 동원해 갤러리를 테러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작성자: 상인길드 전속노예 한스) [✪마님이 여기에 똥글을 마구마구 올리면 휴가를 준다고 했구만유 ㅎㅎ] (작성자: 비올레타 후작가 메이드 안나) [✪뒷담갤지우개 시발년아!!! 난 노예도 아닌데 너 때문에 목숨 걸어야 하잖아!!!] (작성자: 황실 시녀 로안나 영애) [✪내가 이러려고 황실에 면접을 본 게 아닌데….] 몇 분 전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하인들과 사용인들의 게시글들을 보면, 아무래도 다들 진심인 것 같다. ‘미친놈들, 인간 역류기를 돌릴 발상을 어떻게 했지.’ 인간은 언제나 답을 찾는 존재라고 했던가? 도배기 프로그램이 없는 이 세상에서 무지성 노예 깡계를 투하할 생각을 해내다니. 제국에 존재하는 노예와 사용인의 수를 생각해 보면, 나 혼자서 막아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얼씨구.’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가 난 이들은 제국민들 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이엘프 시그리아): 이거 비제국인 차별이야 ㅠㅠ ㄴ(드워프 명장 우르드): ㄹㅇ ㅋㅋ ㄴ(흑룡 아즈라칸): 괘씸한,,, 필멸자들,,, 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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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마족 군단장 릴리스): 침략 마렵네 ㅎㅎ ㄴ(수인족 전사 니에니에): 인간 타도다냐!!! 뒷담 갤러리의 출현 소식을 발 빠르게 접한 몇몇 이종족 활동자들까지, 슬슬 간을 보며 폭동에 합류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걸.’ 그쯤 되자, 나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긴급 공지: 야 이 시발년들아.] 작성자: 뒷담갤지우개 그렇게 원하면 너희들이 주딱 해서 관리해.비밀글로 신분 인증하면 바로 개설해줄게 ㅇㅇ대신 신청한 사람이 전담해서 관리하는 거다?----------- 폭동을 잠재우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완장 징집령을 선포하는 것. 그리고 그 효과는 무척이나 탁월했다. 익명1: 아이, 완장 오빠 농담농담 ㅎ익명2: 꺄아아아악 노래진다!!!!!!익명3: 다들 숨 참아!!!!!익명4: 아 ㅅㅂ 노예 방금 구매했는데…. 제정신이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무급으로 똥을 퍼다 나르는 노예를 자진해서 신청하지 않는다. 괜히 주딱들이 파딱을 뽑을 때 일단 차단부터 하고 완장을 수락한 뒤에 풀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까지 갤러리다울 필요는 없는데….’ 아무튼 그렇게 제 1차 뒷담 갤러리 폭동은, 완장 징집령의 공포 속에 순조롭게 진압되었다. ‘…신분 인증은 괜히 하라고 했나?’ 다만 한 가지 후회되는 점은, 완장이 되는 조건으로 신분 인증을 요구해 버렸다는 것이다. 명색이 익명 갤러리인데, 누가 자기 신분을 밝히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아무리 거를 사람을 거르기 위해서라도, 이대로 가다간 아무도 완장을 하지 않으려 들 것이다. [추가 공지: 신규 뒷담갤 신청할 때 개인정보 안 올려도 됩니다. 그냥 본인의 연관성만 증명해 주세요….] 그렇기에 다소 추하지만, 뒤늦게 추가 공지를 올려서 조건을 완화했음에도 유저들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익명1: 생각이 있으면 하겠냐? ㅋㅋㅋ익명2: 그게 신분 인증이랑 뭐가 다른데 ㅋㅋㅋ익명3: 우리 집 노예 한스로 대리 인증 가능?익명4: 그래서 완장 바게트 언제 뿌림? “에휴….” 하긴,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긴 하다. ‘이번 생은 꼼짝없이 갤러리 관리만 하게 생겼네.’ 고작 뒷담 갤러리 완장을 하겠답시고 자칫하면 인생을 저당 잡힐 수 있는 위험을 부담한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그런 짓을 하는 녀석이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 “엥?” 하지만, 그런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다. 이 세계는, 갤러리 만능주의 사회. 그런 세상에서 태어날 때부터 살아왔던 사람들은, 내 예상보다 몇 배는 더 갤러리에 미쳐있었다는 사실을. [🔒귀족 영애 뒷담 갤러리 주딱 신청] 폭동 사태가 잦아든 지 몇 시간 뒤. 나는 갤러리에 뜬금없이 올라온 비밀글 하나를 확인하고는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목: 귀족 영애 뒷담 갤러리 주딱 신청] (사진을 첨부했습니다.) 보면 알겠죠?현직 귀족 영애인 것이에요^^----------- 게시글에 첨부된, 갤러리 시스템의 사진 촬영 기능으로 찍힌 사진 한 장. 그 사진 속에서는, 얼굴을 손으로 절묘하게 가린 한 소녀가 고급스러운 티파티 테이블 앞에 앉아 브이자를 해 보이고 있었다. “이런 미친….” 무려 입에 ‘뒷담갤지우개♡’라는 글자를 자필로 적은 쪽지를 문 채로 말이다. “…….” 게다가 사진에 전부 담겨 있지는 않았지만, 쪽지를 물고 있던 소녀의 상반신은 가슴 바로 위까지 휑했다. 그 점을 고려했을 때, 아무래도 정체를 숨기기 위해 드레스를 벗어 던진 모양이었다. ‘…제정신인가?’ 거기까지만 해도 충격적인 상황이었지만, 내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익명: 조회수 올라갔네요?>익명: 확인했으면 빨리 개설 ㄱ>익명: 귀족 영애 새끼들 다 뒤졌사와요 ㅋㅋ 벌써부터 댓글로 내게 귀족 영애 뒷담 갤러리의 개설을 재촉하고 있는, 정신 나간 귀족 영애. (작성자: 유리안 공녀) 그 정체는, 제국에 단 하나뿐인 공작가의 고귀하신 공작 영애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