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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치원생 서하

재벌집 손녀로 태어났습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3. 유치원생 서하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어제 일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알아보셨을까?’  서하는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전략기획실 사람을 불러 물어보았을 수도 있다. 비서실장에게 몇 마디 했을수도.  아니면, 그냥 여섯 살짜리 손녀가 어디선가 들은 말을 제법 그럴듯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넘겼을 수도 있겠지.그럴 가능성이 제일 크지만…   어느 쪽인지는 서하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제 말씀드린 반도체 설비 투자 건은 검토해보셨나요- 라니.  상상만 해도 최악이다.  “서하야, 일어났어?”  방문이 열렸다.  윤혜진이 방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오늘 유치원 가야지.”  “……네.”  해원그룹이 몇 년 뒤 크게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유치원은 가야 했다.  세상이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그… 누구였지? 어쨌든 그 사람처럼.  서하는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작은 발이 바닥에 닿았다.  뭐- 원래 여섯 살 짜리의 하루란 이런 거니까.  * * *  아침 식탁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엄마. 서윤이가 또 제 거 먹어요.”  성우가 말했다.  세 살짜리 서윤의 손에는 딸기 한 조각이 들려 있었다.  성우의 접시에 있던 딸기였다.  “서윤아. 그럼 안 되지?”  혜진이 손을 내밀었다.  “그건 오빠 거잖아.”  서윤은 잠시 혜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딸기를 얼른 입에 넣었다.  냠냠-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이었다.  “쟤 일부러 저러는 거지?”  성우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서하는 우유를 마시다 피식 웃었다.  ‘정신연령은 크게 차이 나 보이지도 않네 뭘.’  그 순간.  서윤과 눈이 마주쳤다.  서윤의 시선이 슬그머니 아래로 내려갔다.  서하의 접시.  그 위에 남아 있는 딸기.  ‘설마.’  서윤의 손이 움직였다.  “안 돼.”  서하가 먼저 접시를 끌어당겼다.  “언니 거야.”  “언니.”  “안 돼.”  “딸기이-”  “네 것도 있었잖아.”  정확히는 조금 전까지는 있었다.  서윤이 전부 먹어버렸을 뿐이다.  서윤이가 못 들은 척 다시 손을 뻗었다.  서하는 서윤이의 손을 피해 접시를 반대편으로 옮겼다.  그러자 서윤의 몸도 따라왔다.  “언니.”  “싫어.”  “하나.”  “안 돼.”  “하나마안…”  서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장서윤.”  이제 세 살 된 아이라지만, 막내라서 그런지 집안 식구들 모두 오냐오냐 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서윤이.  ‘이런 건 애기 때부터 잡아줘야 하는데.’  육아 경험은 없지만 금쪽이 프로그램 전 애청자로서 서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진짜 하나만이야.”  “응!”  서윤의 시무룩해진 볼따구를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 하나를 줄 수밖에 없었지만.  서윤이 환하게 웃으며 딸기를 받아갔다.  혜진이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우리 서하가 동생 잘 챙기네.”  서하는 대답하지 않고 남은 딸기를 입에 넣었다.  평화로운 아침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아침이었다.  * * *  “서하 왔다!”  유치원에 도착하자 같은 반 아이 하나가 종이를 들고 달려왔다.  “장서하, 이것 봐!”  색연필로 그린 집이었다.  네모난 집 위에 삼각형 지붕이 있었고.  그 옆에는 사람 네 명이 손을 잡고 있었다.  “이거 우리 집이야.”  “응.”  “이건 아빠고, 이건 엄마야. 이건 나.”  아이가 그림을 하나씩 가리켰다.  “그럼 이건?”  서하가 맨 끝의 사람을 가리켰다.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작은 사람.  “내 동생이야.”  “작네.”  “아직 아기니까.”  아이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짝짝.  그때 선생님이 손뼉을 쳤다.  “자, 서하도 그림을 그려볼까? 오늘은 우리 가족을 그려볼 거예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우르르 제자리로 돌아갔다.  서하도 얌전히 자기 자리에 앉았다.  눈앞에 도화지 한 장이 놓였다.  가족이라…  잠시 고민한 끝에 함께 사는 가족만 그리기로 했다. 서하가 살색 크레파스를 들었다.  지금의 손가락은 짧았고 힘 조절도 서툴렀다.  선도 생각한 것처럼 반듯하게 그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손재주가 있는 탓에 그럴듯하게 그려진 가족들.  아빠는 다섯 사람 중 가장 크게 그렸다.  엄마에게는 긴 머리를 그려주었고, 장성우는 자기보다 조금 크게.  서윤은 제일 작게, 그렇지만 귀엽게 보이게 공을 들여 그렸다.  완성된 그림을 내려다보던 서하의 손이 멈췄다.  도화지가 가득 찼다.  그 사실이 서하는 조금 마음에 들었다.  * * *  “서하가 술래!”  “왜 또 나야?”  “마지막에 잡혔잖아!”  바깥놀이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놀이터 곳곳으로 흩어졌다.  서하는 주변을 천천히 살폈다.  술래잡기라고 해서 무작정 뛰어다닐 필요는 없는 법.  아이들의 움직임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이니까.  ‘어른의 술래잡기를 보여주마, 이 애송이들.’  후- 하고 저도 모르게 승부욕을 불태운 서하가 씨익 웃었다.  굳이 가장 빠른 아이를 계속 쫓을 이유는 없다.  도망갈 길을 먼저 막으면 그만. 술래잡기란 달리기가 아니라 잡기가 본질인 것이다.이것이 바로 어른의 판단력. 생각을 마친 서하는 정글짐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잡았다.”  “어?”  첫 번째.  다음 아이는 미끄럼틀 뒤로 숨었다.  서하는 곧장 따라가지 않았다.  반대편으로 돌아 출구를 막았다.  “잡았다.”  “에에?”  두 번째.  서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  “허억.”  숨이 찼다.  이런 어린 아이의 저질 체력이라니…  어른들은 아이들이 체력이 무한정하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급속충전이 되는 용량 작은 배터리에 가깝다.   서하는 그 점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었다.  아이 하나가 서하 앞을 가로질러 달렸다.  “서하야! 여기까지 와봐!”  서하는 이를 악물고 다시 달렸다.  열 걸음.  스무 걸음.  조금만 더.  그리고 결국.  털썩.  미끄럼틀 옆에 주저앉았다.  ‘…운동을 해야 하나?’  서하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작은 손.  통통한 손가락.  짧은 팔.  ‘아.’  지극히 (육체적으로)평균적인 어린이의 표본인 장서하.  아무래도 요즘 발육이 빠른 어린아이들을 따라잡기는 힘든 모양이다.  “서하야.”  같은 반 아이 하나가 다가왔다.  “힘들어?”  “조금.”  “그럼 쉬었다 하자.”  아이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서하 옆에 앉았다.  조금 뒤 다른 아이도 다가왔다.  “나도 쉴래.”  그리고 한 명 더.  “나도 나도.”  결국 술래잡기는 그대로 끝났다.  누가 이겼는지, 누가 마지막까지 잡히지 않았는지는 신경 쓰지 않은 채.  ‘훗, 동심이란…’  저도 모르게 중2병스러운 생각을 해버린 서하였지만…   아이들이 다치지 않나 지켜보던 선생님이, 정작 어딘가 중2병 스럽게 웃고 있는 서하를 카메라 필름에 담은 것은 눈치채지 못한 서하였다.  * * *  점심을 먹고 나면 낮잠시간이었다.  서하는 낮잠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달까?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데 두 시간 가까이를 잠으로 보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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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서하는 이제 어느 정도 어린 아이의 티를 벗어난, 어엿한 여섯 살이자 만5살 청소년(진) 장서하 양이 되었으니까.   낮잠 정도야 충분히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은 안 잔다.’  서하는 이불 속에 누웠다.  주변에서는 아이들이 하나둘 눈을 감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 답게 자리에 눕자마자 곧장 잠에 빠져드는 아이들. 선생님이 커튼을 치고 조명을 낮췄다.  좋아.  그렇다면 이 시간을 이용하면 된다.  어제 할아버지에게 했던 말을 다시 정리해보자.  ‘반도체가…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서하는 눈을 크게 떴다.  ‘아직 안 돼.’  잠깐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떴다.  ‘조금만…’  그리고.  “서하야.”  누군가 어깨를 흔들었다.  “일어나야지.”  서하가 눈을 떴다.  선생님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아이들이 이미 이불을 정리하고 있었고.  “…….”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위치도 달라져 있었다.  서하는 멍하니 몸을 일으켰다.  ‘…잤네.’  그것도 아주 잘.  입가에 침까지 조금 묻어 있었다.  서하는 손등으로 슬쩍 닦았다.  음, 아직 성장기의 어린이는 잠이 많이 필요한 법이다.  * * *  “맛있어?”  “네.”  하원한 뒤에는 엄마와 간식을 먹었다.  오늘 간식은 사과와 작은 카스텔라였다.  혜진은 식탁 한쪽에서 전시 도록을 보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엄마의 취미 생활이다.서하는 얌전히 맞은편에 앉아 아빠가 아침에 보다 만 신문을 뒤적이면서 우유를 마셨다.  혜진은 도록을 몇 장 넘기다 물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뭐 했어?”  “그림 그렸어요.”  “무슨 그림?”  “가족이요.”  혜진이 도록에서 눈을 땠다.  “그럼, 엄마도 그렸어?”  “네.”  “예쁘게?”  서하는 잠시 고민했다.  “비슷하게요.”  “에, 그게 무슨 뜻이야.”  혜진이 웃었다.  서하도 카스텔라를 한입 베어 물었다.  특별할 것 없는 오후였다.  엄마와 마주 앉아 간식을 먹고.  유치원에서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하고.  그림을 가지고 엄마와 얘기하는 시간. 그때.  식탁 아래에서 작은 손 하나가 올라왔다.  “…….”  서하가 고개를 돌렸다.  서윤이었다.  서윤의 시선은 정확히 카스텔라를 향해 있었다.  “안 돼.”  “언니-”  “네 것도 먹었잖아.”  “조금?”  “다 먹었어.”  “조금!”  서윤이 두 손가락을 펼쳤다.  “조금.”  “오늘 조금 이란 말을 배운거야? 그리고 그건 두 개잖아.”  “조금.”  서하는 잠시 서윤을 바라봤다.  ‘분명히 말은 다 이해하는 것 같단 말이지…’  서윤이가 식탐이 많은 건 아닌데, 묘하게 서하나 장성우가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엄마나 아빠의 음식에는 손을 잘 대지 않았으니까.  ‘애정을 갈구하는 건가?’  금쪽이 프로그램의 전 애청자로서 분석을 하자면, 아마 손윗형제들에 대한 엄마 아빠의 관심에 질투를 하는 것 같았다.  ‘어린 시기의 애정 관계 형성은 중요한 요소지. 나중에 엄마랑 얘기해봐야겠다.’  그리고 서하가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슬쩍- 카스텔라 한 조각이 서윤의 작은 손에 들려 사라졌다.  “야, 장서윤!”  ‘아니면, 그냥 식탐이 많은 걸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