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Crawler

6. 수익율은 좀

재벌집 손녀로 태어났습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6. 수익율은 좀

“아빠.”  “응.”  서하가 장영민 옆으로 다가갔다.  “혹시 저, 통장 있어요?”  장영민이 잠깐 걸음을 멈췄다.  “통장?”  “네, 제 이름으로 된 거요.”  영민이 잠시 딸을 내려다봤다. 뜬금없는 질문이기는 했다.   그래도 영민은 금방 답했다.  “그럼, 있지.”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서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세뱃돈이나 용돈을 모아두는 통장 정도는 마련해둔 모양이었다.  “거기 얼마나 있어요?”  이번에는 장영민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  서하는 방금까지 읽고 있던 설명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보니까 같은 물고기도 다 이름이랑 번호가 있잖아요.”  “그래서?”  “각자 따로 관리하고, 기록하고요.”  “응.”  “그러니까 저도 제 이름으로 관리되는 게 있나 궁금해서요.”  장영민이 설명판을 한 번 보고, 다시 딸을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서하는 경제관념이 확실하단 말이지. 역시 아빠 딸이 맞아.”  장영민은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서하는 자연스럽게 그 옆을 따라갔다.  “서하 것이, 통장만 있는 건 아니야.”  서하의 고개가 바로 들렸다.  “그럼요?”  “신탁도 있지.”  “신탁이요?”  “응.”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역시 재벌가 손녀는 다르긴 한 모양이었다. 만 5살짜리도 벌써 신탁을?   장영민은 딸이 어디까지 알아듣는지 살피듯 잠깐 말을 골랐다.  “신탁이 뭔지는 아니? 쉽게 말하면, 서하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네 이름으로 따로 마련해둔 재산이 있어. 아직 네가 직접 관리할 나이는 아니니까 맡겨서 운용하고 있는 거고.”  서하가 눈을 한 번 깜박였다. 이 정도면 만만한 금액은 아닐텐데?  “그건 누가 관리해요?”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사람들이.”  “아빠가요?”  “아빠도 보고는 있지. 아빠가 직접 관리하는 건 아니지만.”  해원그룹 금융부문을 맡고  있는 서하의 아빠, 장영민.  아빠가 따로 들여다 볼 정도의 금액이면… 서하의 기대가 조금 더 커졌다.  서하는 자연스럽게 액수를 짐작해봤다.  그래도 아직 본격적인 증여를 시작한 건 아닐 것이다.  아무리 해원가라고 해도 여섯 살짜리에게 벌써 수십억씩 넘겨주는 건 너무 빠른데…  “그럼 다 합치면 얼마예요?”  장영민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최근 평가액으로 33억쯤 될 거야.”  서하의 발이 저절로 멈췄다.

d3kza0VLSVdxajZ6L09aWC8xUnR2QnRIVFF5SXFJQUliZU9SR2trUUg2UGtkaFF2WWd6aldQZ2doVllUZnpxdA

“서하야?”  “……33억이요?”  “응.”  33억. 와, 재벌가 스케일 봐.  단순히 세벳돈 통장이 아니라니. 아니지, 세벳돈… 인가?  에이, 아무리 그래도 명절 어른들 용돈이라기에는 액수가 너무 크다.  해원그룹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아주 터무니없는 액수는 아닐 테지만…  이 정도면 신문에 [어린이 주식 왕 랭킹] 따위에도 올라갈 액수이지 않을까?  게다가 서하 자신만 특별히 받은 것도 아닐 가능성이 컸다. 해원그룹의 손주뻘, 재벌 4세들…  ‘진짜 금수저긴 하네.’  서하가 속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으니까.  ‘시드머니가… 있어?’  아직 소시민적 물이 덜 빠진 서하로서는 그저 ‘고작’ 몇 천만원 정도의 명절 용돈이나 기대했을 뿐.   경제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며 세상 물정을 다시 익힐때도 기대도 안했던 부분이다.  지금은 2006년.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곧이어 21세기 최악의 경제공황,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나니까.  앞으로 오를 것들, 떨어질 것들, 그리고 몇 년 뒤 벌어질 폭락.  이것들을 족집게처럼 맞출 수 있으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수익율을 올릴 수 있을까?  게다가 서하의 아버지는 무려 해원 금융부문의 사실상 수장.  즉, 서하를 도와줄 금융 전문가들이 아주 많다!  서하가 갑작스레 떨어진 행운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왜?”  장영민이 물었다.  “생각보다 많아?”  서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근빠따죠, 아빠! 아… 아빠랑 있다보니 유머감각도 퇴화됐네. 당근빠따가 뭐야…’  서하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장영민은 그런 서하를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담으며 피식 웃었다.  “너희 셋 다 어느 정도는 마련해뒀어. 나중에 크면 필요한 일이 생길 테니까.”  ‘셋 다라…’  합치면…100억? 이걸 그대로 리먼 사태때 풋 옵션에 걸기만 해도…  서하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다 멈췄다. 어차피 자신의 돈도 부모님의 허락을 맡고서야 움직일 수 있을테니까.  “그 33억이 다 통장에 있는 건 아니죠?”  “당연하지.”  “그럼 뭐가 얼마씩 있어요?”  장영민이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궁금해?”  “네.”  “왜?”  서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투자하려고- 라고 말하면, 일반적인 어른의 반응은  ‘하하, 이 꼬맹이가 어디서 본 건 많구나. 맹랑한 녀석’  정도의 반응이 정석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빠는?  서하를 비웃지는 않겠지만, 왜 서하가 아직 투자에 손을 대면 안되는지 차근차근 눈높이 교육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야, 누가 봐도 6살짜리 꼬맹이가 금융의 복잡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계좌의 정확한 내용을 알긴 해야했다. 현금 비중, 주식 투자처, 채권과 현물의 비중같은걸 알아야 뭘 해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아빠의 마음을 단시간에 돌릴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서, 서하는 그냥 입술을 내밀고- “그냥요.”  라고 답했다.  “언니-!”  서윤은 어느새 펭귄 수조에서 나와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언니를 발견하자마자 서윤이의 손이 크게 흔들렸다.  서하도 작게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 다시 아빠 올려다봤다.  “아빠.”  “응.”  “제 계좌, 저도 볼 수 있어요?”  * * *  수족관에 다녀온 지 며칠 뒤, 서하는 저녁을 먹고 장영민의 서재로 들어갔다.  수족관에서 약속했던 것을 보여주겠다고 아빠가 말했으니까.  넓은 책상 한쪽에는 평소 보이지 않던 얇은 서류철 하나가 놓여 있었고, 서하가 가까이 다가가자 장영민은 그것을 별다른 설명 없이 딸 쪽으로 밀어주었다.  “네가 보자고 했잖아.”  “제 거예요?”  “응.”  서하는 소파가 아니라 곧장 책상 앞 의자를 당겨 앉았다.  맨 앞장 위쪽에는 낯익은 이름 석 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장서하]  그 아래로는 계좌번호와 신탁 관련 표기, 평가기준일을 비롯해 여섯 살짜리가 보기에는 그다지 재미있을 것 없는 글자와 숫자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모르는 건 물어봐.”  장영민은 서하가 진지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하는 게 귀여웠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첫 장을 넘기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총 평가액이었다.  약 33억 원.  수족관에서 이미 들은 숫자였으니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아빠의 입으로 들었을 때와 자기 이름이 박힌 서류 위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장영민이 농담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잘못 들은 것도 아니라, 정말로 장서하라는 사람의 명의 아래 33억 원어치 재산이 존재하고 있었다.  ‘진짜네.’  서하의 시선은 금세 총액 아래로 내려갔다.  예금과 현금성 자산이 약 11억 원, 국공채와 우량채가 10억 원가량이었고 단기금융상품과 채권형 상품에도 7억 원 정도가 들어가 있었다.  나머지 5억 원 남짓은 국내외 주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쪽 역시 이름을 들어본 대형기업이나 비교적 변동성이 작은 종목이 대부분이었다.  한눈에 봐도 방향이 분명했다.  ‘엄청 보수적이고.’  돈을 크게 불리기 위한 구성이라기보다는, 웬만한 일이 생겨도 원금을 크게 훼손하지 않도록 여러 군데에 나눠놓은 모양새였다.  굳이 주식까지 포함해두기는 했지만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았고, 나머지는 예금이나 채권처럼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이 대부분이었다.  서하는 다음 장을 넘기다 항목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건 뭐예요?”  “이거? 단기금융상품.”  “예금이랑 달라요?”  “조금 다르지.”  장영민은 딸이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 살피는 듯 잠시 말을 골랐다.  “아주 쉽게 말하면, 당장 쓸 필요는 없는 돈인데 그렇다고 오래 묶어두고 싶지는 않을 때 잠깐 맡겨놓고 조금이라도 수익을 내는 거야.”  “이건요?”  이번에는 채권이 적힌 줄이었다.  “이건 채권이란다.”  “여기 적힌 데에 돈 빌려준 거예요?”  장영민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그렇게 이해하면 대충 맞아.”  서하는 다시 종이로 시선을 내렸다.  각 자산 옆에는 취득 시점과 평가액, 수익률 같은 숫자가 붙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수익률은 높다고 하기 어려웠다.   서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 없다고나 할까?  아마 리스크 헷지를 따진다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포트폴리오였다. 수익율은 바닥이었지만…  ‘그리고, 이 포트폴리오도 2008년만 되면 반토막나지.’  뭐, 시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 한다. 다소간의 원금 손실은 있겠지만 우량주들은 시간이 지나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갈 테니까.  ‘지금 피치 시총이 700억 달러는 되나?’  아직 피치폰이 나오기 전이라 그렇지만, 매크로소프트도 고작해야 3000억 달러도 안 된다.  그리고 향후 20년 안에 최소 수십 배씩은 오르지.  무엇보다 안전한 초대형 우량주가 말이다.  “별로 안 늘었네요.”  장영민은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요 똑똑한 꼬마아가씨가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말일까?  “틀린 말은 아니지.”  장영민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이 돈은 많이 버는 게 첫 번째 목적이 아니야. 네가 아직 어리니까, 일단은 네 재산을 안전하게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지.”  서하는 그 말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살짜리 딸의 돈을 굳이 공격적으로 굴릴 이유가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높은 수익률을 노려야 할 돈도 아니고, 부모 입장에서는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그 부모가 재벌 3세인데, 말할 것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