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비스트
5. 비스트
[불법 누님 근황ㅋㅋ][와 지금이 황금세대긴 한가보네ㅋㅋ][여래 길드 중대 발표ㄷㄷ][탑 17층 등반했습니다.][요즘 뉴비들 폼 왜 이러냐][마법 주머니 어흐][오늘의 사자성어(119)]피규어 주문 제작으로 한바탕 불탔던 갤러리의 떡밥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식었다.애초에 무슨 대형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니고, 그저 신기한 주문 제작 피규어가 나타났다는 가십거리였으니 그리 오래 굴러갈 주제는 아니었다.원래 커뮤니티의 사이클이란 게 다 그렇다.나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좋니?"방구석 한구석, 작은 텐트처럼 꾸며놓은 공간 안에서 닌텐도 스위치를 붙잡고 있던 페트가 연신 얼굴을 끄덕였다.화면 속 카트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자 녀석의 짧은 팔다리가 파닥거렸다.요즘 페트는 제법 여유로워 보였다.초반의 폭주하던 물량을 어느 정도 쳐낸 덕분에, 이제 주당 72시간 정도만 노동하면 되는 쾌적한(?)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인간의 기준으로는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아저씨가 이놈하며, 내 손목에 수갑을 채워도 할 말이 없다.하지만 페트는 인간이 아니라 정령이라, 근로기준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당초에 정령은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따라서 하루 24시간 중 24시간을 전부 다 알차게 쓸 수 있다.불정령은 뭐냐고?그건 그놈이 특이한 거다.'잘 도착했으려나?'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신경을 집중했다.내가 창조해낸 피조물들과는 보이지 않는 연결망이 존재했다.마치 공유기에 연결된 와이파이 신호처럼, 나는 정령들의 현재 상태나 위치, 건강 등등을 대략적으로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양분을 조달하고 통제하려면 무언가 연결책이 있어야 하니, 어찌보면 당연했다.느껴지는 것으로 보아..."이상은 없네."아마 아직도 쿨쿨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작은 찝찝함을 털어낸 나는 다시 침대에 엎드려 등반자 갤러리를 눈팅하기 시작했다.스크롤을 슥슥 내리며 영양가 없는 글들을 넘기던 중, 눈에 띄는 제목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비스트 독과점 진짜 ㅈ같네ㅋㅋ]"비스트?"비스트라면 불과 한 달 전, 그러니까 내가 아직 탑과 무관한 평범한 일반인이었을 때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거대 글로벌 기업이다.탑 내부의 몬스터들을 길들여 '펫(Pet)'이라는 형태로 가공한 뒤, 등반자들에게 판매하는 곳.단순히 몬스터를 파는 것을 넘어, 사회 각계각층에 기부도 통 크게 하고 각종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나 스포츠 구단까지 후원하며 대중적인 이미지가 아주 좋은 대기업이었다.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밖에서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일 뿐이었다.탑을 오르는 당사자들, 그중에서도 30층 이상을 등반하는 고층 등반자들에게 비스트의 평판은...[비스트 독과점 진짜 ㅈ같네ㅋㅋ]작성자: 퍼리퍼리독과점 이거 맞음?한 번에 가격 30퍼 인상은 시발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네ㅋㅋ-비스트가 뭐임? ㄴ펫 만들어서 파는 데 있음 ㄴ그런 것도 있었음?? ㄴ30층 이상 아니면 볼 일 없긴함ㅋㅋ ㄴㄷㄷ[와 등갤러 중에 30층까지 등반한 사람이 있었음?]작성자: ㅇㅇ등평ㄷㄷ-저 사람 저번에 탑 등반 랭킹 인증한 그분 아닌가ㅋㅋ ㄴ맞는듯ㅋㅋ-누추하신 곳에 귀한 분이...[비스트라는 회사가 잘못한 이유]작성자: 평범한등갤러퍼리퍼리← 닉에서부터 뭔가 신뢰성이 느껴짐ㄷㄷ뭔진 모르겠지만 비스트? 그 새끼가 잘못한 것 같으면 개추ㅋㅋ-개추ㅋㅋ-ㄱㅊ-ㄱㅊ-털--얼마나 잘못한 건지 감도 안옴 ㅋㅋ-이건 우리집 똥강아지도 털 날리면서 개추임ㅇㅇ[비스트 30퍼 인상?]작성자:ㅇㅇ그걸 왜 나는 이제야 알았지근데 그거 중요한 거임?-뭐가 30퍼 올랐는지는 암? ㄴ(작성자)주식 말하는 거 아니었음? ㄴ아이고 ㄴ? ㄴ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거 개웃기네ㅋㅋ-그거야 너가...-저층 ㅎ2-근데 30층은커녕 20층 이상도 웬만해서는 없어서 그럴만함ㅋㅋ 상위 1%라서-여기 다 저층 아님?ㅋㅋ 누가 보면 고층인 줄ㅋㅋㅋ ㄴ쌉인정ㅋㅋ ㄴㄹㅇ ㅈㄴ역겨움ㅋㅋ[비스트 딱 정리해준다]작성자:젬붕이몰라 시발 내가 그걸 어캐 알아-솔직함은 젬평ㅋㅋ-정리해놈 ㄴ(링크) ㄴ(작성자)오댓글만 봐서는 도통 맥락이 잡히지 않았다.대체 몬스터로 만든 펫이 뭐 그리 중요하길래 저런 대기업이 가격을 30%나 올리며 배짱 장사를 하고, 고층 등반자들은 그걸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휘둘리는 걸까.의문은 곧이어 올라온 개념글 하나로 해소되었다.[정보)비스트가 잘못한 거 정리해줌]작성자: ㅇㅇ(초록 개구리가 빛나는 안경을 슥 올리는 짤)일단 비스트는 펫을 등반자들에게 파는 유일한 기업임여기서 왜 펫이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30층 이상부터는 한 층을 돌파하는 데 짧게는 하루, 길게는 한 달 이상 탑에 머물러야 함그리고 알다시피 탑은 기본적으로 1일 1층 1인 입장임이 말은 뭐다? 믿을 수 있는 동료의 가치가 겁나 높다ㅇㅇ특히 불침번이 제일 큼저층과 달리, 고층은 잠도 탑 안에서 자야 함자다가 몬스터한테 목 따이는 경우가 부지기수이 불침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운이 좋게 관련 마도구가 뜨거나, 비스트에게서 펫을 구입하는 방법뿐임(참고로 마도구는 존나 희귀해서 경매장 매물로 나오지도 않음)결국 일반적인 30층 이상의 고층 등반자라면 비스트에게서 펫을 구입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짐꾼 역할도 해주고, 원숭이형 몬스터는 어설프게나마 은신처도 지어주니까자, 이제 감이 오제?펫 사업은 비스트가 완벽하게 독점하고 있고, 돈 벌려고 저렇게 미친 척 가격을 올려쳐도 등반자가 할 수 있는 게 없음. 참고로 이걸로 해외 커뮤니티에서도 비스트 욕 존나 처먹는 중ㅋㅋ-정리추-와 썅뇬들이었네ㅋㅋ-정부에서 안 막음?ㄴ(작성자)국제 관리자 특별법 때문도 있고, 애초에 저 펫 만드는 것도 다른 기업들은 못함ㅋㅋㄴ등반자 능력인가?ㄴ(작성자)아마도? 밝혀진 건 없어서 정확히는 모름ㅇㅇ-고층 등반자들이 뭐라 안함? 한 50층까지 가면 저런 거 조질 무력은 있지 않나?ㄴ그런 랭커급 애들한테는 알아서 뒷돈 찌르고 펫 무료 증정하면서 알랑방귀 ㅈㄴ 뀌겠지ㅋㅋㄴ뻔함ㅋㅋㅋ[그래그래 알겠어 비스트가 못된 놈이란 거 알겠어]작성자:ㅇㅇ이제 불매 운동하면 되는 거지?-...쩝-흠ㅋㅋㅋㅋ-불매(산 적 없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비스트: 아 우리가 나쁜새끼인거 알아봤자 너희가 뭘 할 수 있는데ㅋㅋ ㄴ혐짤 달리기? ㄴ갑질한 건 비스튼데 피해는 왜 우리 등붕이들이 보노?게시물과 댓글들을 천천히 정독하던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끈 채 천장을 응시했다."흐음..."머릿속에서 기분 좋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탑 30층 이상의 가혹한 환경.1인 입장 제한.장기 체류.그리고 불침번과 편의를 제공할 동료의 부재.비스트라는 회사는 등반자들의 이 치명적인 결핍을 '길들인 몬스터'라는 수단으로 긁어주며 독점적인 부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경쟁자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격을 제멋대로 후려치면서.고개를 돌리자,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페트의 둥근 뒤통수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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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우리가 대체할 수 있지 않나?"비스트라는 거대 기업.그들은 '탑 등반'이라는 국가적 필수 요소를 인질로 잡고 있기에 정부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물론 그들 나름대로 다른 대형 세력이나 국가의 눈치를 보며 선을 타고 있겠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그들이 쥐고 있는 것의 본질이었다.소비자들이 불합리한 횡포를 뻔히 알면서도, 대체재가 없으니 욕을 하면서도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갑(甲)의 위치.비스트가 쌓아 올린 그 금자탑을 보며 나는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나도 저 짓거리를 똑같이, 아니 훨씬 더 달달하게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가만히 따져보자.유지비, 안전성, 편의성, 심지어 외모까지도."어느 모로 보나 내 정령이 압도적으로 상위 호환 아닌가..?"거기다 나는 비스트처럼 소비자에게 굳이 횡포를 부릴 필요도 없었다.내게 가장 필요한 재화는 돈이 아닌 양분이니까.사실 양분만 충분히 공급된다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이건 내가 세계수로 각성했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느낀 점이었다. 단지 그 양분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 방법이 막막했을 뿐."세계수..."TS, 그러니까 겉모습이 여자아이가 되었다고 해서 지능까지 반 토막이 난 건 아니다.건장한 청년이었을 때보다 감정 기복이 조금 심해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농농해진 외모에 맞춰 뇌까지 뜌따가 되어버린 건 아니라는 뜻이다.그러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꽤 사기일지도?"생각보다 사기적인 능력을 가져버린 것 같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