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등반자(3)
8. 등반자(3)
눈앞에 쌓인 나무 블록 탑이 위태롭게 흔들렸다.내 맞은편에 앉은 페트가 짧고 뭉툭한 손가락을 뻗어 조심스럽게 블록 하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녀석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읽히는 건 기분 탓일까.-슥.블록이 절반쯤 빠져나오자 전체가 기우뚱거렸다. 페트의 손이 멈칫했다. 숨소리조차 없는 정적이 방 안을 채웠다. 녀석은 눈치껏 내 쪽을 한 번 스윽 보더니, 아주 미세한 힘으로 블록을 마저 쑥 빼냈다.-탁.무사히 블록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페트가 가슴을 쫙 펴며 당당한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와, 개 잘하네."나는 혀를 차며 다음 블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꽤 평화로운 오후였다. 배도 부르고, 방 안은 시원하고, 놀아줄 펫도 있고. 백수로서 이보다 완벽한 일상이 있을까.그때, 탁자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했다.[주딱: 목인석심님 연락 가능하신가요?]나는 블록을 뽑다 말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목인석심: 네. 가능합니다ㅎㅎ]답장을 보내고 다시 블록에 집중하려는데, 화면에 곧바로 다음 메시지가 떴다.[주딱: 정령사분께서 정령을 받았다는 소식듣고 연락 드렸습니다.]"오."나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안 그래도 이미 확인한 참이었다. 정령을 창조한 주인의 특권이랄까. 나는 샐러의 시야를 공유받아 서은하라는 신입 정령사의 근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그녀는 정령을 수령하자마자 관리청으로 달려가 등반 자격증부터 땄다. 탑을 오르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였다. 자격증 없이 무단으로 등반하는 것도 물리적으로 가능하긴 하지만, 엄연한 불법이라 특수한 사유가 없는 한 발각 시 곧바로 징역행이다. 굳이 그런 리스크를 질 이유는 없긴 하지.아무튼, 불의 정령을 이용해 당당히 자격증을 손에 넣은 서은하는 파죽지세로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층씩. 벌써 4층을 공략 중이었다.참고로 그녀는 불정령의 이름을 샐러라고 지었다.처음 그 이름을 확인했을 때 나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다.이름을 짓는 행위. 그것 자체가 일종의 '계약'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서은하가 샐러에게 이름을 붙여준 순간부터, 그녀와 샐러를 잇는 연결이 눈에 띄게 굵고 단단해졌다.'앞으로 정령을 분양할 때는 무조건 이름을 공석으로 둬야겠네.'소유권과 유대감을 확실하게 넘겨주려면 그게 맞았다. 어차피 내 목적은 정령을 많이 퍼뜨려서 양분을 뜯어내는, 아니, 수금하는 거니까."그리고 생각보다 획득하는 양분의 양이 많아서 놀랐었지."나는 턱을 문지르며 흐뭇하게 웃었다.서은하가 샐러를 통해 내게 꼬박꼬박 보내오는 양분의 양은 기대 이상이었다. 평소 내가 가만히 숨만 쉬며 모으던 수치의 무려 2배에 달했다.현금으로 환산하면 대략 월 1,000만 원 정도의 가치.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는데 통장에 천만 원씩 꽂히는 셈이다.거기다 내 맞은편에서 다음 턴을 기다리며 굳어 있는 페트 녀석이 굴리는 플라스틱 인형 사업도 연일 호황이었다. 당분간 양분이 떨어져서 쫄쫄 굶을 걱정은 완전히 사라졌다.[주딱: 혹시 추가로 정령 분양 가능한 가요?]주딱의 메시지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페트급의 고성능 정령도 이제는 양분만 주입하면 충분히 찍어낼 수 있었다. 샐러는 애초에 양분을 아끼려고 1/3페트 수준으로 조악하게 만든 마이너 카피 버전이었다.물론 샐러 역시 양분을 듬뿍 먹이면 얼마든지 성장할 잠재력이 있지만, 시작부터 완성형인 놈을 만드는 것도 지금의 내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목인석심: 네! 가능합니다^^][주딱: 아, 그럼 어떻게 파실 생각이신가요? 저번처럼 갤러리로?]"으음..."이건 좀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다시 커뮤니티 갤러리에 글을 툭 던져놓고 '정령 팝니다' 하는 건 효율이 구렸다.애초에 샐러가 이렇게 엄청난 효율로 양분을 뽑아오는 건, 서은하의 직업이 '정령사'이기 때문일 확률이 컸다.일반적인 저층 등반자에게 분양했다면 이 정도 효율이 안 나왔을 것이다. 게다가 갤러리에 글을 쓴다고 쳐도, 정령사들이 알아서 내 글을 찾아와 줄까?나는 아니라고 본다.[주딱: 없으시면 저번처럼, 제가 중개해드릴까해서]"오?"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귀찮은 수고를 덜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목인석심: 그러시면 너무 감사하죠ㅎㅎ 다른 정령사 분이 계신가요?][주딱: (...)][주딱: 아뇨. 이야기 듣고 마법사 한 분이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요.]"마법사?"내가 알고 있는 마법사를 말하는 건가?마법사.굉장히 고급스럽고 상위 직업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또한 알아주는 똥직업이었다.초반에는 그냥 그럴만한 마법도 사용하지 못해서 지팡이 쓰는 물리법사로써 탑을 등반해야 했고.마법을 본격적으로 쓸 수 있는 중반층인 20층부터는 잠깐 숨통이 트이는가 싶더니.본격적인 활약이 필요한 30, 40층대 고층으로 넘어가면 다시 지옥이 펼쳐진다.탑의 적들이 기본적으로 마법을 방어하는 특수 방어구를 입고 나오거나, 아예 선천적으로 마법 저항력이 뛰어난 비늘이나 피부를 두르고 나오기 때문이다.결국 마법사는 뒤에서 캐스팅만 오지게 길게 하다가 선빵치고, 몬스터가 안죽으면 대가리가 깨지는 유리 대포 신세로 전락한다.정령사처럼 '진짜 이걸 직업이라고 봐줘야 하냐, 그냥 좀 건강해진 일반인 아니냐?' 라고 논란이 일어나는 미친 폐기물 직업까지는 아니더라도.마법사는 여전히 쓰레기 같은 직업이었다.뭐, 그래도 은근히 고층 등반율은 높은 직업이긴 했다.마법사로 직업을 배정받았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마나를 다루는 데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그 기형적인 밸런스를 피지컬이나 컨트롤로 극복한 미친놈들만이 고층에 살아남는 구조였다.당장 등반갤 념글에만 들어가도 마법사에 대한 흉흉한 인식을 잘 알 수 있었다.[마법사 ← 이 직업이 진짜 미친 이유]작성자: 퍼리퍼리기본적으로 마법사는 마나에 재능있는 사람만 됨근데 마나에 재능있는 거랑 싸움 잘하는 건 별개임남들 칼 활 들고 싸울 때, 안 그래도 싸움 실력이 주사위인 새끼들을 나무 막대기 하나 들고 고블린하고 투닥거리라고 던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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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이 되는 거냐?이거 때문에 등반 접는 마법사가 나는 적어도 9할은 된다고 본다.다른 직종이었으면, 저점 높아서 자동으로 고층 등반자될 종자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을 지 감도 안옴-이거 ㄹㅇ-마법사 쓰레기에요? ㄴ(작성자)님이 근접으로 잘싸우면 마법사도 좋음ㅇㅇ ㄴ왜 마법사가 근접을? ㄴ(작성자)저층 넘길려면 어쩔 수 없음 ㄴㅋㅋㅋㅋ어이 없네-전직 격투기 선수가 최강의 마법사인 이유를 아는 사람=💀💀💀 ㄴ미하일 로비치햄은 킹정이지ㅋㅋ ㄴ그분은 보법이 다름 ㄴ아니 진짜 보법이 다른 거잖아ㅋㅋㅋ ㄴ보법(Step)그때,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페트가 테이블 너머에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자신의 턴인데 왜 게임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냐는 무언의 항의였다. 짧고 뭉툭한 팔짱을 낀 폼이 제법 앙칼지고 건방지다."아, 미안 미안. 어디 보자……."나는 녀석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나무 탑으로 손을 뻗었다.이미 밑동이 다 파여 있어서, 어느 것을 건드려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의 기형적인 구조였다.고민 끝에 중간에 아슬아슬하게 껴 있는 블록 하나를 손가락으로 툭 밀어냈다.그리고.와르르르-!경쾌한 나무 소리와 함께 탑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페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짧은 양팔을 번쩍 치켜들며 승리의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소리 없는 아우성이었지만 녀석이 얼마나 깐족거리고 있는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테이블 위를 빙글빙글 돌며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꼴이 아주 얄밉기 그지없다."아, 씨. 졌네."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무너진 블록들을 대충 한곳으로 쓸어 모았다.게임에선 졌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주딱: 목인석심님?]"아."화면이 켜진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떠 있었다.[목인석심: 아, 잠시 딴 거 하느라ㅎㅎ 죄송합니다.][주딱: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래서 생각 있으신가요?]"음.."마법사라도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결과적으로 내가 추구할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등반자가 정령을 원하고, 정령을 필수품처럼 다루게 만드는 거니까.하지만 내 존재에 대한 노출을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지금 단계에서는 무작정 양을 늘리기보단 꽤 고효율의 등반자를 골라 뽑아 먹고 싶었다.서은하처럼 직업 보너스를 받거나, 아니면 아예 기본 스펙 자체가 압도적인 인간이거나.[목인석심: 실례가 안 된다면 몇층 등반자인지 물어봐도 괜찮은가요?][주딱: 잠깐만요.]주딱은 해당 마법사에게 허락을 구하는 듯, 잠시 자리를 비웠다.나는 할 것도 없고, 그 사이 마법사 관련 게시글을 하나 더 찾아봤다.[마법사 걸렸는데 좋은 건가요?]작성자: ㅇㅇ여기가 등반자 갤러리죠?저 직업 마법사 걸렸는데 괜찮은 건가요?-오 ㅊㅎㅊㅎ ㄴ(작성자)좋은 거에요? ㄴㅎㅎ 짱 조은 거임! ㄴ(뉴비짱을 속이다니! 콘)-이야 너 인생 폈구나? ㄴ(작성자)좋은 거에여? ㄴ이야 너 인생 폈구나? ㄴ(작성자)왜 같은 말을 반복하세요? ㄴ인생을 폄(물리)ㅋㅋㅋㅋ ㄴ(작성자)아 ㄴ마법사의 필수 덕목은 물리임ㅇㅇ 기억하셈-마법사 뜻= 재능이 있어? 그럼 죽어. ㄴ(작성자)... ㄴ좋은 건 줄 알고 비틱하려고 들어왔다가 반응보고 절망하는 거 개꼬시면 개추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ㄱㅊ-(작성자)? 찾아보니까 고층 등반자 중에 마법사 많던데 ㄴ우린 그걸 적자생존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ㄴ지팡이들고 저층 뚫을 정도면 뭘 했어도 고층 등반자될 새끼들임ㅋㅋ ㄴ(작성자)씨발게시글들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을 때쯤, 폰에서 다시 진동이 울렸다.[주딱: 허락 받았습니다.]"몇층이려나? 한 30층은 되었으면 좋겠는데..."하지만 그럴 확률은 적었다.그런 고층 등반자가 고작 주딱 따위를.[주딱: 마법사 분은 50층이세요.][목인석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