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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처음이자 마지막 원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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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처음이자 마지막 원나잇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당신과 그냥 헤어지는 일이니까.”

희원 자신조차 처음 본 남자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 사람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제 슬픔에 공감해준 사람도, 마음이 들어 있지는 않겠지만 다정하게 눈물을 닦아준 사람도 남자가 처음이었을 뿐이었다.

“진심으로 하룻밤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희원은 바텐더가 칵테일을 건네자, 남자를 쳐다보며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희원은 진심으로 남자에게 반한 것 같았다.

남자 역시 희원을 쳐다보다 건네받은 마티니를 한번에 마셨다.

“나가죠.”

남자가 희원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

호텔로 들어오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입을 맞추었다.

입을 맞춘 채로 남자는 희원을 번쩍 안아 들어 엉덩이를 받쳤다.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떨어지지 않으려 더욱 몸을 바짝 붙였다.

입고 있던 옷들이 하나 두 개씩 바닥에 떨어졌다.

어느새 희원의 등 뒤로 푹신한 침대의 감촉이 느껴졌다.

거칠고 차가울 거라 생각했던 남자는 마치 사랑하는 여자에게 하는 것처럼 다정했다.

깨지는 유리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안아주고 부드럽게 입맞춤해주었다.

조금이라도 아픈 내색이라도 하면, 흠칫 놀라며 괜찮냐고 수없이 물어봐 주었다.

희원은 다시 한번 이 남자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와이셔츠를 벗어 던진 남자가 위를 점령했다.

통창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에 근육이 잘 잡힌 탄탄한 몸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희원은 손을 뻗어 남자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남자가 왼쪽 눈을 움찔했다.

그 모습에 왠지 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자는 마치 복수라도 하듯 희원의 온몸 구석구석을 탐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그가 주는 쾌락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새하얀 허벅지를 움켜쥐었던 커다란 손이 아래로 내려간 순간이었다.

“……설마 처음입니까?”

들려온 목소리에 희원은 눈을 뜨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자신이 처음이라는 사실에 당황한 듯, 남자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희원은 이대로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이라서 더 당신을 선택한 거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하룻밤 상대에게는 과한 마음이었다.

그녀는 결국 그의 목에 팔을 두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라도 괜찮습니까?”

남자는 제게 매달려오는 희원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받치며 말했다.

“네. 당신……이니까 괜찮아요.”

희원은 입 안에만 맴돌았던 말을 내뱉었다. 자신의 말에 남자의 눈이 크게 일렁거렸다.

부담스러웠던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다시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남자가 자신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말했다. 그의 손길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데,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도 그의 행동은 마치 연인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생각했다. 이 밤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고.

그녀 역시도 스스로 믿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아프지 않게 할 테지만.”

남자는 희원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프면 말해요.”

그 목소리가 너무도 달콤해 희원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곤 눈을 감았다.

* * *

다음 날 아침.

통창으로 들어온 환한 햇살에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 보인 건 처음 보는 낯선 천장이었다.

“하아.”

몸을 일으키자, 물먹은 스펀지처럼 몸이 무거웠다. 동시에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하반신은 욱신거려 몸을 움직이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이제는 속 시원하니?”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었다.

인생 딱 한 번,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희원은 잠든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새벽까지 짐승처럼 굴던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소년 같았다.

그녀가 손을 뻗어 그의 앞머리를 슬쩍 들어 올렸다.

“잘생겼다. 나 이런 얼굴 좋아했었구나.”

희원은 자연스럽게 내려온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긴 속눈썹, 오뚝한 콧날,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에 작은 얼굴에 꽉 찬 진한 남자의 이목구비를 찬찬히 훑어 내렸다.

남자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그냥 취향에 맞는 남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품은 따뜻했다. 꾸준히 관리했는지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은 단단한 가슴팍에 안길 때는 처음 보는 남자임에도 편하기까지 했다.

남자는 예의를 차리고 있지만, 짐승과 같았고, 짐승처럼 굴다가도 다정해졌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놓은 적은.

마지막일 것이다.

오로지 제 욕망에 따라 몸을 맡긴 건.

그저 하룻밤의 일탈이었으니까.

이 문을 나서면 성희원은 전처럼 인형으로 살아야 했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죽을 때까지 살아야 했다.

“어떤 남자일까?”

희원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그의 소지품에 닿았다. 하이엔드 브랜드의 지갑과 옷들, 남자가 한 것 중에 명품이 아닌 것은 없었다.

남자를 향해 궁금증이 일었다. 이 남자를 보는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멍청하다, 성희원.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이 관계는 이 호텔을 나서는 순간 정리돼야 하는 것이었다.

희원은 고개를 세차게 저어 마음속 미련을 떨쳐냈다.

“고마워요.”

이제 끝이야. 이제는 전부.

한여름날의 꿈일 뿐인 기쁨과 행복은 이제 손에서 놓아야 했다.

남자가 깨지 않게 침대를 빠져나온 희원이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워 입었다.

옷을 챙겨입은 그녀가 잠든 그의 곁으로 걸어왔다.

희원이 호텔 메모지 한 장을 뽑았다.

메모를 다 적은 후,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들어 있는 현금을 전부 빼 메모지 위에 올려두었다.

-어젯밤엔 고마웠어요. 두 번 다시는 볼 일 없겠지만…… 행복하길 바랄게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이 길밖에 없네요.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희원은 자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곤, 어두컴컴한 호텔을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어쩐지 심장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전부 지워내야 했다.

이곳을 나서면 예전처럼 인형으로 살아야 할 그녀였으니까.

그때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남자와의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 아니라는 것을.

***

남자가 일어난 건 희원이 나간 후의 일이었다.

“하, 잠이 든 건가.”

눈을 뜬 남자가 처음 한 건 탄식을 내뱉은 것이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자리에 들지 못하던 그가 이렇게 아침까지 자본 적은, 루카스가 떠난 그날 이후론 없었다.

“성희원…….”

강우가 희원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그는 제게 하룻밤을 제안하는 여자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희원이 누워 있었던 이불을 매만졌다. 텅 빈 옆자리는 이미 차갑게 식었지만, 머릿속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은 뜨거웠다.

[나랑 잘래요?]

질척거리는 여자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돌아섰어야 했다. 나중에 만났을 때를 대비해 더 그랬어야 했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 같네요. 지금처럼 인형처럼 사는 게 더 분하거든요. 그런데 앞으로도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서요. 내 인생인데 한 번쯤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하지만 여자가 뱉은 말에 흔들렸다. 마음속에 낯선 감정이 태풍이 휘몰아쳤다. 동질감과 연민.

그 순간, 그래서 여자를 지나칠 수 없었다.

[당신과 밤을 보내는 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누군가를 보며 그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여자의 손이 대담하게 뺨에 닿자, 강우의 마음속에 일렁거리던 망설임이 사라졌다.

진한 화장 속 가려진 말간 얼굴, 여자의 미소가 잔상처럼 흩어졌다.

[좋습니다.]

그답지 않았다.

충동적인 행동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후회하기엔 이미 그의 입술이 여자의 입술에 닿은 후였다.

그녀에게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후회하는 건 자신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머릿속에서 희원의 모습이 떠나질 않았다.

“하아, 미쳤군.”

머리를 헝클어트린 그가 일어섰다. 그는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활짝 젖혔다. 통창으로 들어온 환한 햇빛에 넓은 어깨와 탄탄한 근육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차강우.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 LS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거론되는 남자였다. 그만큼 세간의 이목을 끄는 그에겐 지독한 소문이 따라다녔다.

추남에다 절름발이이다.

한 번 잔 여자와는 두 번은 하지 않는, 여자에 미쳐 산다.

성적 취향이 이상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소문은 그의 손으로 직접 퍼트린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소문만 무성했을 뿐, 그는 단 한 번도 여자를 안은 적이 없었다.

눈앞의 여자는 그저 자신과의 밤을 하룻밤이라고 단언했다.

남자는 부모가 정해준 결혼을 하기 싫었다.

아니, 애초에 결혼이란 제도 자체에 흥미가 없었다.

여자들은 죄다 제 배경을 보고 덤벼들었다. 그 수단은 때론 성적인 것이었고, 때론 권력이었다.

그럴수록 남자는 결혼에 신물이 났고 여자란 존재 자체에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부친이 이번에는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걸었다.

[집안을 꾸밀 장식품이 하나 더 생기길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쪽이 원하는 게 아내라면 자리는 내어드리죠. 그러니 아버지도 지금 제게 했던 말씀, 나중에 가서 모르는 척하지 마십시오.]

남자는 이미 희원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희원도 다른 여자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녀를 보니 그의 굳건한 생각에 균열이 일었다.

결혼하기 싫어서 소문까지 냈던 그였지만, 그녀가 가진 상처가 제 것과 너무도 닮아 있자 마음이 흔들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동질감이 생겼다. 게다가 막상 겪어본 희원은 지금껏 자신에게 접근했던 여자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함께 밤을 보내는 동안, 그는 저도 모르는 순간에 희원에게 확 끌리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그는 처음으로 결혼에 흥미가 생겼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죠. 우리는 곧 만날 겁니다.”

남자는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