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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못난이 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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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못난이 비서.

경쾌한 구두 소리가 로비에 울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수많은 직원이 오가는 게이트.

바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정환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성카드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이연이었다.

“안녕하세요. 유 비서님.”

정환은 이연의 인사에 밝게 응수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입사가 가능한 굴지의 대기업 우성카드.

자기 할 일 하기도 바쁜 인재들이 모인 곳이라 그런지 게이트를 지키는 정환에게까지 인사를 건네는 직원은 손에 꼽았다.

그중에서도 이연은 돋보이는 직원이었다.

듣기 좋은 육성으로, 눈을 마주치며, 가벼운 목례까지.

이연의 인사에는 존중과 반가움이 진심으로 묻어 있었다.

처음엔 얼떨떨해했지만 이제는 이연의 인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게 어느새 정환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정환은 고개를 돌려 게이트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이연을 쳐다봤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연을 보면 저절로 입가에 기분 좋은 웃음이 번졌다.

참 보기 드물게 인간미가 느껴지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연을 바라보던 정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이연은 정작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연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직원들이 하나둘 이연을 흘기며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무슨 말이 오가는지는 정환도 알고 있었다.

‘유이연 비서는 이상하게 정이 안 간다니까…….’

‘저 외모에 어떻게 부사장님 비서가 된 건지 신기해.’

정환은 가끔 지나가는 직원들에게서 들었던 이연의 험담을 떠올리며 허공에 맴돌던 시선을 다시 이연에게로 가져갔다.

이연은 얼핏 보기엔 내면보다 외면 쪽이 더 강렬했다.

눈썹 아래까지 내려오는 앞머리에 곱슬거리는 단발머리. 코 옆에까지 덕지덕지 난 주근깨와 그 사이에 자리 잡은 뿔테안경, 입꼬리 옆에 제법 큰 점 하나와 생기 없는 입술. 게슴츠레하게 떠 한없이 작아 보이는 눈, 품을 모두 가리는 긴팔 블라우스와 긴 바지까지.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정환조차도 이연을 보며 가끔 ‘젊은 처자가 꾸밀 줄 모르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우성카드 직원들은 이연의 외모를 보고 우스꽝스럽지 않냐며 비웃곤 했다.

자신이 느낀 어여쁜 마음과는 다르게 못난이 비서라고 불리는 이연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다.

*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속도가 거북이 걸음마보다도 느리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탓에 택시를 잡았지만 이미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덕분에 이연은 줄어드는 엘리베이터 계기판의 숫자들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숙덕숙덕-.

멍하니 서 있으니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도리질을 했다.

‘또 시작이네.’

지겹지도 않나 보다. 다른 사람 험담하는 게.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이연은 이제 이런 상황쯤은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일단 외모로 시작되는 험담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비서는 모시는 상사의 얼굴 아닌가요? 못생겼으면 화장이든 변장이든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복장이…… 큰 옷을 입어서 그런가, 허름해 보이잖아요. 옷이라도 맞는 옷 입으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 줘요.’

이연은 무감하게 다시 계기판에 집중했다.

이런 환경을 겪어 온 지도 어언 N년차. 상대하지 않는 게 자신의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건 진작 터득했다.

주눅들 이유도, 흔들릴 필요도 없었다.

두서없는 말에 위축된 모습을 보여줘 봤자 자신을 향한 화살만 두꺼워질 뿐이었다.

띵-.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하나 둘 직원들이 몸을 싣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발을 디딘 이연은 사람들에 밀쳐져 구석으로 자리잡았다.

“안녕하십니까, 부사장님.”

정원을 다 채워 갈 쯤, 훤칠한 남자가 들어서는 순간 직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며 공간을 터 주었다.

우성그룹 창업주인 안갑수 회장의 외손자이자 우성그룹의 유일한 후계자, 안도현 부사장이었다.

깔끔한 가르마 사이로 손질된 머리, 선명한 눈썹 밑에 날카로우면서 차가운 눈, 얼굴 중심부에 오똑하게 솓은 콧날, 굳게 다문 입술.

이연과는 다른 의미로 어딜 가나 시선을 끄는 이 남자는 이연이 현재 모시고 있는 보기 드문 젊은 임원이었다.

도현이 타자 엘레베이터 내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었다.

도현을 쳐다보는 여직원들의 양쪽 볼은 하나같이 복숭아를 발라 놓은 듯 발그레했다.

뉴욕 명문대 출신의 타고 난 머리, 잘생긴 얼굴에 잔근육이 빼꼼거리는 완벽한 수트 핏, 우성카드 부사장으로 부임한 뒤 브랜드 평판을 획기적으로 올리며 증명해 낸 능력까지.

도현은 여자들이 꿈꾸는 왕자님에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부합하는 남자였다. 조물주가 잠깐 미쳐서 탄생한 존재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다.

그러니 도현의 연애사는 우성카드 모든 여직원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여직원들은 ‘안도현 부사장을 차지할 여자는 전생에 나라 구한 것이다’, ‘분명 도현에게 걸맞은 재벌 상속녀가 아니겠느냐’ 등 그의 배우자가 될 존재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단, 이연만 빼고.

물론 이연이 이성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안도현 부사장의 비서로 근무한 지 3년, 이연은 완벽해 보이는 도현에게도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상사는 굉장히 깐깐하다. 게다가 자신의 몸에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는 걸 질색했다.

스치기만 해도 벌레를 본 것 처럼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뭔가 본인의 소중한 몸에 벌레가 스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아, 본인 외에는 다 벌레라고 생각하는구나. 인성에 문제가 있구나. 함께 있다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남자였다.

한껏 시달린 날이면 잘생긴 외모와 배경만으로 그를 찬양하는 여직원들에게 그의 실체를 소리쳐 알려 주고 싶었다.

이연이 생각에 빠진 사이 직원들은 각자의 층에서 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엘리베이터엔 마지막으로 도현과 이연만이 남아 있었다.

띵-.

‘인사라도 건네야겠다.’

좁은 공간 단둘이 남아 있으니 아침 인사라도 건네야겠다 싶어 고민한 사이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부…….”

이연이 부사장의 ‘부’자를 외치기도 전에 도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본인의 자리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참 한결같이 본인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남자였다. 물론 관심을 바란 건 아니지만.

이연은 멀어져 가는 도현의 널찍한 어깨를 바라보았다.

그래, 사람들은 아마 상상조차 못 하겠지.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신데렐라 단잠을 꾸게 만드는 남자 안도현 부사장이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우성카드의 유명인, 못난이 비서 이연과 계약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

이 말도 안 되는 결혼은 4개월 전 어느 평범한 날에 시작되었다.

사나운 겨울이 지나고 포근한 봄이 찾아오던 때였다.

그즈음 이연의 피로도는 최고치였다.

올해 이연의 나이 앞 자리가 ‘3’으로 바뀌면서부터 조바심을 내는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의 재촉에 등 떠밀려 나가는 소개팅이 몇 번째였나.

잠깐의 반항으로 잠수를 탄 적도 있지만 소용없었다.

그다음 본가에 들렀을 때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에 소개팅남이 앉아 있었다는 슬픈 사연이……. 그 가게가 쟁반짜장 집이라는 것까지 완벽히 문제였다.

또 같은 상황을 겪을 바엔 얌전히 소개팅에 나가 거절당하고 돌아오는 게 나았다.

“요즘 더 심해졌어.”

날이 갈수록 화연의 집착이 더 심해졌다.

좋은 남자를 만나면 이연도 달라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듯했다. 그런 엄마에게 영원히 결혼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다.

조만간 동생 이환에게 도와달라 연락해 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연은 출근길에 올랐다.

피곤한 주말을 보낸 것 치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가벼웠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집무실의 공기청정기를 켜고 간단한 정리와 화분에 물까지 주고 의자에 앉아 하루를 시작할 겸 기지개를 켰다.

콧방울로 내려온 안경을 올리며 이연은 거울에 비친 얼굴을 체크했다.

광대 한가운데 자리 잡은 검은깨들은 지워지지 않고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

오늘따라 막힘없이 착착 진행되는 하루에 콧노래가 나올 지경이였다.

“유 비서.”

“안녕하십니까, 부사장님.”

출근한 도현이 부르는 묵직한 음성도 투명한 유리잔 소리처럼 청량하게 들려왔다.

잠깐 들어오라는 눈짓에 이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현의 뒤를 따라 집무실에 들어갔다.

따라 들어오라던 도현은 말없이 코트를 옷걸이에 걸쳤다.

들어오라고 한 거 맞지……?

이어지는 침묵에 나갔다가 좀 있다가 다시 들어와야 되나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언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은 건지 도현이 자리에 앉아 그녀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내 한층 낮아진 목소리가 울렸다.

“같이 살자, 우리.”

유독 기분이 좋았던 월요일의 평범한 행복이 도현의 한마디에 와장창 깨져 버렸다.

이게 웬 아니 땐 굴뚝에 프로포즈인 건지.

아냐, 잘못 들었을 거야.

“네? 잘 못 들었습니다.”

“정확하게 들은 거 맞아. 같이 살자고, 너랑 나.”

장난이라고 넘겨짚기엔 도현의 표정이 세상 진지했다. 그리고 정확히 짚어 주었다. 너랑 나라고.

하지만 장난이 아니라면 설명할 말이 없었다.

도현과 이연은 3년 가까이 동안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였다.

제 상사가 아무한테나 이런 말을 뱉는 불한당 같은 놈이었던가……. 이연은 불손해지려는 눈빛을 가까스로 붙들고 대답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싫습니다. 전 결혼 생각이 없으니까요. 갑자기 왜 프로포즈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프러포즈란 말에, 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말은 바로 해야지. 한 공간에 같이 살자고 제안하는 거야.”

‘같이 살자’랑 ‘프러포즈’가 다른 의미면 더 이상해지는 상황 아닌가? 이연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

“같은 의미여도 쓰임이 다르잖아.”

의자에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킨 도현이 몇 발짝 걸어 나오더니 책상에 걸터앉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결혼도 유 비서한테도 전혀 관심 없어.”

“근데 왜 갑자기 저한테 프러포즈하신 거예요?”

다시 한번 거슬리는 단어에 도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유 비서가 적합해.”

“어떤 부분이요?”

“내가 원하는 조건이, 바람직한 외모, 서로의 결혼관을 이해해 줄 사람.”

바람직하다고요? 외모가……?

이연은 몸을 돌려 유리문에 비치는 자신의 형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황당한 제안만큼 황당한 이유였다. 아무리 봐도 바람직한 모습과는 거리가 꽤 있어 보였다. 이연은 삐뚤어진 안경을 바로잡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정말 외모가…….”

“그러니까 같이 살자, 나랑.”

그를 만나고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생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