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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못난이 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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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못난이 분장.

이연이 얼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던 검은 뿔테 안경을 벗었다.

화장 솜에 클렌징 워터를 묻힌 뒤 이마부터 문지르기 시작했다. 광대에 잔뜩 퍼져 있던 주근깨와 입꼬리 옆에 자리 잡고 있던 제법 큰 점도 이연이 여러 번 문지르는 손길에 언제 있었냐는 듯 깨끗하게 사라졌다.

일부러 컨실러를 얇게 발라 생기를 죽였던 입술이 불그스럽고 탐스럽게 다시 제 모양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눈썹 아래까지 내려오는 앞머리에 곱슬거리는 단발머리 가발까지 벗어 눌려 있던 머리를 손으로 흐트렸다.

거울에 비친 이연의 깨끗한 얼굴은 아름답다는 표현도 부족할 만큼 어여뻤다.

일부러 게슴츠레 떳던 눈을 또렷하게 뜨니 아까와는 달라 보이는 크고 맑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속눈썹을 붙인 듯 짙고 긴 쌍꺼풀은 이연의 맑은 눈을 더 선명하게 해 주었다.

흰 도자기 같은 피부와 가운데 잡힌 앙증맞은 오뚝한 코, 촉촉함을 머금은 듯한 붉은 입술은 한눈에도 이연이 보기 드문 미인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출근할 때 이연의 모습과 전혀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보기 드문 얼굴을 가진 죄로 이연은 매일 아침 열심히 외모를 가리는 붓질과 화장질을 하고 있었다.

이연에게 예쁜 외모는 불행이었으니까.

***

이연은 어렸을 때부터 이목을 집중시키는 외모 때문에 동네 유명인사였다.

‘유이연’이라는 이름을 모르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대화가 단절될 정도였다.

학생 때는 그 시절 때 묻지 않은 순수함까지 더해지니 그 시절 이연은 에메랄드보다 더 반짝이는 아우라를 풍겼다.

긴 생머리에 170센티미터의 큰 키. 교복을 두르니 길고 잘빠진 다리 선이 도드라져 보였다. 캐스팅 제의를 너무 많이 받은 탓에 집에 쌓여 있는 명함이 수두룩했다.

어디를 가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여학생이었다.

여기에 반전까지 있었다.

“대단하다, 유이연. 오늘도 도서관 왔네?”

“그러게! 쟤 이번에도 전교 순위 안에 들었다던데…… 인생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니.”

“보기와는 다르게 공부도 열심히 하더라. 머리까지 비상하니 불공평한 거 맞아.”

“쟤네 부모님은 좋겠다. 우리 엄마랑 다르게 딸 자랑 실컷 할 수 있겠네.”

이연은 예쁜 친구는 공부를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아이였다. 보기와는 다르게 학교 성적은 최상위권에서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연은 자존감도 높고 경쟁심도 있었다. 성적이 떨어지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다. 단짝인 하율과 선의의 경쟁을 하며 서로의 스팩을 높여 주곤 했다.

필기에 집중하던 이연이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한 올을 한쪽 귀로 쓰윽 넘기자 갓 익은 복숭아처럼 한입 베어 물고 싶은 분홍빛 광대가 드러났다. 오물오물거리며 무언가 암기하는 듯한 붉은 입술은 여럿 남정네의 마음을 불태우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똑단발을 한 여학생 둘이 그런 이연을 흘겨보며 속삭였다.

선망을 받는 것도, 시기를 당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이연은 차라리 자기 귀를 막겠다는 듯 빼놓고 있던 이어폰을 다시 귓구멍에 끼어 넣었다.

어딜 가나 시선을 끄는 이연이었으니 쉴 새 없이 많은 일이 일어났다.

모르는 남학생이 따라다니는 일도, 처음 보는 아저씨가 대뜸 손목을 붙잡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이연은 사람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이연의 주위에 좋은 사람이 더 많았으니까. 몇몇 이상한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

.

.

이연의 부모님은 ‘황금용 쟁반 짜장’이라는 중식당을 운영했다. 이연이 태어날 때부터 운영했으니 20년 넘은 맛집으로 장사가 꽤 잘되는 편이었다. 입소문이 제대로 난 덕분에 체인점도 하나 운영하고 있었다.

가게가 한 곳에서 오래 자리잡다 보니 가게 단골로 인연을 맺었다가 친형제처럼 지내게 되는 주민들이 몇명 있었다.

이연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단골손님 중에 제일 나이 어린 장호엽 삼촌을 잘따랐다.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연에게 잘 공감해 줘서 대화가 잘 통하는 삼촌.

그날은 이연이 22살이 되고 대학 친구들과 친목 모임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늦은 저녁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각.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돌아보니 익숙한 실루엣이 휘청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엽이 삼촌이였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거하게 한잔하고 귀가하는 모양새였다.

“삼촌!”

“우리 예쁜 이연이 여기 있었네?”

“참! 적당히 드시지!”

이연은 혀까지 단단히 꼬여 버린 삼촌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이연의 아버지인 재철과 종종 술을 먹어도 이 정도로 취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이리 와, 삼촌 집에 좀 데려다 줘.”

취해서 그런지 평소에 하던 말이나 말투가 아니었다.

이연은 괜한 서늘함에 순간 망설였지만 호엽이 휘청거리자 결국 옆에 다가가 그의 팔을 어깨에 두르고는 힘껏 부축했다.

“참 남자를 말이야…….”

“네?”

“미치게 한단 말이지.”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 이연은 호엽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탁해져 있는 수컷의 눈빛. 지금까지 알던 호엽이 아닌 것 같았다.

이연의 어깨에 올려져 있던 호엽의 팔이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깨에서 내려온 손은 등을 타고 내려와 이연의 허리 부근에 안착했다.

그의 손이 스쳐 지나간 곳마다 소름이 끼쳐 몸이 떨려 왔다.

“삼촌, 취한 거죠?”

“아니, 오감이 다 멀쩡한데. 오늘따라 더 예쁘다, 이연아.”

이연은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더듬어 대는 호엽의 손을 뿌리쳤다.

“멀쩡하시니까 전 가 볼게요.”

“어딜 가, 이 날을 몇 번이나 상상한지 몰라. 네 주변에 있는 남자들 중에 순수한 의도로 곁에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예쁘게 남자를 홀리는데.”

미쳤다. 진짜 단단히 정신을 놓은 게 분명했다.

이연은 더 이상 대꾸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연은 그대로 내달렸다. 호엽이 따라오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벗어나니 오히려 긴장이 풀렸는지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이연은 오랜 시간 알았던 모습이라도 거짓일 수 있음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래도 부모님 주변 지인 중에 제일 좋아하고 따랐던 삼촌인데.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며 좋은 사람이라 믿었는데. 배신감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다음 날, 가게에서 마주친 호엽은 기억이 안 나는 척 이연을 대했다. 하지만 이연은 흔들리는 눈빛에서 그가 어제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이연에게 사과하지도, 변명하지도 않고 가게에 발을 끊었다.

생각보다 충격이 컸는지 이연은 한참 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이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움찔거리게 되고, 남자들이 다가와 말거는 걸 피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참석한 과 모임에서도 이연은 서둘러 일어났다.

벌써 몇 주 째였다. 호엽 삼촌의 탁한 눈과 마주친 이후로 남자들을 마주하는 게 꺼려지고 무서웠다.

가족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호엽 삼촌의 마지막 말이 자꾸 이연의 귓가에 맴돌았다.

‘네 주변에 있는 남자들 중에 순수한 의도로 곁에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예쁘게 남자를 홀리는데.’

“야, 유이연! 뭐 하길래 불렀는데 대답을 안 하냐.”

누군가의 부름에 이연은 고개를 흔들며 잡생각을 떨쳐 버렸다.

대학교 입학하고 처음으로 사귄 같은 과 남사친 엄지후였다. 이연을 집까지 데려다준다며 따라나온 듯했다.

그는 과에서 분위기 메이커였다. 유머러스하고 말도 재치 있게 잘하는 편이라 MC 역할을 자처해서 하곤 했다. 큰 키와 남성미가 한껏 오른 훈훈한 외모에 여자에게 인기도 꽤 있는 편이었다.

오늘도 동기들이랑 신나게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취기가 오른 것 같았다.

“야, 너 취한 것 같은데 가라니까. 나 완전 멀쩡하거든요? 집에 혼자 갈 수 있어.”

지후는 가라는 말에도 들은 척하지 않고 이연의 뒤를 경호하듯 따라왔다.

“너 못생겨서 혼자 가면 경찰에 잡혀 가. 안 돼.”

안 그래도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혹시나 집 앞에 호엽이 있을까 한편으론 불안했던 이연은 지후의 배려가 괜히 든든하고 고마웠다.

지후는 지금처럼 자신을 철저히 친구로 대하며 선을 넘지 않았다. 그렇기에 3년 넘게 우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처음이었다. 남자와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건. 지후는 10대 때부터 친했던 하율만큼이나 깊은 우정을 쌓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 친구였다.

이연은 나중에 지후에게 호엽이 했던 말에 대해 상담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는 동안 두 사람은 이연의 집 앞에 도착했다.

“유이연, 집에 들어갈 거냐?”

고맙다고 인사하며 들어가려는 이연을 지후가 붙잡아 세웠다.

“그럼 들어가지 안 들어가니?”

“나 할 말 있으니까, 좀 더 있다 가.”

지후가 어깨를 붙잡은 순간 이연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 할 말 나중에 들으면 안 될까. 나 빨리 들어가야 되는데.”

심장이 불길하게 쿵쿵 뛰었다.

“유이연, 좋아한다고.”

“나도 친구로서 좋아해.”

“난 여자로서 좋아해.”

삼촌의 말이 또 다시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하얗게 질려 가는 이연 앞에서 지후는 고백을 이어 갔다.

“사실 처음부터였던 것 같아, 너무 예뻐서 첫눈에 반했어. 친구라는 관계가 끊어질까 봐. 고백하기가 무서웠는데. 곧 졸업인데 이 마음을 안 전하면 그것도 후회할 것 같아서 술의 힘을 빌려 고백한다.”

그랬구나, 그것도 모르고 나는 처음 사귀어 본 남사친이라며 안심했구나.

“유이연은 처음부터 여자였어. 난 너 친구라고 생각한 적 없었어. 네가 그렇게 예쁘게 쳐다볼 때마다 미칠 것 같이 좋았어.”

이연은 지금까지 자신이 너무 단순했던 건가 후회가 되었다.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다고 어리숙하게 믿고 있었다.

이연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은 인정하고 존중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연은 더이상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받아 줄 수도, 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왠지 서글프고 어딘가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 어깨를 감싼 지후의 손이 버거웠다.

“미안.”

이연이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간 후로 이연은 며칠 안 남은 겨울 방학까지 지후를 피해다녔다. 방학과 동시에 핸드폰 번호도 변경해 버렸다.

기억에 남는 호엽의 말 때문인지 이연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가리기 바빴다.

긴 옷들로만 채워지는 옷장.

마음의 상처를 가리고 싶은 건지, 얼굴을 가리고 싶은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좀 더 못생겨 보일 방법은 없을까 고민을 하다 보니 지금의 변장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애매하게 변장하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을 가리니 사람들의 이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남자들과 심심찮게 일어나던 해프닝도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가리고 나서야 이연은 진짜 자신으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젠 변장한 자신의 모습이 더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