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예쁜 미끼
#4화 예쁜 미끼
“세일즈 하러 온 사람 맞아요?”
차도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까만 눈동자에 여은을 조용히 담아낸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50분 정도가 지났는데, 포트폴리오 봐 달라는 말을 안 하네요.”
차도하의 시선이 그녀의 무릎 위에 놓인 포트폴리오를 가리켰다.
젓가락을 내린 여은이 두 손을 모아쥐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시 보아도 참 잘생긴 얼굴이었다.
어느 한 군데 모난 구석이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차갑다.
특히 그의 까만 눈동자가 그랬다.
사람이라면 응당 품고 있어야 할 영혼이 없기라도 한 건지, 마주 보고 있으면 심장이 선득해질 정도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남자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봐 달라고 하면, 보실 건가요?”
“아니요.”
1초도 고민하지 않은 대답이 매정하게 튀어나왔다.
순간적으로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봐주지도 않을 거면서 밥은 왜 같이 먹자고 한 건지.
희망 고문이라도 시키려는 건지.
따져 묻고 싶은 마음도 설핏 들었다.
하지만 한마디도 꺼내지 않은 여은은 그저 침음을 삼킬 뿐이다.
사실 차도하가 거절할 거라는 건 예상했다.
그녀의 예상을 빗나간 건 같이 밥을 먹게 된 상황이었지.
“저도 안 보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은의 대답에 차도하의 한쪽 눈썹이 삐뚜름하게 기운다.
“그럼 왜 왔어요?”
그러게, 왜 왔을까?
아무런 대책도 없었는데.
차도하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여은이 숨을 삼켰다.
“포트폴리오를 봐 달라고 할 것도 아니고, 구구절절 이미지 트레이닝의 이점에 대해 떠들 것도 아닌데.”
입술을 꾹 닫은 여은은 저를 빤히 쳐다보는 차도하의 시선이 불편해 숨조차 내쉴 수 없었다.
그런 그녀를 집어삼킬 듯 바라본 그가 한쪽 입꼬리를 비딱하게 말아 올렸다.
“예쁘게 해서 왜 왔냐고.”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당히 노골적인 질문이었다.
노골적인 목소리고.
그의 눈에 그녀가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무를…….”
미인계를 써서라도 차도하의 이미지 트레이너가 되라는 말에 안경을 빼고 머리를 다시 했다.
차도하를 만날 거라며 아침부터 옷을 고르고 화장에도 공을 들였다.
“열 번 찍기로 했거든요.”
그의 눈에 예쁘게 보이면 포트폴리오를 한 번이라도 봐줄까 기대하면서. 하지만 착각이었다.
아니, 착오려나.
차도하는 그런 수준의 남자가 아니었다.
예쁘다고 말하면서도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날이 서 있다.
“나무를 열 번 찍기로 했다?”
그녀의 말을 곱씹은 차도하가 고개를 비스듬히 비틀며 코웃음을 흘렸다.
코웃음마저 차가워서 이제 겨우 9월 중순이건만 손이 시리다는 착각이 든다.
어쩌면 심장이 시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웃음기를 거둔 차도하가 여은을 느릿하게 훑었다.
“그 나무.”
차도하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색을 달리했다.
“넘어갈 것 같습니까?”
먹이를 눈앞에 둔 배부른 포식자의 느른한 눈빛 같달까.
조금은 무료하고, 조금은 끈적이는 묘한 시선에 손바닥이 간질거렸다.
목구멍 안쪽까지 뻑뻑하게 들이찬 긴장감을 간신히 삼킨 여은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요?”
그녀의 대답에 차도하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운다.
그린 듯 아름다운 입술에 설핏 미소가 어렸다.
“왜? 도끼가 예뻐서? 그래 봤자 도끼인데?”
“…….”
옆에 앉은 김정주 과장이 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려 콜록거렸지만 차도하는 멈추지 않았다.
“본인이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거. 알죠?”
차가운 물을 머리 꼭대기부터 맞은 느낌이다.
“설마 본인이 되게……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가?”
등골이 오싹하고 뼛속까지 한기가 든다.
이깟 계약 하나 따내려고 예쁘게 꾸미고 나온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창피하고 한심스럽다.
기껏해야 그녀는 도끼인 것을.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차도하의 눈빛에 비릿한 잔혹감이 너울거렸다.
“검색해 봐요. 배우 김해리 스캔들.”
뜻 모를 이야기를 담담한 목소리로 던진 차도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는 그 뒤에 하죠.”
“잠시만요.”
자리를 떠나려는 차도하를 여은이 급히 붙들었다.
기껏해야 도끼인 그녀지만 그래도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오늘 한주 백화점 리뉴얼 행사에서 회장님을 대신하여 테이프 커팅식에 참석하신 것으로 차현 관장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 자리에는 지금처럼 회색 톤보다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가 좋을 법했어요.”
차도하의 미간이 슬쩍 구겨졌다.
“엄중한 분위기를 자아내시려고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 톤을 고르신 거라면 의미 면에서 맞겠지만, 그런 것보다는 권위를 나타내시는 게 맞지 않았나 해서요.”
“권위?”
“네. 권위는 붉은색입니다, 본부장님. 인상을 찌푸리는 것보다 차가운 미소가 더 상대를 장악할 수 있는 법이거든요.”
차도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제가…… 기껏해야 예쁘기만 한 도끼는 아니라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자괴감을 애써 삼킨 여은이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말을 이었다.
“날도 제법 잘 드는 도끼니까요.”
이어 차도하의 입꼬리에 미세하게나마 미소가 걸렸다.
“명심하죠.”
그러고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익숙한 듯 식당을 빠져나갔다.
“하아.”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가슴께가 뻐근하게 아프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짙은 자괴감이 그녀의 심장에 깊은 자상을 남기고 있었다.
* * *
웃기는 여자다.
차에 오른 도하는 창밖을 내다보며 식당에 두고 온 여자를 떠올렸다.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가던 얼굴이 볼만했다. 하얗던 살결에 복숭아색 물이 드는 모습도 꽤 괜찮았고.
꽉 움킨 두 손이 파르르 떨리던 것도 마음에 든다.
아주 잠깐이지만 침대 위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 가녀린 몸에 세상 번뇌를 다 구겨 넣으면 어떤 얼굴을 할까, 하고.
서여은이라고 했다.
가학적 욕구를 은근히 자극하던 그 여자 이름이.
“서여은…….”
조용히 여자의 이름을 되뇐 도하는 코웃음을 치며 시선을 창밖에서 거두었다.
“본부장님.”
운전하던 김정주 과장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그를 불렀다.
그러더니 몹시 곤란한 얼굴로 그의 업무용 휴대전화를 내민다.
“회장님이십니다.”
회장님.
쓴웃음을 흘린 도하가 옆에 놓아둔 태블릿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거절하세요.”
한주 그룹 일원 중 누가 감히 차지섭 회장의 전화를 거절할까.
아마 도하가 유일할 것이다.
진동을 연신 울려 대는 휴대전화를 본척만척, 태블릿을 열어 계열사별 내년 1분기 사업 계획서를 띄웠다.
그러자 김정주 과장이 울상을 짓는다.
“그, 그래도 회장님께 오늘 리뉴얼 행사 보고를 드리심이…….”
여전히 시선을 들지 않은 도하가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리뉴얼 행사 보고로 될까요?”
차지섭 회장이 전화를 건 이유는 뻔하다.
보고는 핑계일 뿐이고 정작 목적은 다른 데 있다.
“우리 회장님, 나한테 듣고 싶은 대답 있잖아요. 나는 그거 대답하기 싫은 거고. 그러니 운전이나 하세요. 신호 바뀌었으니까.”
서늘한 대답에 눈치를 살피던 김정주 과장도 수긍한 듯 휴대전화를 물렸다.
그 순간 다시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김정주 과장의 휴대전화다.
짜증스럽게 미간을 좁힌 도하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영감.”
아마 도하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김정주 과장을 괴롭힐 것이다.
“켜세요.”
도하의 허락이 떨어지자 김정주 과장이 얼른 스피커폰을 켰다.
“왜 일하는 사람을 괴롭힙니까?”
-네 고모가 예쁜 아이로 골라서 붙였다는데 왜 고집 피우니?
도하의 말은 들은 척 만 척, 차지섭 회장은 제 할 말만 쏟아 냈다.
-왜? 더 예쁜 애로 붙여 주랴?
돌려 말하는 법이 없는 차 회장의 말에 도하의 얼굴이 싸늘하게 일그러졌다.
-네 조건대로 예쁜 아이로 붙였으니 ST 둘째랑 맞선 날짜 잡아.
결국 이미지 트레이닝은 핑계다.
그 여자는 그를 한주의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해 내세운 미끼일 뿐이고.
그것도 아주 예쁜 미끼.
* * *
7개월 전, 조부인 차지섭 회장이 미국으로 그를 만나러 왔다.
[이제 너도 한주의 일원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겠니? 그 좋은 머리로 언제까지 그러고 지낼 테냐.]
[제가 그냥 노는 걸로 보이세요? 저도 바쁩니다.]
[나도 안다. 네 녀석이 뭘 하고 다니는지. 그 출중한 능력, 한주를 위해 쓰라는 이야기야.]
[굳이 그런 걸 해야 하나요?]
한주를 위해 쓰라니.
누가 그따위 것에 관심이나 있다고.
도하는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그런 도하에게 차 회장은 그가 거절 못 할 말을 노골적으로 덧붙였다.
[네가 할 일을 네 형이 저리 대신 하는데, 너도 형을 도와야 하지 않겠니?]
[내가 부탁한 일은 아닌데요.]
[죽은 네 아비가 싸지른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 너 대신 인우가 나서서 감당하는데도 말이냐?]
이러니 대화조차 하기 싫다는 거다.
이런 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뒤얽어 버려서.
그래서 더 삐딱하게 받아쳤다.
[나만 고마워해야 하나요? 회장님 아들이 싸지른 일 손자가 대신 치워 주니 회장님도 고마워하셔야죠.]
아주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어떤 감정적 동요도 표출하지 않은 차 회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인우에게…… 회사를 맡긴 것 아니냐. 그러니 너도 네 형을 도와. 그게 너와 내가 할 일이야.]
짜증이 치밀었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본사 전략 기획 본부를 맡아. 보드라운 네 형 대신 칼을 휘둘러 줄 망나니가 필요하니 말이다.]
망나니라니.
그에게 딱 어울리는 수식어이기는 했다.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하나. 한주에 네 그 잘난 얼굴을 빌려 다오. 회사 낡은 이미지 바꾸는 데는 너 같은 놈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더구나.]
[요구가 많으시네요. 전기본 맡는 걸로 동생 노릇은 다 하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이어진 말에는 도하 역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을 빌려주면 네 엄마, 자유롭게 놓아주마.]
거절할 그 어떤 명분도 찾지 못했다.
아니, 6년 전부터 그가 바라고 바라던 일이었다.
[얼굴은 빌려드리죠. 대신 책임은 못 져요.]
승낙은 하되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마음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애써 만들어 온 그의 자리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아시잖아요. 말 그대로 저 망나니인 거. 물론 회장님이 바라시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망나니이지만.]
그의 말에 차 회장이 픽, 웃음을 흘렸다.
[알다마다. 하지만 한주의 얼굴이 되면 그 망나니 짓은 관둬야 할 거야,]
망나니 차도하.
지난 6년간, 그가 일부러 만들어 낸 이미지이다.
자유분방하게 쾌락을 즐기며 방탕한 삶을 영위하는 한주의 한량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그런 제 위치가 퍽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그런 그를 한주의 후계자인 인우에게 맞설 칼날로는 생각하지 못할 테니까.
또한 그런 이미지가 그가 은밀히 진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적당한 눈가림과 충분한 방패막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러니 그는 앞으로도 망나니이어야 한다.
여자 치마폭에 드러누워 쾌락이나 즐기는 망나니.
[왜 이러세요. 나한테 그 낙도 없으면 어쩌라고.]
[여자를 집에 들이면 될 게 아니냐.]
[여자를 집에 들이다니, 결혼이라도 하라는 말씀이세요?]
[ST 둘째와 결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