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가 갑자기
엑스트라가 갑자기
사실 원하는 걸 안다고 해도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건 아니다.남들이 뭘 원하는지 안다고 해도, 그걸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니까.이번이 타이밍이 딱 맞은 거겠지.아직 사건이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갤러리는 온통 방금 있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새로고침을 한 번 할 때마다 관련 글이 네다섯 개씩 늘어날 정도.[아 근데 확실하게 말해줬으면 안 됐나?]: 마지막에 잘못 봤다고 하지 말고 그냥 정유리가 버렸다고 확실하게 말해주지ㅠㅠ저러면 또 빠져나갈 구멍 생기는 거 아님?쟤 저런 식으로 넘어간 게 한두 번이어야지- 이미 충분히 말해준 거 같은데? ㄴ 잘못 봤을 수도 있다고 했잖아 ㄴ 여기서 못 받아먹으면 그건 한세희가 문제지 ㅋㅋㅋ 어디까지 떠먹여줌- 저거 진짜 모르는 건 아니지? 알면서 모른 척 한 거지? ㄴ 딱 봐도 분위기 심각하니까 더 엮이기 싫어서 모르는 척한 거 아녀? ㄴ 알면서 저렇게 연기한 거면 기 존나 센데? ㄴ 심지어 1학년 아님? ㅋㅋㅋㅋ[근데 진짜 궁금한 게 있음]: 쟤는 대체 어떻게 하필 그 시간에 분리수거장을 간 거임?심지어 정유리가 버리는 것도 봤다는 거잖아타이밍이 진짜 말도 안 되는데그 장면 제대로 본 해붕이 있음?- ㅁㄹ? 학교 전체 살펴보고 있던 거 아니면 모르지. 학교 건물에서 봤을 수도 있고- 엑스트라가 갑자기 주연급 활약을 해버리시면;- 분리수거 담당이라잖아- 전학 왔다는 걔네 ㄴ 전학? ㄴ 몇 명 메기 이벤트 떴다고 어그로 끌었을 때 걔임 ㅋㅋ ㄴ 그거 어제 아닌가? ㄴ ㅇㅇ 1학년 3반 전학생 ㄴ 와 ㅋㅋㅋㅋ 그 흔남이라던? ㄴ ㄹㅇ 메기였네 ㄴ 이걸로 메기는 좀 ㄴ 그 제일 중요한 자격이 안되시는데..[아직도 얼떨떨해😢😊]: 2년 내내 고구마만 먹으면서 갤에 찡찡대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이걸 아무 연관도 없는 1학년 전학생이 뚫어주네 물론 운이 좋았던 것도 있겠지만이렇게 쉽게 풀릴 일이었으면 그동안 왜 그렇게 속 끓였나 싶기도 하고..아직도 좀 얼떨떨함- 그냥 즐겨- 하지만 여기서 세희가 또 봐준다면? ㄴ 아 제발.. ㄴ 시발 진짜 그러지 마- 난 그냥 2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라 좋은데. 얼빠지만 남규한테 없던 호감도 생길 지경임 ㄴ 1학년 이름이 남규임? ㄴ 웅 ㄴ 친근하네[남규 이 새끼 존나 웃기네]: 분위기 씹창 내놓고 지 할 말 끝났다고 냅다 런치는 거 보고 개처쪼갬 ㅋㅋㅋ- 그야, 진짜 할 말은 다 했으니까.. 끄덕 ㄴ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없긴 해ㅋㅋㅋㅋ- 정유리 저렇게 당황하는 거 처음 봄 ㄴ 맨날 뒤에서 수작질만 하다가 처음으로 현장 딱 걸린 거라 순간 도파민 미침 ㄴ 이래서 인간들이 도파민도파민 하는구나..- 솔직히 얼굴 평범해도 저 정도면 매력 있지 않냐? ㄴ 벌써요..?- 뭔가 생긴 거랑 달리 만만한 성격은 아닌 듯 ㄴ ㅇㅈ 보통 1학년이면 선배들 앞에서 저렇게 못 하지 ㄴ 근데 걍 아무 생각 없어 보이기도 함 ㄴ 그럼 그게 더 웃김 ㅋㅋ[하 이제 한세희단 지들 주인 살려줬다고 ㅈㄴ 올려치겠네]: 타이밍이 메인 이벤트급인 건 ㅇㅈ하는데무슨 엄청난 활약이라도 한 것처럼 구는 건 좀ㅋㅋ특히 메기메기거리는 애들은 그전 메기들 외모는 보기나 했나 싶음- 주인 이러고 있다 한심;;;- 니가 니 입으로 말했네. 메인 이벤트라고 ㅋㅋㅋ 그게 엄청난 활약이지 ㄴ 그니까 ㅋㅋ 병신인가 - 아니 왜 애 얼굴 가지고 지랄들임 ㄴ ㄹㅇ 걍 착한 일 했다 하고 넘어가면 안 되냐? ㄴ 벌써 남규맘이 생김?- 근데 뭐가 그렇게 꼬움? ㄴ 세희 억까당하는 거 못 봐서 화났나 봄어제까지만 해도 흔남이라며 별 관심도 못 받다가 갑자기 호감이 되어버렸다.이 일희일비하는 듯한 모습에 좋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어차피 저래 봤자, 저들에게 인기 많은… 소위 주연급 인물들에게 비호감으로 찍힐 만한 짓이라도 했다간 다시 욕할 거 아니야.……뭐 찍힌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지만.그랬다면 유리시치는 이미 사형당하고도 남았을 거다.일단 층을 내려와 우리 반으로 향하는데 마침 나오던 우리 반 남학생과 마주쳤다.같이 축구도 하고, 점심도 먹었던 이남길이라는 친구였다.“어? 어디 갔었냐.”“나 잠깐 학교 구경 좀.”“혼자 잘 다니네. 어쨌든 빨리 가자. 강당 가야 돼.”그러네. 점심시간이 끝났으니 바로 강당으로 가야 하는구나.나는 그대로 남길이에게 붙잡혀 발걸음을 돌렸다.강당은 본관과 이어진 별관 쪽에 있었다.학교 정문부터가 어지간한 대학교를 연상시킬 만큼 으리으리했으니, 강당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높다란 천장과 줄지어 매달려 있는 조명, 앞에는 대형 스크린까지.‘웬만한 공연장 저리 가라네….’나는 새삼 학교의 재력을 실감하며 안쪽으로 들어섰다.이미 강당 안은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학년과 반별로 자리가 정해져 있는 모양인지, 선생님들이 통로 곳곳에 서서 학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남길이와 나는 안내 덕분에 금방 우리 반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이거 얼마나 걸린대?” “몰라. 한 시간?”“존나 길게 하네.”“수업 하나 빠지는 건데 뭐 어때.”“아, 인정.”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강당의 조명이 조금 어두워졌다.그리고 맨 앞에서 나오는 사람은 한세희.아까 전에 당황한 표정만 짓고 있던 그녀에게 지금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반듯한 자세에 여유로운 걸음걸이.내가 처음 그녀를 봤을 때 느꼈던 그 분위기로 돌아와 있었다.이내 스크린에도 발표 자료가 나오며 곧바로 발표가 시작됐다.딱히 특별한 건 없는 내용이었다.“우리가 매일 생활하는 학교는 누군가에게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뭐, 대충 그런 내용.학생들끼리 배려와 존중해요~깨끗한 학교 환경 만들어요~하는 사람은 준비를 많이 했겠지만…… 솔직히 학교생활 캠페인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는 고등학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무리 발표자가 한세희 선배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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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를 하는 사람도 그렇게까지 바라진 않을 것이다.몇몇 하품하는 사람, 한세희라는 사람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사람, 그냥 떠드는 사람.평범한 소음 속에서 발표는 금방 끝이 났다.“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짝짝짝짝!우렁찬 박수 소리가 끝나고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어후, 드디어 끝났네.”옆에서 남길이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나도 따라서 일어섰다.뻐근한 허리를 한 번 펴고 주변을 둘러보니, 학생들이 줄지어 출입구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우리도 그 행렬에 섞이려는 찰나.“잠깐만요. 거기……!”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들렸다.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눈이 마주쳤다.한세희 선배다.발표 끝낸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달려온 모양이다.그리고 그 이유가 아무래도 나인 것 같았다.누가 보면 원래부터 친근한 사이였던 것처럼 그녀가 반색하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아, 멀리서 봐서 와봤는데 다행이다.”“네?”“아까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 드린 것 같아서요. 덕분에 발표 무사히 끝냈어요. 고마워요.”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표정에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다행이네요. 발표도… 멋있었습니다, 선배님.”“아니…… 그렇게 깍듯하게는 안 해도 되는데.”그녀가 멋쩍게 웃었다.하지만 그녀는 알까. 그녀한테 밉보이면 갤러리에 사형 청원이 올라온다는 걸.물론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어려워하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다.“그런 말 들으려고 온 건 아니고요. 원래 정말 큰일 날 뻔했거든요. 그 USB에 자료를 다 담아놔서…… 자료를 다시 만들 시간도 없었고, 선생님들께도 이미 발표 준비가 끝났다고 말씀드린 상태여서 만약 못 찾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네.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아요.”감사 인사를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왜냐하면 내가 USB를 찾아낸 경위가 썩 떳떳하지 않기 때문이었다.남들이 모르는 사실을 알고 찾아낸 데다, 그 과정에서 분리수거 담당이라느니 뭐니 하는 거짓말까지 했으니까.심지어 주변엔 반 애들까지 있는 상황.힐끗 옆을 보니 남길이는 물론이고, 같은 반 애들 몇 명도 은근히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괜히 이야기가 길어져 봐야 나한테도 좋을 게 없다는 뜻이었다.“….”“….”그런 내 상황을 알 리 없는 한세희 선배의 갈색 눈이 깜빡거린다.마치 무언가를 더 물어보길 바라는 표정…….어쩌면 여기선 마땅히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야 하는 걸지도 몰랐다.갤러리가 없었다면, 내가 떠난 후 뒷일을 궁금해할 수도 있으니까.한세희는 그 답을 해주려던 것 같지만, 이미 나는 갤러리를 보면 알 수 있었다.무엇보다 반 애들이 주변에 가까이 있고, 한세희 선배면 애들이 바로 관심을 가질 게 뻔하기에…….‘그냥 가줬으면….’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어 어색하게 웃고 있자, 한세희 선배가 그 기색을 간접적으로 느낀 것 같았다.“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나? 하하….”“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반사적으로 부정했지만 설득력이 없었는지 그녀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다음에 보면 인사해요! 정말 고마웠어요!”그리고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휴….머리를 꾸벅 숙이고 들자,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야, 야…… 야! 야! 야!”날 부르는 건지, 그냥 호들갑스러운 리액션인지…….아무튼 남길이를 비롯한 다른 같은 반 남자애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저 누나랑 아는 사이였어?”“아니, 진짜 뭐야?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지?”내가 어제 전학 온 사람인 걸 아는 애들이니 더 이상하게 보일 터.하지만 이건 내가 분리수거 담당이라고 거짓말 친 거에 비하면 둘러대기 훨씬 쉬웠다.“물건 떨어뜨려서 주워줬어.”“…아하.”“근데 그거 하나로 저렇게까지 와서 인사를 한다고?”“한세희 선배 진짜 착하다던데… 사실이었네.”그렇게 결론이 난 모양이었다.*돌아가는 길에 담임 선생님이 동아리 희망서를 작성했냐고 묻길래 곧장 교실에서 꺼내와 건네드렸다.이미 이상현상 연구 동아리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더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희망서를 한번 훑고는 별 말 안 하시고 돌아가신 선생님.그 뒤로 남은 수업까지 무사히 끝마치고 이제 종례만을 앞둔 시점, 대뜸 교실 앞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담임 선생님이 아닌, 다른 반 여자였다.“어, 나현이다.”“하이.”두루두루 친한지 여기저기 인사를 하며 오는…….……쟤가 백나현?나현이라는 이름과 외모만 보고 바로 유추가 가능했다.그러고 보니 백나현에 대해서도 해연갤에서 좀 알아보려고 했었지.어쩌다 일이 터지는 바람에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왜 인기가 많은지는 바로 알겠다.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길이. 좀처럼 보기 힘든 옅은 푸른색 머리카락이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가볍게 찰랑였다.그 아래로 드러난 건 새하얀 피부와 작고 갸름한 얼굴.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선명한 이목구비.묘하게 이국적인 것 같아도…… 고양이상 미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얼굴이었다.그런 그녀가 내 앞까지 다가왔다.……볼 일 있는 게 나였구나.어느새 그녀가 내 자리 바로 앞에서 입을 뗐다.“네가 남규… 맞지? 우리 동아리 온다는.”
***[남규 얘는 동아리에서 나현이랑도 엮이는데?]: 둘이 같은 동아리네?- 어라?- 어?- 갑자기 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