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아닌 오해
오해 아닌 오해
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선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를 수도 있겠다.가볍게 던진 말에 전학 온 지 이틀밖에 안 된 남학생이 냉큼 만나자고 했으니 당황할 만하지.……너무 들이대는 것처럼 보였으려나.백나현 정도면 평소에도 친해지겠다며 접근하는 남학생이 제법 많았겠지.심지어 처음 본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대하는 성격이니까 더더욱.‘내가 딱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네.’백나현뿐만 아니라 톡방 전체가 스턴에 걸린 걸 보면, 누가 봐도 그렇게 보였다는 뜻.그리고 그 미묘한 잠깐의 정적 끝에 곧이어 백나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백나현 [좋아 ㅎㅎ] 백나현 [그럼 나와!] 백나현 [학교 정문 앞에서 보자]이미 보자고까지 했는데, 여기서 뒤로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이왕 이렇게 된 거 학교 주변이나 구경할까.마침 이 동네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었으니까.학교를 끝마치고 돌아와서 한 거라곤 갤질과 밥을 먹은 것밖에 없어서 금방 옷만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학교 정문 쪽으로 가자 백나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하늘색 머리카락.그녀는 정문 옆 가로수 아래에 서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혼자가 아니네?’자세히 보니 나현이 곁에는 처음 보는 여자 두 명이 더 있었다.친구들이랑 같이 있었던 모양이다.아니면…… 단 둘이 보기는 부담스러워서 불렀을지도 모르겠다.셋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웃고 떠들다가, 나를 발견한 백나현이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남규야! 여기!”빠른 걸음으로 그녀 쪽으로 다가가자, 그녀가 곁에 있던 친구 두 명을 소개해줬다.한 명씩 인사를 나눴는데, 인사가 끝나자마자 친구들이 음흉하게 웃는다.“오… 나현이랑 같은 동아리 친구.”“이야, 용기 있다. 난 응원해.”……역시.친구들도 전부 내가 들이댄 걸로 알고 있잖아.“뭐래.”백나현이 바로 반박했지만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왜애. 칭찬하는 건데? 난 응원한다니까.”“뭘 응원해! 진짜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저렇게 질색하며 매번 부정하는 것도 일이겠다.물론 저런 반응 때문에 더 놀리는 거겠지만.……괜히 미안해지네.앞으론 진짜 조심해야지.“아무튼 신경 쓰지 마. 얘네 원래 장난이 좀 심해.”“응. 괜찮아.”“얼… 늠름해 아주.”백나현은 히죽히죽 웃는 친구를 애써 무시하며 나한테 물었다.“그럼… 어디부터 구경하고 싶어?”정말 구경시켜 주려는 생각인 것 같아 고맙지만, 막상 그렇게 물으니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애초에 이 동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디부터 가고 싶냐고 물어봤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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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불쑥 끼어들었다.“구경은 뭔 구경이야. 뭐 여기 동네 한 바퀴라도 돌게? 그냥 놀자. 어차피 돌아다니다 보면 다 보이는 거 아냐?”“아, 그럴까?”“응. 노래방이나 가자. 나 노래 부르고 싶어.”눈치 빠른 친구들 같아 그건 좋긴 한데…… 다른 의미로 잘못 걸렸다 싶었다.오늘 얼마나 시달릴까…….*논다고 하더니만, 정말 이렇게 원 없이 놀게 될 줄이야.노래방을 갔다가 잠깐 카페에 들렀다가 마지막엔 사진까지 찍었다.이렇게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에 만났으니, 그것만 해도 밤이 무척 깊었다.사실 카페에서 나오면서 헤어지려고 했지만,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붙잡히기까지 해서 더.여자 세명 사이에 껴 있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이 친구들은 정말 이곳에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나를 놀아주려던 것 같아 분위기 자체는 편했다.뭐… 중간중간 나와 백나현을 은근슬쩍 몰아가는 장난이 몇 번 있었지만, 각오를 하고 있었기에 아예 반응을 안 해줬다.백나현한테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저런 건 아예 반응을 안 해야 줄어들 테니까.“오늘 고마웠어.”“에이, 뭘. 재밌었는데. 조심히 들어가.”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손을 흔드는 그녀들에게 나도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그렇게 몸을 돌리고서야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후우…….다들 붙임성도 좋고 나를 배려해 주려는 게 느껴져서 편하긴 했지만, 기가 빨린 것도 사실이다.그간 묵힌 사회성을 전부 끌어다 썼다.그래도 뭐… 좋게 생각하면 잠깐의 쪽팔림을 감수한 대가로 친구를 셋이나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남규가 먼저 떠난 후, 남은 세 사람은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오늘 은근 재밌었네. 남규도 처음엔 엄청 조용한 앤 줄 알았는데.”“에이, 나현이한테 데이트 신청 했을 때부터 조용과는 거리가 멀었지.”“…아직도 그 소리야?”백나현이 질린다는 듯 눈을 흘겼지만,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잘 놀고 있던 우리를 갑자기 불러낸 사람이 누구?”“아니, 그건…… 너희가 마침 근처에 있길래. 다 같이 놀면 좋잖아.”백나현은 본인이 변명하고도 뻘쭘한지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친구 둘은 당연히 코웃음을 쳤고.“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나현이 가슴으로 가리면 가려질 듯.”“아… 줴줴이야.”백나현이 눈을 부라리자, 그제서야 놀리는 걸 멈춘다.아무리 그래도 백나현이 진짜로 화난 모습은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알았어 알았어. 그만할게. 근데 같은 동아리면 고생 좀 하겠네.”“그래서 처음 볼 때부터 그렇게 잘해주면 안 된다고, 언니가 말했어요 안 했어요.”다만 남규가 백나현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신하고 있었다.“그래도 남규가 눈치는 있는 것 같더라. 아예 티 안 내려고 하는 것 같던데?”그러고 보니…… 오늘 볼 수 있냐고 톡으로 물을 때만 해도 적극적이었던 태도가 정작 만나고 나서는 조심스러워진 게 티가 났다.백나현도 괜히 미안해졌다.너무 눈치 보게 만든 건가 싶어서.“……그러니까 너희가 왜 그렇게 놀려.”“아니, 재밌잖아.”*다음 날.쉬는 시간에 시끌벅적한 교실 문이 열렸다.어제도 봤던 하늘색 머리카락이 교실 문가에서 살랑거렸다.백나현의 고양이 같은 눈매가 문 사이로 쏙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그리고 나와 딱 마주쳤다.눈꼬리가 휘었다.그리고 머리 옆으로 불쑥 손이 올라온다.“남규, 하이.”나도 얼떨떨하게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았다.백나현이 또 우리 반에 찾아왔다.아직 동아리 활동은 시작도 안 했는데…… 동아리 인연으로 벌써 세 번째 마주침이다.친화력은 진짜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어제 잘 들어갔어?”평범한 인사치레를 하는 것 같던 그녀의 얼굴이 이내 미안함으로 물들었다.“어제는 미안했어. 애들이 너무 장난 많이 쳐서…….”“괜찮아. 그냥 장난인 거 알았는데 뭐.”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 같다.내가 괜찮다고 하자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앞으로 동아리 기대된다. 같이 하면 재밌을 것 같아.”그 뒤로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백나현이 몸을 돌렸다.바로 반을 나가진 않고, 친목 GOAT 답게 금방 우리 반 여자애들과 합류해 얘기를 나눈다.나는 그 사이 갤러리를 살폈다.[백나현이랑 남규 어제 학교 끝나고 뭐 했나 본데?]: 방금 나현이가 와서 어제 잘 들어갔냐고 물어봄심지어 어제는 미안했다고도 하는데?뭐임?- ?- 학교 끝나고 잘 들어갔냐고 물어보는 거 아님? ㄴ 그럼 미안하다는 건 뭔데. 그럴 일이 뭐가 있음- 둘이 어제 따로 만났다고?- 일단 둘이 방과 후에 만난 건 거의 확실한 듯? ㄴ 남규 이 새끼 진짜 뭐지ㅋㅋㅋㅋ확실히 백나현을 주목하고 있던 자들이 많은지 실시간으로 관련 글이 올라왔다.그리고 그 글을 시작으로 비슷한 글이 줄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이쯤 되면 진짜 뭐 있는 거 같은데][이래도 부정해 봐 ㅋㅋㅋ][상식적으로 전학 이틀 차에 이게 말이 됨?][또 방과후 이새끼야?][갤주 행동 존나 하네 진짜]앞으로 신중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반응을 보니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그래도 어제 그 오해를 받아가며 일을 저질렀던 보람은 있네.단체로 멘헤라가 온 것 같은 반응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그렇게 좋냐.”내 옆자리.짝꿍이 턱을 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찌푸린 눈썹에 어딘가 안쓰러움마저 묻어나는 눈빛.“왜?”“아니 그냥… 입꼬리가 귀에 걸렸길래.”입꼬리가 귀에 걸린 건 맞다.그야, 내가 계획한 일이 뜻대로 됐으니까.근데 그걸 이상하게 오해한 모양이었다.“에휴, 이해는 한다. 백나현이 원래 저래. 누구한테나 친절하고…….”녀석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내 어깨를 툭 두드렸다.“근데 너무 의미부여는 하지 마. 널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야.”그제서야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얘는 내가 백나현과 대화하고 헤벌쭉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정말 좋은 의미로 해주는 말 같았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 말을 하는 짝꿍의 표정이 영 꺼림칙하다.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색보다는, 마치 꿈 깨라고 이죽거리는 듯한 느낌.신경 끄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멀찍이서 목소리가 들렸다.“나현이 얘기할 거면 우리도 같이 하자.”고개를 돌려보니, 교실 반대편에 있던 여자애 몇 명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짝꿍의 목소리가 저쪽에도 들린 모양이었다.심지어 백나현도 어색하게 이쪽을 보고 있다.……아.나는 모르는 일이다.백나현에 대해 먼저 떠든 것도, 혼자 아는 척하며 충고를 늘어놓은 것도 전부 짝꿍이 한 일이었으니,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도 전적으로 그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메기갤에 미안한데 너희 이건 알고 갤질하냐?]: 세희 또 유리 봐줌 ㅋㅋ- 웨미 - ㅈㅈ 난 더 이상 세희 못 보겠다 ㄴ 이 소리만 몇 번째냐ㅋㅋㅋ- 세희는 다 완벽한데 사람한테 너무 약하다 은근 사람 다루는 게 서투름 ㄴ 은근? ㄴ 그럼 완벽한 게 아니지 않아요?- 자기 사람은 진짜 잘 챙기긴 하는데.. 이 정도면 그냥 호구라 보는 게 맞을 듯 ㄴ 너무 심함 저래서 나중에 사업은 어떻게 한다는 건지 ㄴ 아직 세희 18살이야 ㅋㅋㅋㅋ ㄴ 정유리랑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다며. 그게 그렇게 쉽게 끊어지겠냐- 세희는 나중에 남자 잘못 만나면 ㅈ될듯 매 맞으면서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할 타입임 ㄴ 오.. 그건 좀 ㄴ 고맙다 이거 보고 다시 마음 돌렸다 ㄴ 댓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