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Crawler

감당하기 힘든

내 러브 코미디가 방영된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감당하기 힘든

인적이 드문 학교 본관 뒤편.학생들의 발길이 뜸한 계단 중간에 두 사람이 마주 서 있었다.한 명은 갈색 머리카락이 길게 흘러내린 한세희. 다른 한 명은 정유리였다.정유리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기 바빴고, 한세희는 그런 그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흐윽…… 으, 미안해. 세희야…….”이미 정유리가 할 수 있는 변명은 전부 늘어놓은 뒤였다.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감정까지 전부.질투심. 열등감.결국 자신이 한세희를 부러워했고, 그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까지 인정한 상황.“정말 미안해, 세희야.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응?”결국 똑같은 얘기의 반복이었다.붙잡고 있는 것 자체가 미련한 짓이라는 건, 한세희도 알았다.그럼에도 머뭇거리고 있는 것부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엉엉 울고 있는 정유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삐죽 튀어나온다.정말 반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까지는 한세희도 부정하지 않았다.그때 정유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너까지 날 외면하면…… 그땐 진짜 어떡해. 너도 알잖아. 네가 나 용서 안 해주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정유리의 목소리가 더욱 애처롭게 떨렸다.“지금도 다들 나한테 뭐라고 하고, 뒤에서 욕하고…… 아까도 복도 지나가는데 다들 나만 쳐다보더라. 근데 너까지 등 돌리면… 나 진짜 학교 못 다녀.”문득 오래 전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초등학생 때 검은 머리를 뒤로 묶은 채 해맑게 자신에게 손을 내밀던 모습.쉬는 시간마다 자신을 찾아오고, 급식실에 갈 때면 당연하다는 듯 옆자리를 차지하던 모습도.서로의 집을 오가며 시시콜콜한 비밀을 나누고, 별것도 아닌 일에 배가 아프도록 웃었던 날들이 있었다.한세희가 긴 머리카락을 거칠게 뒤로 쓸어 넘겼다.“하아… 알았어.”“…응?”“알았다고. 한 번만 넘어갈게. 그러니까…… 다시는 이런 일 하지 마.”정유리의 눈이 커졌다.“세희야……!”“그리고 당분간은 나한테도 시간 좀 줘.”“응, 응…! 당연하지. 얼마든지 기다릴게. 정말 고마워, 세희야. 진짜 다신 안 그럴게. 약속할게. 나 정말…… 정말 후회하고 있어.”“….”한세희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몸을 돌렸다.그렇게 한세희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이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정유리의 눈물도 뚝 그쳤다.“……하.”정유리는 한동안 한세희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거칠게 문질렀다.퉁퉁 부어오른 눈가가 쓰라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오히려 짜증스럽다는 듯 몇 번이고 문지르고는 한세희가 떠나간 방향을 노려봤다.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던 정유리의 입꼬리가 비틀렸다.“김남규… 라고 했지?”*[결국 피해 보는 건 남규네]: 한세희가 어설프게 행동하는 바람에 오히려 도와준 사람이 피해 보게 생겼네정유리 저년 성격에 가만히 넘어갈 리도 없고, 이제 막 전학 온 1학년은 뭔 죄냐 - 마지막까지 남규 이름 중얼거리는 거 보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던데- 하;;; 세희야 제발 사람 좀 가려서 믿어라 진짜 조오오오온나 답답하네 ㄴ 지금 남규 떡밥 아니었으면 이미 욕 개처먹었음- 근데 이번 일로 확신함 정유리 저년은 이미 폭주기관차라 결국 손절 엔딩 날 듯 ㄴ 졸업할 때 손절하면 뭐 할 건데? ㄴ 우리는 뭔 죄임?- 남규가 또 피해 보면 그걸로 세희가 자책하고.. 악순환 반복이네 ㄴ 그니까 애초에 정유리를 왜 봐주냐고 ㅠㅠ한세희가 워낙 인기 많은 인물이고, 관련 글이 많아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마치 눈앞에서 지켜본 것처럼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아직 피해를 안 보긴 했는데.물론 앞으로도 안 볼 거고.그래도 갤에서 나를 생각해 주는 건 좀 색다르긴 했다.앞으로도 그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유리가 무슨 짓을 할지 낱낱이 글을 써주면 좋겠다.미리 알기만 한다면야 그걸 피하는 건 쉬우니까.만약 내가 여기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영향력 있는 선배한테 찍힌다고 생각했다면 무서웠겠지만…….나는 이제 막 전학 온 외지인이라 그런 위협도 없었다.그리고 한세희 선배가 봐주는 거야 나와 큰 상관이 있나 싶다.사실 나도 그녀를 갤러리 글로만 많이 접했지, 직접 나눠본 대화라고 해봐야 몇 마디가 전부였으니까.어쨌든, 점점 체감이 확실해지는 것 같다. 남들은 모르는 사실을 미리 알고, 당사자들만 오가는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능력인지.“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그럼 뭔데?”“아니…….”“아니아니 하지 말고. 그래서 나현이가 뭐 어쨌다는 건데? 누가 보면 나현이가 애들한테 여지라도 주고 다니는 듯이 잘도 말하더니…… 우리 앞에서 또 해봐.”내 옆에서는 짝이 백나현에 대해 뒷말을 하다 현장을 딱 걸리고, 여자애들 몇 명에게 둘러싸여 쩔쩔매고 있었다.여자 애들이 저렇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무슨 말이 나올까.물론 지가 크게 말해서 일을 자초한 거라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그래서 나는 아예 모르는 일인 척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문득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남규야.”내 짝을 쏘아붙이던 여자애 중 한 명이었다.“너는 왜 모르는 척 해? 너도 옆에서 다 들었잖아.”“듣기만 했으니까? 아무 말도 안 했는데?”“아하…….” 듣고 납득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린다.“그러네? 미안.”“응.”다행히 억울하게 휘말려드는 일은 없었다.*어쩌다 보니 점심은 안정훈과 함께 먹게 됐다.급식실로 향하던 도중 우연히 마주쳤는데, 먼저 같이 먹자고 하길래 거절할 이유가 없어 알겠다고 했다.전학 온 첫날부터 이것저것 챙겨준 데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안정훈이 가장 편했으니까.그렇게 식판을 들고 적당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근데 너 생각보다 적응 빠르더라. 벌써 여기저기 친구들도 많이 만들었던데?”“어? 아…… 그런가?”고개를 갸웃했다.솔직히 친구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 하면 애매모호했다.오히려 안정훈이 편하면 편했지.“동아리 활동 아무도 말 안 해줘서 혼자 있던 거 생각해 봐. 나 제일 놀란 게, 그날 한세희 선배 궁금해하더니 강당에서 갑자기 그 선배가 너한테 인사하러 왔을 때야.”그때 안정훈도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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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물건 주워줬다는 말, 너한테도 했었나?”“아니, 그래도 신기하잖아. 종 잡을 수 없다고 해야 되나.”그렇게 말하던 녀석이 문득 나를 빤히 바라봤다.“그래서 말인데, 너 백나현 진짜 좋아하는 거야?”“큽….”하마터면 먹던 밥이 그대로 튀어나올 뻔.“너까지 그 얘기냐. 당연히 아니지.”“…그래?”되묻는 기색이 영 미심쩍었다.못 믿는 게 역력한 기색이었는데, 안정훈은 더 캐묻지 않고 잠시 망설이듯 젓가락으로 밥알을 뒤적거렸다.“왜 할 말 있어?”“……아니, 뭐.”안정훈이 머쓱한 얼굴을 하다가 말했다.“사실 나도 좋아하는 애 있거든.”“……설마 그게 백나현?”“겠냐. 나 그렇게 음흉한 놈 아니다.”“아니, 음흉할 거까지 있나….”“다른 반 애야. 중학교 때부터 알던 애인데…… 학원도 계속 같이 다니고 있거든.”“오… 고백은 했어?”내 질문에 안정훈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보니까 너 백나현 좋아하는 거 진짜 아닌가 보네. 넌 짝사랑하는 마음을 몰라.”“….”“뭐, 내가 용기 없는 거긴 한데 고백은 아직 못했어. 그 대신…… 이번 주말에 한번 만나자고 해볼까 생각 중이거든.”“둘이서?” 안정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평소엔 학원에서 보는 게 전부라 갑자기 단둘이 만나자고 하면 너무… 좀 그렇잖아?”“응.”“그래서 그냥 친구들끼리 같이 놀자고 해볼까 하는데…….”…아하.그제야 왜 갑자기 짝사랑 얘기를 꺼냈는지 알아챘다.나한테 도와달라는 거구나.뭐, 그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다.첫날부터 날 도와준 친구인데 이 정도는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다.“도와줄게.”“….”“같이 가 달라는 거잖아. 괜찮아. 나 주말에 딱히 할 일도 없어.”흔쾌히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반응이 이상했다.안정훈이 난처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고맙긴 한데…… 그게 좀 걸리는 게 있어.” “뭔데?” “걔도 친구를 데려올 거 아니야.”“응.”“누구를 데려올지 대충 알 것 같거든. 나도 중학교 때부터 알던 얼굴이라.”그는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솔직히…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감당하기 힘든 애라서.”“……얼마나?”안정훈이 적당한 표현을 찾으려는 듯 눈동자를 굴린다.……뭐, 얼마나 감당하기 힘들길래.“음, 말로 설명하기 어렵네. 혹시 주예린이라고 들어봤어?”당연히 못 들어봤어야 했는데, 이름을 듣는 순간 왠지 익숙했다.이런 경우는 보통 갤러리에서 본 거다.그러고 보니 주예린…… 종종 언급되는 이름이었다.주예린을 좋아하는 그 갤러리 이용자들을…… 멘헤라단이라고 부르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