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 간수
남친 간수
더 자세히 찾아봐야 알겠지만, 안정훈이 괜한 걱정을 하는 건 아닌 듯했다.근데 뭐… 중요한 건 안정훈과 그가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잘되는 거지, 그녀의 친구가 어떤 사람이냐는 부차적인 문제.그리고 이미 어렵사리 부탁이라고 얘기를 꺼냈으니 이제 와서 못 하겠다고 발을 뺄 생각은 없었다.“상관없어.”“…진짜?”“응. 이번 주말?”“일단 물어볼게. 시간 되는지.”안정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이렇게까지 좋아하니 괜히 나도 기분이 좋네.도움을 받았으니 그걸 되갚을 수 있으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싶다.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안정훈은 할 일이 있다며 먼저 떠나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나서 해연갤을 열어봤다.‘그러고 보니 정훈이 얘기도 있으려나?’혹시나 싶어 찾아봤지만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이렇게 보면, 나에 대한 글이 있던 것도 오로지 ‘전학’이라는 키워드 때문이었던 것 같다.뭐… 언급이 없을 거면 아예 없는 게 낫지 뭐.그리고 언급이 많다고 해서 마냥 좋은 건가도 생각해봐야 했다.이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학생의 앞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알지만.그건 아무리 봐도…… 아이돌을 좋아하거나, 연애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출연자가 잘되기를 바라는 심리와 비슷했다.그런 팬심과 응원의 마음.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건 엄밀히 말하면…….‘기싸움 아닌가?’언급이 많아진 건 사실이었지만 그걸 내 ‘팬’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연예인도 아니고 이런 걸 신경 쓰게 될 줄이야.’인생 참 모를 일이다.그래도 만약…… 정말 만약에 나를 좋아하는 녀석들이 많아져서, 누군가 나를 위해 대가를 지불할 정도가 된다면 어떨까?‘로또라도 당첨되게 해 주면 좋겠네.’그것 참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여태 살면서 부유하게 지내본 적은 없으니까.
d3kza0VLSVdxajZ6L09aWC8xUnR2TENkNEhZOWEzZGd6Q2JKY2d6T3FvRUIrMzEzeXVxWWNEVjVxc2ZkS2NIMQ
아무튼 쓸데없는 상상은 그쯤에서 접고, 이번에는 주예린에 대해 찾아봤다.예상은 했지만…… 시작부터 좋은 소리는 안 나온다.처음 발견한 글부터가 ‘오늘 학교는 나옴?’이었으니까.조금 더 찾아보니 대략적인 평판이 눈에 들어왔다.지각과 결석이 잦고, 선생님들과 마찰을 빚는 일도 종종 있고…….성격도 상당히 까칠한 모양이었다.누가 말을 걸어도 기분이 나쁘면 대놓고 무시하거나 쏘아붙이는 일이 다반사.심지어 학교생활 초반에는 백나현과 한세희하고도 부딪힌 적이 있다고 한다.이쯤 되면 응원하는 애들이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인데, 꾸준히 주예린 얘기만 하는 애들은 꽤 있었다.얼마나 푹 빠졌는지 취향 같은 걸 일일이 정리해 놓은 글도 있고.잠깐 살폈는데…… 말 험하게 하는 사람을 싫어하신단다.너무 내로남불이잖아.아무튼.[주예린 응원하는 애들이 진짜 얼빠지]: 저 성격에 저 얼굴 아니었으면 갤에서 진작 언급 끊겼을 듯- 정유리보다 취급 안 좋았을걸? ㄴ 지금도 안 좋지 않음?[주예린도 솔직히 억까 많이 당했어]: 예린이도 알고 보면 여리고 좋은 앤데 그게 겉으로 안 드러나는 거지하필 첫인상부터 조져서 그렇지, 얘도 좀 억울한 면 있음원래 상처 많은 애들이 표현이 서툴다는 걸 알아줬으면….- 첫인상은 본인이 직접 조지셨다네요- 갤 양대팬덤한테 찍히는 보법은 남다르긴 함 ㄴ 하준이랑도 부딪힌 적 있지 않냐 ㄴ 트리플 크라운 ㄷㄷㄷ- 얘 사정 알면 이해되는 부분도 있긴 하지 ㄴ 사정 없는 사람이 어딨음……대체로 이것만 아니면, 저것만 아니면 좋은 사람이라는 글.그런 걸 하나하나 빼고 좋은 애면 안 좋은 사람이 있을까.역시 팬심이란 무섭다.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아는 얼굴과 정면에서 마주쳤는데, 그게 하필이면…….정유리.주변에 친구 하나 없이 혼자 걷는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쳐버린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나한테 복수한다는 사람 아니야.’하지만 이걸 내가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니…… 등 떠밀리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그때 죄송…….”말이 끝나기도 전에 쌩 하고 스쳐 지나가는 그녀.“…쩝.”어지간히 화가 나신 모양이다.그래도 대놓고 티를 내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저쪽에서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니, 나도 그에 맞춰 준비할 필요성을 느꼈으니까.오히려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으면 그쪽이 더 무서웠겠지.‘……조금 찾아볼까.’갤 정보에 따르면 정유리는 한세희를 2년 동안 꾸준히 괴롭혔다고 했으니 남아 있는 정보도 많을 것이다.알아둬서 나쁠 건 없겠지.‘살펴야 할 게 많네.’이렇게 다들 갤창이 되는 걸까.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 마련된 쉼터가 보였다.커다란 나무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정자와 벤치 몇 개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다.좋은 학교라 그런지 엄청 잘 되어 있다.나는 벤치 하나를 골라 앉고, 대충 남들에겐 휴대폰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손에 들고 갤을 살폈다.그렇게 정유리가 행했던 음흉한 짓들을 살펴보고 있던 와중.“여기서 뭐해요?”갑자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동시에 시야 한구석으로 무언가가 사르륵 흘러내렸다.고개를 들자, 누군가 허리를 살짝 숙인 채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건…….“어?”한세희 선배였다.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가운 듯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는데, 한세희가 먼저 손을 내저었다.“그냥 앉아 계셔도 돼요. 여기 가만히 앉아 있길래 뭐 하나 궁금해서 와봤어요.”그녀가 가볍게 웃었다.나는 엉거주춤 들었던 엉덩이를 다시 벤치에 붙이며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들여보였다.“그냥…… 휴대폰 좀 보고 있었어요.”“아, 그랬구나.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것 같아서.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했죠.”“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니고…….”그러고 보니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시네.“저한테 말 놓으셔도 돼요.”“그래도 돼요?”“네, 편하신 대로.”“그럼…… 편하게 말할게.”존댓말이 사라지자 목소리가 조금 더 부드럽게 들리는 건 내 착각일까.어쨌든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동아리는 정했어?”“네.”“아 벌써? 아쉽다. 사실 너한테 학생회 들어올 생각 없냐고 물어보려고 했거든.”……학생회?전혀 생각도 안 해본 활동이었다.“관심 있으면 한번 권해보려고 했는데 늦었네. 너라면 잘할 것 같았는데…….”그렇게 아쉬움을 털어내는 듯보였는데, 그녀는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머뭇거렸다.그리고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혹시… 유리가 뭐 하진 않았지?”정유리?한세희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니, 그녀도 용서를 해주긴 했지만 뭔가 불안함을 느낀 걸까.조금 전 학생회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을지 모른다.챙겨주기 위해서.‘뭐 하려고…… 하는 거 같긴 한데.’아직 당한 건 없었다.그리고 지금 내가 그걸 알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되고.“유리가 누구죠?”“아…… 그 저번에 네가 USB… 아니야. 괜히 이상한 걸 물어봤네. 신경 쓰지 마.”*점심시간, 백나현은 친구들과 함께 본관 옆 쉼터에 앉아 있었다.쉼터에는 점심을 먹고 나온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는데, 백나현과 친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다음 주부터 동아리 주간인가?”“개꿀이네.”“그다음에 바로 중간고사긴 해.”“아 그런 현실은 알고 싶지 않았어…….”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친구 한 명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쉼터 한쪽을 가리켰다.“어, 네 남친 왔다.”누가 봐도 백나현을 보고 하는 말이라 백나현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남규?’혼자 쉼터 쪽으로 걸어오더니, 주변을 잠깐 둘러보고는 비어 있는 벤치에 앉는 남자.그냥 혼자 앉아서 쉬려는 듯한 모습이었다.보통 저렇게 덩그러니 혼자 오진 않지만.어쨌든, 옆에서 또 키득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괜스레 남규한테 미안하기도 했다.왜냐하면 어제부터 자신의 친구들이 너무 놀리기도 했고, 눈치를 봤던 것도 알고 있으니까.더군다나 전학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처음 보는 애들이 다짜고짜 그런 식으로 놀려대면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그래서 백나현은 평소처럼 반박하는 대신 시원스레 인정해 버렸다.“그럼 내 남친한테 그만 뭐라 해.”“허어….”“눈치 주지 말라고.”“넵.”오랜만에 친구들의 입을 다물게 한 백나현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본 김에 남규한테 가서 인사라도 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막 걸음을 떼려던 순간, 남규가 앉아 있는 벤치 쪽으로 누군가 먼저 다가갔다.백나현의 걸음이 멈췄고, 그 모습을 본 친구가 말했다.“어, 나현이 남친 뺏김.”그 말에 다른 친구들까지 고개를 돌렸다.“한세희 선배 아니야?”“미친.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한세희라면 이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선배.그 선배가 말을 건 상대는, 장난으로 친구와 엮고 있는 사람.보기 드문 장면에 친구들의 반응은 말릴 새도 없이 요란해졌다.“야, 남친 간수 잘해야겠다.”“아아… 백나현 선수, 이렇게 넋 놓고 뺏기나요. 가서 되찾아 와야죠. 뭐 하나요.”“하긴 세희 언니면 아무리 나현이라도 빡세네.”“어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남친 건드리지 말라던 분인데 어련히 간수 잘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