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후 등산은 삼가합시다
음주 후 등산은 삼가합시다
“후헤헤헤…” 나뭇가지가 팔을 스쳤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타고 스민다. 한 손에는 디럽게 큰 술병, 다른 손에는 마른 오징어. 동기와 술을 마신 뒤, 박탈감을 느낀 끝에 또 산을 올랐다. “죄송하지만, 각성자님은 탑에 오르실 수 없습니다.” “왜요! 특성도 있고 다 있는데!” “등반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분은 탑에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빌어먹을 등반시험. 나는 그 시험에 아홉 번이나 떨어졌다. “히히… 상태차앙!!” 시야 한곳에 뜨는 상태창. 이름 : 유미아 능력 : - 특성: [전환] [대마법사의 자질] [자연친화] [흑마법사의 자질] [마방진의 수학자] [언어의 가호] [용안] 능력이 없다. 각성했다. 마나를 볼 수 있다. 자연과 친해질 수 있다. 뭐 이상한 특성들도 있었다. 협회도 좋은 특성 같다고 했다. 근데 능력이 없다. 능력이 없으면 마나를 못 쓴다. 적어도 전 세계에서 보고된 바로는 그랬다. 등반시험은 마나를 못 쓰면 통과 못 한댄다. 근데 탑을 못 들어가면 능력을 얻을 루트도 거의 없다. 헌터는 탑을 공략하면서 성장하는 직업이다. 탑을 공략하며 나온 보상으로 능력을 강화하고 스테이터스를 올린다. 리스크를 부담할수록. 더 어려운 난이도를 공략할수록. 더 잘 공략할수록 보상이 좋아진다. 이렇게 보면 공평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함정이 있다. 각성 시에 받는 특성과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난 능력이 없다. 일명 [액티브 스킬]. 마나를 써서 발동하는 능동적 행위. “아니… 왜 특성은 이렇게 잘 떴으면서 능력 하나 없냐고오…” 다른 사람들은 얼음창 같은 것도 막 날리고 그러던데… 나는 마나도 있는데에… “음주 뒤 등산은 위험하다지만 나는 괜찮은데에…” 특성 [자연친화]. 야생동물에게 습격받지 않는다. 오히려 날 지켜준다. 이 특성을 얻은 뒤로 나는 좋아하던 등산을 더욱 맘껏 가게 되었다. 이것만큼은 나만의 특권이다! 아무도 뺏어갈 수 없어!! “푸헤…” 나는 나발을 불었던 병에 숨을 토해냈다. 특성 때문에 술에 매우 약할 것 같은 외모가 됐지만, 난 술에 매우 강했다. 방금도 동기였던 A급을 술로 조사버리고 오는 길이었다. 그 자식, 같이 먹기 시작할 땐 날 걱정하더니 지 혼자 꼴아서 집에 가버렸다. “바보같은 기지배… 내가 이겼다…!” 이것도 특성 덕이려나? 알콜을 분해하는 능력이 있을지도. 뭐, 다른 특성들은 인생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됐지만. 나는 퍼져 있는 마나들을 보았다. 흐름을 이루는 마나들. [대마법사의 자질] 이 특성 탓이다. 이 특성 덕분에 공기중을 흐르는 마나가 똑똑히 보인다. “…예쁘네.” 하지만, 능력이 없다면 이걸 쓸 수가 없다. “쓸모는 없지만, 이쁘니까 됐어.” 아, 그리고 또 하나. 각성과 동시에 외모가 변했다. 잘생겨졌다는 사람들도 있어서, 꽤나 기대했다. 확실히 외모 스탯이 가파른 상승곡선, 아니, 거의 직선 수준의 절벽을 그리기는 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백이면 백 돌아볼 정도로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가 되기는 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남자였던 내가 이뻐졌다는 거겠지. 그러니까 뭔 말이냐면, 여자가 됐다. ‘처음엔 진짜 뭔가 싶엎지.‘ 머리는 하얗게 물들고 기장은 길어졌다. 키는 작아졌고 몸에 익숙지 않은 말랑함이 생겼다. 눈은 동그랗게 변했고 팔다리는 가늘어졌다. 눈동자는 투명한 보석 같았고 피부는 새하얬다. 각성 후 요 1년간,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했다. 특히 탑을 오르기 위해 훈련소에 들어가서 갑자기 여자들이랑 생활하라니, 참 고됐다.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살고 있긴 하지만, 탑을 못 올라간다니...! ‘크흑.‘ “저! 푸른 하늘 위에!” “구름같은 집을 짓고!” 나는 고성방가를 시전했다. 어차피 밤의 산이다. 항의할 인간도 이미 산을 내려가서 없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털을 쓰다듬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어디, 쓰다듬을 털 없나아… [용안] 이라고 쓰고 망원경 원툴이라고 부르는 능력이 빛을 발했다. 시력이 몽골인 뺨치게 좋아지는 능력. 수치로 치면 10은 넘으려나. 한땀한땀 모은 눈 수술비가 각성과 함께 별 의미가 없어졌다는 슬픈 사실은 덮어두도록 하자. “어, 고미다.” 성은 고, 이름은 미. 내가 지었다. 나는 녀석에게 접근했다. —크워어! “고미야아아아아!!” “크, 크웡!?” 가까이 다가간 내가 양팔을 벌리고 뛰어가니, 기겁한 녀석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맨날 내가 술 냄새 풍기면서 껴안고 자니까 저런 것이다. 물론 날 공격하지 않고 피한다는 점에서 평범한 상황과는 달랐다. 하지만 난 녀석에게 괘씸한 감정을 느꼈다. 이 자식… 감히 내 앞에서 도망을 쳐? “이 자식이!!!” 술 냄새 난다고 날 못 알아봐! 내가 고기도 잡아다 주고! 어! 남은 뼈 붙은 고기도 주고 했는데! 나는 다른 것도 잊고 녀석을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 따위가 전속력으로 도망치는 곰탱이를 따라잡을 수 있을 리 만무. 나는 그냥 길만 잃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헤엑, 헤엑… 포기…”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이거 내려가기도 글러서, 날이 밝을 때까지는 이곳에서 자야 할 듯싶었다. “잘 곳이나 찾아봐야지…응?” 상당히 넓은 공간이 나왔다. 마치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터 같은 작은 평지. 중간의 큰 오동나무가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중에 떠다니는 반딧불이들. “호옹이…” 내가 이런 스팟을 모르다니. 그래도 잘 곳을 확보해야 한다는 시름은 덜었다. 아무 곳에서나 자면 가끔 고미가 입 돌아간다고 앞발로 때려서 아프단 말이지. 나는 오동나무의 옹이구멍을 자세히 살폈다. 사람 하나 들어갈 구멍이 있었다. 근데 좀 이상했다. “마나가 왜 저래?” 마나가 마치 소용돌이치듯 꼬여 있었다. 물론 마나가 충만한 환경은 내게 있어 자기 편하기는 했다. 근데 이건 너무 꼬이지 않았나? S급 게이트여도 이렇게 꼬여 있는 건 못 봤는데. 물론 내가 S급 게이트를 들어가본 건 아니고, 그냥 먼발치에서 찔끔 본 거지만. 흐음. “비켜봐 해볼게 있어.” 나는 어느새 발치에 다가온 다람쥐를 옆으로 밀어 치웠다. “찌익.” 기분 좋게 몸을 부비려다 봉변을 당했다. 불만스럽게 찍찍거렸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신발을 벗었다. 이런 곳에는 발이라도 담가봐야 하는 법. 뭐 신기한 능력이라도 주지 않을까? “히에에에에엑!!” 빨려들어간 건 순식간이었다. *** 본능적으로 감겼던 눈을 떴다. 축축하고 아늑한 냄새. 시원하게 끼쳐오는 공기. 이곳은 동굴이었다. 용안으로 인해 야간의 시야는 확보되었다. “으응…” 뭔가 다쳤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출구는… 여기….’ 뒤엔 마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마 이곳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쾌적하고 평안한 수면. 알딸딸한 정신을 맑게 해줄, 수면이 필요했다. 나는 정신을 붙잡고 앞으로 걸었다. 걷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 입구로 나왔다. “침대…흐엑. 시바…차거.” 나는 널찍한 바위에 기어올라가 잠들었다. ***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 해가 뜬 뒤였다. “으으...머리야.” 여름장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이미 중천이건만 파리떼만 훅훅... 아, 이게 아니지. 애초에 중천도 아니고, 그냥 새벽 이슬을 맞고 차가워서 깬 거였다. 아침 해는 뜰락말락하고 솔직히 좀 춥다. “우으...그래서 여기가 어디야.” 이왕 이런 곳까지 왔으니 한번 활동영역을 넓히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이곳은 공기와 마력이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숨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서울의 쓰레기 공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무로 빽빽한 산도 이곳에는 비하지 못했다. 나는 허리를 쭉 폈다. 어쩌면 이곳은 숨겨진 게이트일지도 몰랐다. 마법계 특성을 가진 주제에 전투능력은 육탄전뿐이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훈련한 게 어디 가진 않겠지. “으음… 이제 집에 가고 싶은데…” 나중에 다시 올까?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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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도 아프고, 뭣보다 배고파. 속에 뭘 좀 넣어줘야 살것다. 머릿고기에 정구지까지 때려넣은 순댓국 함 때려야지. 내가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가 날 불렀다. “멈춰라! 신입생, 여긴 네가 들어올 곳이 아니다!“ [[언어의 가호] 가 발동합니다!] “예?” 내 특성에 따른 메시지다. 외국어란 뜻이다. 처음 보는 언어에 한해 발동하는 특성. 훈련소에서 들었다. 게이트에서, 누군가 모르는 언어. 그것도 지구에 없는 언어를 쓴다면. 그럼 그건 게이트 안의 무언가일 확률이 높다고.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튀자!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중년의 누군가가 보였다. 큰 키에 검은 제복, 남색 짧은 머리와 신경질적인 인상의 눈. “멈추라고 하지 않았나!“ “당신 같으면 멈추겠냐에요!” 그는 한숨을 쉬며 허리춤에서 나무막대 같은 걸 꺼내들었다. 나와 정확히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바인드.” 마나의 그물이 형성되어 나를 덮치려 한다. 나는 그의 나무막대에 마나가 모이는 것을 보았다. “…마법지팡이?” 마법계 헌터들이 가끔 들고다니는, 능력을 올려주는 아이템. 하지만 난 저곳에 훨씬 위협을 느꼈다. 훈련소에서 시연을 봤을 때와는 달랐다. 마나가 마치 줄을 맞추듯 정렬해 있었다. ‘숙련된 각성자일수록, 헌터일수록, 마나를 다루는 실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움직임이 정갈하고 간단하다는 건. 흐름도 방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호잇!” 나는 공기중의 마력입자를 움직여 마나의 중심에 섞었다. 파직, 파지직! 소릴 내며 입자들이 서로 반발했다. 날 덮치려던 그물이 사라져 버렸다. 그가 한눈을 치켜떴다. “제법 재능 있는 녀석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