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와 천재는 취향 차이
문제아와 천재는 취향 차이
“흠. 너무 얕봤나.” 그는 안경을 고쳐썼다. “그럭저럭 재능은 있는 모양이다만, 그 정도로 나를 따돌릴 수는...” “갸아아아악! 괴물이다!!!” 난 괴성을 지르며 도망쳤다. 당황한 중년인이 덩달아 소리쳤다. “난 괴물이 아니다!” “여자아이 덮치는 괴물 아닌 사람이다!!!” “더 이상해졌잖나!!” “날 속박해서 뭘 할 생각이야!! 이 괴물!!”“아무 생각 없다!!”“아무 생각 없는 괴물이다!! 갸아아악!!!”“...말이 안 통하는군.”나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차라리 괴물이 낫겠다! 여자가 된 것도 억울한데 이런저런 짓을 당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아까 보았던 바에 따르면 그물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바인드.”그는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며 말했다. 같은 수법이라고 생각한 나는 또다시 마나가 모이는 중심을 찾으려고 했다. ‘...없잖아!’ 훨씬 정갈하고, 훨씬 빨랐지만, 마나가 모이는 중심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전부 뒤죽박죽 꼬여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건 못 막는다. 그럼에도 나는 마나를 보냈지만, 전부 튕겨져나갔다. 하늘에 펼쳐진 그물이 지상으로 낙하해 날 덮쳤다. “으아아아악! 이상한 짓 당해버려어어엇!”저벅, 그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재능은 뛰어나군.” 낮고 굵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하지만, 재능만으로는 이 카르나로프를 이길 수 없음을 알아라.”발치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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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할 수가 없다. 그물은 내 몸을 확실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내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속박 말고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경우의 수도... “인 코드, 슬립.”“능력이... 몇 개여...”게이트에서 처음 만나는 잡몹인 줄 알았는데... 존나 세네... 그 생각을 끝으로 내 의식은 끊겼다. *** 회의실. 현상학, 포션학, 생물학, 의학, 점성학 등등.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교수들이 그 자리에 모였다. 가장 상석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교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르나로프. 아까 그 외부인 소녀를 구속한 본인이다. 그는 그녀가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교장에게 전해들었다. “…학생인명부에 없다고요.” “그래. 정확히는 아주 맨 밑에, 방금 적혔지.” 입학식이 이미 끝나고 학기가 막 시작한 게 지금의 시점이다. 레인하트 마법학교의 학생인명부. 재능 있는 적령의 학생이라면 무조건 학생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그들은 일단 학생을 전부 받는다. 그리고 맨 아래 파란 줄을 그어 기수를 표시하고는 했다. 굵게 그인 파란 줄 아래, [유미아]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카르나로프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아닌 편입생. “우린 이제 그 아이를 받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네.” 레인하트 마법학교의 의무. 아이가 재능이 있다면, 학교에 받아 배울 수 있게 하라.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것이 원칙이었다. 카르나로프도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일단 반대했다. “…절대 안 됩니다! 마법사의 자질도 제대로 안 된 녀석이 입학이라니!” “방금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자네의 마법을 흩어냈다고.” “그건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탐색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네라면 필시 제대로 마법을 사용하였을 것이야. 그걸 아무 이론 없이 마나조작만으로 흩어냈지. 자질이 있다는 뜻이네. 알잖은가.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 정도는.” 카르나로프는 그 녀석이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다. 분명 그의 마법을 해체한 것은 확실한 플러스 요소다. ‘아무리 암호화를 거치지 않은 초단문 영창이라고 해도, 정밀한 마나 컨트롤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기예다.’ 하지만 태도가 문제였다. 말하는 본새 하며, 애초에 마법에 흥미도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녀석이 들어와 봐야 물을 흐릴 뿐. 애초에 재능만 믿고 기초적인 뼈대도 쌓지 않은 녀석일 것이 분명했다. 그가 보아온 건방진 천재들이란 항상 그랬으니까. 이론을 경시하고 재능과 감각을 중시한다. 연습을 게을리하고 학문을 갈고닦지 않는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그에게 추월당했다. “문제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제국민이 아닌 외국인은요.” “뭐, 악동 하나둘 정도는 있어도 상관없지. 재미있지 않겠나?” 교장, 패트스테먼은 다른 교수들을 둘러보았다. “뭐, 괜찮지 않을까요? 별난 아이는 환영이에요. 그럴수록 학업에 흥미를 보이기도 하니까요.” 포션학 교수인 이사벨이 찬성표를 행사했다. “저는 반댑니다.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다고 해도 일단 받으면 우리 학생입니다. 책임질 거리를 더 늘리는 것은…” 의학 교수, 셀린은 반대표를 던졌다. 환자가 늘어나면 일이 늘어난다는 이유였다. 다른 교수들도 제각기 표를 던졌고, 결과는 반반. 다만 그들도 그렇게 진지하지는 않았다. 학생 하나 늘어난다고 해도 그들의 일은 별로 늘지 않았으니까. “뭐, 일단 기숙사시험에 던져넣었으니 그걸 보고 생각하자고. 카르나로프. 자네도 이제 감독관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 “뭐 볼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 나는 드디어 이곳의 목적을 알아냈다. 이곳은 정말 놀랍게도 레인하트 마법학교라는 곳이었다…! 그리고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마법학교에서는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뭔 개소리야.’ 근데 대충 봐서는 사실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내 식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탑에서 비슷한 게 있다고 들었지.’ 탑에는 계층마다 테마가 있다. 단순히 전투가 아니라 퀘스트를 해결해야 하는 장르의 계층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거기서 희귀한 특성이나 능력을 얻기도 한댔다. ‘나도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여기가 그런 ‘테마’의 게이트라면, 기연도 그런 식으로 주어질 것이다. ‘…파악했다. 이 게이트의 핵심!’ 이곳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면, 입학에 도움이 되겠지. 마법이라는 기연을 얻어서 탈출한다. 그것이 내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 기숙사시험. 성적에 따라 기숙사의 위치와 방이 결정되는 시험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입학 여부가 결정될 수도 있다는 소릴 들었지. ‘하다 안 되면 탈주하지 뭐.’ 시험장에 향하면서 물어봤다. 의외로 내가 온 숲의 위치를 대답해 주더라고. 사실 이 세계는 그렇게 가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기시험장] 나는 로브를 쓴 아이들의 줄들 중 하나에 가서 섰다. 검은 방에 아이들이 들어갔다,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왔다. 그 줄이 열몇 줄 정도 있었다. “어떻게 하는 거야?” 나는 앞의 아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뭐야, 그것도 모르고 온 거야?” “좀 알려줘 봐.” 눈앞의 아이는 한숨을 쉬고는 대충 설명해 주었다. “그냥 흘러오는 마나를 반대 방향으로 흘려보내거나, 여러 방향으로 퍼트리면 돼.” “그것만이야?” “그것만이라니! 마나를 움직이는 방법을 아는 게 마법의 시작인데!” “그럼 뭘 할 수 있는데?” “으음… 일단 마법을 쓸 수 있고… 엄청 숙련되면 완성되기 전의 마법을 방해해 무너뜨릴 수도 있대! …아! 너 때문에 집중이 깨졌잖아! 망치면 네 탓이야!” 아이는 안경을 고쳐쓰고 검은 방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아까 그거랑 비슷하게 하면 되려나?’ 일단 실기는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 실기를 어떻게든 치렀다. 아까의 감각을 기억하며, 지시에 따라 마나를 퍼트렸다. 이 게이트인지 뭔지의 밖에서 하던 것과 비슷한 짓거리여서 편했다. 필기시험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실기시험도 제대로 봤는지는 모르겠다. 시험관은 아까 봤던 더럽게 깐깐할 것 같은 교수였다. 졸음이 밀려왔다. 이 몸이 된 뒤로 하루 8시간은 자지 않으면 졸렸다. 아마 많이 자는 습관이 밴 탓이겠지. 참을 수는 있지만, 솔직히 참을 필요가 있나? 걍 자면 되지. 솔직히 하루에 여섯 시간씩 자던 이전이 이상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사람이 여섯 시간만 자고 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눈치 보인단 말이지...’ 개같이 눈치가 보인다. 지금 대가리 박고 자면 다른 학생들한테도 문제아로 찍힐 것 같았다. 실기도 조진 것 같고... 너무 못 보면 패널티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든 풀 수 있는 문제가 있는지 확인했는데... [기초 수학(배점 30점) - 레인하트 교수진 일동] ‘뭐야, 이거. 수학이잖아?‘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과였다. 물론 공식만 달달 외운 패션이과이긴 했으나, 일단 이과였다. 중학교 수학과 매우 기초적인 고등수학. 이 정도는 껌이었다. 증명 문제는 나오지 않았기에 나는 마음껏 공식날먹을 시작했다. 쉬운 구구단과 산수는 그냥 푼다. 예시문제가 제시되어 있었기에 살짝 다른 규칙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형에 대한 문제는 피타고라스의 힘을 빌렸다. 어려운 미적분 문제는 미분공식과 로피탈의 정리로 날먹한다. 나는 시험 시작 10분도 되지 않아 모든 기초수학 문제를 전부 풀어냈다. 문제가 술술 풀리니 졸음도 달아났다! 이 페이스라면 필기 수석도 무리는 아니다! 생각해보니 실기도 좀 잘 본 거 같기도 했다! 여기가 게이트든 아니든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나는 입꼬리를 귀에 걸고 시험지를 넘겼다. 그리고 다음 장. “그엑.” [마법 수학 - 이반 G. 카르나로프(배점 70점)] 널린 마법진들. 오지게 복잡한 수식들. 생전 처음 보는 문자들. 졸음이...몰려온다…. 난 앞의 교수, 카르나로프를 보았다. ‘으헤…’ 이 정도면…되겠지…. 그리고 항복의 미소를 날린 후 그대로 책상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 시험관으로 들어간 카르나로프는, 시험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미아에게 내렸던 평가 중 몇 개를 철회하고야 말았다. ‘뼈대가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 앞의 수식 문제는 숫자만 바뀌고 항상 비슷한 포맷으로 출제되는 문제였다. 그래서 그가 내기보다는 신임교원에게 맡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다들 산수와 도형학의 중요성을 간과하며 공부해오지 않기에, 제대로 푸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예시문제를 줬음에도. 그리고 저 정도로 빠르게 풀어내는 학생은 더더욱 적었다. 풀이도 매우 정갈했고, 다른 학생과 비교해도 몇 배 이상 빠른 속도였다. 심지어 그가 발견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풀어내는 경우도 보였다. 그녀가 문제 하나를 풀 때마다, 그는 인정해야만 했다. 눈앞의 이 녀석은 천재라고. 그리고 내심 기대를 품었다. 그녀라면, 그가 낸 마법식 문제들도 전부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나라도 풀어낼 수 있다면. 아니, 접근 방식이라도 상상해낼 수 있다면 합격점이었다. 그대로 다른 아이들을 제치고 수석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그녀에 대해 품었던 모든 선입견을 철회할 생각이었다. 그뿐이랴. 저 정도의 계산과 사고능력을 가진 인간을 연구생으로 받는다면? 그렇게 된다면 가문의 비원에 몇 걸음은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음은 분명했다. ‘자. 해내 보아라. 이 카르나로프의 난제를 뚫고 수석을 거머쥐…’ 그런데, 유미아의 표정이 별안간 이상해졌다. 그리고 기행을 시작했다. 문제지를 돌려도 보고, 펼쳐도 보고, 접어도 보고. ‘…뭐지?’ 카르나로프는 당황했지만 침착을 유지했다. 금세 유미아가 앞장을 마지막으로 보고, 그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대가리를 책상에 처박았다. 순간 그는 상황이 이해되지가 않았다. 몇 가지 조치를 취해보고는 그냥 처자는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을 때. 카르나로프의 얼굴에 핏줄이 울긋불긋 솟아났다. “크허허허허… 그렇단 말이지.” 그는 그 미소의 뜻을 이해해버렸다. 그녀가 쓴 공식 몇 개는 카르나로프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선언한 것이다. 더는 보여주지 않겠다. 마법 문제를 제대로 푸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렇기에 접근이나 방식이 맞거나 참신하기만 해도 그는 점수를 주는 편이었다. 한 문제만 해결해도 필기 수석. 아니, 전체 수석도 노려볼 수 있었다. 레인하트는 제국 최고의 명문. 전체 수석이 얼마나의 영예를 갖는지는 짐작조차 불가하다. 하지만 그걸 눈앞에서 걷어차고 비웃음까지 날렸다. 카르나로프는 조용히 웃음을 터트렸다. “각오해라. 나의 수업료는 조금 비쌀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