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했기 때문이다
탈주했기 때문이다
학생지도부는 난리가 났다. 학교에서 탈주하려던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애초에 혈기왕성한 학생들을 학교에 가둬두면, 탈주자가 1년에 몇 명은 꼭 나오는 법이다. 탈주는 보통 탈주 기간에 따라 경징계에서 중징계. 다만 대부분 시도 끝에 잡혀서, 징계까지 먹는 학생은 잘 없었다. 하지만 저런 건 겪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경비대들은 전율했다. “저 자식 잡아!!” “저 새끼 그냥 원숭이야! 나무까지 탄다고! 저걸 어떻게 잡아!” “헤엑, 헤엑. 이 만년 체력 부족들이!” “넌 안 부족하냐!!” “뭐 암살술이라도 배웠냐!?” 레인하트의 경비라고 해도 전부 3랭크 이상의 마법사. 1랭크의 기초공격마법을 갓 익힌 학생에게 따돌려질 리 없다… 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저런 미친 녀석을 만나기 전까진. *** 저 자식들은 백년이 지나도 날 따라잡지 못한다. 내가 훈련소에서 배운 게 무엇이냐! 지형을 활용하는 방법, 도주술, 야간 전투술, 각개격파. 적어도 실전에서는 내가 더 강하다! [용안]의 또다른 능력. 야간투시와 일반인보다 높은 동체시력이다. 이것으로 우위를 점한다. 그리고 이곳은 숲. [자연친화]로 만나는 동물들에게 경비원을 방해하라고 부탁해놓는다. 그럼 또 추격은 지연된다. 나는 경비원의 저지선을 발견하고는 위로 출력을 최대한 조절한 공격마법을 발사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훌쩍 나무에 뛰어올랐다. “뭐…뭐야!?” 그대로 경비원의 제2저지선을 돌파. “바인드!” 그들은 나를 묶으려고 했지만…. 잡히지 않는다.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으로 자연에 있는 마나를 운용한다. “그 자식, 이미 신입생 수준이 아냐! 술식을 암호화해라!! 재밍당한다!” “인 코드, 바인드!” “이미 늦었어!“ 카르나로프의 건으로 이미 술식의 파훼는 감을 잡았다. 그리고, [마방진의 수학자]. 발동과정을 한번 보니, 한번 꼬는 정도로는 마나의 중심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들은 카르나로프가 아니다! 전부 돌파한 다음 그 동굴을 찾았다. 그리고 마나가 모이는 곳. 그곳에 몸을 던졌다! “끼요오오오옷!!” *** “크워어어...“ “키야! 여기도 오랜만이구만.” 나는 고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옹이구멍을 나가서 좀 걷자마자 발견했다. 술을 안 처먹었을 땐 이 녀석도 알아서 몸을 부빈다. “곰곰.” “산 중턱까지만 데려다주라아.” “곰.” “뭐라고? 올 때 뼈 붙은 고기?” “곰.” 고미는 사람을 습격하지 않는다. 왜냐면 사람을 습격하면 사냥당해 뒈진다는 걸 내가 알려줬거든. 대신 물고기들을 사냥해 먹거나, 나한테 가끔 고기를 부탁하는 정도였다. “요즘 그게 얼마나 비싼지 아냐?” 이 자식, 입맛만 고급이 돼서 냉동은 입에도 안 댄다. “크웡.” “택시비가 더 비싸다고? 시발 곰이 택시를 어떻게 알아?”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아니면 내 특성의 영향을 받아 지능도 성장하는 건가? 모를 일이다. 고미를 처음 봤을 때 이 자식은 엄청나게 굶주렸던 상태였는데, 그럼에도 날 공격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산 중턱까지 고미의 등에 타서 이동했다. “항상 고맙다.” “곰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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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짐승새끼야.” 셈은 정확한 자식이다. 귀여우니까 봐준다. 나는 대충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사흘 이상 탈주는 중징계니까…” 이틀만에 끝내면 되겠네! “근데 오늘 수업 뭐였더라?” …별 상관 없겠지 뭐. *** “…그래서, 등반시험을 보시겠다고요?” “네!” “…지금 몇 번째인지는 알고 계시는 거죠?” “아니, 알고 있다니까요? 저 처음 보시나? 모를 리가 없을 텐데에. 애초에 당신 나 알잖아요!” 접수원, 우수현은 난감한 표정으로 눈앞의 인간을 쳐다보았다. 춘천의 헌터 시험장에 있다면 이 인간을 모를 수가 없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아 보이지만, 이 소녀를 지나치는 모두가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춘천 헌터훈련소 13기 수석졸업, 그리고 탑 등반시험 10수생. 춘천에서 헌터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인간. “아, 빨리 해 줘요! 급하다고오!” 그게 이 아름다운 소녀의 정체였다. 하지만 그 속은 그냥 미친 또라이 자식이기도 했다. 우수현은 한숨을 쉰 다음 말했다. “이번에도 칼 가져와서 다 파괴한 다음에 능력 썼다고 우기면 안 됩니다?” 그녀는 자기 키보다 훨씬 큰 장검을 들고 와서 10초도 안 되어 표적의 대가리를 전부 부순 전적이 있다. 솔직히 그것만이라면 그냥 실력이 뛰어나구나 하겠지만… 합격 판정을 내달라고 이 건물에서 노숙하며 일주일 동안 땡깡을 부렸던 건 전설로 남아있다. 물론 그도 이 인간에게 탑을 오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지 모드에서 죽을 인간은 아니다. ‘그냥 제도가 이상한 것뿐이지.’ 마나도 실력도 없으면서 탑의 보너스 특전으로 인생역전을 노리고 탑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법. 실력이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못 올라가는 사람들이 생긴 건 그 법의 맹점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알겠다니까요. 참.” 그러고 보니 그녀의 복장이 조금 달랐다. 후드티에 통 넓은 바지까지는 비슷했다. 하지만 바지춤에는 길다란 막대기를 찔러넣고 있었다. 그리고 옷이 좀 먼지랑 털이 많이 묻어 있었다. “자요.” “받았습니다.” 테스트비는 100만원. 신용카드로 지불받은 그는 사인하려는 손목을 콱 잡았다. “왜 그래요?” “이거 당신 거 아니잖아.” “저 성인 아닌뎅? 제 신용카드 없어요. 엄마 꺼에요.” “성인 맞잖아요. 전에 깡소주 병나발 불면서 나가는 거 봤어요.” 되도 않는 구라를 치고 있다. 유미아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세라 꺼에요. 내 껀 내 꺼. 걔 건 내 꺼. 내가 술내기에서 이기고 뺏어왔거든.” “…이세라 헌터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고 보니 어딜 갔던 겁니까? 엄청 찾으시던데요.” 이세라는 한국에 대기업 회장 저리가라할 정도로 드문, A급 헌터였다. 그리고 유미아의 동기기도 했다. 대한민국에 그녀밖에 없을 것이다. 이세라 카드를 몰래 쓰고도 뒤탈이 없을 수 있는 건. “들켜서 오면 귀찮으니까 빨리 긁어요.” “뒷감당은 제가 안 합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고.” “이번엔 무슨 능력입니까? 이번에도 지어낸 거면 그냥 가세요.” 통상적으로 타인의 상태창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무슨 능력을 쓰는지 확인해야 했다. “마법. 기초마법.” “…마법계라고요? 당신이?” “뭐 문제 있어요?” “…뭐 일단 보죠.” 어차피 마나가 감지되지 않으면 탈락이었다. “세팅에 시간 좀 걸리니 대기해주세요.” “알겠습니다…으음…여기 캡슐커피는 없어요? 들어갑니다~.” 유미아는 아주 자연스럽게 2층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우수현이 제지하기도 전에. 2층에서 비명이 울려퍼졌다. “야!! 여긴 왜 들어와!” “이야, 여긴 캡슐이 종류별로 다 있네. 부장님, 좀 가져갑니다?” “나가라고!” “에이, 정없다. 한번 애들 데리고 와요? 산에 멧돼지들 많던데. 여기 한번 싹 밀고 도망가면 정리하는 데 고생 좀 하겠네.” “…크윽! 야! 우수현! 얘가 여길 왜 들어오는 거야! 관리 안해!!” “죄, 죄송합니다!” “야!! 그거 일본에서 사와서 내가 아껴둔 거야!! 마누라가 살찐다고 뭐라 해서 여기 둔 건데…” 더럽게 비싼 간식이 털린 부장이 울부짖었다. “이거 맛있네. 좀더 사 두지.” “빨리 테스트 준비하고 내쫓아버려!! 뭔 사라진 3일 동안 빵 쪼가리만 처먹었나!” “오, 어떻게 아셨어요? 감 좋으시다.” “준비! 준비 다 됐습니다!” *** 우수현은 시험장 안에서 몸을 풀고 있는 유미아를 보았다. 마리오네트. 마나로 움직이고 마나로 수복되는 자동인형. 이 3체를 180초 안에 전부 파괴할 수 있으면 통과. 탑의 난이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탑의 몬스터들은 진형을 이룬다. 그래서 파괴해야 하는 인형도 3개. 원거리 공격을 담당하는 인형 한 개. 빠르게 움직이며 근접 공격을 담당하는 인형 한 개. 방패를 들고 탱킹을 담당하는 인형 한 개. 3체가 동시에 움직이며, 파괴방법은 간단하다. 헤드샷을 맞춰 일격파괴. 혹은 몸 전체를 파괴. 다만 부분파괴 정도로는 딱히 수복하지 않아도 멀쩡히 작동한다. 그렇다고 머리를 맞추기는 상당히 어렵다. ‘저 자식들, 머리는 확실히 지킨단 말이지…’ 운동선수를 웃도는 반응과 속도를 보여주는 마리오네트의 머리를 맞추는 건 하늘에서 별 따기. 육탄전으로는 머리를 파괴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D급 헌터인 우수현도 세 번 만에 겨우 3분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탑에서 겨우 살아돌아왔지….’ 하지만 유미아는 긴장 하나 없었다. 그저 쭉쭉 체조를 하며 몸을 풀 뿐이었다. [준비하세요.] 그 소리가 나오자마자, 유미아의 지팡이에 마력이 맺혔다. 그리고 일렬로 선 마리오네트가 움직이기도 전에. [시작] 유미아의 왼쪽 동공이 일자로 찢어졌다. “캐스팅, 불렛.” —퍼퍼펑. [결과: 0.1s, 한국 최고기록 경신!!!] 팡파레 소리가 울려퍼졌다. 우수현은 입을 쩍 벌렸다. 깔끔하게 머리만을 뚫고 지나간 마력탄. 그도 일단 헌터였다. 이게 순수히 그녀의 능력이란 건 조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때, 시험장 대기실의 문이 확 젖혀졌다. 나타난 건 한국의 A급 헌터 이세라였다. 우수현은 정신이 더 아득해졌다. “야! 도대체 또 뭔 짓거리를 하고 다닌…??” 그리고 뒤따라온 이세라도 입을 쩍 벌렸다. 유미아만이 태연히 허리를 쭉 피며 말했다. “내가 된다 했죠?” *** 마리오네트는 엄밀히 말하면 일렬이 아니었다. 포지션에 따라 머리 모양도 크기도 전부 달랐고, 자세도 달랐다. 그렇기에 한 번에 꿰뚫으려면 탄도를 전부 수정해줘야 했는데…. ‘뭐 하는 자식이야?’ S급 헌터가 와도 이걸 할 수 있을까? “이야, 한번 해 봤는데 이게 되네. 그래도 좀 빗나갔다. 대가리 안 컸으면 못 맞힐 뻔했네.” 저딴 소릴 지껄이고 있다. 세 번 연속 헤드샷. 그는 경이로움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꼈다. 물론 머리에 난 세 개의 구멍 중 두 개는 가장자리로 치우치긴 했다. 하지만… 저걸 맞히는 것부터가 이미 이상한 것 아닌가? “이, 이게…” “아, 세라 왔어?” “이게 다…뭐야? 설마 정말 방법을 찾은 거야?” “뭐긴 뭐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아… 나 배고파.” 유미아가 이세라에게 안겨들면서 말했다. 이세라는 유미아를 쓰다듬으며 우수현을 쳐다보았다. 우수현의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뭐 저리 친해!?’ 저 정도면 아는 친구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자매 정도는 되어 보였다. ‘…나 어떻게 되는 거 아냐?’ 이세라는 고등급 헌터 치고는 온건한 편이라고 많이 듣긴 했다. 유미아 때문에 오며가며 곁눈질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등급은 A급이다. S급을 볼 일이 없는 협회 지부의 말단으로서는 신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언젠가 해낼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일단 빨리 헌터증이나 발급해 줘요.” “아, 네! 넵! 바로 해드리겠습니다!” 우수현은 빠르게 사무실로 달려갔다. “엥! 이거 신청하면 일주일은 걸리는 거 아니에요!? 다른 헌터들은 막 일 안한다면서 욕하던데.” “그, 그게 무슨 소릴까요! 당연히 바빠서 그런 거…” “사무실 들어가니까 다들 한가…읍! 으븝!” 우수현은 팔을 뻗어 유미아의 입을 황급히 막았다. 그리고 이세라의 눈치를 살폈는데, 달리 불편한 기색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유미아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떨 수밖에 없었다. 유미아는 그를 보면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저, 저 분탕종자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꼬우면 당신도 A급이랑 친구하던ㄱ…악!” “야! 그런거 하지 말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애가 철이 없어서…” “아야! 왜 때려! 그리고 나이로 치면 니가 나보다 한참은…그엑.” 이세라는 유미아의 목덜미를 잡았다. 순식간에 유미아가 조용해졌다. 헌터증을 받은 유미아는 이세라에게 잡혀 질질 끌려갔다. “안녕! 또 올게요!”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이 유미아다웠다. ‘니가 고양이냐….’ 우수현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