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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너도 엄마가 하찮게 보이니.

네가 길들인 남자 — novel.naver.com · All chapters

4. 너도 엄마가 하찮게 보이니.

- 선물 받고 싶은 게 뭐지?

사귄 후 첫 번째 맞는 생일, 승준은 설아에게 최고의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 별이요. 저 별은 내가 가지지 않아도 언제나 저기 있잖아요.

하지만 설아는 엉뚱한 말을 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별을 따다 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때우거나, 천문대 정도 데려가고 말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승준은 정말로 그녀에게 별을 따다 주고 싶었다.

승준은 그날로 운석에 대한 정보를 싹 다 알아보았다. 그러다가, 최근 희귀한 다이아몬드가 채굴되어서 비싼 값에 경매시장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아보니 그것은 지구에는 없는 성분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오래전 지구에 충돌한 운석의 일부인 것이었다.

승준은 비싼 값을 주고 다이아몬드를 사들여서 그것을 장인에게 부탁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선물을 받은 설아는 사라졌다. 어이없이 간단한 사직서 하나를 남긴 채.

- 건강 문제로 사직합니다.

사직서를 조각조각 찢어발긴 그는 사자처럼 포효했었다. 그리고 사람을 풀어서 한국을 샅샅이 뒤졌다.

몇몇 곳에서 그녀의 행적이 확인되었다. 조금만 있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순간.

그에게로 소포가 배달되었다.

누런 박스 안에는,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거절당한 진심이었다. 마음을 다했지만 그녀는 끝내 알아주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잊어버리자고 생각했다. 표정이 저도 모르게 굳어지고, 일에만 몰두하게 되면서 몸도 마음도 메말라갔지만 다시는 그녀를 찾지 않았다.

또다시 거절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 진심이 내팽개쳐지는 충격은 한 번으로 충분했기에.

*

[부회장님, 사모님이 찾으십니다.]

전화를 받은 승준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카페 안을 보았다.

설아가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화가 나는 사람이 누군데.’

승준은 다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녀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았다.

승준은 거친 걸음으로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운전석에 탑승한 그는 출발하려다 말고 잠시 시선을 앞으로 했다.

그의 뇌리에 과거의 ‘사모님’의 목소리가 떠올라 왔다.

- 내가 이제부터 네 어머니야.

- 엄마 아니에요, 큰엄마잖아요!

- 아니야. 이제부턴 어머니라고 불러야 해. 안 그러면 종아리를 맞을 거야.

한 회장의 둘째 아들에게서 태어난 승준은, 일곱 살 때 자식이 없는 큰아들에게로 입양되었다.

한 번도 아이를 키워보지 못한 여자,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교육학 박사인 큰어머니는 인간이라는 동물은 이론적으로 개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때까지 승준의 감정에 먼저 공감해주고 자주 안아주었던 친어머니, 아니 이제부터 작은어머니가 된 여자는 그가 울어도 이제 더는 안아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사이에서 느껴야 하는 승준의 감정적인 공허함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단축키를 누르자 바로 전화를 받는 신호음이 왔다.

“어머니.”

효영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니?]

“잠시 외근 중입니다.”

[외근, 어디? 요즘 너 좀 해이해졌더라. 말도 없이 외근 다니고.]

효영은 지금도 승준을 자신이 만들어 낸 아들이라고 믿었다. 낳지는 않았지만 오로지 제힘으로 키워냈다고.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습관으로 굳어진 말이었다. 이쪽에서 이렇게 말해 주어야 효영은 만족을 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렇지 않으면 또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잔소리를 쏟아낼 것이다.

[그래. 행실 똑바로 하고. 부회장 취임했으니 너를 보는 눈이 더 많아졌다. 그러니 괜히 책잡히지 않도록 유의하거라.]

“알겠습니다.”

승준은 대답하고 나서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그런데,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이 얘기를 한다고 해놓고. 너 선 자리 알아봐 놨다.]

서른일곱이 될 때까지, 승준이 전혀 선도 안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늘 번번이 잘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확실한 자리야. 내 제자기도 하고. 믿을 수 있는 자리니까 나가 보거라.]

그 순간, 승준의 머릿속에 거짓말처럼 조금 전에 울던 설아의 모습이 스쳤다.

승준은 웃었다. 갑자기 왜 이래. 어차피 7년 전에 버림받았고, 더는 마음을 둔 것도 아닌데.

“제자라면, 어머니 인맥으로 만드신 자립니까?”

[꼭 그렇다기보다는, 나도 내 제자인 줄 모르다가 내가 재직했던 학교 나왔다고 해서 알았어. 사진 보니까 희미하게 기억은 나더라. 늘 앞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이야.]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확실하겠죠. 장소하고 시간 알려 주십시오.”

[이번 주 토요일, 성한 호텔 2층 엘레강스 두 시다.]

전화를 끊고 난 승준은 먼 곳에 시선을 두었다. 그의 표정이 쓸쓸하게 굳었다.

*

“엄마.”

집에 돌아온 설아는 제 몸에 안겨드는 유민을 잠시 안고 있었다.

- 그래서 어디 갖다 버려도 안 입는 옷을 주워다 입혔고, 칠천 원 싸구려 조각 케이크가 비싼 케이크라고 말할 정도로 먹는 것도 형편없이 챙겼어?

마주 내쏘아 주기는 했지만, 그의 말은 아직도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어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돈이 없으니 좋은 옷 하나 입히는 것도 힘이 들었다. 가장 저렴하고도 가성비가 좋은 데가 동네 장터였다.

물론 그곳에서 좋은 메이커 옷은 사지 못했지만, 유민이 하루 종일 놀아도 찢어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옷을 사 입히기는 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유민이는 거지꼴로 보였겠지.

“유민아.”

포옹을 푼 설아는 유민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저씨는 어디서 만났어?”

유민의 눈이 커졌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두 눈만 요란하게 깜박거렸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돼.”

설아가 부드럽게 다시 물었다.

유민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유민아.”

설아는 유민의 양어깨를 잡았다.

“엄마, 죄송해요.”

금세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른 유민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엄마가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신영이를 내가 때렸어. 죄송해요.”

신영을 때렸다는 말에 설아의 두 눈이 커졌다.

유민은 이제껏 맞고 오면 왔지, 누구를 때린 적은 없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설아가 늘 단단히 교육을 시키기도 했고.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진짜 신영이를 때렸어? 왜?”

그러나 유민은 더 말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설아는 가슴 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꾹 참아 눌렀다. 그녀는 유민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때린 건 잘못이지만, 엄마는 그보다도 왜 그랬는지가 궁금해. 그러니까 말해줘, 응?”

그러나 유민은 고개를 저었다.

“유민아.”

“죄송해요, 엄마.”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울고 있는 아이를 설아 역시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말하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괜찮다니까. 엄마는 다 이해해.”

설아는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느끼며 유민을 다그쳤다. 그러나 유민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유민아.”

“엄마, 엄마, 죄송해요.”

설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니까. 아이에게 비싼 옷도, 그리고 고급스러운 음식도 사주지 못하니까.

하지만 아이는 그 기회마저 그녀에게서 박탈하고 있었다.

내가 엄마 구실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것마저.

“너, 엄마 못 믿어?”

설아의 목소리가 커졌다.

너도 엄마가 하찮게 보이니. 옷도 거지 같은 것만 사주고, 형편없이 키운다고 생각하는 거니.

하지 않은 말들이 설아의 마음속을 휘저었다.

유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두 눈에서 속절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설아의 가슴 속에 참을 수 없는 참담함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완벽하게 무너졌다. 그 남자 앞에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굴었지만 이미 그의 말에 내가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나는 엄마 자격도 없다.

형편없는 사람은 한승준이 아니었다. 설아 자신이었다.

“미안해.”

설아는 유민의 어깨를 놓고 몸을 수그렸다. 그 품을 유민이 파고들었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엄마는 위대하다고. 한 아이를 품고 키워낸 엄마는 장하다고. 엄마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고, 모든 것을 해낼 수 있고, 세상 무엇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설아는 한 번도 위대했던 적이 없었다. 아이를 품고 도망쳤을 때부터 그녀는 늘 외로움과 부족함과 싸워야 했다.

보육원에서 자라 의지할 곳 없었던 인생에 한승준이라는, 처음으로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생겼다. 다정하고 따뜻한 성격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든든한 느낌이 드는 품이었다.

그렇게 천년만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오늘을 살면 그만이었다.

보육원에서 언니들에게 얻어맞고, 선생님들에게 부당하게 혼이 나고, 그러면서 버텨온 인생에 잠시라도 빛이 들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한눈에 봐도 값비싸 보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했다.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자신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비싼 목걸이로 표현이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기대감이 실망으로 변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 이후.

‘그만하자는 얘기였어.’

화대였을 것이다. 설아가 진심이라고 믿고 싶었던 목걸이는. 그동안 그의 상대를 해준 값. 그리고 결혼 상대에게 입을 닫는 대가도 포함한 값이겠지.

설상가상으로 그즈음 설아는 자신의 임신 사실까지 알아버렸다.

설아는 당장에 월세를 내놓고 경기도 인근의 싼 방을 구했다. 혹시 몰라 산부인과도 가까운 곳을 알아두었다.

방이 구해지자 사표부터 냈다.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싸서 새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했는지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몇 날 며칠을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앓았다. 병이 나아갈 때쯤, 허무함과 절망감이 깃든 몸으로 천천히 집 밖을 걸어 나왔다.

정처 없이 걷다가 이른 곳은 한 편의점 앞이었다. 저도 모르게 주저앉았을 때, 한 아주머니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 아이고, 뭐 좀 먹어요. 쓰러지겠어.

그녀에게 따끈한 두유를 내미는 사람은, 지금 그녀가 일하는 편의점 점주인 인숙이었다.

- 괜찮습니다.

설아는 마른 입술을 움직이며 손을 내저었다. 그 손에 인숙은 억지로 두유를 쥐여 주었다.

- 괜찮아, 돈 안 받을 테니까. 마셔요.

설아는 천천히 두유를 마셨다. 오래 굶었던 탓이라 꿀꺽꿀꺽 잘도 넘어갔다.

- 도시락도 줄까?

설아가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 엄마!

훤칠한 남자가 아주머니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엄마.

그녀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이름. 그리고 이 배 속의 아이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름.

그 말을 듣는 순간 설아의 눈에서 굵고 진한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