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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인터뷰 (1).

판타지에 방송국을 세웠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4화 인터뷰 (1).

방송국 1층 로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재상 각하! 부디 저희 상단의 신제품도 한 번만 화면에 띄워 주십시오!” “국장님! 저희는 다른 어떤 상단이 제시한 금액의 두 배를 쳐드리겠습니다! 제발 시간 좀 내어 주시지요!”  로비를 가득 메운 제국의 거물급 상단주들이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돈다발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래, 이거지.’  제국의 미래는 밝다. 비록 처음 보는 광고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광고 방송이 끼치는 영향력과 가치를 단 하루 만에 파악했다.  상단을 운영하는 자로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보았는데 어찌 발품을 팔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의 눈에는 이미 뵈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이안 상단이 단 한 번의 광고 송출로 하루아침에 어마어마한 매출을 뽑아냈다는 소문이 쫙 퍼졌으니, 이들이 미쳐 날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몰려드는 인파를 멀리서 바라보며 실비아의 어깨를 툭 쳤다.  “봤지? 이제 직원들 월급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진짜 그렇네요….” “자, 이제 네 차례야. 뜯을 수 있을 만큼 뜯어봐.”  그러자 실비아는 안경을 척 치켜올렸다.  피로에 찌들어 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번쩍였다.  거대한 돈 냄새 앞에서는 피로도 씻은 듯이 사라지는 모양이었다.  “맡겨 주십쇼, 국장님. 이 호구… 아니, 파트너분들의 주머니를 아주 영혼까지 탈탈 털어놓겠습니다. 단가를 초 단위로 쪼개서 경매를 붙여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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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아서 잘 구워삶아 봐. 난 일정이 있어서 이만.”  난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정말 혼자 가실 겁니까?”  “어. 고위 귀족들도 있으니까 나 혼자 가는 게 편해.”  “경비는 사비로 처리하세요.”  “……너무하네 정말.”  “따지고 보면 이거 전부 국장님의 개인 희망 사항 아니었습니까?”  “…….”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쳇, 이번엔 그렇게 할게.”  나는 실비아를 로비에 남겨둔 채, 허공에 손가락을 그어 공간 이동 마법진을 펼쳤다.  우우웅—  내가 이동 마법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확인한 상단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재, 재상 각하 어디 가십니까!!”  “거기 내 비서랑 이야기하세요!”  나는 다른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사전 인터뷰.  지구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 본격적인 합숙이 시작되기 전, 항상 출연자들의 개별 인터뷰 영상이 먼저 나온다.  시청자들에게 출연자의 성격과 매력을 미리 어필하고,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곳에 왔는지 보여주며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장치.  ‘이 세계 놈들은 아직 카메라 앞에서 가식 떠는 법을 모르니까, 날것 그대로의 인터뷰가 나오겠지.’  아… 인터뷰부터 겁나 기대된다.  파앗—  마법진이 빛을 뿜었고, 내 몸은 순식간에 수도를 벗어났다.   ***   제국 북부 최전방, 발테르 변경백령.  칼바람이 몰아치는 연병장에 덩그러니 나타난 나는 코트를 여미며 몸을 떨었다.  “읏! 추워! 옷 좀 따뜻하게 입고 올걸.”  하지만, 상관없었다.  난 제법 뛰어난 마법사니까.   마법으로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북부의 마수를 막아내는 거대한 성벽 아래,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며 기합을 지르고 있는 북부의 기사들이 보였다.  “하압!!”  오, 박력 넘치네. 제국의 미래가 밝다.  그때였다.  “누구냐! 감히 변경백령의 중심에 공간 이동을… 헉! 재상 각하!”  나를 발견한 기사들이 기겁하며 무기를 거두고 무릎을 꿇었다. “어, 다들 수고가 많아요.” 그리고 저 멀리서, 누가 봐도 귀공자처럼 보이는 귀티 나는 청년 하나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수, 숙부님!?”  북부 변경백,   『아론 발테르』  제국의 방패이자, 백년전쟁의 흉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북부를 책임지는 사내.  올해로 스물셋이 된 아론은,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가주가 되어 북부의 안정화를 위해 쉴 틈 없이 굴러온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외모는, 변경백이라는 거친 칭호와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햇빛을 머금으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머리카락은 목덜미까지 단정하게 내려와 있었고, 그 아래 자리한 푸른 눈동자는 겨울 하늘처럼 맑았다.   곧게 뻗은 콧날과 날렵한 턱선,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이목구비는 누가 보더라도 명문 귀족의 혈통임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고상했다.   특히 웃지 않고 있을 때면 여자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온실 속에서 자란 귀공자와는 다른 흔적들이 보였다.  검을 쥐며 굳은살이 단단하게 잡힌 손.  희미하게 남은 목덜미의 흉터.  그리고 또래의 귀족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지나치게 차분한 눈빛.  스물셋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사내의 얼굴이었다.  나는 달려와 내 앞에 고개를 숙이는 녀석의 넓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오랜만이다, 아론. 몸은 좀 어때. 북부 몬스터 토벌은 잠잠해졌고?” “숙부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아니, 그나저나 어쩐 일로 직접 이 먼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아론의 아버지는 백년전쟁 당시 나와 등을 맞대고 싸우다 목숨을 잃은 ‘제라드 발테르’였다.  전우의 아들.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녀석은 나를 깍듯하게 숙부라 부르며 따랐다.  어린 나이에 무거운 짐을 진 녀석이 기특해 나도 북부 예산만큼은 아낌없이 지원해 주곤 했다.  “숙부가 조카 보러 오는 게 이유가 있겠느냐마는… 오늘은 네게 볼일이 좀 있긴 하지.”  “그러십니까? 그럼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안에서 이야기하시죠.”   ***   나는 아론을 따라 아론의 집무실로 따라나섰다.  변경백의 집무실이라고는 조촐하다 못해, 허름하다고까지 느껴지는 낡은 집무실.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지 않는 것도 지 애비를 똑 빼닮았다.  나는 허공에서 최신형 영상 기록 마도구를 꺼내 아론의 얼굴 쪽으로 띄웠다.  푸른 마나가 렌즈처럼 깜빡이며 녀석의 훤칠한 얼굴을 담기 시작했다.  오, 비주얼 좋고.  아론이 내 앞에 차를 내밀며 물었다.  서민들도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그런 싸구려 곡차였다.  “이게 뭡니까?”  “음, 차향 좋은데? 이건 카메라라고 하는 물건이다. 영상을 기록할 수 있지. 이번에 내가 보내준 소환장 잘 받았지?”  “아, 예. <제국 남녀>라는 비밀 프로젝트라고 하셨죠. 북부의 미래와 제국의 안보를 위해 반드시 참여하라는 숙부님의 친서를 받고 짐을 싸두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임무길래 이리 비밀리에…”  아론은 사뭇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웃음을 꾹 참았다. 이 녀석은 아직도 이게 군사 작전이나 정치적 회담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귀엽다. 고위 귀족이라고 해도 아직 어린애라니까.  “그래, 아주 중요한 임무지. 자, 카메라 보고 질문에 편하게 대답해. 사전 인터뷰니까.”  “인터뷰…? 말입니까?”  “어. 남자 1호, 아론 발테르. 18세에 가주가 되어서 지난 5년간 혹독하게 영지를 굴렸지. 이제 여유가 좀 생겼잖아? 이제 국가가 주는 임무도 좀 수행해야지?”  “그렇긴 합니다만, 아직 멀었습니다. 국가가 주는 임무는 당연히 수행할 마음은 있습니다.”  아론이 군기 바짝 든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하나 여쭙고 싶은 건… 그곳에 가면 뭘 하게 됩니까?”  나는 미소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연애.”  그러자 아론이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예?”  “연애 몰라? 여자랑 밥 먹고, 데이트하고, 손도 잡고. 그런 거.”  아론의 하늘빛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북부의 거센 눈보라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녀석의 귀 끝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숙, 숙부님. 저는 아직 그런 쪽으로는… 가문을 일으키는 것이 우선이라 여인과 단둘이 차를 마셔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라는 거야. 제라드 형님도 네가 평생 칼만 쥐고 독수공방하는 건 원치 않으실 거다. 넌 어린 녀석이 너무 여유가 없어.”  아론은 잠시 고민하더니, 내가 예상한 답변을 했다.  “아무리… 숙부님의 말씀이시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가 가장 먼저 아론을 찾은 것이 바로 이 이유였다.  이녀석은 내가 아무리 협박을 해도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참가하지 않을 녀석이니까.  직접적인 설득이 필요했다.  “왜?”  “북부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황실과 숙부님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마수를 막아내고는 있지만, 아직 안정화라고 하기에는…. 저는 할 일이 많습니다, 숙부님.”  아론의 맑은 눈이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론은 자신의 아버지의 유지를 그대로 이어받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하라는 거야.”  “……그게 무슨?”  “네가 지금까지 뭘 했는지 생각해 봐라. 북부의 성벽을 보수하고, 기사단을 재편하고, 마수 토벌대를 정비하고, 세금도 다시 걷기 시작했지. 네 아버지 대에 무너졌던 걸 하나씩 되돌리고 있어.”  “그건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 그런데 네 생각보다 북부의 정상화는 조금 늦었지? 왜 그럴까?”  아론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제가… 약하고 아직 어려서….”  역시나 예상한 대답이다. 이 녀석은 너무 올곧다.  “아니야, 아론. 너는 정말 잘하고 있어. 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다른 곳이요…?”  아론은 의문스러운 눈으로 되물었다.  “지금 네가 맡은 건 작은 영지가 아니다. 북부 전체의 방벽이자, 마수와 국경을 동시에 상대하는 변경백령이야. 네가 직접 처리해야 하는 일만 해도 끝이 없다. 군사, 외교, 조세, 식량, 상업, 귀족 간의 관계까지. 거기에 네가 검까지 들어야 하지.”  “…….”  아론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진척이 느린 거야. 모든 일을 네 손으로 처리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능력 있는 가신들은 열심히 하고 있습….”  나는 아론의 말을 잘랐다.  “하지만 중요한 일을 모두 맡길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고위 귀족의 대소사는 가문의 일원만 알아야 하는 일들이 제법 된다. 아무리 가신들을 신뢰한다고 하지만, 그런 일들까지 가신들에게 맡길 수는 없는 법.  “게다가 그렇게 네가 그 모든 일을 직접 붙잡고 있으면 언젠가 한계가 온다. 지금이야 젊으니까 버티고 있는 거지, 슬슬 한계에 부딪히고 있진 않냐?”  “…….”  아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하지만, 현명한 아내 하나를 얻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러자 아론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아내가 영지의 내정을 맡는다고 생각해 봐라. 가신들의 보고를 취합하고, 세금과 재정을 살피고, 상단과의 거래를 관리하고, 사교계에서 정보를 모으는 것까지. 네가 굳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맡길 수 있지.”  아론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여인을 찾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찾으러 나가라는 거다.”  아론이 잠시 말문을 잃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네 아버지, 제라드 형님이 왜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는지 아느냐?”  “……강했으니까요.”  “그것도 맞지. 하지만 혼자 강해서 버틴 게 아니다.”  아론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형님 곁에는 형님이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사들은 검을 들었고, 가신들은 영지를 다스렸고, 상인들은 물자를 끌어왔지. 형님은 그들이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가장 위험한 곳에 서 있었고. 하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했던 건 뭐니 뭐니 해도 네 어머니였다.”  아버지와 함께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론의 표정이 슬픔에 잠겼다.  “…….”  “아무리 강한 자라도 기대야 할 곳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것이 북부의 최강자라고 할지라도, 제라드 형님에게 네 어머니는 그런 존재였다.”  내가 아론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 아직 북부는 중요한 부분에서 아주 불안한 상황이다.”  “예…? 그게 무엇입니까?”  “후계자가 없다.”  “……?”  “지금 네가 죽으면 북부의 발테르 가문은 대가 끊긴다. 제라드 형님도 너라는 후계자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희생하며 나설 수 있었던 거야. 후계자가 없으면 네가 죽는 순간 지금까지 쌓은 모든 것이 다시 흔들린다. 그것을 원하나?”  아론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러니 연애와 결혼은 네 사생활이 아니다. 변경백으로서의 책임이지. 어때, 꽤 그럴듯하지 않느냐?”  잠시 침묵이 흘렀고, 아론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치사하십니다.”  “뭐가?”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들먹이시는 건.”  나는 아론의 말에 피식 웃었다.  “효자는 설득하기 편해서 말이지.”  나는 웃으며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켰다.  “자, 그러니까 하자.”  결국 아론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자식아, 내가 네 머리 위에 있다. 원래 고위 귀족은 이런 명분에 약하다.  “질문할게. 카메라 보고 대답해.”  아론은 체념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넌 어떤 스타일의 여자가 좋냐?”  “…스타일 말입니까.”  녀석은 한참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듯한 진지한 표정이었다.  “북부의 혹한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체력. 마수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담력.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냉철함을 잃지 않는 판단력을 가진 여인이라면…”  “아니, 인마…? 기사단장 뽑냐? 아니, 로맨틱하게 가라고. 외모라든가, 성격이라든가.”  “로, 로맨틱요…?”  아, 미친. 이 귀여운놈… 이녀석이 연프에 나가서 할 빌런짓을 생각하면 나만 벌써 재밌나?  귀족영애에서 가서 이 녀석이 그러는거지.  ‘저기, 혹시 혹한의 칼바람과 마수앞에 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 질문에 귀하게 자란 귀족 영애들의 반응 생각 하면 벌써 도파민이 솟구치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남자 1호 출연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