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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스포는 중범죄다.

판타지에 방송국을 세웠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9화 스포는 중범죄다.

어두컴컴한 편집실 안.    “거기서 배경음악 뚝 끊고, 화면 전환해. 흑백으로. 그리고 다른 음악으로 교체.”    “여기서요?”    “응. 뒤가 궁금해 죽겠지? 아, 거기에 자막으로 광고 달거야. 광고주가 좋아하겠지.”    “기가 막힌데요?”    “당연하지.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 장면에 제작 지원 광고 띄워주면 얼마나 효과가 좋은데.”    내 지시에 옆에 앉아 있던 편집 담당 마법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마나 회로를 조작했다.    이세계에서 방송 편집을 하려면 마법사 정도 되는 고급 인력이어야 한다.    “다, 다 했습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웅장하게 깔리던 교향악이 멈추고, 화면이 멈추며 클로즈업되었다.    “아주 좋아!! 너 편집에 소질 있는데?”    “가, 감사합니다!”    이런 센스는 가르친다고 될 것이 아니다. 편집이야말로 재능의 영역.    기술은 누구나 배울 수 있지만 시청자들이 만족할 만한 화면을 뽑아내는 센스는 가르칠 수 없으니까.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본 방송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예고편이다.    1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들의 관심과 궁금증을 극도로 뽑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진실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스포일러는 철저히 배제하되, 오직 출연자들의 매력과 분위기만으로 서사를 창조해 내는 것.    지구의 방송국 놈들이 밥 먹듯이 하던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 이세계에 최초로 강림하는 순간이었다.    “좋아, 남자 6호 컷 붙여.”    화면에 남자 6호, 율리우스가 등장했다.  특유의 나른하고 부드러운 눈웃음. 그가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덤덤하게 내뱉는 대사가 클로즈업되었다.    [……떨려도 되는 겁니까?]    그리고 아래에 따라붙는 자막.    – 남자 6호, 그의 마음을 흔든 것은 과연…?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철저히 가렸다. 그저 지나가다 건넨 실없는 농담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절묘한 편집과 슬로 모션이 더해지자 이 대사는 완벽한 로맨스의 한 장면으로 탈바꿈했다.    사실 저 장면은, 율리우스가 방송이 처음인지라 손이 이렇게 떨려도 되는 거냐고 묻는 장면이었다.    ‘아무렴 어때.’    이어서 분위기가 반전되며 강렬한 드럼 비트가 터져 나왔다.    남자 1호, 북부 변경백 아론의 컷이었다.    셔츠를 입어도 숨겨지지 않는 울끈불끈한 팔 근육, 거기에 심장 박동 소리를 크게 입힌다.    화면을 셰이킹하며 날것의 수컷 냄새가 진동하는 거친 숨소리를 입히고, 그 화면 하단에 붉은색 자막을 박았다.    — 남자 1호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 그가 이성에 눈을 뜨다.    아론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그냥 가만히 숨만 쉬고 있었을 뿐.    그런데 내가 편집으로 그냥 짐승돌로 둔갑시킨 거다.    “큭큭, 미쳤다, 진짜.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재밌어.”    나는 쾌재를 부르며 다음 컷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화면이 다시 전환되며 이번에는 여자 1호, 로잘린이 등장했다.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0표를 받은 직후의 당황스러운 눈빛. 그 찰나의 순간의 로잘린을 화면에 담고.    그 슬프고 안타까운 표정 아래로 자막이 깔렸다.    — 마, 말도 안돼!     그리고 예고편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하이라이트.    음악이 가장 고조되는 순간, 마차의 문이 열리며 여자 6호, 마리가 내리는 장면이 슬로 모션으로 재생되었다.    그녀가 누군가를 향해 빙그레 맑은 미소를 터뜨리는 순간, 화면이 멈추며 메인 카피가 화면 전체를 집어삼켰다.    — 그리고, 시그널 하우스의 모두가 그녀의 미소에 빠졌다.    마지막 쿠키 영상으로, 주방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당황한 로잘린의 얼굴이 1초간 스치듯 지나간 뒤 화면이 암전되었다.    “컷!!!!!!”    “마음에 드십니까?”    편집자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 아주 최고! 이보다 더 좋은 예고편은 없다!”    완벽했다.    결과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단 하나도 스포일러하지 않았으면서도, 인물들의 표정과 분위기, 그리고 자막만으로 서사를 만들어냈다.    이 예고편을 보고 본 방송을 기다리지 않을 제국민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수고했어. 이대로 오늘 저녁 뉴스 끝나자마자 골든 타임에 전 지역 동시 송출해.”      ***      예고편이 대륙 전역의 마도 디스플레이를 통해 송출된 직후.    나는 방송국 시스템과 연동하여 새롭게 오픈한 ‘마나 통신망 익명 커뮤니티’,    일명 [제국의 숲]의 접속자 수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단순히 화면 하단에 띄우는 실시간 댓글만으로는 이 폭발적인 여론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누구나 단말기를 통해 익명으로 글을 쓰고 토론할 수 있는 거대한 여론의 장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제대로 적중했다.    아니, 적중이라기보다 당연한 거지. 지구에서 증명된 방법들이니까.    “국장님! 마나 서버가 과부하 직전입니다! 접속자가 초당 수만 명씩 폭주하고 있어요!”  “돈 뒀다 뭐 해? 마석 사서 서버 증설해. 일단 냉기 마법으로 임시 처방하고!”    나는 허공에 커뮤니티의 실시간 게시판을 띄워놓고 빠르게 올라가는 글들을 읽어 내렸다.    예고편의 충격에 휩싸인 제국민들은 이미 이성을 잃고 활자를 쏟아내고 있었다.     신분을 모른 채 오직 비주얼과 분위기만으로 출연자들을 평가하는, 순도 100%의 날것 같은 반응들이었다. [익명 418] : 와, 미쳤다 진짜. 나는 저 여자 1번 표정이 너무 좋다. 저런 눈빛으로 한 번만 밟혀도 좋을 듯 헉헉. [익명 762] : 나도 1번. [익명 193] : 아니 다 필요 없고 마지막에 마차에서 내리는 6번 여자 뭐임? 사람 맞음? 여신인가……? [익명 845] : 6번 미소 지을 때 깨달았다. 오늘부터 내 이상향은 6번이다. [익명 276] : 난 은근 5번이 마음에 듦. 짐 가방 무거워서 남자가 낑낑대니까 표정 굳어지는 거 개웃기던데 ㅋㅋㅋ 약간 백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귀여움. [익명 539] : 남자 6호 눈웃음 미쳤음. 하아… 눈빛으로 임신할 것 같음. ㄴ [익명 681] : 도라인가 게시판은 이미 각자의 취향에 따라 파벌이 나뉘며 거대한 팬덤이 형성되고 있었다.  서로 자신이 지지하는 출연자의 매력을 찬양하며 밤을 새울 기세였다. [익명 904] : 1번 여자 좋다는 놈들 완전 여알못 놈들이네. 일단 표정에서 표독함 안 보임? [익명 157] : 6번 여자는 대체 출신이 어딜까? 귀족인지 평민인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걸음걸이나 행동만 보면 완전 황실 예절 교육받은 수준인데? [익명 623] : 미친… 설마 6번 황녀님 아님? 비주얼이 평민일 수가 없잖아! [익명 348] : 야 이 빡통아, 황녀님 전쟁 때 돌아가신 거 아니었음? 공식 석상에서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익명 791] : 갑자기 황녀님 이야기로 넘어가냐. 근데 만약 6번이 죽은 줄 알았던 황녀님이면… 이거 완전 대반전인데… [익명 462] : 말이 되냐. 황녀님이 연애 프로그램에 왜 나와 미친놈들아 ㅋㅋㅋ 뇌피셜 자제 좀. [익명 835] : 아, 몰라 ㅋㅋㅋ 근데 진짜 다음 주까지 어떻게 기다리냐. 남의 연애 구경하는 게 뭐라고 이렇게 손발이 떨리고 기대되지? 미치겠네.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킬킬거렸다.  시골 여관에서 감자를 썰던 마리가 졸지에 죽은 황녀로 둔갑하는 기적의 논리.  이게 바로 익명 커뮤니티의 묘미이자 정보의 혼돈이었다. 제국민들은 난생처음 겪어보는 이 거대한 도파민 파티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렇게 흐뭇하게 여론을 감상하던 중, 새로 고침 된 게시판 최상단에 묘한 제목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 익명 216] : (오피셜) 나 방송국 내부 사정 잘 아는 사람 있음. 여기 귀족 3명, 평민 3명씩 성비 맞춰서 들어간 거임. 남녀 각각 3:3으로 섞어놓은 거라 존나 재밌을 거임. 내기해도 좋음. ㄴ [익명 587] : 진짜? 지랄 마. ㄴ [익명 216] : 진짜임. 남자도 3:3, 여자도 3:3 섞어놓은 거라 존나 재밌을 거임. 내기해도 좋음. ㄴ [익명 934] : 오… 듣고 보니 일리 있음. 밸런스 맞추려면 그게 정배지. 내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가라앉았다.    정보의 통제는 방송의 생명이다.     저런 민감한 내부 설정이 벌써부터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은 예능 피디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범죄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톡톡 치며, 뒤에 서 있던 실비아를 불렀다.    “실비아.”    “네, 국장님.”    “저기 저 스포 댓글 쓴 새끼. 당장 잡아와.”    “추적이 안 된다면서요?”    나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사실 돼. 내 단말기로 고유 주소 따서 검색해 보면 위치 뜰 거야.”    오로지 내 단말기로만 고유 주소 추적이 가능하다. 뭐 사실 인터넷 비슷한 통신망에 고유 주소가 없는 게 말이 되지 않기는 하다.    나밖에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이제 실비아도 알게 됐네.    “음흉하시네요….”    “너 이거 말하면 안 돼. 이걸 공개하는 시기는 아직 멀었으니까. 이해하지?”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이 녀석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사형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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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요…?”    “농담이야. 방송국 직원 놈일 수도 있으니까 직원 놈이면 잘라. 외부 놈이면 누구한테 들었는지 반드시 캐내서 자르고. 이거 그냥 넘어가면 나중에 우리가 힘들어져.”    “알겠습니다.”    실비아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단말기로 고유 주소를 검색하더니 어딘가로 통신을 하기 시작했다.    스포일러를 유출한 자의 최후가 얼마나 끔찍한지 본보기를 보여줘야 질서가 유지되는 법이니까.      ***      다음 날 아침.    방송국 최상층 국장실의 문이 쾅! 하고 열렸다.    “국장님!!!”    연이은 야근으로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와 퀭한 몰골을 한 실비아가 양손에 거대한 서류 가방을 든 채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피로에 절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녀의 안경 너머 눈동자만큼은 번쩍이고 있었다.    털썩—    “왜, 뭔데? 난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