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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악

로판 속 호구 황태자는 이제 없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거악

야 이 씨발아. 평소 온화하기로 소문이 자자하고, 동생을 지극히 아끼는 황태자의 입에서 나온 욕설. 그걸 듣자마자 회의실 내부 분위기는 싸늘하게 죽어버렸다. 언제 누가 떠들었고, 열을 냈는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듯. 욕설 한번에 얼어붙은 회의실 안은 순식간에 그 누구도 쉽사리 발언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완성됐다.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건가?' 대법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황태자 전하께서 드디어 분노를 표하시는구나.' 대장군은 감탄했고. '제국이 이토록 위험했나? 성군이라 불리던, 살아있는 평온의 신이라 불리던 태자께서 이렇게 화를 내실 정도로?' 재무경은 제국의 미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지금 황태자의 발언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오죽하면 2황자는 자리를 생각하지도 않고 다리를 덜덜 떨고, 눈을 크게 뜨며 의자에 앉았을까. "언제부터 우리가 마세린 왕국을 이렇게 신경 썼지? 주요한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하게 약하단 이유로 언제부터 왕국 하나에 이런 회의까지 열게 되었느냔 말이야." 그 후 이어지는 황태자의 말에 신하들의 눈은 튀어나올듯 커졌다. 사실 2황자의 고집이 이어질 때마다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허나 강해진 황권은 섣부른 발언을 뱉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어리광으로 인해 제국이 아낌 없이 마세린 왕국을 향한 지원을 보내고 있었던 건데.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인지, 황태자가 드디어 눈치를 채준 거였다. "혀, 형... 갑자기 왜, 왜 그래? 응? 안 그랬잖아, 아, 아니 그게... 마세린이 위험하니까... 구해주는 게 맞지 않아...?" 상황 파악이 덜 된 2황자는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이 평소 알고 있던 형을 되찾기 위해 어설프게 말을 이었으나. "장군, 마세린 쪽에서 우리에게 먼저 도움을 요청했나?" 황태자는 2황자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주변 신하들에게 상황 설명을 요구했다. "그런 적은 없습니다."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는 왕국에게 무조건적인 지원을 보내주려 했다는 건가, 지금?" "맞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군, 이해가 안 돼... 그것도 우리 제국의 가장 강한 칼을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황태자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이번 회의는 그냥 아예 없던 걸로 하지, 애초에 재고할 가치도 없는 일이지 않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끝난 회의. 황태자는 주변이 적응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듯. "앞으로 제국 내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 발언을 끝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 벨로스 제국의 황권은 이보다 더 강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몰린 상태였다. 초대 황제부터 말도 안 되는 무력으로 나라를 세우고, 구심점 역할을 했던 자였고. 그 밑으로도 후대 황제들 또한 단 한 번도 제국제일인의 자리를 놓친 적 없었으니. 막대한 무력 아래 그 누구도 쉽사리 반발할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물론 완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몇몇 시도가 있긴 했지만, 그들은 역사가 지워버릴 정도로 깔끔하게 소멸된 지 오래였다. 아무튼 이런 강력한 황권을 바탕으로. 제국은 2황자의 말도 안 되는 어리광과 1황자의 동생 사랑으로 인해 아낌 없이 퍼주는 나무가 되어 가고 있었고. 이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있는 귀족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뭐? 태자께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렇다니까, 방금 회의에서 태자께서 2황자한테 욕을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라고 했다고!" "어디 그뿐인가? 앞으로 제국 내에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 하셨지. 드디어 제국이 옛 영광을 되찾는 거 아니겠는가!" 벨로스 제국은 원래 이렇게 주변 왕국에 자원을 퍼주는 호구 같은 이미지가 아니었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주변 왕국에게 여러 가지 이득을 취하고, 강해지는 걸 견제하며. 항상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최강의 이미지였는데. 사랑에 미친 2황자가 그걸 다 말아 먹고 있었고, 그 시간만 벌써 3년이었다. 이게 제국이어서 그나마 버틴 거지, 다른 왕국이었으면 진작 망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처형자들을 냅다 마세린 왕국에 파견 시킬 뻔 했으니." "막말로, 그게 파견인가? 웃긴 일이지... 그냥 준다는 소리 아닌가." "맞지, 저번에 보낸 철갑 기사단들도 파견이랍시고 돌아오지 않은지 1년이 넘었어!" "철갑 기사단 보급은 또 우리 제국에서 해주고 있고, 그 결정이 얼마나 말도 안 됐는지...." 신하들은 드디어 제국이 정상화 되는 건가 싶어서 각자 불만을 하나씩 뱉다가도. "근데 이게 일시적이면 어쩌나." "...." "처형자들만 안 된다고 했을 뿐이고, 다른 걸 요구하면 또...." "아니, 그보다 그냥 2황자가 회의 말고 맨날 하던 그 짓을 한다면?" "...신하들이 안건 반대하면 태자 침소로 쪼르르 달려가 사정사정 하는 거 말하는 건가?" 이 변화가 과연 얼마나 갈까 싶은 걱정으로 대화 주제가 다시 변했다. 지금 순간이 영원하지 않을 가능성, 사실 그게 확 변할 가능성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다. "많은 걸 바라지 않네, 그냥... 이제 더 퍼주는 것만 막았으면 좋겠군." "그러게 말이야, 준 걸 회수하는 건 기대도 안 해." 그렇게 다양한 걱정 속에. 금일 있던 회의 내용은 빠르게 황궁에 널리 퍼졌고. 같은 시각. 이 소문의 주인공인 황태자는. "제국 정상화 해야겠다." 눈앞에 뜬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건 내 침소로 이동하는 거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공간이 필요해, 그래야 머리를 식히지.' 일단 2황자가 또 호구짓으로 제국 자원을 퍼주려고 하니까 급발진을 하긴 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어쩌다가 여기에 왔는가'였다. 물론 혼자 있는다고 그걸 파악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로 인해 어지러워진 머리는 정돈할 수 있었다. "...진짜 1황자 벨론이 맞네." 거울을 보자마자 그냥 잘생겼단 말 밖에 나오지 않는 외모가 날 반겼다. 금발적안. 태양을 연상케 하는 눈동자, 그냥 무조건 황태자 벨론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외모였다. "빙의 된 이유가 뭘까, 제국 정상화 하라고?" 뜬금없이 이세계 전생한 이유가 대체 그래서 뭔데. 그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상황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무렵. [ 마세린 왕국에 처형자 파견을 취소했습니다. ] [ 운명이 변합니다. ] [ 세계선이 바뀝니다. ] [ 제국의 멸망 가능성이 1% 낮아집니다. ] [ 현재 제국의 멸망 가능성 : 91% ] [ 상태 요약 : 제국은 5년 내로 반드시 멸망합니다. ] [ 제국이 멸망하면 황태자는 죽습니다. ] "...."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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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투명한 화면부터 시작해서, 딱 봐도 나밖에 볼 수 없는 티를 팍팍 내는 현대식 디자인.  "미쳤나." 그걸 보자마자 난 욕 밖에 나오지 않았다. 멸망할 가능성이 91%? 근데 가장 놀라운 건 이렇게 높은 가능성 임에도 불구하고 유예 기간이 5년이란 거였다. 9% 확률로 5년 동안 계속 버틸 수 있다니. 제국이 얼마나 대단하고 강대한지 알 수 있는 동시에 2황자가 얼마나 퍼줬는지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이렇게 망할 확률이 높아도 5년은 가는 제국. 이 제국의 망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걸 퍼줬을까? 정말 상상도 안 됐다. '아니, 난 알고 있긴 하지... 그래, 근데 진짜 그 정도면 망할 수밖에 없긴 해.' 마세린 왕국이 힘들다고 하면 사람도 주고, 자원도 주고, 세금 관련 부분도 무료로 해주고 있었으니. 여태 버틴 것도 정말 용한 수준이었다. '일단 얼마나 퍼줬는지 알아야 돼.' 퍼준 걸 알아야 다시 가져올 수 있을 테니까. 거기에 더해서 지금 소설 시점이 어딘지도 알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읽은 건 50화 부근이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멸망 가능성이 이 정도로 높을 사건은 없었으니. 대체 어느 정도까지 시간이 지났는지 알아야만 했다. '최소한 아무리 못해도 처형자 이야기까지 나오는 거 보면... 100화는 넘은 건가?' 제국 최고 무력 집단, 처형자. 그들이 나서면 대부분의 일은 해결된다고 봐도 되는. 제국에 존재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존재들이었다. 얘네 뜨면 그냥 이겨요! 같은 설정으로 똘똘 뭉친 초등학교 공책 게임에서 볼법한 존재들. 그들까지 넘겨주려고 하는 거 보면 이야기가 많이 진행 됐다는 거 아닐까.  초장부터 제국 최고 무력 집단을 퍼주려고 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최소한 후반....' 딱 여기까지 혼자 생각하는 걸로 하기로 하고. 이 다음은 자료 같은 걸 살펴서 객관적인 시점을 파악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즉시 서고 쪽으로 몸을 이동하려는 순간. 벌컥. "형! 형! 아, 아까는 장난이었지? 나야 형 동생 베딘...!" 노크도 없이 2황자가 냅다 문을 열고 내 쪽으로 넘어지듯 엎어졌다. "네가 내 동생인 건 알지, 베딘. 무슨 일이야." 대체 얜 왜 왔을까?  그런 고민을 하기도 전. "처형자들 보내는 거, 아까 신하들이 너무 반대해서... 그냥 자리 파한 거지? 사실 보낼 생각인 거지? 우리끼리 몰래? 응? 그런 거지?" 2황자의 말이 이어졌고. 그 말이 이어짐과 동시에. [ 제국의 멸망 가능성이 움직이려 합니다. ]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시스템 메시지가 움직였고. 그걸 본 순간 난 지금 시점 파악 같은 걸 할 때가 아니란 걸 직감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놈을 제국에서 치워야 한다.' 2황자의 자격을 박탈하고, 어딘가로 멀리 보내는 거였다. 이놈이야말로 제국을 멸망시키고, 날 죽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거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