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시간 (3)
청소 시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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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근위 기사단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 몰랐는데.' 기사들과 함께 원탁 회의실로 들어간 건 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사실 새벽에 그렇게 귀족 관저에 들어가서, 경고를 날릴 줄도 몰랐다. '엄히 벌할 것을 알리라는 문장 자체에 이런 힘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황제는 행방불명, 황후는 국정 운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는 입장. 이런 상태에서 황태자의 권력은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21세기를 살아가다 로맨스 판타지 세계관의 제국 황태자가 돼서 그런지. 내 한 마디에 움직이는 사람들의 스케일과 행동이 예상 범위를 벗어났다. '군대 사단장보다 더 높은 위치인 거네.' 저 산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말하면 이튿날 산을 치워버릴 수 있는 경지. 그것보다 더 높은 게 바로 황태자란 존재였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즉사 치트. 그냥 길가다가 '너 죽어'라고 말하면 웬만하면 바로 사형 집행 라이브가 가능한 위치. 하지만 그렇다 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절대 극단적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왜냐면 부패가 최악이고, 지금 이 자리에 그 부패를 최악으로 만든 장본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랏돈을 갖고 장난치는 쓰레기들. 그 쓰레기들을 청소하기에 딱 어울리는 분위기다. '아, 근데 첫 마디가 존대여서 살짝 별로였네.' 첫 대면 때까지만 해도 하대를 하다가, 지금 상황에서 존대라니. '긴장한 적 없는데, 긴장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얕보이면 곤란한데 말이지. 다음에 말할 땐 바로 하대로 고쳐야겠다. +++++ 무서워서 죽을 것 같다. '대체 이게 무슨 경우야.' 외무 담당관은 자신이 밤을 새서 만든 투자 관련 리스트가 원탁에 널브러져 있는 걸 빤히 쳐다봤다. '이걸 이렇게 쓰시려고 준비하라 하셨던 건가?' 생각도 못 했다. 단순히 그냥 투자 관련 리스트를 다시금 체크하시는 용도인 줄 알았는데. 책임자를 찾고, 그에게 엄벌을 내릴 생각이셨다니. 평소 이미지와 너무 다른 행보에 외무 담당관은 겁에 잔뜩 질려 있는 상태였다. 침 삼키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할 정도로, 경직되어 잔뜩 올라간 어깨가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근위 기사들을 전부 대동하신 건가? 전부는 아니어도... 그래, 전부는 아니지... 아니어도 문제다.' 근위 기사들은 말 그대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황족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자들. 그런 그들의 실력은 결코 낮지 않다. 아니, 그냥 직관적으로 말해서 근위 기사단에 속한 모든 자들은 마스터의 경지였다. 소드 마스터, 보우 마스터, 마도사 등. 하나하나가 국가 전력을 직관적으로 늘릴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강자들. 그런 자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뒤에 가만히 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이것만큼 무서운 게 또 어디 있을까. 외무 담당관은 자신이 비리를 저지른 게 아님에도. 직접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아니, 뒤에 있는 기사들이 오러 살짝 꺼내서 휘두르면 성을 두부처럼 자른다니까?' 그런 자들이 원탁 회의에 참석한 모든 귀족들의 뒤에 한 명씩 붙어있다. 마치 이곳을 참수 현장으로 만들겠다는 듯 말이다. 기세가 말도 안 되게 무섭다. 여태 국무회의를 진행하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너무 낯선 분위기에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마세린 왕국에 대한 투자, 누가 관리했습니까?" 생전 처음 보는 말투의 황태자여서 공포감은 더더욱 배가 됐다. 온화한 어투로 하대를 할 땐 그나마 분위기가 괜찮았는데. 아예 정색을 하고 존대를 하니까, 정말 오늘을 기점으로 모든 걸 끝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끝은... 비리를 저지른 귀족들의 죽음이겠지.' 외무 담당관은 녹이 슨 것 같은 고개를 겨우 돌려 옆을 쳐다봤다. 원래라면 외국 투자 관련은 외무 담당관이 개입을 해야함이 옳지만. 어째선지 투자 관련은 2황자와 그의 측근들이 전적으로 관리한 상태여서. 외무 담당관은 자신조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었고, 보고조차 받지 못했었다. 특히 마세린 왕국에 대한 투자는 얼마나 폐쇄적으로 진행됐는지. 황태자께서 투자 관련 자료를 뽑아오라는 명을 하고서 처음으로 받아봤다. "다들 말이 없구나, 말이 없어... 내가 투자에 관한 비리를 이미 모두 파악했는데, 입을 다문다고 죄가 숨겨질 것 같으냐." 존대에서 다시 하대. 귀족들은 황태자의 말투가 급변한 이유가 자비가 끝났기 때문이라 판단했다. '고작 딱 한 번... 거기서 바로 자비가 끝났단 건가.' '태자께서 이러신 적이 없었는데, 대체 얼마나 분노하고 계신단 말인가.' '비리를 무엇으로 저질렀길래 대체....' 그렇게 귀족들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원탁 회의실을 채우려는 순간. "대장군, 원탁 회의실이 언제부터 눈 굴리는 곳이 됐는지 모르겠군." 황태자가 가볍게 툭 말을 뱉었고. "황태자 전하의 말이 들리지 않는가?" 자연스레 대장군이 말을 이어받으며 기세를 드러냈다. 좋은 걸 많이 먹고, 가문 비전 심법을 이어 받으며 아무리 힘을 키웠다 한들. 실전 경험이 극도로 적은 귀족들과 달리 대장군은 진짜 중의 진짜였으니. 그 날 선 기세에 이리저리 움직이던 귀족들의 눈동자가 딱 멎었다. "그, 그... 투자 관리는... 2황자와 그의 측근들이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꼭 좋게 말을 할 땐 답이 안 나오고, 다그쳐야 말이 나오니 원... 내가 짐승들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지 않게 해주게." 마지막 경고와 같은 말을 가볍게 뱉은 황태자는. "그래서 그의 측근들이 누구인가?" 가볍게 원탁을 훑어보며 사랑에 미친 정신병자와 결탁해 사익을 챙긴 자들을 보려 했고. "화, 황태자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투자 관련 자체엔 그 어떠한 문제도, 비리도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 맞사옵니다. 투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익 또한 이미 문제 없음이 판명났고, 이를 2황자 전하께서도 보증하셨기 때문에... 이는 비리라고 보기 어렵사옵니다." "실제로 황태자 전하께서 칭하신 사익이란 것은 투자 과정을 더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제였습니다. 실제로 이를 통해 마세린 왕국과의 외교가 한층 더 좋게 이루어졌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마세린 왕국에 대한 투자가 계속 돈을 의미 없이 넣는 과정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2황자께서 미래를 판단하셨을 때 이는 장기적으로 보면 엄청난 국익으로 이어질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그리고 이를... 황태자 전하께서 최종적으로 승인하여, 지금의 단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근데 그 과정에서 어찌 사익을 챙기는 비리가 존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어떠한 문제도 없다 보심이 맞습니다." 그 시선이 닿기도 전. 겁에 질린 자들이 앞다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열심히 말을 하고 있긴 한데, 결국 그걸 하나로 묶으면 결론은 하나였다. '우리는 죄 없고, 2황자가 시키는 대로 한 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너도 알겠다고 한 거잖아? 이게 왜 문제 되는데?' 2황자의 측근들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고, 이에 대한 답변도 어느 정도 준비한 상태였다. '이런 형태로 될 줄은 몰랐지만.' '처음에 너무 다그쳐서 생각이 제대로 안 나긴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트집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행정 절차 상으로 완벽하게 처리된 일을 끄집어내서 문제를 삼는다? 그건 마세린 왕국 투자 관리를 담당한 귀족들이 봤을 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행정 절차를 문제 삼는다는 건 이미 정해져 있는 법을 건든다는 건데. 그걸 이곳에서 처리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를 문제 삼는다면 최초 투자 제안자인 2황자 또한 죄의 책임이 있다는 건데. 평소에 2황자를 끔찍하게 아끼기로 유명한 황태자가, 2황자에게 죄의 책임을 묻는다? '그게 가능할 것 같은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겁을 줘서 죄를 토하게 만들어낼 생각이셨나 보지만 그렇게 순순히 넘어갈 저희가 아닙니다.' '애초에 2황자를 이곳에 부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최대한 2황자를 보호하면서 일을 처리하시려고 하신 거겠지.' '우리가 2황자 밑에 있는 한 절대 우리를 처벌하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처벌할 권리도 없고.' 행정 절차도 아무 문제 없었으니, 불법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자신들은 그 어떠한 죄도 없으며, 이번 회의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것이다. 2황자 측근들이자 마세린 왕국 투자 관리 담당 귀족들은 그렇게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한 가지를 까먹고 말았다. 그 중요한 것이란 바로. "내가 문제를 삼겠다는데, 지금 너희가 나를 가르치려 드는구나." 황태자는 법 위에 존재한단 거였다. +++++ 솔직히 진실된 사과를 하면 봐주려고 했다. 죽이는 건 너무하고, 그동안 벌었던 재산을 몰수하고, 무보수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뒷돈 챙긴 거 다 갚게 하려고 했는데 '하.' 이렇게 죄가 없다고 얼굴을 붉히고 바락바락 대드니, 괘씸해서 용서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2황자까지 들먹이며, 원래 황태자의 성격을 이용해 머리 위에 서려는 움직임까지.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2황자가 지금 상황에서 안전한 그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내 말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투자 관리를 담당한 귀족들의 안색은 평온해보였다. 아까까지 겁 먹어서 죽을 것 같은 눈동자는 어디 가고. 이젠 안방에 있는 듯, 일이 다 끝난 것처럼 굴고 있다. 해서. "대장군, 마세린 왕국에 투자 명목을 빌미로, 사익을 챙길 구실을 만든 2황자를 당장 불러와라." "알겠습니다." "참고로, 거절하거나 불응할 경우 기절시켜도 상관 없다." "감사합니다." 직접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느꼈다. 너희들이 믿고 있는 동아줄이 얼마나 얇고 끊어지기 쉬운지. "내 자비를 베풀어, 기회를 주려고 여러 번 노력을 했거늘...." 오늘 이 자리에서 나가는 자들 중 몇몇은. "너희들은 내가 이곳을 떠난 순간부터." 모든 걸 잃고 사라질 것이다. "더 이상 벨로스 제국의 귀족이 아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