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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시간 (5)

로판 속 호구 황태자는 이제 없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청소 시간 (5)

로맨스 판타지의 주인공은 무조건 여자고. 그 여자를 중심으로 순애 혹은 역하렘이 펼쳐지는 게 일반적인 구조다. 아무래도 로맨스이기 때문에 주인공은 반드시 주변 이성들과 엮일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반드시 로맨스 판타지에서 지켜져야 할 공식 같은 거였다. 그리고 로맨스 판타지 내에서 같이 나오는 여성들은 무조건 조력자 아니면 악역. 아무튼 이런 법칙을 생각해봤을 때. '내가 빙의한 소설 <주변에서 너무 퍼줘서 배불러요>는 역하렘 물이다.' <주변에서 너무 퍼줘서 배불러요>, 일명 '주퍼배'엔 주인공을 도와주는 수많은 호구들이 있을 거다. '게다가 남주들도 성격이 다 다른데, 키워드 같은 게 있고....' 북부대공, 집착광공부터 시작해서 성기사, 마탑주 뭐 그런 거 많지 않은가. 그중에서 아마 2황자는 대형견 포지션일 거다. 뭘 해도 그냥 마냥 여주인공이 좋고, 다 퍼주고, 진짜 계속 뭘 어떻게든 주면서 곁에 있고 싶은. '아닐 수도 있는데, 50화까지 봤을 땐 그랬단 말이지.' 애초에 주퍼배는 주인공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 되는 소설이어서. 대체 벨로스 제국이 어떻게 마세린 왕국을 도와주는지 상세하게 서술된 경우가 없었다. 그냥 미르네가 '도와줘 2황자에몽!'하면. 2황자가 '오케이 우리 제국 살림 다 팔아서라도 지켜줄게, 마이 레이디'하는 것 정도. "그래서 어떻게 항상 퍼주나 했는데, 그냥 나라 팔아먹는 놈들이 싹 다 네 곁에 붙어있었던 거구나." 내가 파악한 '주퍼배'는 벤츠녀 클리셰를 지닌 로판이다. 현대인이 소설에 빙의해서, 여러 특전을 가지고 약소국인 마세린 왕국을 강하게 키우는 스토리. 그리고 아마 그 특전에 '2황자의 무조건적인 호의'같은 게 들어있을 게 분명했다. "나라 팔아먹을 놈들이라니...! 억울해! 애초에 투자라는 게 단기적인 시야를 보고 바라보면 안 되기에, 장기적인 기다림이 필요하고...! 형도 동의를 한 거잖아!" 공적인 자리에서 끝까지 사적인 칭호를 들먹이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그런 거 하나하나 잡으려고 하면 날이 다 샐 것 같아서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그래, 동의를 했었지." 내가 빙의되기 전에 무슨 동의를 하지 않았을까. 아예 그냥 제국을 주자고 했어도 동의를 했을 지도 모를 정도로, 내 몸의 주인은 엄청난 호구였다. "근데 이제 와서 왜...!" "그게 제국을 좀먹고 있으니까, 상황이 변한 거다." 지금 상황에서 2황자와 대화를 하고 있는 이유는 대화를 통해 어떤 이득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황태자 전하, 송구스럽지만 현재 마세린 왕국 투자 건을 진행한 2황자의 측근 대부분이 마세린 왕국에 있는 걸로 밝혀졌습니다. 하여 지금 당장 소집할 수 있는 수가 적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게 왜 대장군이 송구스러울 일이오, 괘념치 마시오. 그럼 소수의 인원은 언제 오는 거요?" 제국에 숨 쉬고 있는 거머리들이 원탁 회의실에 오기 전까지. 그냥 심심해서 이야기 할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다. "지금 당장입니다." 벌컥. 원탁 회의실 문이 열리고. 8명의 귀족들이 물류 창고의 택배처럼 원탁 회의실로 쏟아졌다. 우르르, 와당탕. "으윽." "아무리 근위 기사라 하여도 어찌 제국의 귀족들을 이런 취급한단 말인가!" "우리는 2황자 전하의 측근들이다! 우리가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걸 알면 2황자께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마세린 왕국 관련 업무가 몇 개인지 아느냐!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데, 이런 짐짝 취급을...!" 쏟아지는 와중에도 귀족들은 자존심을 굽힐 줄 몰랐다. 하긴 아무리 근위 기사들이 오러를 피우는 소드 마스터라 하여도, 직위가 있으니 쉽게 해를 끼치진 못 하겠단 계산이 선 거겠지.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금방 바뀌었는데. 쏟아진 다음 고개를 들었을 때, 가만히 있는 2황자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베, 베딘 황자 전하...?" "...." 도움을 요구하는 호명. 2황자는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믿었던 동아줄이 툭하고 끊기는 순간. 원탁 회의실 입장할 때까지만 해도 열심히 입을 놀리던 귀족들의 표정이 싹 죽는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건. "마세린 왕국 관련 업무를... 벨로스 제국의 귀족들이 대체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너희들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나도 궁금하구나." 나겠지. '우리 제국 측 자원이 상당수 많이 마세린 쪽에 들어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언급할 정도로 그런 분위기가 만연하게 퍼져 있었을 줄이야. 사실 이를 통해 얼마든지 마세린 왕국을 압박할 수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근데. '지금은 그게 먼저가 아니다.' 일의 순서란 게 있었다. 무상 지원을 통한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건 나중 일이다. "그, 그게 마, 말이 그렇단 것이지 사실은 진실로 중요한 게 아, 아니옵...." "대장군, 슬프게도 이번 귀족들도 벨로스 제국의 귀족이 아닌 것 같소." "제대로 보셨습니다, 황태자 전하. 이들은 벨로스 제국의 귀족이 아니옵니다. 벌로 엄히 다스려야 제대로 된 답을 내놓는, 망국의 짐승들로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황태자 전하, 저는 검입니다. 편히 휘두르소서." "억울한 표정으로 일어나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구려, 낮춰야 할 것 같소." 서걱. "크어어어어억!" "어, 어찌 다, 다리를! 다리가아아아아아!" "황태자 전하 앞에서 너무 크게 비명을 지르지 말라, 어차피 다시 붙여줄 텐데 왜 그리 겁내느냐?" "고, 고문...! 붙이고 자르는 과정을 반복하는 고, 고문을 지금 하겠단 말이오? 우리는 제국의 귀족인데도...!" "너흰 귀족이 아니다, 짐승이지." 지금은 일단 내부 청소가 우선이다. +++++ 원탁 회의실에서 벌어진 첫 번째 청소 작업이 끝난 이후. "하, 진짜 최악의 최악 그 상태에서 더 최악으로 가는 걸 막은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난 내 방에 들어와 상황을 다시금 정리해보니, 어이가 없다는 문장 자체를 이해하게 됐다. '마세린 왕국에 대한 투자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을 줄이야.' 언제 투자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계약서 하나. 그거 하나 믿고 제국은 정말 동네 바보 형처럼 마세린 왕국에 계속 돈을 댄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대주는 과정에서 비리가 계속 발생한 거고 말이다. 다행인 건 이 액수가 장난이 아니어서, 다들 제대로 소화를 못 시켰다는 것 정도. '회수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안도를 해야 하나.' 제국이 얼마나 썩고 있는지 감도 안 잡혔기에, 일단 당장 급한 불을 끈 것 자체에 만족하기로 했다. 실제로. [ 벨로스 제국이 옛 모습을 되찾으려 합니다. ] [ 운명이 변합니다. ] [ 세계선이 바뀝니다. ] [ 제국의 멸망 가능성이 3% 낮아집니다. ] [ 현재 제국 멸망 가능성 : 83% ] [ 상태 요약 : 제국은 5년 내로 멸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 멸망 가능성 또한 3% 낮아지는 기염을 토해냈다. 하지만 이번 국무 회의의 진정한 성과는 따로 있었다. '더 이상 2황자는 마세린 왕국과 공적인 업무를 개인적으로 나눌 수 없게 됐다.' 2황자와 주퍼배 주인공의 공적인 연락 완전 차단. 앞으로 2황자가 마세린 왕국에 관여하고 싶다면 반드시 자신을 거쳐야만 한다. 마음 같아선 사적인 연락도 아예 끊어버리고 싶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애초에 로맨스 판타지 소설 속 등장인물이 2황자인 이상. 어떤 방식이든 계속해서 주인공인 미르네와 연결 될 수밖에 없을 텐데. 그 수단을 매번 찾아서 부수는 것보다. 언제든지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두고 지켜보는 게 훨씬 관리하기가 편했다. '근데 이걸로는 멸망 가능성 안 낮아지나?' 개인적으로는 2황자랑 주인공 미르네가 연락하는 것 자체가 망조의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한 순간. [ 벨로스 제국의 2황자와 마세린 왕국의 왕세녀의 개인적인 공적 연락이 일시적으로 차단되었습니다. ] [ 운명이 변합니다. ] [ 세계선이 바뀝니다. ] [ 제국의 멸망 가능성이 10% 낮아집니다. ] [ 현재 제국 멸망 가능성 : 73% ] [ 상태 요약 : 제국은 5년 내로 멸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 "허." 바로 멸망 가능성이 10%가 낮아진단 메시지가 이어졌다. 아니, 원천 봉쇄를 한 것도 아니고 일시적으로 막은 것 뿐인데 10%가 낮아져? '그리고 공적인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한 게 일시적이라고? 그럼 미래에 또 연결된단 거야?' 그럼 막말로 멸망 가능성이 낮아지다가 다시 높아질 수도 있단 소리네? 메시지를 보면서 여러 가지 떠오른 가능성에 고민이 깊어질 무렵. [ 엄청난 성과! ] [ 빙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멸망 가능성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낮췄습니다! ] [ 보상으로 '악녀 반지'를 지급합니다. ] "보상도 줘?" 허공에 반지 하나가 툭 떨어져 내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악녀 반지]  ㄴ악녀를 운명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심플한 설명.  '근데 악녀를 만나게 되는 게 좋은 거야?' 엄청난 성과를 낸 보상이니까 당연히 나에게 긍정적인 보상을 준 걸 텐데. 악녀를 만나는 게 어떤 긍정적인 이점을 가져오는지 잘 이해가 안 됐다. '내가 평소 로판을 많이 봤어야 알지.' 악녀 혹은 악역 영애. 원작 주인공을 괴롭히기 위해 필수적인 포지션으로. 보통 남자 쪽을 좋아해서,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하는 방향으로 설정된 경우가 많았다. 계약 결혼을 하면, 그 계약 결혼 이전부터 남자를 좋아하던 포지션 등. 솔직히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는 게, 이 악녀라는 포지션인데. 그걸 굳이 반지까지 주면서 만날 수 있게 하려는 이유가 뭘까. 그것도 그냥 만나는 게 아니라 '운명적'으로 만난다는데. 대체 이 운명적으로 만난다는 게 뭔지 이해가 안 됐다. '짐작이 안 된다, 짐작이 안 돼.'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겠지. 그리 중얼거리며 난 앞으로 이어질 청소 과정을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일단 돈이 밖으로 당장 빠져나갈 일은 막았다.' 원탁 회의실에서 2황자가 관련하고 있는 모든 부분을 재점검한다고 못을 박았고. 이를 2황자 또한 승인하였으며, 이로 인해 당분간 호구처럼 퍼주는 일은 없다 봐도 무방했다. '귀족 자리는 갑자기 12자리 정도가 빈 건가.' 근데 사실 공작이나 후작 자리가 빈 게 아닌 아무리 높아봤자 백작 수준이었기에. 제국의 덩치에서 그 정도 귀족 숫자가 빈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빈 자리를 노리고 있는 귀족들이 존재할 거란 말이지.' 자리가 비었다고 해서 그 자리를 반드시 채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연히 빈 자리에 눈독을 들이는 자들이 존재할 터. '이걸 또 맛있게 한번 요리해볼 필요가 있겠네.' 마세린 왕국의 1왕녀이자 왕세녀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미르네는. 설정으로 21세기 현대인이었으니, 아마 여러 가지 시도를 할 것이다.  일단 나라의 문맹률을 낮추고, 귀족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평민 인재를 등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왕국을 부강하게 만들려 하겠지. '근데 그거 나도 하면 되는데?' 왕국이 해도 효과가 좋은 걸 하물며 제국이 한다면 어떨까. '듣기로는 왕국에 국적과 출신 성분 그런 걸 구애 받지 않는 아카데미 세운다고 했지.' 근데 그거 우리 쪽에서 원래 돈을 넣기로 했는데, 넣지 않게 됐으니. 공사 시간이 굉장히 늘어나게 됐을 거다. 돈만 회수한 게 아니라 인적 자원까지 전부 다 회수한 상태였을 테니. 아마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선 시간 소모가 엄청날 터. '당장 외교적 압박을 넣을 필요도 없다, 그냥 제국이 다시 부강해지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공격이야.' 멸망을 피하려면 피할수록 마세린 왕국은 힘을 잃는 구조인 것. 아무튼 이 구도 완성을 위해 계속해서 청소를 이어갈 필요가 있었다. "일단 금쪽이 하나 어느 정도 발을 묶었으니... 당분간 청소할 때 편하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에. 일단 침대에 누우려는 그 순간. 똑똑똑. "오빠! 오빠! 문 좀 열어줘! 오빠! 나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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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또 다른 금쪽이 하나가 떠올랐다. 사랑에 미친 정신병자, 2황자 하나였다면 호구라는 인식이 안 붙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하나가 아니라면? "들어와." 들어오라는 말에 문이 활짝 열리더니. "오빠! 그게 진짜야? 베딘 오빠가 더 이상 마세린 왕국에 안 퍼주는 거?" 짙은 분홍 머리칼을 찰랑이는. 주황빛 눈동자의 여인이 행복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2황자 베딘 벨로스가 밖으로 새는 바가지라면. "그래, 사실이다." "그러면, 그러면... 이제 고민 거리 없는 거 아냐? 우리 여행 다녀오면 안 돼?" 1황녀 에르나 벨로스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 진짜 뇌가 순수한 푼수, 백치미, 바보 꼴통. 악역 영애라기보단 그냥 빡통 영애. '그러고 보니 얘도 계도 해야 되는구나.'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오는 가운데. "일단 나 자고 나서 이야기 좀 하자, 힘들다." "응!" 난 즉시 1황녀에게 방 밖으로 내보낸 후 침대에 털썩 누웠다.  2황자는 사랑에 미친 빡통. 1황녀는 그냥 빡통. 1황자는 그냥 호구였던 것. '황제, 이 미친 새끼... 정자가 너무 하품 아니야?' 셋이나 싸질렀으면 그중 당첨 하난 있어야 할 거 아냐. 왜 로판 여주가 하는 싸튀 행동을 네가 하는 건데. 그래도 다행인 건 이 모든 걸. '어떻게 할 지 대충 감은 잡힌다는 거.' 이득으로 만들 계획은 어느 정도 머리에 잡혀 있단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