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형욱 프로젝트
벨형욱 프로젝트
자고 일어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건. "2황자, 참 여러모로 복잡한 놈이네.' 2황자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솔직히 일을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2황자의 측근 뿐만이 아니라. 2황자의 모든 직위를 박탈하는 걸 시작해서, 정말 속전속결로 처리하면 죽이는 거긴 했다. 문제의 원흉 자체를 가장 빠르게 뽑아내는 방법이니까. 근데 그럴 수가 없는 이유는. '괜히 주인공한테 경험치 이벤트 해줄 수 없으니까.' 복수 서사를 사서 만들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로맨스 판타지에서 남자 주인공들은 히로인이었다. 게다가 2황자 정도면 꽤 비중을 차지하는 히로인, 정실 자리를 다툼하고 있는 포지션일 텐데. 그런 놈을 그냥 슥삭 한다? 그 순간부터 주인공의 제국 복수 서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멸망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로맨스 판타지 주인공은 일반적으로 정말 엄청난 재능을 타고난 게 보통이다. 마법 혹은 정령, 이 두 가지 쪽으로 상당히 좋은 실력을 보여주며. 뿐만 아니라 죽을 위기 혹은 위험한 상황이 되면 조력자들도 빵빵하게 나타난다. 해서 사실 2황자를 죽인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한 적 없었다. 오히려. '이용해야지.' 주인공과 사적으로 연락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제국의 기회로 만들 생각 뿐이었다. 소설 '주퍼배'는 주변 사람들이 계속 애호해주는 과정 속 나라가 강해지는 내용이었으니. 미르네가 제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생기면,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거였다. 예를 들면. '제국의 힘으로만 할 수 있는... 뭐 유적 발굴 같은 거, 그런 거 해달라 했을 때 유적까지 그냥 먹어버리는 거지.' 정보만 얻고 이득은 주지 않는다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멸망 가능성도 낮출 수 있는 거고 말이다. 그렇게 혼자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고. "황태자 전하, 대장군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시오." 노크의 주인, 대장군은 방으로 들어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나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업무실에서 줘도 되는 걸 여기서 준다는 건, 그만큼 사안이 급하다는 거겠지. "마세린 왕국에 남아 있는 제국의 귀족을 흉내내는 자들은, 따로 사냥꾼을 보내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재산은 몰수고, 음... 빈 자리가 확실히 많긴 하군." 보통 이런 보고는 대장군의 업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대장군이 이 업무를 보고 있다는 건, 귀족들에게 경고하는 거였다. 제국의 칼이 지금 내정에 개입하여 도려내야 할 살점을 고르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경거망동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 하는 살벌한 위협이라 볼 수 있었다. '흠, 아무리 제국 귀족 수가 많다 해도 갑자기 스물이 넘게 비는 건 공백이 좀 있겠는데.' 백작 이하의 귀족들이 썰렸다 하더라도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게 있을 텐데. 이를 다시 정상화 하는 것도 하나의 문제로 보였다. 어째 하나를 정상화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화, 황태자 전하! 마세린 왕국 측에 지원한 인재들에 대한 보, 보고를 저도 지금 올려도 되겠습니까." 대장군이 들어간 걸 봤는지, 외무 담당관이 자신 또한 여기서 보고를 하고 싶단 의사를 드러냈고. "올리시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받자고 생각한 난 그냥 들어오라 답했다. "그게... 사안이 사안인 지라, 최초 마세린 왕국에 지원을 보낸 인재들과 귀환하기로 한 인재들의 수가 달라서... 말씀드렸습니다." "다르다니? 죽었단 말인가?"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적인 이야기. "죽은 것이 아닌... 마세린 왕국으로 귀화 요청을 했었다 합니다. 해서 인재들 중 몇몇은 마세린 왕국의 백성이 되었기에, 돌려보내지 않고...." "하하하!" 외무 담당관의 말을 끝까지 듣자마자 난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니, 무상 지원으로 인재를 싹 다 파견하고, 그 파견한 인재들 보급까지 우리 제국에서 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땀 빼서 지원한 다음 돌려보내라고 했더니, 뭐? 귀화를 해? "2황자가 최종 승인 했겠군? 귀화를 승인한다는?"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치밀하게 나라를 팔아먹을 수 있지? 그래도 핵심 등장인물이라고, 원탁 회의에서 진행하는 청소 시간에 크게 안 건드렸는데. "아무래도 계획을 변경해야겠군." "...계획 변경 말씀이십니까?" "그래, 원래라면 좀 더 경과를 지켜보고 실행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당장 해야겠어." 진짜 다방면적으로 미친 짓을 했단 걸 알게 되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심지어 이 정도가 최근까지 일이었던 거고. 만약 과거를 제대로 파묘해서 꺼내면 진짜 다양한 미친 짓들이 범람하겠지. 그때마다 그럼 아랫것들만 잡아 족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일단 내가 제명에 못산다. "대장군에게 부탁할게 있소."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이거 보통 멍청한 놈이 아니라서, 그냥 바로 해야겠다. "부탁일 필요도 없습니다. 명을 내리소서," "벨형욱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할 것 같소." 빙의 2일차. 2황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기로 다짐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 마세린 왕국, 왕세녀 미르네의 침실. 그곳엔 수많은 연락 전용 아티팩트가 존재했고. 그 많은 아티팩트 중 가장 처음 연락이 오는 건 너무 당연하게도. 뚜르르르르. "어머, 베딘 황자 전하, 일찍 일어나셨네요?" "조금 슬픈 일이 있어... 위로 받고 싶어 연락했어." "무슨 일 때문이시길래, 그렇게 축 처진 얼굴을 하고 있으세요." 벨로스 제국의 2황자, 베딘이었다. 대형견 남자 주인공 스타일, 골든 리트리버 같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금발이었으니,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우리 댕댕이가 최근 너무 시무룩하단 말이지.' 아무래도 최근 황태자와의 마찰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본 것 같았다. '원래 이런 일은 없었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미르네도 당황스럽기 마찬가지였다. 원래 황태자는 그냥 2황자가 부탁하는 거 다 들어주고, 허허 웃는 그런 캐릭터였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제국을 챙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단계에서 제국이 도와줘야 왕국을 더 쉽게 발전시킬 수 있는데.' 물론 제국의 여러 인재들을 귀화시키는데 성공해서. 인재들부터 시작해서 투자까지, 전반적인 걸 회수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버틸 여유가 있긴 했지만 갑자기 변한 황태자의 행보를 봤을 때. '여기서 멈출 것 같지 않고... 진짜 다 가져갈 것 같은데, 근데 그건 솔직히 무리겠지? 황태자,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 당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해서. 본격적으로 2황자, 베딘과 이야기하기 앞서. '실피네르, 부탁해. 황태자의 곁에서... 들키지 않고, 최대한 멀리 봐줄 수 있을까?' '응, 걱정 마!' 바람의 정령왕이 될 잠재력을 가진 실피네르에게 황태자의 동태를 살필 것을 부탁했고. "...최근 형이 나를 예전처럼 대해주고 있지 않고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내가 마세린 왕국과 친하게 지내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걸까?" "그렇진 않겠죠, 황태자 전하가 왜 마세린 왕국과 친하게 지내는 걸 미워하겠어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 걸요?" "그렇지? 그러면 음... 솔직히 최근 형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싶은 걱정도 들어... 그게 아니라면 나한테 이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물론! 내 측근들이 나조차 속이고 부패를 저지른 건 나도 용서하지 못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마세린 왕국과의 교류에서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아서 걱정 돼." "예를 들면요?" "일단 이제 더 이상 내가 미르네랑 이렇게 도란도란 이야기 하면서 국정에 대한 논의도 못 하게 되는 것도 슬프...." 그렇게 한참 베딘과 미르네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순간. 쿵! "사, 삼촌?!" "황태자 전하의 명이다. 제국 백성의 거취를 감히 독단적으로 결정한 죄를 받아야 할 것이다." 갑자기 베딘 측에서 커다란 소리가 남과 동시에. 어제처럼 아티팩트에 벨로스 제국의 대장군 목소리가 잠깐 넘어오다가. 툭. 통신이 끊겼다. "...거취 결정? 설마... 귀화한 인재들을 말하는 건가? 그들까지... 건드리려는...?"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한 달 정도 텀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마다 급변하고 있는 제국의 태도에. '이러면 다른 곳도 더 적극적인 연락을 취할 필요가 있겠는데..., 지금 그렇게 해도 되나?' 미르네는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있었다. +++++ 퍽! "큭!" 쨍그랑! 복부에 발이 꽂히자마자 2황자의 몸은 볼품 없는 헌옷처럼 창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값비싼 영약과 솔 벨로스의 심법 효과 아래. 무방비한 상태에서 황궁에서 바닥으로 추락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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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사, 삼촌... 갑자기 왜, 왜 폭력부터...." 2황자는 기절은커녕 멀쩡하게 몸을 일으켜. 어느새 눈앞에 서있는 삼촌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네 꼴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하여, 대장군이자 삼촌인 내가 훈계를 하러 온 것이다." 대장군, 아캄 벨로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이 완벽하게 위치를 조절했음을 깨달았다. 오직 고귀한 혈통만이 입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황족 연무장. 이곳이라면 마음 놓고 훈계를 해도 문제가 없었다. "후, 훈계라뇨? 대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애초에 그 나머지 일은 전부 다 제 측근들이 잘못한 거라고 어제 결론나지 않았습니까." "아랫것들을 관리하는 것 또한 윗사람의 의무이거늘, 그 의무를 저버리고 마세린 왕국의 왕녀와 연락만 하지 않았나." "그, 그건 그렇지만! 맞지만...." "그래, 맞는 거다." 퍽! 또다시 보이지 않는 발차기가 머리를 강타했다. 정확히 한 바퀴. 하늘과 땅이 바뀌며 언제 머리를 맞았냐는 듯. 다시 자세가 원상태로 복구된다. "...가, 갑자기! 이렇게! 저도 2황자입니다! 황족을 이렇게 대하셔도 되는 겁니까!" "황족이 아니었다면 매국 행위로 인해 즉시 사형 되어도 모자를 죄를 지었지. 죽지 않고, 이 정도로 벌이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황족의 특권인 것이다." 빡! 2황자는 이번에는 피해보려 안력을 키웠지만. 대장군이 진심으로 차는 발차기를, 연애하느라 적당히 수련하고 있는 2황자가 피할 리 만무했다. 쿵! 포탄이 쏘아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대로 벽에 박히는 2황자. 그런 2황자의 모습을 보며 대장군은 뒤늦게 떠오른 듯 품에서 쇠사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꺼내자마자 자연스레 머릿속에 재생되는 황태자와의 대화. '앞으로 주기적으로 2황자를 훈계해주셔야 합니다. 최소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맷집이 늘지 않는 선에서의 폭력, 아니 훈계가 필요합니다.' '얼마나 하면 되겠습니까? 주기적인 기준은?' '이걸... 볼 때마다 알아서 입을 다물 정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몸이 기억하는 거죠.' '...쇠사슬 아닙니까?' '예, 앞으로 팰, 아니 훈계를 하실 때 항상 쇠사슬을 꺼내주시길 바랍니다. 쇠사슬로 팰 필요는 없고, 그냥 일종의... 신호 같은 거라고 할까요, 대장군께서 쇠사슬을 보이는 순간 훈계가 시작된다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오오... 이해했습니다. 근데 왜 이름이 벨형욱인 겁니까?' '굉장히 존경 받으실 만한 분이 이런 음...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권위자시기 때문입니다. 그걸 따왔죠.' '알겠습니다.' 벨형욱 프로젝트. 쇠사슬을 보는 즉시 훈계를 받을 거란 걸 몸으로 기억하기 전까지. 매일 1시간 정도 대장군으로서, 삼촌으로서. 조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훈계를 하는 계획. 그리고. "당분간 2황자, 베딘은 제국 정세에 그 어떠한 관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네, 네? 어, 어찌... 아니, 그 권한은 저만의 권한입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부여하신 권한이지... 아무튼 이는 네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통보다." 마지막으로 그 기간 동안 2황자의 제국 개입을 완전 차단하는 것까지. 전쟁도 없고, 평화롭기만 한 요즘. 나라를 좀먹고 있는 것들을 보며 천천히 뒷방늙은이가 될 줄 알았던 대장군은. '즐겁군, 이렇게 활기 넘치게 부패 귀족들을 썰면서, 조카도 훈육할 수 있다니.' 굉장히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 퍽! 팍! 쿵! 콱! '역시 대장군의 훈계는 일반적인 훈계와는 차원이 다르군.' 종아리 올려! 회초리 짝짝짝! 손바닥 대! 뼈 맞는다 쫙 펴! 짝짝짝! 단순히 이런 수준이 아니라. 예를 들어서 축구를 한다고 치면. 2황자의 포지션을 축구 공으로 만드는 수준의 격 높은 훈계라고 해야 할까. '2황자, 훈계 하면서 얼마나 재미있는 말을 듣길래 빙글빙글 도는 거지.' 얼마나 웃기길래. 그런 모습을 보다가. 뚜르르르르. 난 2황자 침소 위에 곱게 보관되어 있는 아티팩트를 만졌다. 어떻게 써야 마세린 왕국과 연결이 되지? 같은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건드리자마자 알아서 발신음이 들렸고. 딸깍. 상대방이 전화 받는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베딘? 갑자기 이 시간엔 웬일이야?" 목소리의 주인은 마세린 왕국의 왕세녀, 미르네. 원래라면 지금 이렇게 전화를 할 생각이 없었다. 당장은 국내 정세를 정상화 시키는데 최선을 다하려 했으니까. 근데. "미르네 왕녀, 정말 재미있는 짓을 했구나." "...황태자 전하?" "벨로스 제국의 황태자가 가진 정령 친화력을 얼마나 하찮게 봤으면 이딴 장난을 벌이는지." 먼저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설 줄은 생각도 못했다. "키에에에에엑!" 손에 힘을 쥐자마자 반투명한 무언가가 고통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정령이라 해도, 솔 벨로스의 작열통을 참을 순 없는 것이다. "시, 실피네르?!" "그딴 이름이구나, 이 정령은... 뭐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이런 수작질을 한 대가는 준비 됐겠지?" 야, 내가 아직도 호구로 보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