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결여제 (1)
빙결여제 (1)
차윤하. 이명 ‘빙결여제’.본인은 오글거린다고 싫어하지만, 이명 자체는 그녀의 능력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었다.한국의 빙결계 능력자 중 원탑.그 입지에 걸맞게, 헌터계에서 그녀의 위치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S랭크 5위, 소속된 길드는 탑 3 안에 드는 거대 길드인 블랙 소드.압도적인 실력과 위치, 거기에 수려한 외모까지 더해져 발생한 폭발적인 인기까지.겉보기에는 부족한 것 하나 없는, 헌터로서의 완벽한 삶.“…이대로는, 안 돼.”그러나 정작 차윤하 본인은 어째선지 자신의 상황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이대로 가면 계속 내리막일 뿐이야. 돌파구가 필요해. 하지만…”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계속하는 차윤하.덜컥.얼마 후, 돌아온 매니저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켰다.“미안, 오래 기다렸지? 얼른 돌아가자.”리무진은 부드럽게 현장을 빠져나와, 도시의 대로에 오른다.“아까도 말했지만, 오늘 정말 멋지더라! 특히 마지막에 자이언트 리자드의 심장을 빙결창으로 꿰뚫을 때는… 캬. 역시 차윤하! 빙결여제의 클라스 어디 안 갔네. 앞으로도 이대로만 가자.”“…네. 감사합니다.”“일단 길드로 돌아가서 한 시간 정도 쉬자. 그리고 곧바로 다음 미팅 장소로 이동…”“미팅이요? 게이트 들어갔다 오는 날에?”“아, 참. 그 얘기 안 했나…? CF 하나 더 들어왔거든. 그것도 무려 대기업 화장품 회사!”“안 하셨어요.”“아, 미안. 요즘에 바쁘다 보니, 말하는 걸 깜빡했네. 거기다가 갑자기 홍보팀에서 이쪽으로 넘긴 거라, 시간이 없었어.”“…”“그래도 이번 공략,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도 않았고, 잠깐 업체 쪽 사람들 만나고만 오는 거니까… 할 수 있지?”“…알겠어요.”“그래! 이해해 줘서 고맙다.”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매니저님.”“어? 왜, 윤하야.”“정말 이대로 괜찮을까요?”“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니.”“불안해서요. 최근, 성장이 정체된 느낌이네요.”“성장이 정체됐다? …아. 유세화한테 랭킹 4위 빼앗긴 것 때문에 그래? 하하, 난 또 뭐라고.”룸미러로 윤하를 확인하던 매니저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그와 반대로, 윤하의 표정은 계속 어두웠고.“유세화? 걔 거품이야. 반짝 떴다가 금방 가라앉을 거라고. 언론에서는 불 대 얼음, 이런 식으로 너랑 걔를 라이벌 구도로 몰고 가는데, 하나도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네가 지금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금방 다시 4위 자리 되찾을 거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도 노려볼 수도?”“글쎄요. 2주 전에 걔랑 같이 공략 뛰었을 때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던데요. 오히려, 어쩌면… 완전히 추월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던데.”“하이고, 또 그런다! 너 너무 자기 비하가 심해. 좀 더 자신감을 가져.”넉살 좋게 떠드는 매니저.그럼에도 차윤하의 표정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매번 이런 식이지.’매니저는 늘 차윤하에게 친절했다. 하지만, 그 친절의 깊이는 얕았다.그렇기에 윤하의 말에 귀 기울이질 않았다. 그저 무조건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고 치켜세우기만을 반복할 뿐.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야기해보자. 그렇게 다짐한 윤하는 다시 입을 뗐다.“제가 게이트 공략한 거, 계속 지켜보셨죠. 이번 건 포함해서, 이전 것까지.”“응? 무슨 소릴 하고 있어. 당연히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봤지! 협회 직원들이랑 같이, 같이 투입된 드론캠 통해서.”“어땠나요?”“어땠냐니…? 음… 아름다웠지! 네 손짓 한 번에 꼼짝없이 얼어붙는 몬스터들. 캬! 역시 빙결여제다.”“보완할 점은 없었나요?”“보완할 점? 음… 글쎄? 너무 완벽해서 인간미가 떨어진다는 거?”“…장난치지 말고요. 진지하게.”“하하! 미안. 네 얼굴이 너무 굳어서 풀어주려고 그랬지. 진지하게 말해서, 난 문제없다고 본다. 네 빙결 능력의 강함, 그리고 그 능력의 활용성… 이미 정점에 올랐지.”“…”“언론에서는 널 두고 한국 빙결계 능력자 중 탑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봤을 때, 윤하 넌 세계에서 탑이야.”매니저의 시선이 다시 한번 룸미러 너머, 뒷좌석의 윤하를 향했다.“-이제 좀 위로가 됐으려나, 우리 공주님?”그가 느끼한 멘트와 함께 윙크를 날리자, 윤하의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하마터면 진짜로 욕할 뻔했어…’매니저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 저런 멘트를 날리는 건 진짜로 받아주기가 힘들었다.조심스럽게 몇 번 그러지 말아 달라고 돌려서 말하기도 했지만, 바뀌지 않았기에 결국 포기.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욱하는 감정을 꾹꾹 안으로 눌러 담으며, 윤하는 표정을 애써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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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그래. 그럼 됐어. 졸리면 눈 좀 붙여. 도착하면 깨워줄게.”졸리지 않았다.하지만 윤하는 눈을 감고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자는 시늉을 했다.이 이상 대화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답답해.’매니저와 이야기하면 답답했다. 최근에는 그 답답함을 느끼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당연히 차윤하도 완벽한 헌터가 아니었고.만약 매니저가 제대로 그녀의 최근 전투 장면을 지켜보았다면, 분명 그녀와 같은 것을 느꼈으리라.‘…빙결계 능력은, 정말로 완벽한 걸까?’몬스터를 직접 얼리거나 생성한 얼음으로 타격하고, 얼음 구조물로 각종 지형을 생성해 팀원을 보조하거나 몬스터를 압박하고.세간에서는 빙결계 능력을 ‘단점이 없는 육각형’으로 평가했다.실제로 세계 각국의 헌터 랭킹에서는 빙결계 능력자들이 다수 상위권을 차지했고, 한국도 마찬가지.하지만 차윤하 본인의 생각은 달랐다.‘최근 들어, 전투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잦아졌어. 특히, 화력이 부족해.’빙결 능력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가 부쩍 늘고, 플랜 B인 생성된 얼음으로 타격하는 방식도 점차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같은 급의 몬스터를 처리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방법이 필요해. 능력을 강화할 방법. 새로운 활용법이건, 뭐가 됐건…’하지만 과연, 윤하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매니저가 귀담아 들어줄 것인가?‘…진지하게 들을 리가 없지. 또 괜한 걱정이라고 대충 무마하고 넘어갈 게 뻔해.’정말로 그가 진지하게 그녀의 전투를 지켜봤다면,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다.길어지는 전투 시간, 점점 빙결에 내성을 갖춰가는 몬스터들, 헌터계에 종사하는 자라면 누구라도 알아차릴 명백한 이상현상.하지만 매니저는 전혀 모르고 있다.그러면 가능성은 두 가지. 전투를 지켜봤다는 게 거짓말이거나, 최소한의 안목조차 갖추지 못했거나.어느 쪽이건, 그로서는 윤하의 고민을 해결해주지 못하리라.‘언제 한번, 직접 길드 전략분석실에 찾아가 봐야겠어.’그렇게 결심하고, 윤하는 차가 블랙소드 본부 건물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고 가만히 자는 척을 했다.“다 도착했다, 윤하야!”차에서 내린 두 사람.“휴게실에서 편히 쉬고 있어! 나는 다른 업무가 있어서. 시간 되면 픽업하러 올게.”“네. 다녀오세요.”어딘가로 바삐 떠나는 매니저를 보내고, 윤하가 블랙소드 건물의 정문을 향해 걷던 그때였다.띠리리리-“?”갑자기 울리는 차윤하의 스마트폰.확인해보니 모르는 번호였다.“누구지?”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애초에 블랙소드에서 윤하의 연락처를 철저하게 관리하기에, 그 흔한 스팸전화 한번 온 적 없었다.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윤하는,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고 얼굴로 가져갔다.“여보세요?”-차윤하 씨 번호, 맞습니까?“누구시죠?”-반갑습니다. 길드 ‘레버넌트’의 길드장, 백도현입니다.“…”레버넌트, 레버넌트… 속으로 이름을 수차례 되짚은 후에야, 그녀는 어디서 그 이름을 들었는지 떠올렸다.최근 화제가 되었던 새로운 길드.백명그룹에서 직접 관여했기에, 드디어 백명 그룹이 헌터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며 한동안 헌터계에서는 화제였다.-백명이라고 뭘 할 수 있겠어? 돈을 아무리 쏟아봐야 노하우가 없는데. 더군다나 그 백도현이란 자식은 순 양아치더만. 또 뭐, 1등을 노린다고? 하. 웃기지도 않는구만…매니저는 그렇게 말했다.틀린 말은 아니었다. 백도현. 백명 그룹의 망나니.음주 후 난동을 부리다 출동한 경찰에게 테이저 건을 맞았다던가, SNS상으로 팔로우한 여자 인플루언서들에게 DM으로 추근덕댔다던가, 직원들에게 고함을 치는 영상이 퍼졌다던가…심지어 최근에는 모 헌터와 게임 상으로 시비가 붙어 찾아갔다가 제대로 혼났다던가.세상 물정에 관심 없는 그녀조차 이름을 알만큼, 백도현은 유명인사였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레버넌트는 앞으로 미래를 함께할 유망한 헌터들을 계속해서 모집할 생각입니다.-구체적인 목표를 묻고 싶습니다!-1위. 당연히 업계 탑 말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매니저가 폰으로 백도현이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고 있을 때, 지나가던 윤하가 우연히 듣게 된 백도현의 당찬 포부.“레버넌트. 이번에 새로 생긴 길드죠. 혹시 스카우트 전화인가요?”-오, 저희 길드를 알고 계셨군요.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습니다…“거절할게요.”-…이런. 매정하시네요.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보시지도 않고.“들을 게 있나요? 제가 몸담고 있는, 10년 가까이 운영해 온 베테랑 거대 길드 블랙소드. 그리고 생긴 지 며칠 되지도 않은, 헌터 한 명 없는 신생 길드.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 뻔하지 않나요?”오히려 윤하는 도현에 대한 평가를 살짝 상향조정하기까지 했다.신생 길드 주제에, 거대 길드 소속 S랭크 상위권인 자신을 영입하려 시도하는 그 대담함에.“제 입장에서는 그쪽을 선택할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럼 이만.”전화를 끊으려는 윤하를,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온 한마디가 붙잡는다.-정말로 저희와 함께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시나요?뻔한 허세.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왠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무슨 말씀이시죠?”-그 이유, 저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그럼 말씀해 보세요.”-최근, 고민이 생기지 않았나요?“하. 점쟁이나 칠 싸구려 멘트네요. 누구나 고민 한 두 개쯤은 있는 법인데-”-정확히는, 본인의 능력에 대해서 말이죠.“…!”-윤하 씨?“……어처구니가 없군요. 끊을게요.”뚝.당황해서 전화를 끊었지만, 놀란 윤하의 심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어떻게 안 거지?’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 없는 고민. 설마 그 남자가 알고 있는 걸까?하지만 이내 윤하는 고개를 저었다.‘얻어걸린 거겠지. 헌터라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한 번쯤은 고민하니까…’그렇게 스스로를 애써 위안하며, 윤하는 블랙소드의 정문으로 들어갔다.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와중에도, 그녀의 가슴 한구석에 남은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았다.거기에 더해, 뇌리에 박힌 레버넌트의 백도현이란 이름도.***“-끊었네요. 분명히 영입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으셨나요? 오히려 반감만 산 것 같은데.”나와 차윤하의 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서현은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아니, 이걸로 확실해졌네요.”“네?”“차윤하는 지금 자기 능력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방금 대화에서, 그걸 어떻게 알아채나요? 그냥 던진 멘트 아니었나요?”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으니까.-야, 차윤하. 그거 아냐? 너 정곡을 찔리면, 순간적으로 굳어서 아무것도 못하더라.-뭐? 그럴 리가.-…창고에 있던 비상식량, 네가 먹었지?-…!-내가 협회장한테 지시받아서 따로 빼놨던 건데. 출동했다 돌아온 헌터들 나눠주라고.-……아, 아닌데.-거봐라. 배고프면 말을 하지. 내가 뭐라도 만들어줄텐데.-…시끄러워.그녀와 함께 저항군에 있던 시절 알게 된, 그녀의 버릇이 있거든.이걸로 확실해졌다.전생에 그녀에게 들은 대로, 이 시기 그녀는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공략할 포인트도 알았겠다, 그럼 본격적으로 움직여 볼까요?”한시라도 빨리 우리 길드로 그녀를 데려와야 한다.그래야 그녀가 제대로 성장해서 내 계획에 필요한 인재가 되어줄테니까.그리고 하나 더.…내게 건네준 그 정체불명의 반지에 대해서도 물어봐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