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솔, 그리고 마스크
윤솔, 그리고 마스크
직원의 브리핑에 집중하던 헌터들과 관계자들의 시선이, 이제는 모조리 내게 쏠린다.“네가 왜 여기…!”그런 주위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목소리는 전혀 않는 윤솔.웅성웅성.-뭐야? 방금 들어온 사람은… 백도현!? 설마 이번 공략 참관하러 온 거야?-근데 저 헌터는 누구지?-그 왜, 알잖아. 백도현 현피 사건.-아아! 설마 본인이야?이제 대놓고 수군대는 사람들.“어, 어어, 이게 무슨…”나를 데리고 온 실장은 당황해서 두리번거릴 뿐이었다.“저기요!”그때, 브리핑을 진행하던 협회 여직원이 큰소리로 외쳤다.“윤솔 헌터! 브리핑 중에 뭐 하는 짓입니까!”“아차… 죄, 죄송합니다.”“그리고 다들 주목하세요! 아직 브리핑 중입니다.”여직원이 나서서 사태를 정리하고, 윤솔이 황급하게 자리에 다시 앉는 것으로 브리핑이 재개되었다.그러나 사람들의 태도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거의 모두가 나를 슬쩍슬쩍 훔쳐보는 상황.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리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다.레버넌트 길드의 설립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이후, 대중의 반응은 한결같았다.-오, 드디어 백명도 헌터계에 진출하는 거임? 재벌 중에선 유일하게 헌터 길드 운영 안 하고 있었잖아.ㄴ근데 길드장이 백도현임.ㄴ엌ㅋㅋㅋ 어떻게 길드장잌ㅋㅋ 그 긴겈ㅋㅋㅋㄴ 그 긴 게 뭐임?ㄴ있음 백도현 별명. 음주난동테이저건직원욕설DM껄떡ㄴㅋㅋㅋㅋ대단하네. 자잘한 건 생략했는데도 저 정도?물론 이해가 가능한 반응이긴 하다.불과 두 달까지도 찌질한 사고나 치고 다니던 내가, 갑자기 헌터 길드를 세우겠다고 백명그룹을 등에 업고 나타났으니.헌터계도 마찬가지로 나를 반기지 않았다.오히려 업계 사정을 더 잘 알기에, 더욱더 대놓고 내게 반감을 드러냈지.[제목: 아니 백도현 그 새끼는 갑자기 왜 나대는 거임?]헌터계가 ㅈ으로 보이나? 헌터 길드 운영하는 게 무슨 게임인 줄 아는 듯;거기다가 기자회견에서 업계 1위 찍겠다는 거 보고 헛웃음만 나오더라 ㄹㅇ 한국에 재벌이 백명만 있는 줄 아나[댓글]-냅둬. 어차피 세상 물정 모르는 망나니가 나대는 것뿐이니까. 한 1년 운영하다 보면 이 바닥 만만하지 않은 거 깨닫고 조용히 사업 접을 거다.-안 그래도 요즘 헌터들 몸값 오르는데, 백도현이 백명발 자금 시장에 풀면 인플레이션 ㅈ되겠네 ㄷㄷ직장인 전용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 게시글이, 업계의 나를 향한 시선을 단편적으로 나타내고 있다.이런 식으로 한국의 누구도 내 헌터 업계 진출을 반기지 않는 상황.물론 나야, 언제나 그랬듯이 어쩌라고? 마인드로 살고 있긴 하다.욕먹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전생 때도 30대 넘어서 주위 사람들 죽어나가고 한국이 망하기 시작했을 때야 겨우 정신 차렸다.심지어 어디다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다.왜냐? 내가 망나니처럼 산 건 사실이니까.첫 번째 삶에서의 나는 내가 봐도 쓰레기긴 했지.하지만 뭐, 주위에서 뭐라 하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지금도 마찬가지.다른 인간들의 시선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이 자리에서 내 관심사는, 오로지 한 명 뿐이니까.차윤하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살짝 노려보다가, 그대로 고개를 홱 돌렸다.이런. 이렇게 처음부터 어그로를 끌 생각은 아니었는데.이번 참관은 가볍게 차윤하에게 눈도장만 찍을 생각이었는데.겸사겸사 추가로 그녀나 그녀의 매니저에 대해 알아낼 수 있으면 좋고.하지만 윤솔 덕에, 대놓고 ‘나님 등장’하고 어그로를 끈 셈이 되었다.뭐, 어쩔 수 없지. 이미 일어난 일인데.차라리 어그로 끈 김에, 아예 직접 차윤하에게 말을 걸어볼까?“…이것으로 브리핑을 종료하겠습니다.”“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번 게이트 내부는 대기의 조성이 지구와 다르기 때문에 호흡을 위해선 산소마스크가 필수입니다! 지금 바로 B 텐트로 이동해서 장비 지급받으세요.”그때, 브리핑이 끝나고 헌터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뒤편의 출구를 향하는 헌터들은 짜기라도 한 듯 마지막으로 나를 한 번씩 흘겨본 뒤에 퇴장했다.차윤하 또한, 무언가 말하려는 듯 내 앞에 멈춰서 입술을 움찔거리다…“윤하야! 얼른 가자. 네 전용 장비 길드에서 따로 가져왔어.”매니저에 의해 텐트를 떠나게 되었다. 매니저가 대놓고 나를 째려본 건 덤.그렇게 헌터들 모두가 떠나고, 다른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단 한 사람. 윤솔을 빼고.“…야.”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는 그녀.…예쁘긴 뒤지게 예쁘네. 차윤하는 쿨계라면, 윤솔은 운동계지만.“오랜만이네요, 윤솔 씨.”“너, 설마 이번 게이트 공략에 나 있는 거 알고 일부러 찾아온 건 아니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상식적으로 안 좋게 엮였던 사람을 굳이 다시 찾아올 이유가 없잖습니까?”“…어.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한데… 아, 아니! 아무튼. 우연이란 거지?”“네. 애초에 공략 명단은 비공개니까요.”“뭔가 이상한데… 일단 알겠어. 아무튼, 조심해, 너.”“또 협박입니까? 저번 일에 대한건 전화로 직접 사과드리지 않았습니까.”물론 아버지께서, 내가 직접 사과 안 하면 백명전자 시베리아 지부로 좌천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지만.“그래. 사과받았으니까 그때 이야기는 다시 안 꺼낼 거야. 그거 말고. 다른 거.”“다른 거요?”윤솔은 주변의 눈치를 슬쩍 보다, 목소리를 낮췄다.“…너, 이미지 안 좋은 거 알지? 특히 헌터고 헌터업계 종사자고 다들 너를 꼽게 보고 있어.”“네, 아주 잘 알죠. 블라블라에 제 이름 쳐봤거든요.”“뭐? 왜 그런 짓을 해? 욕 먹는 게 취향이야? …아니. 아! 자꾸 말리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네.”“…욕먹지 않게 조심하라고. ”“!”“괜히 평소처럼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조용히 참관하다 가. S랭크 차윤하까지 참여한 대규모 공략이니까, 참관하다 보면 분명 배울 게 있을 거야.”“…의외인데요.”“뭐가?”“혹시 저한테 관심 있으십니까?”“뭐!?”“그렇지 않고서야, 현피까지 떴던 상대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조언해 줄 이유가 없지 않나요?”“무, 무슨 헛소리야! 업계 선배로서 특별히 케어해 주는 것뿐이야. 네 평소 행실 보니까 왠지 사고 칠 것 같아서 더 불안하기도 하고.”윤솔은 마지막으로 검지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척, 가리켰다.“이상한 착각 하지 마! 너, 내 취향 아니야.”그대로 씩씩한 발걸음으로 텐트를 나서는 그녀.“…하하.”그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20살의 윤솔도, 미래의 윤솔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야, 금수저! 언더워치 1:1빵 뜨자. 이번에는 안 봐준다!순간 미래의 윤솔과 함께 저항군에서 보냈던 시간이 떠올랐다.S랭크 9위, 윤솔.저항군에 내가 처음 합류했을 때, 과거의 일은 잊었다고 먼저 호탕하게 손을 내밀던 그녀.지금의 윤솔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의외로 주변을 챙기는 털털한 여자였다.-야. 미안. 앞으로는 같이 언더워치 못하겠네…순간 내 품에 안긴 채로 죽어가던 윤솔의 모습이, 다시 머릿속에 살아났다.“…기다려.”차윤하 다음은 네 차례니까.나도 텐트를 나와, 김실장과 함께 게이트 앞으로 이동했다.헌터들은 이미 게이트 앞에 모여 각자 준비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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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기존의 장비에 더해, 추가로 투명한 마스크를 들고 있었다.“저 장비는…”“아, 협회에서 지급한 산소마스크입니다. 이번 게이트는 브리핑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지구의 공기와는 다른 성분의 대기로 이루어져 있다는군요.”“오, 그렇군요.”“조금이라도 마시면 곧바로 현기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거기서 몇 분 더 있으면 폐에 직접적으로 데미지를 준 다나요. 따라서 호흡을 위해서는 별도로 산소를 공급할 필요가 있죠. 그걸 위한 산소마스크입니다.”거기다가 저 마스크는 국산입니다, 따위의 TMI를 늘어놓는 실장.무슨 장비인지는 나도 알고 있다.헌터 전용으로 설계된 특수 산소마스크.산소 공급은 마스크 내부에 들어있는 자그마한 룬석이 하므로, 굳이 산소통을 짊어질 필요 없이 마스크만 착용하면 된다.전생에서 지겹도록 다뤄봤던 장비니까.독을 발산하는 타입의 그것들을 상대로 저항군이 착용하던 장비고, 저항군의 물자 관리는 내 몫이었으니.엔지니어가 바쁠 때는 내가 간단한 수리까지 했지.뜻밖의 장소에서 추억이 담긴 물건을 마주쳤군.물론 내가 다뤘던 건 15년 뒤의 최신 모델이긴 하지만.“…응?”그렇게 헌터들이 들고 있는 마스크를 쭉 훑어보다, 차윤하만 혼자 다른 마스크를 들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다른 헌터들은 모두 투명한 마스크지만, 차윤하 혼자 검은색 무광으로 코팅된, 어딘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마스크를 들고 있었다.“아, 차윤하 헌터는 보급품을 쓰지 않고 개인 지참품을 쓰려나 보네요. 하긴 뭐, 블랙소드라면 그녀에게 최고급 장비로 쫙 맞춰줬을 테니.”“아하.”실장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치며, 마스크를 쓰려는 차윤하를 지켜봤다.다른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입에 대고, 마스크 한쪽에 연결된 얼굴에 고정하는 끈을 뒤통수로 한 바퀴 두른 다음, 반대쪽에 체결-하지 못했다.마스크에 연결하는, 끈의 끝부분에 매달린 사각형의 부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윤하는 계속해서 끝부분을 마스크에 갖다 대었지만 계속해서 떨어질 뿐이었다.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리던 윤하는, 근처에 서서 어딘가에 전화하고 있던 차윤하의 매니저를 불렀다.마스크를 받아 든 매니저는, 마찬가지로 계속 연결해보려 했지만 잘 안 되는 듯했고.“…”그들을 유심히 지켜봤다.매니저는 2분 정도 계속해서 끈을 마스크에 결합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마침내 성공한 듯, 씨익 웃으며 차윤하에게 마스크를 돌려줬다.그대로 마스크를 쓰고,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차윤하.“…스읍.”“왜 그러시죠?”“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순전한 감에 불과하다. 그저 멀리서 지켜본 것만 가지고 내리는 추측.하지만… 직감이 내게 보내는 경고를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차윤하의 마스크, 뭔가 좀 느낌이 이상하다.“그러고 보니 그 소식 들으셨나요, 실장님?”적당한 소재로 실장과 대화를 이어나가며, 걷는 방향을 차윤하 쪽으로 돌린다.잡담 도중에 우연히 지나쳤다, 는 핑계를 만들기 위한 행동.그렇게 두 사람의 주의를 끌지 않게, 가능한 차윤하와 가까운 거리에서 걷는 속도를 늦추며 그녀 곁을 지나갔다.겉으로는 여전히 실장과 대화를 나누며.하지만 시선은 차윤하의 마스크에 고정되어 있었고, 두 귀 또한 실장의 대답 대신 그녀 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시이이익-정말, 아주 작은 바람 소리가 들렸다.소리가 날 거라고 미리 인지하고 가까이서 듣는 게 아니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희미한.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았다.그럼 어떡할까.모른 척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가 개입하지 않는다 해도, 차윤하는 아마 무사할 것이다.이미 미래에서 만난 그녀의 몸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니까.만약 이 마스크로 인해 그녀가 치명적인 장애를 입었다면, 미래에서 그녀에게 이 사건에 대해 미리 들었겠지.더군다나 윤솔이 아까 경고했던 대로, 내게는 이미 어그로가 잔뜩 끌린 상황. 괜한 짓을 해서 더 이목을 끌 필요는 없다-“잠시만요, 차윤하 씨.”“?”하지만 이성이 판단을 끝내기도 전에, 이미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헌터에게 장비는 생명인데, 거기에 문제 생긴 걸 모른 척한다고?“그 마스크, 아무래도 문제 생긴 것 같습니다. 다른 걸 쓰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