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손님의 취향은 비밀!
7. 손님의 취향은 비밀!
“면접은 지난번에 봤으니까 넘어가고-.” 구석에 짱 박아뒀던 레네아의 면접 기록을 다시 꺼내 든다.나이 1,901살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눈에 띈다. “우리 메라클은 총 세 가지 회원제가 있습니다. 베이직, 스탠다드 그리고 프리미엄.” 김양이 건넨 카탈로그를 보면서 듣는 레네아. “매칭 횟수의 차이부터 시작해서, 매니저 상담, 채팅 만남, 스튜디오 촬영과 스타일링, 이별 컨설팅 등. 순차적으로 서비스가 추가되고 질이 향상됩니다.”“이별 컨설팅?” 뜬금없다고 생각한 모양인데.의외로 이별 컨설팅이 가장 효과적인 연애 코칭이 가능하다. “보통 한 번의 만남으로 연결되는 사람은 드뭅니다. 해당 고객이 마음에 안 들었던 이유를 듣고, 단점을 보완하는 게 바로 이별 컨설팅입니다.”“오오오.” 물론, 레네아는 그다지 효과는 없을 듯싶었다.얘는 까이면 열에 아홉은 나이 때문일 테니까. “생각보다 훨씬 체계적이로구나?”“그럼요, 전문가인걸요. 그러면 바로 프리미엄으로 계약하실까요?”“큼, 덜컥 가장 비싼 걸로 하기에는-.” 내쫓고 싶어지네. “2억을 받았으면서 뭔-.”“아, 그거 할 말이 있다! 아니, 실수령액은 반토막나서 1억만 받았단 말이다!”“예? 아니, 어쩌다?”“4층 출신이고, 헌터 자격증도 없으며, 3층에 내려온 기간도 짧다면서 이것저것 세금이 붙더니 반을 가져갔다! 3층은 도둑놈들 천지라고 하더니 설마 내가 이렇게 당할 줄은-!” 불끈 주먹을 쥐며 분통을 터트리는 엘프여왕.굉장히 분했는지 눈가가 촉촉하다. “그래서 돈 아껴야 한단다.”“프리미엄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500만 원밖에 안 해요.” “500만 원?!”“탑혼이나 웨딩컴퍼니는 가장 비싼 회원제가 1,000만 원까지 가고, 로열매칭 애들은 2,000만 원도 호가하는데요? 이 정도면 우습죠.”“아, 아니. 사람 만나게 해주는 걸로 뭐 그렇게까지-.”“어허, 그냥 사람이 아니죠. 평생을 함께할 반려를 만나는 겁니다.” 그럼에도 레네아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후, 어쩔 수 없지. “손해 같습니까?”“조, 조금……? 아니, 무조건 될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은밀하니 레네아에게 검은 진실을 알려준다. “프리미엄 회원제를 하는데 우리가 아무나 소개해 드리겠습니까? 돈 많은 사람이랑 연결해주지?” 쫑긋!엘프 귀가 움직였다. “그렇게 결혼하면요? 500만 원? 아, 우습죠. 우리 회원님들 중에는 억대 연봉도 우습게 버는 사람들도 많아요.”“지, 진짜?”“지난번에 이강호 헌터. 편차치는 있지만 성수기에는 월에 억 단위까지 벌어본 적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보다 훨씬 약하던 이강호가 그만큼 번다는 것에 놀란 듯하다.하지만 헌터 일을 할 때, 실력이 좋다고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다.실력이 뛰어나도 돈을 적게 버는 헌터도 있고 반대도 마찬가지.이강호 헌터는 엄밀히 따지면 후자였다. 실력에 비해서 더 큰돈을 벌 줄 아는 헌터. “1,901년을 기다려 온 결혼. 화끈한 남자로 붙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조, 좋구나! 프리미엄으로 부탁하네!”“알겠습니다! 김양아, 프리미엄으로 계약서 가져와라!”“여기.” 빠른 일처리.김양이 눈치는 좋다. 끄적끄적 열심히 사인하는 레네아를 보고 있자니 사기꾼들이 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노리는지 알겠다. “아참! 내가 생각한 게 하나 있단다.” 계약서를 쓰다 말고 레네아가 목소리를 낮춘다. “사실 본녀의 나이가 조금 문제이지 않느냐?”“조금이 아니라, 많이 문제죠.”“으흠! 하여튼. 내가 그걸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단다.”“해결 방법이요?” 엘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악한 미소. “나이를 속이는 거지.”“그거 걸리면 고소당한다고요.” 어이가 없네.결혼 시장에서 나이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데. 특히나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연상을 절대로 취급하지 않는 부류도 꽤나 많다. 하지만 레네아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는지, 책상을 ‘탕탕!’ 두드리며 계속 말한다. “알아! 본녀도 알고 있어! 그런데 말이지. 생각해 보면 이게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단다.”“…….”“일단 내 외모. 솔직히 인간으로 치면 20대라고 말해도 믿을 게야. 사장, 자네도 그랬으니까.” 이건 뭐.인정할 수밖에 없다. 엘프들 특유의 아름다운 외모는 세월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다.덕분에 첫 만남에서도 20대라는 말에 홀랑 속았지. “일단 속이고 결혼하는 거지. 그 뒤에는 그냥 꽁냥꽁냥 잘 살면 되는 거고.”“뭐, 계획이 있다면서요.”“본녀가 엘프인 게 계획이지. 생각해 보게나, 어쨌든 이 몸은 남편보다 오래 살 거란 말이지? 계속 이 얼굴로?”“…….”“그럼 남편한테는 사실상 본녀가 어린것과 나이 많은 것의 차이가 있나?!”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엘프는 원래 그렇게 다 사이코패스입니까?”“간절한 거라고 해주다오!” 굳이 답하지 않고 어색한 헛기침 후, 다시 이어 말한다. “무작정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잖느냐? 솔직히 밝히지만 않으면, 거짓말이 걸릴 일도 없고.”“…….” 이 부분은 입을 다물게 된다.실제로 나도 속았으니까. “사, 사장아. 진짜 몰랐어?”“응, 몰랐지.”“대단하네에 엘프.” 으쓱거리는 레네아.하지만 김양은 단순한 칭찬 정도로 넘어가지 않았다. “사, 사장아는 거짓말도 다 간파해.”“뭐, 능력이라도 했느냐?”“아냐! 가, 감이 좋다고 할까? 엄청 잘 찾아!” 김양의 말대로.내게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거짓말에 대한 후각이 상당히 좋다는 거였다. “결과적으로 할머니라는 걸 밝혀내긴 했잖아.” 1,901살 양심 뒤진 할머니를 검거하는데 성공하긴 했으니, 아직 후각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크흠, 그래그래. 네가 감이 좋다는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으니까. 나이를 속이면 들킬 일이-.”“사, 사장아.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가는 김양의 말에 흠칫 떤 레네아.문이 닫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휴우, 본녀한테 말한 줄 알았구나.”“본인이 쓰레기라는 자각은 있어서 다행입니다.”“큼큼.” 그 뒤로도 대화는 평행선을 이뤘다. “아니, 회사 차원에서는 그런 거짓말을 묵인할 수가 없다니까요? 우리도 공범이 된다고!”“20살 엘프랑 1,901살 엘프랑 외형 면에서 같다면, 사실 그건 20살 엘프인 게 아닐까?!”“고객님 진짜 맞을래요? 누구 회사 말아먹고 싶어서 작정했나-!” 덜컹. “사장아, 손님 왔어.” 쓰레기 버리고 들어온다던 김양이 손님을 데리고 같이 왔다. 나와 레네아는 냉큼 대화를 멈추고 미소를 짓는다.나는 손님이기 때문이고, 레네아는 미남 고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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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기적을 찾아드립니다. 어서 오세요, 메라클입니다.”“안녕하세요. 어제 잠깐 들렀는데 사장님이 안 계신다고 해서 오늘 다시 왔습니다.” 어제 족발 회식 자리에서 김양이 말했던 ‘탑 층간 가이드’인 남자였다. “일단 상담실로 가실게요.”“어, 선객이 계신 거 아닌가요?” 자신을 가리키는 남자에 레네아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인다. “그, 그렇게 말 걸지 마세요. 저는 이제 막 숲에서 나온 파릇파릇한 스무 살이라 남자와 눈을 잘 못 맞춰요.”“네? 아, 죄송합니다!” 아, 그런 컨셉?진짜 이게 연륜이지. 그냥 바로 자기 컨셉을 카멜레온처럼 바꾸는 거 봐라.엘프가 아니라 리자드맨인 줄 알았다. “무시하고 들어오세요.”“어머, 그렇게 험하게 말씀하시면 가슴이 아파요. 아직 스무 살. 저는 험한 말에 쉽게 상처 받지만, 또 올곧게 잘 이겨낼 수 있는 굳센 심지까지 가지고 있답니다.” 미친년이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고 있네. 손님을 먼저 상담실로 들어가게 하면서 뒤로 중지를 날려주자, 레네아도 바로 쌍중지를 들며 응수했다. 철컥. “크흠, 자. 일단 기본적인 질문부터 진행하겠습니다.”“어, 아직 결제나 회원등록도 안 했는데 괜찮나요?” 어리숙하니 묻는 남자에게 자본주의의 미소를 지어준다. “걱정 마세요, 상담을 받으시고. 무료 매칭 1회를 해보신 다음에 괜찮다고 느끼시면 가입하셔도 됩니다.”“그렇게 까지요?”“그럼요, 고객님처럼 미남분들께는 이렇게 서비스도 몰래 찔러 드립니다.” 농담 아니고 진짜다.이강호 헌터나 유미아도 이런 서비스 받았다. 미남미녀가 많아야, 결혼정보회사는 손님이 몰린다. 1,901살 할머니는 상상도 못 할 서비스다. 질문지와 펜을 쥔 채로 면접을 시작한다.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이철수입니다.”“나이는요?”“27살이요.”“오, 젊으시네요. 27살이면 남자치고는 좀 이르게 오셨는데, 이쪽 시장에서는 충분히 이점입니다.” [외모:A]로 측정. “업무는 가이드를 하신다고 제가 따로 들었는데.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4, 5층에서 3층 서울로 내려오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한테 서울 가이드를 해주는 겁니다.”“음, 소득은 어느 정도 되나요?”“월 300만 원 정도 받습니다.” 준수하다.27살에 300만 원이면 충분하다. “아, 근데 인센티브 쪽도 좀 있어서요. 뭐, 예를 들면 제휴 업체 상품을 고객님들이 구매하시면 추가금이 저한테 들어오는 식으로.”“좋네요. 혹시 저축해 두신 건 있으신가요?”“사실, 통장에는 31억 정도 있습니다.”“네에, 31억-.” 뭐? “31억이요? 뭐 3살 때부터 가이드 일 하셨어요?” 재력 수준이 말도 안 되는데?당황한 내게 이철수는 머쓱하니 고백한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모님이 좀 많이 잘 사세요. 강남 쪽에 건물 몇 채 가지고 계시거든요.”“이 정도면 농담 아니라 원하시는 사람 다 골라서 만나실 수 있으신데요?” 결혼정보회사에 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 왔는데?내 반응에 이철수는 조금 목소리를 낮추며 몸을 앞으로 내민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취향이 있는데. 메라클이면 만날 수 있을 거 같아서 찾아왔습니다.”“취향이요? 아, 말씀하세요. 저는 어떤 선입견도 없으니까요.” 다시 자본주의 미소.우량주 고객님은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반응에 안심했는지 이철수는 몸에 힘을 풀고 설명한다. “그, 저는 5층 출신들을 좀 만나고 싶습니다.”“5층이면 ‘구 무림’이요? 아, 그럴 수 있죠. ‘구 무림’ 쪽은 특히나 이성에게 보수적이라 한 번 사귀면 결혼까지-.”“수인이 취향입니다.”“네, 수인이요. 뭐 특별히 이상한 취향도 아니신데요?” 수인 취향은 이쪽 세계에서 보편적이다.여자는 고양이, 토끼, 여우.남자는 호랑이, 소, 늑대. 당장에 우리 김양만 해도 양 수인이지 않냐고 말하려는데-. 일순, 이질감이 들었다.이철수는 표정 변화 없이 있지만, 방금 대화에서 풍기는 희미한 위화감. 그리고 바로 이게, 내가 말하는 ‘거짓말에 대한 감이 좋다’는 부분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떠볼 필요가 있다. “크흠, 저기 이철수 씨.”“예?”“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정말로 수인이면 됩니까?” 말문이 막힌 듯 눈동자가 굴러간다. 이러다 도망칠 거 같은 분위기. 나는 슬쩍 핸드폰을 꺼내서 ‘포캇몬스터’에 나오는 포캇몬들을 보여준다.수인에서 유추한 답안지. “혹시 이런 느낌, 맞으실까요?” 척하면 척.딱 알아채자 이철수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더니 환하게 웃는다. “아, 네! 맞습니다! 딱 이런 느낌입니다! 여, 역시 메라클!”“하하, 특이한 것도 아닙니다 이런 취향은.”“아, 그래요?! 그렇죠! 역시!” 특이한 취향 맞아, 이 새끼야. “가능하면 네 발로-!” 하여튼,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것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