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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개는 짖지 않는다]

식선검귀 (食仙劍鬼) — novel.naver.com · All chapters

10화 [개는 짖지 않는다]

붉은빛이 석실의 어둠을 밀어냈다.

이하성의 손목에서 시작된 핏빛 문양이 팔뚝을 타고 어깨로, 목으로 번졌다. 뱀이 허물을 벗듯 피부 위로 붉은 선이 새겨지고, 그 선을 따라 피가 솟았다. 터져 나온 피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허공에 뜬 채 그의 손 앞에서 길게 늘어나 칼날 모양으로 굳었다.

"혈세공(血世功)."

이하성이 핏빛 장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제 피로 세상을 짓는다는 뜻이에요. 멋지죠? 선배님은 검 한 자루 빌려서 오셨지만, 저는 필요할 때마다 몸에서 꺼내 쓰거든요."

위강은 대답 대신 반 걸음 물러나 한림과의 거리를 쟀다. 석대와 자신 사이는 여덟 걸음. 이하성은 그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급하시죠? 마음이 보여요."

이하성이 웃었다.

"그럼 빨리 끝내 드릴게요."

그 순간 석실의 붉은빛이 한 점으로 뭉쳤다.

쾅!

바닥이 터졌다. 이하성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위강의 좌측에서 나타났다. 속도는 단혁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핏빛 검이 목을 노리고 횡으로 그어졌다.

위강의 철검이 올라갔다.

쨍!

검과 검이 부딪쳤는데 쇳소리가 아니라 유리가 깨지는 듯한 맑은 소리가 났다. 위강의 팔이 저릿했다. 이하성의 검은 부딪치는 순간 형태를 바꿨다. 칼날이 사슬처럼 풀려 위강의 검을 휘감으려 했다.

위강은 검을 비틀어 빼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풀려난 핏빛 채찍이 그가 서 있던 자리의 바닥을 긁었고, 돌바닥에 석 자 깊이의 골이 파였다.

"반응이 빠르시네요."

이하성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위강은 돌아보지 않고 철검을 뒤로 찔렀다. 검끝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이하성의 몸이 핏빛 안개로 흩어졌다가 열 걸음 밖에서 다시 형태를 이루었다.

"아, 이건 분신이에요. 진짜는 이쪽."

핏빛 안개가 열 갈래로 나뉘어 열 명의 이하성이 되었다. 열 명이 동시에 웃으며 위강을 둘러쌌다.

"어느 쪽이 진짜일까요?"

위강의 눈이 가늘어졌다. 열 개의 기운이 모두 똑같았다. 호흡도, 살기도, 심장 박동까지 같았다. 피로 빚은 분신들이 본체와 같은 핏줄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열 명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위강은 처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열 개의 핏빛 검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위에서 내려찍고, 아래에서 올려 베고, 좌우에서 목을 노리고 찔렀다. 위강의 철검이 그 모든 궤적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하나씩 쳐 냈다. 한 번 칠 때마다 검에 금이 한 줄씩 늘었다.

"크윽."

왼쪽 어깨를 핏빛 검날이 스쳤다. 낡은 회색 무복이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베이는 감각이었다.

"맞았다! 맞았어요!"

이하성이 환호했다.

"무신이 피를 흘리네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위강은 어깨의 상처를 보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

열 개의 검이 동시에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위강이 다시 느려졌다.

[문화후강 제이식: 은화삼정(隱火三停), 불씨를 숨기고 세 번 멈춘다]

센불로 급하게 달려드는 상대에게 같은 불로 맞서면 둘 다 탄다. 요리사는 그걸 알았다. 불이 거세질수록 솥뚜껑을 덮고 불씨만 남겨 두는 법이다. 위강의 검이 몸 가까이에 붙었다. 휘두르지 않고, 막지도 않고, 오직 한 점에서 한 점으로만 움직였다.

첫 번째 멈춤.

위강의 검이 정면에서 내려오던 분신의 가슴 한가운데에 멈췄다. 찌른 것이 아니라 그냥 닿은 것이었다. 분신의 움직임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열 명 중 가장 먼저 위강에게 닿은 놈이었다.

두 번째 멈춤.

위강이 검을 거두지 않고 반 바퀴 돌았다. 좌우에서 오던 두 분신의 검이 위강의 검에 감겨 서로를 향했다. 핏빛 검날이 서로의 가슴을 꿰뚫었다. 세 개의 분신이 한꺼번에 터져 붉은 안개가 되었다.

세 번째 멈춤.

위강의 걸음이 딱 한 번 멈췄다. 정확히 일곱 번째 분신의 검이 닿으려는 바로 그 위치에서였다. 박자가 어긋난 분신의 검이 허공을 갈랐고, 그 틈에 위강의 검이 목을 지나갔다.

"어?"

이하성의 분신들 사이에서 당황한 소리가 났다.

"어떻게 진짜를 찾았…"

"찾은 게 아니다."

위강이 검을 거두며 말했다.

"몸에서 나온 건 전부 썰면 된다."

분신 열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칼이 지나간 모든 길에 위강의 진기가 남아 있었고, 그 진기가 핏빛 분신들의 핏줄기를 끊어 놓은 것이었다. 붉은 안개가 가라앉으며 이하성의 본체가 석실 한가운데 드러났다.

이하성의 뺨에 한 줄 선이 그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

이하성이 손끝으로 뺨을 만졌다. 손가락에 묻은 자기 피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이거예요. 이 느낌. 십 년 전에 멀리서 선배님을 훔쳐봤을 때부터 궁금했거든요. 무신의 칼에 베이면 어떤 기분일까. 아프다기보다는, 기쁘네요."

그의 눈이 붉게 번졌다.

"그럼 이제부터는 진짜로 갈게요."

석실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이하성의 온몸에 새겨진 핏빛 문양이 일제히 타올랐다. 피부 아래에서 피가 끓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키가 눈에 띄게 커졌고, 눈동자가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혈세공 제삼장, 적혈해일(赤血海溢)."

이하성이 발을 굴렀다.

석실 바닥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쳤다. 이하성이 이 석실 바닥에 몇 해에 걸쳐 스며들게 해 둔 자신의 피였다. 석실 전체가 그의 몸의 연장이었다. 붉은 파도가 허리 높이까지 차올랐다.

"여긴 처음부터 제 영역이에요, 선배님."

파도가 위강을 덮쳤다. 피가 닿은 곳마다 무복이 녹아내렸다. 위강이 뛰어올라 석실 천장의 쇠사슬을 밟고 몸을 띄웠다. 발끝이 사슬에 닿는 순간 아래에서 핏빛 창 수십 개가 솟구쳤다.

"하하하! 어디 가세요!"

위강은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검을 휘둘렀다. 창들이 동강 났지만 그 뒤에서 창이 또 솟았다. 끝이 없었다. 석실 전체가 피로 이루어진 병기고였다. 위강의 허벅지에 창이 스쳤고, 옆구리에서 피가 튀었고, 쇠사슬이 끊어지며 떨어져 내렸다.

철검이 비명을 질렀다.

쩡!

날이 가운데서 부러졌다. 반 토막이 난 검이 위강의 손에 남았다.

"끝이네요."

이하성이 손을 뻗었다. 핏빛 창 열두 자루가 위강의 사방을 막았다.

위강은 부러진 검을 내려다보았다. 짧은 칼날이 남아 있었다. 반 자 남짓. 그는 그것을 한 번 쥐었다가, 던졌다.

이하성이 아니라 석실 벽을 향해서.

쿵.

부러진 검날이 벽에 꽂혔다. 거기 걸려 있던 검은 천에 싸인 긴 물건이 풀렸다. 천이 흘러내리며 검집 하나가 드러났다.

위강은 석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이곳에 한림의 기운과 함께 또 하나, 십 년 동안 잊을 수 없었던 쇳덩이의 울음이 있다는 것을.

천마검(天魔劍).

혈교주만이 쥘 수 있다는 검이었다. 십 년 전 마지막 혈교주가 쓰러진 뒤 주인을 잃었고, 혈교는 그것을 만마전 깊은 곳에 걸어 둔 채 누구도 뽑지 못했다. 교주 자리를 두고 후보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이유가 바로 저 검이었다.

그리고 십 년 전, 단 한 명, 그 검을 쥐었던 외부인이 있었다.

위강이 허공에서 몸을 던졌다. 창 열두 자루가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벽에 닿는 순간 그의 손이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우웅.

검이 울었다. 십 년 만에 그 손을 다시 만난 것처럼, 석실 전체를 울리는 소리를 냈다. 이하성이 처음으로 주춤했다.

“…그 검을.”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후보 중 누구도 못 뽑은 검을. 저조차도 손을 대면 피부가 타는 검을. 어떻게 선배님은 그렇게 쉽게."

"쉽지 않았다."

위강이 검을 뽑았다.

"십 년 전에도."

검집이 풀리자 흑색의 검신이 드러났다. 칼날 안쪽에 얇은 은빛 선이 흘렀고, 석실의 붉은빛이 그 검신에 닿는 순간 저절로 물러났다. 피로 이루어진 파도가 검 주변에서 갈라졌다. 위강은 왜 이 검이 자신을 받아들이는지 지금은 따지지 않았다. 그 일은 지금 말할 때가 아니었다.

"선배님, 그건 반칙…"

"네가 먼저 내 앞에서 그 사람을 만졌다."

위강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다. 석실의 소음이 모두 가라앉을 만큼.

"반칙은 그쪽이 했다."

이하성이 웃음을 지우고 두 손으로 핏빛 검을 쥐었다. 진짜 전력이었다. 석실의 피가 전부 그의 검 하나로 빨려 들어갔다. 핏빛 검신이 눈이 멀 만큼 붉게 타올랐다.

"혈세공 극의, 만혈귀일(萬血歸一)!"

붉은빛이 한 줄기로 뭉쳐 위강을 향해 쏟아졌다. 석실을 반으로 가를 만한 일격이었다.

위강은 천마검을 아래로 내렸다.

문화후강의 마지막 단계는 센불이 아니다. 불을 올린 다음, 가장 마지막에 불을 끄는 것이다. 맛이 완성되는 순간은 불이 꺼지는 순간이다.

[문화후강 제삼식: 소화일여(消火一如), 불을 끄고 하나가 된다]

위강의 몸에서 모든 기운이 사라졌다. 살기도, 진기도, 호흡도. 석실의 붉은빛 속에서 그는 그냥 한 자루 검을 든 사람이 되었다.

만혈귀일의 붉은 줄기가 위강의 코앞까지 왔다.

위강이 검을 들었다. 아주 천천히. 아침에 솥뚜껑을 여는 손길처럼.

그리고 내렸다.

서걱.

소리는 그것 하나였다.

붉은 줄기가 둘로 갈라졌다. 갈라진 빛이 위강의 양옆을 스쳐 석실 벽을 때렸고, 벽이 폭발했다. 하지만 위강의 몸에는 한 점의 피도 닿지 않았다.

이하성의 가슴에서 가는 붉은 선이 위아래로 그어졌다. 선은 이마에서 시작해 사타구니까지 곧게 이어져 있었다.

“…어?”

이하성이 자기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핏빛 검이 손에서 부서졌다. 몸에 새겨진 문양이 하나씩 꺼졌다. 석실의 피가 일제히 가라앉았다. 이하성이 비틀거리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려는 것을 마지막 진기로 겨우 붙잡고 있었다.

“…크, 하하.”

이하성이 웃었다.

"역시. 역시 선배님이시네요. 십 년을 기다려 만난 보람이 있어요."

위강이 천마검을 거꾸로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아 저 사슬은 저희가 건 게 아니에요. 저건 십 년 전부터…"

그의 눈이 위강의 어깨너머, 석대 위의 한림을 향했다.

"선배님은 정말로 모르시는군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위강의 검이 이하성의 목 앞에서 멈췄다.

"무슨 말이냐."

"궁금하시면 직접 들으세요. 저는 이제 못 알려 드리니까."

이하성의 미소가 마지막으로 짙어졌다.

"하나만 더요. 제가 죽으면 후보 일순위 자리가 비어요. 그 아래 후보들이 눈을 뜨겠죠. 그것도 천마검을 든 선배님을 보고요."

그는 낮게 웃었다.

"전부 선배님 목을 노릴 거예요. 그 검 하나 때문에. 정말 재미있는 밤이 될 거예요."

위강의 검이 움직였다.

이하성의 머리가 석실 바닥에 떨어졌다.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석실의 붉은 안개가 가라앉았다.

위강은 천마검을 쥔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어깨와 옆구리와 허벅지에서 피가 흘러 발밑에 웅덩이가 졌다. 십 년 만에 입은 상처였다.

그는 석대로 걸어갔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핏자국이 찍혔다.

한림이 고개를 들었다. 흐려진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바보. 정말 왔네.”

"그래."

위강이 천마검을 휘둘렀다. 한림의 손목을 묶은 사슬 하나가 끊어졌다. 그 순간 사슬에 새겨진 부적이 불꽃처럼 번쩍였다. 위강의 손등에 화상 같은 상처가 새겨졌지만 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두 번째 사슬, 세 번째 사슬. 끊을 때마다 부적이 그의 손을 태웠다.

"그만해. 그건 내가…"

"말하지 마라."

"위강, 그 사슬은…"

"나중에 들으마."

위강은 마지막 사슬을 끊었다. 한림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고, 위강이 그를 받았다. 십 년 만에 닿은 체온이었다. 가볍고 차가웠다. 위강은 그를 안은 채 무릎을 꿇었다.

위쪽에서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 열 사람, 백 사람. 이하성의 죽음이 만마전 전체에 퍼진 것이다. 혈교의 예비후보들과 그들을 따르는 무사들이 일제히 깨어나 지하로 몰려 내려오고 있었다. 천마검을 든 외부인의 목이 곧 혈교주 자리로 가는 길이 되었다.

위강은 한림을 등에 업었다. 천마검을 고쳐 쥐었다.

"가자."

"어디로?"

"나가는 길에 있는 건 전부 벤다."

그의 눈이 석실 출구를 향했다. 계단 위의 어둠 속에서 수천 개의 발소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위강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