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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올라가는 길은 하나뿐]

식선검귀 (食仙劍鬼) — novel.naver.com · All chapters

11화 [올라가는 길은 하나뿐]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메아리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위강은 한림을 등에 업고 천마검을 오른손에 쥔 채 석실 문을 나섰다. 좁은 돌계단이 위로 구불구불 이어졌고, 계단 끝에서 횃불 수십 개가 붉게 흔들렸다. 이하성의 죽음을 알고 달려온 혈교 무사들이었다.

"저, 저기 있다!"

"이하성 님의 시체다! 놈이 천마검을 들고 있어!"

"뭐? 천마검을?"

술렁임이 순식간에 번졌다. 앞줄의 무사 하나가 눈이 벌게져 소리쳤다.

"저 검을 가져가는 놈이 다음 교주다! 목을 쳐라!"

탐욕이 공포를 밀어냈다. 백 명이 한꺼번에 계단 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좁은 계단이라 한 번에 올 수 있는 인원은 대여섯이었지만 뒤에서 밀어붙이는 힘이 앞사람들을 짐승처럼 몰았다.

"위강."

등 뒤에서 한림의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나왔다.

"날 내려놔. 업고는 못 싸워."

"가만히 있어라."

"십 년 동안 갇혀 있던 사람이야. 무겁지도 않지?"

"가볍다."

위강이 낮게 말했다.

"그게 마음에 안 든다."

그가 검을 들었다.

첫 줄의 다섯이 계단 위에서 칼을 내리쳤다. 위강의 천마검이 아래에서 위로 한 번 올라갔다. 검신 안쪽의 은빛 선이 번득이는 순간 다섯 개의 칼이 칼자루째 잘리고 다섯 명의 몸이 어깨에서 허리까지 갈라져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 뒤의 여섯이 굴러떨어진 시체에 발이 걸려 휘청거렸다. 위강은 반 걸음 앞으로 나서며 검을 옆으로 눕혔다.

여섯 개의 목이 한꺼번에 날았다.

피가 계단을 타고 폭포처럼 흘렀다. 위강은 한 걸음씩 올랐다. 계단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시체가 한 구씩 늘었고, 그 시체를 밟고 다음 무사가 올라왔다가 죽었다. 검은 쉬지 않았다. 천마검은 베는 소리조차 거의 내지 않았다. 아니, 위강의 귀에는 검이 기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십 년을 걸려 있던 검이 피를 먹을 때마다 은빛 선이 더 밝아졌다.

"저, 저건 사람이 아니야…"

"물러서지 마라! 뒤로 물러나는 놈도 벤다!"

뒤에서 누군가 고함쳤다. 그러나 앞줄의 무사들은 이미 무릎이 후들거렸다. 위강은 그들의 눈을 보았다. 쓰러뜨려야 할 적이 아니었다. 길을 막는 짐승이었다. 십 년 전 전장에서는 이런 눈을 보고도 한 번도 칼을 멈춘 적이 없었다. 지금도 멈추지 않았다.

계단 중간에서 위강이 한 번 멈췄다. 앞에 서른, 아래에도 이미 올라온 놈들이 뒤를 막고 있었다. 퇴로가 끊긴 것이다.

"포위했다! 이제 못 도망친다!"

위강은 대답하지 않고 천마검을 아래로 내렸다.

[문화후강 제사식: 개정수화(蓋鼎守火), 솥뚜껑을 덮어 불을 지킨다]

끓는 솥을 지키는 방법은 센불이 아니다. 뚜껑을 덮는 것이다. 열이 새지 않게, 안에 든 것이 상하지 않게.

위강이 한 손으로 검을 쥐고 천천히 원을 그렸다. 업은 한림을 중심에 놓고 반경 석 자의 둥근 선을 허공에 새겼다. 은빛 검기가 선을 따라 맺히며 눈에 보이지 않는 솥뚜껑이 되었다. 앞뒤좌우에서 쏟아진 칼날이 그 선에 닿는 순간 힘없이 튕겨 나갔다. 아니, 튕기는 것이 아니라 닿은 칼날들이 자기 힘에 의해 되돌아가 주인의 몸을 파고들었다.

"으아악!"

"내 칼이! 내 칼이 왜 나한테!"

앞뒤에서 열댓 명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위강은 한림을 지키는 한 손의 원은 풀지 않은 채 다른 손의 검으로 틈을 베었다. 뚜껑을 덮은 채 국을 젓는 요리사의 손놀림이었다. 움직임은 작았고 무사들의 몸은 연달아 갈라졌다.

"한림."

“…응.”

"눈 감고 있어라."

"안 감아도 돼. 십 년 동안 이보다 더한 것도 봤어."

위강의 검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계단 위쪽의 마지막 열이 쓰러졌을 때 만마전 본전의 바닥이 시체로 덮여 있었다. 위강은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다만 어깨와 옆구리의 상처에서 피가 계속 배어 나와 회색 무복이 거의 검붉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대전 한가운데,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허, 이거 참."

핏빛 비단 도포. 비릿한 혈기. 위강이 식선루에서 한 번 본 얼굴이었다.

염라.

혈영법왕이 대전 한복판에 팔짱을 끼고 서서 뼈로 엮은 등롱의 푸른빛을 받고 있었다. 식선루에서 위강의 진기 파동에 맞고 마당으로 나뒹굴었던 그 사내가 이제는 입가에 비웃음을 걸고 있었다.

"무신이시여. 아니, 이제 주방장은 그만두셨나? 십 년 만에 검을 드셨다더니, 그 검이 하필 천마검이라니. 이거 참, 혈교의 법왕으로서 대단히 곤란한데요."

"비켜라."

"비키면 어쩌실 겁니까. 저를 그냥 지나가시게요?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는데?"

염라가 소매 속에서 은옥 노리개를 꺼내 흔들었다. 위강이 식선루에서 받았던 것과 똑같은 물건이었다.

"이건 증표가 아니었어요. 미끼였죠. 제가 생각한 건 정파와 전쟁이 나면 무신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 그 전에 협박해서 무릎 꿇리는 것이었는데."

그가 노리개를 손끝으로 튕겼다. 노리개가 바닥에 떨어져 구르며 맑은 소리를 냈다.

"이하성이 죽었으니 이제 셈이 달라졌습니다. 후보 일순위가 사라졌잖아요? 그럼 서열 이위께서 나서시고, 서열 삼위인 제가 그 뒤를 받치면서 교주 자리의 길이 열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길목에 있는 것이."

염라의 눈이 위강의 손에 쥐인 천마검으로 향했다.

"당신이 쥔 그 검이에요."

"말이 길다."

위강이 한 걸음 내디뎠다.

"서열 삼위."

"예, 예."

"식선루에서 내 제자와 객잔 사람들 앞에서 한림의 이름을 입에 올렸지."

염라의 웃음이 굳었다.

"그, 그건."

"그 입으로."

위강의 검이 허공에서 한 번 그어졌다. 그는 걸음도 크게 옮기지 않았다. 염라가 뒤늦게 혈영보법을 펼치려는 순간 은빛 선이 그의 목을 지나갔다.

“…어?”

염라의 머리가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얼굴에 마지막 표정이 굳어 있었다. 놀라움이었다. 목 없는 몸이 한 박자 늦게 앞으로 쓰러졌다.

"순서가 늦었군."

위강이 바닥에 떨어진 은옥 노리개를 주워 소매에 넣었다.

"네놈 먼저 베었어야 했는데."

대전 천장 위쪽에서 현이 울렸다.

띵.

가느다랗고 맑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 한 음이 대전 전체를 훑고 지나가는 순간 위강의 귓속이 뒤틀렸다. 시체들 사이의 핏물이 물결치듯 파문을 일으켰다. 벽의 등롱이 일제히 꺼졌다 켜졌다.

“…음공이군.”

위강이 고개를 들었다.

대전 이 층 난간에, 칠현금을 무릎에 올려놓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반쯤 감긴 눈에 백발이 허리까지 흘렀고, 손가락은 마른 대나무 같았다. 혈교 서열 이위, 현음마존 악무현. 이하성이 죽었으니 이제 혈교의 가장 높은 후보였다.

"십 년 전 당신이 우리 선대를 도륙할 때."

악무현의 목소리가 낮고 조용했다.

"나는 아직 현을 만지는 아이였소. 내 스승이 당신의 칼 아래에서 죽었고, 나는 그 소리를 평생 잊지 못했소. 그래서 평생 소리만 연마했소."

그의 손가락이 현 위에서 움직였다.

"오늘 그 소리를 돌려드리지."

띠이이잉!

칠현금이 울부짖었다. 일곱 줄이 동시에 튕겨지며 일곱 줄기 음파가 대전을 가로질렀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었다. 위강이 개정수화의 원을 펼쳤지만 음파는 원을 뚫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위강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등 뒤에서 한림이 짧은 신음을 냈다.

"위강, 귀가…"

"안다."

음공은 막을 수 없었다. 소리는 막을수록 안으로 스며들었다. 위강의 고막이 찢어지기 시작했고 시야가 흔들렸다. 둥근 원이 한 겹씩 갈라졌다.

악무현이 두 번째 곡조를 뽑았다.

"십이월혼곡(十二月魂曲), 제일악장. 혼을 베는 소리."

음이 날아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칼이 위강의 가슴과 머리와 단전을 동시에 노렸다. 위강은 천마검으로 허공을 쳐 내려 했지만 소리는 검 바로 옆에서 휘어 들어왔다. 어깨가 다시 갈라졌고, 무릎이 꺾였다.

"크윽."

"위강! 정신 차려!"

“…듣고 있다.”

위강이 이를 악물었다.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그의 눈은 감겨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끓는 소리다.”

[문화후강 제오식: 청비소절(聽沸消節), 끓는 소리를 듣고 불을 끈다]

식선루 주방에서 위강은 눈을 감고도 솥 안의 상태를 알았다. 물이 처음 끓기 시작하는 소리, 거품이 올라오는 소리, 센불에 끓어 넘치기 직전의 소리. 삼 년 동안 매일 새벽 불 앞에서 귀로 익힌 것이었다. 소리에는 박자가 있고, 박자에는 반드시 틈이 있다.

위강은 악무현의 음악을 칼로 듣지 않고 귀로 들었다.

띵, 띠잉, 띵, 띠이잉, 띠.

다섯 번 튕기고 한 번 쉰다. 그 쉼이 곡의 숨이었다. 악무현의 손가락이 다음 음을 고르는 짧은 순간, 일곱 줄 중 마지막 줄이 울리기 전의 침묵.

한 박자의 침묵.

위강이 눈을 떴다.

"거기다."

그의 몸이 대전 바닥을 박찼다. 소리보다 빠르게는 갈 수 없었다. 소리가 쉬는 틈을 정확히 밟았을 뿐이다. 첫 번째 쉼에서 이 층 난간 아래로 뛰었고, 두 번째 쉼에서 난간 기둥을 밟았고, 세 번째 쉼에서 난간 위로 몸을 올렸다. 악무현의 눈이 처음으로 크게 열렸다.

“…내 곡의 호흡을, 어떻게.”

"솥은 거짓말을 안 한다."

위강의 천마검이 일곱 줄을 한꺼번에 그었다.

짱!

칠현금의 줄이 모두 끊어지며 그 반동이 악무현의 손가락을 베었다. 십 년의 연마가 한 번의 칼질에 끊어졌다. 악무현이 반사적으로 소매에서 단검을 뽑아 찔렀지만 위강은 이미 검을 한 번 더 돌린 뒤였다.

악무현의 몸이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대전 바닥에 부딪치기 전에 이미 숨이 끊겨 있었다. 목에서 가슴까지 반듯하게 갈린 몸이었다.

"스승님의 소리는."

바닥에 닿은 시체 옆으로 위강이 내려섰다.

"내 귀에는 안 들렸다. 네 곡이 소음이었다."

위강이 고개를 돌렸다. 대전에는 이제 살아서 서 있는 자가 없었다. 단혁도 독요화도 염라도 악무현도 바닥에 누워 있었고, 그 사이에 삼천 계단 위에서 올라온 수백의 시체가 있었다. 서열 일위부터 오위까지 혈교의 상위 후보 다섯이 모두 이 밤에 죽었다.

"위강."

한림이 속삭였다.

"대단하다. 정말, 십 년 전보다…"

"가자."

위강이 한림을 고쳐 업고 대전 밖으로 걸었다.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만마전 철문 밖으로 나서자 하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삼천 계단이 아래로 길게 펼쳐졌다. 올라올 때 쓰러뜨린 시체들이 계단마다 누워 있었고, 새벽안개 속에서 피 냄새가 짙었다. 위강은 한 칸씩 내려갔다. 한림이 등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위강."

"그래."

"그 검, 아직도 울고 있어?"

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마검의 검신이 손바닥 안에서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한림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처럼.

“…울고 있다.”

"그렇구나."

한림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 뒤로는 말이 없었다. 위강은 한림의 숨소리가 등에 닿는 것을 한 호흡 한 호흡 세며 걸었다.

계단이 끝나는 곳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 사람이 서 있었다.

아니, 사람들이었다.

계단 아래 공터에 이백 명이 넘는 무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푸른 도포에 흰 깃을 단 정파의 무사들이었다. 맨 앞에서 칼을 쥐고 선 중년 사내는 위강이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남궁진."

무림맹주가 검을 반쯤 뽑은 채 위강을 올려다보았다. 식선루 마당에서 위강의 진기에 날아갔던 그 사내였다. 얼굴에 아직 멍자국이 남아 있었다.

"도 대협."

남궁진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당신을 따라 여기까지 왔소. 밤새 만마전 아래에서 기다렸소. 그리고 지금."

그의 시선이 위강의 손으로 내려갔다.

"그 검은 천마검 아니오?"

위강의 걸음이 멈췄다.

"혈교주만이 쥘 수 있다는 검이오. 십 년 전 대혈전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그 검을."

남궁진이 검을 완전히 뽑았다. 그의 뒤에 선 이백 명이 일제히 칼을 들었다. 새벽빛이 칼날 위에 번졌다.

"무신 도위강. 당신이 그 검을 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보시오."

위강은 한림을 업은 채 천마검을 천천히 내렸다. 검 끝이 돌바닥에 닿았다. 등 뒤에서 한림이 희미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는 눈을 감은 채였지만 숨이 약간 빨라졌다.

"설명하자면."

위강이 입을 열었다.

"길다."

"시간은 있소."

"나는 없다."

위강이 한 걸음 내디뎠다. 이백 개의 칼끝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남궁진의 눈이 흔들렸다. 무신의 눈은 평온했다. 그러나 그 평온의 밑바닥에서는 방금 만마전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이 조용히 끓고 있었다.

"비켜라, 남궁진."

위강이 말했다.

"내가 오늘 벤 사람이 오백이 넘는다. 하나 더 늘리고 싶지 않다."

새벽바람이 계단 위로 불어 올랐다. 피 냄새가 안개를 타고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