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천마검]
12화 [천마검]
새벽안개가 계단 아래 공터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이백 개의 칼끝이 위강을 겨누고 있었다. 위강은 한림을 업은 채 천마검을 땅에 끌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검 끝이 돌바닥을 긁는 소리가 길게 울렸다.
"비켜라."
"그럴 수 없소."
남궁진이 검을 겨눈 채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정파 무림맹주, 검성. 천하 십대고수 중 한 명이었고, 그가 평생 닦은 제왕검형은 정파의 정수라 불렸다. 그런 사내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내가 당신을 믿고 싶소. 식선루에서 당신이 주방에서 국을 끓이는 모습을 삼 년 동안 보았소. 그 사람이 혈교의 검을 들고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소."
"이 검은."
"설명은 나중에 듣겠소. 일단 검부터 내려놓으시오."
"못 내려놓는다."
위강이 낮게 말했다. 남궁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 대협, 나는 맹주요. 천마검을 든 자를 그냥 보내면 무림맹 이백 명이 나를 믿지 않소. 이 자리에서 당신이 무슨 사정이 있든, 나는 당신을 막아야 하오."
위강은 한림을 업은 채 한참 남궁진을 바라보았다. 등 뒤에서 한림의 숨이 약하게 닿았다.
"좋다."
위강이 말했다.
"그럼 한 번에 끝내자. 한림이 숨 쉬는 동안 해결해야 한다."
"맹주님!"
남궁진 뒤에서 노장 하나가 소리쳤다.
"저자는 지금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이백이 한꺼번에 치면 됩니다!"
"물러서시오, 장로."
남궁진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명령이었다.
"무인의 도리가 있소. 부상당한 사람을 이백이 둘러쌀 수는 없소. 내가 상대하겠소."
"하지만 맹주님! 저 검은 마검입니다!"
"그러니 맹주인 내가 확인하는 것이오."
남궁진이 검을 고쳐 쥐었다. 푸른 검신에 새벽빛이 스며들며 제왕검형의 기운이 한 줄기로 일어섰다. 위강은 그 기운을 느꼈다. 정직하고 곧은 검이었다. 한 번도 굽은 적 없이 사십 년을 갈고닦은 사내의 검. 그래서 더 무거웠다.
"한림."
위강이 등 뒤에 속삭였다.
"내려놓을 테니 잠깐 서 있을 수 있겠나."
“…한 번쯤은.”
한림이 위강의 등에서 내려와 계단 난간에 기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십 년을 사슬에 묶여 있던 몸은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남궁진의 시선이 그 순간 한림에게 닿았다. 그러다 아주 잠깐, 눈이 멈췄다.
“…?”
"맹주님?"
"아니오."
남궁진이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나 눈동자에 의문이 한 줄 스쳤다.
"시작합시다."
쾅!
두 사람의 발밑 땅이 동시에 갈라졌다.
남궁진의 검이 먼저 나왔다. 제왕검형 제일식, 천지개벽(天地開闢). 푸른 검기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혔다. 이백 명이 선 공터 전체가 그 한 검에 눌려 숨이 막혔다. 위강은 천마검을 비스듬히 들어 받았다.
까아앙!
종소리 같은 소리가 안개를 갈랐다. 위강의 무릎이 한 자 깊이로 땅에 박혔다. 어깨의 상처가 터지며 피가 뿜어졌다. 남궁진의 검은 방금 만마전에서 싸운 어떤 자보다도 무거웠다. 이하성의 검은 기교였고, 남궁진의 검은 정직한 무게였다.
"크윽."
"이게 도 대협의 전력이오?"
남궁진이 검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실망이오. 십 년 전의 무신이라면 이 정도에 무릎을 꿇지 않았을 거요."
"십 년 전에는."
위강이 천마검을 비틀어 남궁진의 검을 흘렸다.
"피를 이렇게 흘리고 시작하지 않았다."
흘려낸 검이 땅을 때려 먼지가 폭발했다. 위강은 그 틈에 반 바퀴 돌아 남궁진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천마검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남궁진이 검을 세워 막았지만 은빛 검기가 푸른 검기를 갈랐다. 남궁진의 도포 소매가 찢어졌다.
“…역시.”
남궁진이 뒤로 물러서며 입가를 닦았다.
"무신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군."
두 번째 격돌. 세 번째 격돌. 대여섯 합이 눈 깜짝할 새 오갔다. 공터의 바닥이 연이어 터졌고, 구경하던 정파의 무사들이 칼을 든 채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의 검기가 부딪칠 때마다 안개가 갈라졌다가 다시 닫혔다.
위강이 밀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게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 번 받을 때마다 숨이 짧아졌고, 발끝이 미끄러졌고, 상처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남궁진의 검은 흔들리지 않았다. 정직한 검은 지치지도 않았다.
"그만하시오!"
남궁진이 외쳤다.
"당신 몸이 버티지 못하오. 검을 놓으면 치료는 내가 책임지겠소!"
"안 놓는다고 했다."
"왜 그 검을 쥐고 있는지만 말하시오!"
“…….”
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마검이 손안에서 맥박처럼 뛰었다. 십 년 전의 기억이 석양처럼 스쳤다. 불타는 전장. 쓰러진 사람. 그를 안고 울던 자신. 그리고 이 검을.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
위강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 이 검으로 증명하겠다."
위강이 천마검을 두 손으로 쥐었다.
[문화후강 제육식: 정화수위(淨火守位), 불을 정하고 자리를 지킨다]
솥에 불이 지나치게 오르면 자리를 지켜야 한다. 불을 줄이지도 올리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적당히 끓어오르게 두는 것. 요리사가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경지였다.
천마검에서 검은 기운이 번져 나왔다. 위강의 손바닥에서 올라온 마기가 검신을 타고 번지며 그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남궁진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 기운은…"
마기였다. 천마검이 위강의 상처 속 피를 먹고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위강의 근육이 부풀었고 핏줄이 목을 타고 검게 번졌다. 이대로 가면 검에 먹힌다. 남궁진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았다.
"도 대협! 멈추시오! 그 검에 먹히면…"
위강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가슴에 손을 얹듯 천마검을 안쪽으로 당겼다. 검은 기운이 번지는 것을 억지로 끌어들였다.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솥 안에 가두었다. 위강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는 마기를 누르면서 동시에 내공을 한 점으로 모았다.
“…센불은 필요 없다.”
위강이 눈을 떴다. 눈동자는 다시 평소의 짙은 갈색이었다.
"끓는 점에 서 있으면 된다."
천마검에서 은빛과 검은빛이 함께 일어나 하나로 섞였다. 마기와 정기가 한 자루 검 안에서 균형을 이룬 것이었다. 위강이 한 걸음 나서자 안개가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쳤다.
"받아라, 남궁진."
위강의 검이 한 번 그어졌다.
휘두른 것이 아니라 그냥 그어졌다. 새벽빛 아래에서 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선 하나가 번졌고, 그 선이 남궁진의 검과 닿는 순간 소리가 사라졌다.
“……!”
남궁진의 푸른 검이 한가운데서 갈라졌다. 제왕검형으로 사십 년을 갈고닦은 검이 천마검에 닿아 한 줄로 쪼개졌다. 쪼개진 검날이 허공을 돌아 땅에 박혔다. 남궁진은 맨손으로 검 손잡이만 쥔 채 서 있었다.
“…졌소.”
남궁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일 합만 더 버티면 이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 당신은 처음부터 나를 죽일 수 있었소."
"죽일 이유가 없다."
위강이 검을 내렸다. 검은 기운이 다시 검신 안으로 가라앉았다.
"너는 길을 막았을 뿐 한림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 사람, 한림이라 했소?"
남궁진의 시선이 다시 난간 쪽으로 향했다.
한림은 난간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새벽빛이 백발 위에 부서졌다. 남궁진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위강이 순간 검을 들 뻔했지만 남궁진의 걸음에 살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홀린 듯 걷고 있었다.
“…김한림이라고 했소?”
"그래."
"십 년 전 죽었다던."
"살아 있다."
남궁진이 한림의 얼굴 앞에 멈췄다. 그리고 숨을 삼켰다.
“…하.”
그의 입에서 이상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반쯤은 울음이었다.
"내가 사십 년을 살았는데, 이런 얼굴을 한 사람은 한 번밖에 못 봤소. 십오 년 전, 아직 맹주가 되기 전에, 나는 한 번."
"맹주님?"
뒤에서 장로가 외쳤다. 남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림이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린 눈동자가 남궁진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오래 보다가 입가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오랜만이다, 진아.”
남궁진의 몸이 굳었다.
"진아라고 부르던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소."
"그래서 기억하는구나."
한림이 희미하게 웃었다.
"큰 사람이 되었네. 검이 부러져 있지만."
남궁진의 손에서 검 손잡이가 떨어졌다.
"그럴 수 없소. 당신은 이십 년 전에 이미…"
"그만."
위강이 한 걸음 가로막았다. 남궁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한림이 위강의 소매를 쥐었다.
"위강, 괜찮아."
"쉬어야 한다."
"그래. 근데 이 아이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아."
한림이 남궁진을 올려다보았다.
"맹주."
“…예.”
남궁진이 처음으로 한림에게 높임말을 썼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도 모른 채.
"혈교는 지금 전쟁 준비를 하고 있어. 근데 그 전쟁을 일으키려는 건."
한림의 말이 끊겼다. 위강이 돌아본 순간 한림의 눈이 감겼고, 몸이 앞으로 무너졌다. 위강이 그를 받았다. 숨은 있었다. 다만 십 년 만에 처음 쏟아낸 말이 그의 몸을 마지막으로 비워 버린 것이다.
"한림!"
"위강, 당신도…"
남궁진이 외쳤다. 그제야 위강도 알았다. 자신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시야가 가장자리부터 어두워졌다.
“…이놈의 몸.”
위강이 한림을 안은 채 무릎을 꿇었다. 천마검이 손에서 미끄러져 땅에 꽂혔다. 이번에는 손바닥이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검이 스스로 놓아준 것이었다.
"의원을 불러라!"
남궁진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맹주님, 저자는 혈교의 검을…!"
"내가 책임진다! 이 두 사람은 내 손님이다! 의원을 불러! 어서!"
위강의 시야가 완전히 어두워지기 직전, 안개 너머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사부님!"
말발굽 소리와 함께 육중한 체구의 청년이 안개를 헤치고 달려왔다. 수제자 정하립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그대로, 어깨에 대형 국솥을 지고서.
"사부님, 식선루에서 무림맹 분들이 다 올라가셨다기에 따라왔는데…!"
위강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솥은 왜 들고 왔냐.”
"배고프실까 봐서요!"
그리고 위강은 의식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