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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솥은 식지 않는다]

식선검귀 (食仙劍鬼) — novel.naver.com · All chapters

13화 [솥은 식지 않는다]

처음 느껴진 것은 냄새였다.

닭을 푹 고은 구수한 국물 냄새, 마른 약초를 달이는 쌉쌀한 냄새, 그 아래로 깔린 오래된 나무 기둥의 냄새. 위강은 눈을 뜨기 전에 그것들을 하나씩 가려냈다. 어디인지 알았다. 식선루 이 층 객실이었다.

"사부님! 깨셨어요!"

침상 옆에서 졸고 있던 정하립이 의자째 뒤로 넘어질 뻔했다. 육중한 체구가 허둥대는 바람에 옆에 놓인 약탕기가 흔들렸다. 위강은 천장을 올려다본 채 한참 숨을 골랐다. 가슴과 어깨, 옆구리, 허벅지까지 온몸이 붕대에 감겨 있었다.

“…며칠이냐.”

"오늘로 이틀째예요. 만 하루 반을 내리 주무셨어요. 의원님이 그러시는데 피를 사 할 가까이 쏟으셨대요. 사 할이면 보통은 못 일어난다고…"

"한림은."

"옆방에 계세요. 어제 한 번 깨셨다가 죽 한 숟갈 드시고 다시 주무셨어요. 의원님 말씀이 오래 굶으신 몸이라 천천히 먹여야 한대요."

위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어깨에 힘을 주어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정하립이 황급히 어깨를 눌렀다.

"안 돼요, 사부님! 의원님이 한 달은 누워 계셔야 한다고…"

"하립."

"예."

"손 치워라."

위강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정하립이 손을 떼고는 울상이 되었다. 위강은 팔에 힘을 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상처가 한꺼번에 비명을 질렀지만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침상 옆 벽에 천마검이 세워져 있었다. 검집에 든 채였다. 위강의 시선이 검에 닿자 검이 아주 작게 울었다. 정하립이 그 소리에 움찔했다.

"저, 저 검이 자꾸 혼자 울어요. 사부님 주무시는 동안 밤마다요. 무서워서 제가 천으로 덮어 놨는데 천이 자꾸 벗겨져요."

“…놔둬라. 그냥 인사하는 거다.”

"인사요?"

"그런 검이다."

위강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해 질 무렵, 객잔 앞에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무림맹 깃발을 단 말 이십여 필이 식선루 앞에 멈췄고, 선두의 사내가 말에서 내려 객잔 문을 직접 밀고 들어왔다. 남궁진이었다. 맹주의 위엄을 뽑아 둔 평상복 차림이었고, 한 손에는 기름종이로 싼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손님이 와도 문이 열려 있군. 객잔이니 당연한 일인가."

정하립이 허둥지둥 달려 나와 고개를 숙였다.

"맹주님! 저희 사부님은 아직…"

"일어나 계시다고 들었소. 올라가도 되겠소?"

"저, 그게, 사부님은 쉬셔야…"

"괜찮다."

이 층 계단 위에서 위강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위강은 침상을 벗어나 난간에 팔을 기대고 서 있었다. 붕대 위에 낡은 겉옷을 걸친 모습이었다. 남궁진이 그를 올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쓰러진 사람이 벌써 일어났구려."

"내 몸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오."

남궁진이 계단을 올라와 위강의 방 앞 의자에 앉았다. 꾸러미를 탁자에 내려놓고 풀었다. 안에서는 찐 약과와 말린 대추가 나왔다.

"병문안 선물이오. 의원이 단 것을 먹이라고 했소."

"받아 두마."

"그리고."

남궁진이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이 복도 끝, 한림이 누워 있는 방문으로 향했다가 다시 위강에게 돌아왔다.

"이틀 동안 맹에 돌아가 장로들을 설득했소. 도 대협을 천마검을 든 마두로 규정하고 체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소. 반 이상이 그랬소."

"그럴 만하지."

"나는 막았소. 결국 사흘의 유예를 얻었소. 사흘 안에 천마검과 도 대협의 사정을 맹에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조건으로."

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설명을 들으러 왔소."

남궁진이 허리를 곧게 폈다.

"십 년 전 대혈전의 마지막 날 무슨 일이 있었소. 혈교주가 죽은 날. 천마검이 사라진 날. 그리고 그날 죽었다던 김한림이라는 분이 어째서 혈교 지하에 십 년 동안 살아 있었는지."

위강은 한참 말이 없었다. 객잔 아래층에서 정하립이 국자를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다는 못 말한다.”

"왜요."

"나도 다 모른다."

남궁진의 눈이 커졌다.

"천마검은 내가 십 년 전 그날 쥐었다. 그건 맞다. 쥐어야만 했다. 이유는 지금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위강이 고개를 돌려 한림이 누워 있는 방 쪽을 보았다.

"나는 그날, 한림이 죽는 것을 보았다. 틀림없이 보았다. 심장이 멎고 몸이 식는 것까지 내 손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그가 살아 있었다."

남궁진의 얼굴이 굳었다.

"그렇다면 십 년 동안 혈교는."

"그를 살려 두고 있었다. 이유는 모른다. 알 때까지는 천마검을 놓을 수 없다."

침묵이 흘렀다. 객잔 밖에서 저녁 바람이 처마 끝 풍경을 흔들었다. 남궁진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아직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소.”

"뭐냐."

"그분의 얼굴 말이오."

남궁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십오 년 전 나는 아직 맹주가 아니었소. 스승님을 따라 서쪽 변경으로 가서 한 번 뵌 적이 있소. 스승님이 존경하던 은거 고인이었고, 나는 그분이 머물던 암자 마당에서 칼을 휘두르다가 칭찬을 한 번 받았소. 그때 그분이 나를 '진아'라고 불렀소."

위강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분의 얼굴은."

"틀림없이 김한림이라는 분의 얼굴이었소. 십오 년이 지났는데도, 아니."

남궁진이 이를 꽉 물었다.

"그분은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얼굴이었소. 나이를 먹지 않은 사람처럼."

“…….”

"도 대협은 십 년 전 그분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다고 했소. 그런데 나는 십오 년 전에 이미 그분을 뵈었소. 그리고 어제 새벽, 그분은 내 이름을 불렀소. 도 대협, 이분이 대체 누구요?"

위강은 대답하지 못했다. 십 년 전 그가 알던 김한림은 하루하루 늙어 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모른다.”

위강이 낮게 말했다.

"하지만 알아낼 거다."

"나도 돕겠소."

남궁진이 일어섰다.

"하지만 그전에 도 대협은 몸부터 추스르시오. 맹에는 내가 시간을 벌겠소. 내일 밤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겠소."

"맹주."

"예."

"혈교가 맹을 칠 수 있다."

위강이 말했다. 남궁진이 멈칫했다.

"이하성이 죽으며 서열이 열렸다. 천마검을 노리는 자들이 한꺼번에 움직일 거다. 맹이 가장 큰 표적이 된다. 조심해라."

“…명심하겠소.”

남궁진이 한 번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내려갔다. 말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위강은 난간에 기댄 채 한참 어두워 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녁 상은 정하립이 직접 차려서 올라왔다.

흰죽 한 그릇과 삶은 계란, 연하게 간한 푸성귀 나물이 전부였지만 접시마다 정성이 보였다. 위강이 한림의 방에 앉아 죽을 떠먹이는 동안 정하립은 문턱에 서서 쭈뼛거렸다.

"사부님, 제가 해 드릴까요?"

"가라."

"예."

"그리고 하립."

"예?"

"나물이 싱겁다."

정하립의 얼굴에 해가 뜬 듯이 웃음이 번졌다.

"예! 소금 더 넣어 올게요!"

"한 줌이 아니라 한 꼬집이다."

"예에!"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한림이 침상에 기댄 채 눈을 뜨고 입가에 가는 웃음을 걸었다.

"아이가 좋다."

"어설프다."

"그래서 좋은 거지. 위강, 당신이 십 년 전에 이런 아이를 만났으면 다르게 살았을 텐데."

“…….”

위강은 대꾸 없이 숟가락으로 죽을 떴다. 한림이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십 년 전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한 이마와 고운 눈매. 그러나 위강의 눈에는 그 얼굴이 처음으로 낯설게 보였다.

"한림."

"응?"

"나이가 몇이냐."

숟가락을 든 위강의 손이 멈춰 있었다. 한림이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남궁진이 십오 년 전에 너를 만났다고 했다."

한림의 얼굴에서 웃음이 아주 느리게 사라졌다. 그는 한참 창밖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다 말해 줄게. 근데 아직은 아니야."

"언제냐."

"십 년 전 그날 내가 왜 죽은 척했는지. 왜 혈교에 십 년이나 있었는지. 천마검이 왜 당신을 받아들이는지."

한림이 위강의 소매를 쥐었다. 가늘고 차가운 손이었다.

"당신이 이걸 다 알면 당신은 더 이상 요리사로 못 살아. 그걸 알아서 십 년 동안 말을 안 했어."

“…….”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몸이 다 나으면 말할게. 약속해."

위강은 오래 한림의 눈을 보았다. 거짓이 없었다. 그러나 감추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그는 죽 그릇을 한 번 더 들었다.

“…먹어라.”

"응."

"전부 다 먹을 때까지 나는 여기 있는다."

한림이 웃었다. 이번에는 눈가가 젖은 웃음이었다.

그날 밤 위강은 잠들지 못했다.

침상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한림이 나이를 먹지 않는 사람이라면, 십 년 전 그가 죽는 걸 지켜본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천마검이 그를 받아들이는 이유와 한림의 비밀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혈교는 그를 왜 십 년이나 살려 두었는가.

그리고 이하성이 죽기 전에 한 말. 저희가 건 게 아니라고 했다. 사슬은 십 년 전부터 있었다고.

옆방에서 한림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위강은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갔다. 달이 없는 밤이었다. 처마 끝 풍경이 바람에 한 번 울렸다.

아래층 주방에서 불빛이 새어 올라왔다. 정하립이 아직 안 자고 솥을 지키고 있었다. 국을 끓이다 졸다가 깨고, 다시 국물을 맛보는 소리가 들렸다.

솥은 식지 않는다. 불이 꺼져도 한참 동안 열을 품는다.

위강은 그 말을 삼 년 동안 매일 새벽 주방에서 들었다. 처음엔 요리의 이치인 줄 알았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사람도 그렇다. 한 번 데워진 마음은 쉽게 식지 않는다.

그는 침상 옆에 세워 둔 천마검을 쥐었다. 검이 낮게 울었다.

"기다려라."

위강이 낮게 속삭였다.

"곧 쓸 일이 있을 거다."

검이 손바닥 안에서 천천히 잠잠해졌다. 창밖의 어둠 속에서 아주 먼 곳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위강은 눈을 감았다.

사흘째 밤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