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도마 위의 열두 번]
14화 [도마 위의 열두 번]
말발굽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위강이 창을 열었을 때 이미 말 한 필이 식선루 앞길을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안장 위의 사내는 몸을 반쯤 말 목에 걸친 채였고, 등에 화살 세 대가 꽂혀 있었다. 말이 객잔 문 앞에서 앞발을 들며 멈추자 사내가 그대로 흙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사부님! 무림맹 분이에요!"
정하립이 뛰쳐나가 사내를 부축했다. 위강은 이 층 난간을 넘어 마당에 내려섰다. 붕대 아래에서 상처가 터지는 감각이 났지만 걸음은 늦추지 않았다.
사내의 푸른 도포에는 무림맹 흰 깃이 달려 있었다. 숨이 끊어질 듯 헐떡이는 입에서 피 섞인 말이 쏟아졌다.
"도, 도 대협… 맹주님께서… 전갈을…"
"말해라."
"혈교 서열 팔위, 구위, 십위가… 삼백을 이끌고 맹 본진을 습격했습니다. 맹주님이 연무장에서 버티고 계시지만… 이미 장로 둘이 죽었고…"
사내가 위강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천마검을 내놓으라 합니다. 그런데 맹주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도 대협은 절대 오지 마시라고. 천마검이 맹에 들어서는 순간이 놈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대신…"
사내가 피를 한 모금 토했다.
"한림 선생을 지켜 달라 하셨습니다. 그분이 맹주님께는… 그분이…"
"알았다. 그만."
위강이 사내의 입을 막았다. 고개를 들자 객잔 앞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있었다. 길 양쪽, 담장 위, 나무 그림자 속. 숨을 죽인 채 포위하고 있었다. 이 전령을 쫓아온 놈들이었다. 아니, 쫓아오게 둔 것이다.
"하립."
"예, 예!"
"이 사람 안으로 옮겨라. 문을 걸고 한림 방 앞을 지켜라."
"사부님은요."
"객잔 앞부터 정리하마."
위강이 객잔 안으로 손을 뻗어 벽에 세워 둔 천마검을 쥐었다. 검이 손바닥 안에서 낮게 울었다. 마기가 남긴 화상 자국이 쑤셨지만 오히려 손에 익었다.
"맨발이시잖아요, 사부님!"
"신발은 나중에 신는다."
위강이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나왔다!"
"저자다! 천마검을 든 놈!"
어둠 속의 붉은 눈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쉰, 예순, 칠십. 혈교의 후위 무사들이 객잔 앞 공터를 둥글게 에워쌌다. 그 한가운데로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한 명은 몸집이 소처럼 큰 중년 사내였다. 가슴에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양손에 날이 톱니처럼 갈라진 쌍도를 늘어뜨렸다. 서열 6위, 광도마군 무악신.
다른 한 명은 소년처럼 앳된 얼굴이었다.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몸에 헐렁한 승복을 걸쳤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대신 목에 걸린 염주 알 하나하나가 사람 두개골을 깎아 만든 것이었다. 서열 7위, 독골동자 목연.
무악신이 쌍도를 부딪쳐 불꽃을 튀겼다.
"이하성이 죽고 단혁, 독요화, 악무현이 모조리 죽었다. 혈교 후보 서열이 일제히 열렸지. 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천마검을 가져가는 놈이 서열 일위다. 무신, 네 목은 교주 자리에 오르는 계단이다!"
"쯧. 시끄러워."
목연이 귀를 후볐다. 어린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눈이었다.
"저 형님은 항상 말이 많아. 선배님, 저는 말씀 안 드릴게요. 그냥 저 검이 필요해서 왔어요."
"그래."
위강이 천마검을 뽑았다.
"둘이 같이 와라."
무악신의 웃음이 멎었다.
"뭐?"
"하나씩 오면 시간이 아깝다. 안에 사람이 자고 있다. 오래 끌 생각 없다."
위강이 검 끝으로 무악신과 목연 사이 정확히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한 번에 끝낸다."
"건방진 놈!"
무악신이 쌍도를 치켜들고 뛰었다.
쾅!
쌍도가 사선으로 교차하며 위강의 목을 노렸다. 광도마군의 성명절기 십자참수(十字斬首). 두 칼날이 가위처럼 맞물려 목을 자르는 수법이었다. 위강은 뒤로 빠지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파고들었다. 맨발이 땅을 쓸었다.
쨍!
천마검이 쌍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가위질을 가로막았다. 어깨 붕대에서 피가 번졌다. 무악신은 힘으로 짓눌렀다.
"약하다! 약하군, 무신! 이하성을 죽였다더니 몸이 이 꼴이잖아! 피를 사 할이나 쏟았다더니 소문이 맞았어!"
“…그렇군.”
위강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래서 요리를 배웠다."
"무슨 소리냐!"
"몸이 약할수록 도마 위에서는 칼이 정직해진다."
그 순간 뒤에서 목연의 손이 움직였다. 염주 알 하나가 튕겨 나와 위강의 뒷목을 노렸다. 독골동자의 염주 알은 사람 뼈를 깎은 암기였고 독이 스치기만 해도 심장이 멎었다.
위강이 무악신의 쌍도를 밀어내며 몸을 비틀었다. 염주 알이 귓가를 스쳐 객잔 문기둥에 박혔다. 기둥이 순식간에 검게 썩어 들어갔다.
"독이군."
"어, 알아보셨네요? 재미없게."
목연이 손가락을 튕기자 염주 알이 열 개, 스무 개 한꺼번에 쏟아졌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독 알갱이가 달 없는 밤에 검은 비처럼 내렸다. 무악신이 그 틈에 쌍도를 휘둘렀다. 독과 칼의 합공이었다.
위강은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눈을 반쯤 감았다.
[문화후강 제칠식: 도마십이도(俎上十二刀), 도마 위에서 열두 번 썬다]
식선루 주방에서 삼 년 동안 가장 많이 한 일은 칼질이었다. 양파를 썰고, 닭을 가르고, 생선뼈를 바르고, 고기 결을 따라 얇게 저미는 것. 칼을 쥐는 법도 힘을 싣는 때도 반드시 정해진 박자가 있었다. 한 번 내려오고, 숨을 고르고, 다시 올라가고. 열두 번의 칼질이 한 곡의 박자였다.
위강의 천마검이 도마 위를 걷는 칼처럼 움직였다.
탁.
첫 번째. 날아오던 염주 알 열 개가 검날에 닿아 두 쪽으로 갈라졌다.
탁.
두 번째. 무악신의 오른 쌍도가 칼등에 맞아 튕겨 올라갔다.
탁.
세 번째. 왼 쌍도가 위로 쳐 올려졌다. 무악신의 양팔이 열려 가슴이 비었다.
탁, 탁, 탁.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위강의 검이 무악신의 가슴을 한 번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사선으로 그었다. 호랑이 가죽이 갈라졌다. 피부가 열리고 근육이 벌어졌다. 무악신은 아직 자기가 베였다는 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탁, 탁.
일곱 번째, 여덟 번째. 검이 목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목연이 놀라 뒤로 튀어 오르며 염주를 던졌지만 던지는 팔이 도마 위의 야채처럼 두 토막이 났다.
"으아아악!"
목연의 어린 얼굴에서 비명이 터졌다.
탁, 탁, 탁, 탁.
아홉 번째부터 열두 번째. 위강은 몸을 한 번 회전시켰다. 천마검이 원을 그리며 무악신과 목연의 몸을 한꺼번에 훑고 지나갔다. 은빛 호선이 어둠 속에 번졌다가 사라졌다.
고요가 왔다.
무악신이 쌍도를 쥔 채 선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의 몸에 열두 줄의 가는 붉은 선이 새겨져 있었다. 선이 벌어지며 피가 동시에 분출했다.
“…이, 이게…”
무악신의 몸이 열두 조각으로 갈라져 흙바닥에 흩어졌다. 목연은 한 팔이 잘린 채 바닥에 구르며 헐떡였다.
"사, 살려…"
"안 된다."
위강이 목연의 앞에 섰다.
"네 염주 알이 객잔 기둥에 박혔다."
"그, 그건 그냥 암기…"
"저 안에는 한림이 있다."
천마검이 내려갔다. 목연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앳된 얼굴이 놀란 표정 그대로였다.
주위를 에워싼 칠십 명의 무사들이 얼어붙었다.
서열 6위와 7위가 반 호흡 만에 쓰러졌다. 맨발에 붕대를 감은 사내는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천마검의 은빛이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다.
“…물러서.”
"도망쳐!"
무사들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위강은 한 걸음도 서두르지 않았다.
"어디를 가나."
그의 목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한 명도 못 간다."
"으아아아!"
도망치던 자들의 등에 검이 닿았다. 위강은 뛰지 않았다. 그저 걸었다. 걸음마다 한 명씩 쓰러졌다. 어둠 속에서 살 베이는 소리와 짧은 비명이 이어졌고, 공터에는 시체가 한 겹씩 쌓였다.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가면 이 객잔의 위치가, 그 안에 한림이 있다는 사실이 퍼진다. 위강은 십 년 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반 각이 지나기 전에 칠십 명이 모두 쓰러졌다.
그때 객잔 안에서 쨍그랑하는 소리가 났다.
위강의 고개가 돌아갔다. 뒷마당 쪽이었다. 무악신과 목연이 앞에서 시선을 끄는 동안 별동대가 뒷문으로 침투한 것이었다.
위강이 객잔 안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 한림의 방 복도에는 검은 복면 셋이 서 있었다. 둘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둘의 머리에는 커다란 쇠솥뚜껑 자국이 깊게 패어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벽에 기대어 눈이 뒤집힌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 앞에 정하립이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솥뚜껑, 다른 손에는 국자.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사, 사부님. 저 죽인 거 아니죠? 기절만 시킨 건데…"
위강이 복면 하나의 목에 손가락을 댔다. 숨이 끊겨 있었다.
"죽었다."
"히이익!"
"잘했다."
위강이 일어나며 정하립의 어깨를 한 번 쳤다.
"네가 아니었으면 한림이 베였다."
"사부님…"
정하립의 눈이 붉어졌다. 위강은 기절한 복면의 목도 마저 베어 숨을 끊어 놓고, 시체 셋을 뒷마당으로 끌어냈다. 그러고는 피 묻은 손을 물동이에 씻고 한림의 방문을 열었다.
한림은 침상에 앉아 있었다. 방금 깨어난 듯한 흐린 얼굴이었지만 눈동자는 맑았다. 문 앞의 소란을 모두 들은 눈이었다.
"위강."
"괜찮다. 누워 있어라."
"괜찮은 얼굴이 아닌데."
"원래 이런 얼굴이다."
한림이 희미하게 웃었다. 위강은 침상 옆 의자에 앉았다. 천마검을 무릎 위에 눕혀 놓았다. 검이 한림의 숨소리에 맞춰 아주 작게 떨렸다.
"진아가 위험한 거지."
“…….”
"가고 싶었잖아. 얼굴에 써 있어."
"맹주가 오지 말라 했다. 천마검이 가면 놈들 뜻대로 된다고."
"그래도 가고 싶었잖아."
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림은 그 침묵을 읽고 작게 웃었다.
"그 아이는 쉽게 안 쓰러져. 어릴 때부터 그랬어. 넘어져도 검부터 다시 쥐던 아이야."
“…….”
"하립이가 그러더라. 사부님이 밤마다 천마검에 말을 건다고."
"그 녀석이 별소리를 다 한다."
"맞아?"
“…맞다.”
한림이 소리 내어 웃다가 기침을 했다. 위강이 물그릇을 내밀자 한림이 한 모금 마시고 숨을 골랐다.
"저 사람들, 너무 한꺼번에 움직여."
한림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이하성이 죽은 지 사흘도 안 됐는데 서열이 정리되기도 전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오는 거, 이상하지 않아? 혈교가 원래 이렇게 일사불란한 곳이었어?"
위강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다.”
"누군가 순서를 짜 놨다는 뜻이야. 이하성이 죽는 순간부터 계산에 넣었을지도 몰라."
"누가."
"그건 몰라. 그냥 조심하라고."
한림이 위강의 소매를 가만히 쥐었다. 가늘고 차가운 손이었다.
"십 년을 기다렸는데 사흘 더 못 기다릴까. 당신이 이렇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해."
“…….”
"그러니까 다치지 마. 하립이 죽 짜다고 타박하지도 말고."
“…짠 걸 짜다고 하는 거다.”
"그래, 그래."
한림이 눈을 감고 웃었다. 위강은 한참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십 년 전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남궁진이 말한 대로,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똑같았을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한림."
"응."
“…아니다. 자라.”
"뭔데."
"나중에 묻겠다. 지금은 자라."
한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뒤 그의 숨소리가 고르게 가라앉았다. 위강은 그 소리를 한 호흡씩 세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래층에서 정하립이 솥을 다시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는 시체 일흔이 쌓여 있었고, 아궁이에서는 아직 열이 가시지 않은 솥이 국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창밖으로 별이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솥은 식지 않는다.
위강은 천마검을 쥔 손을 풀지 않은 채 밤을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