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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검성이 지키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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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검성이 지키는 문]

무림맹 본진의 정문이 무너진 것은 해시 초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삼 장 높이의 쇠 대문이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문짝은 연무장 한가운데까지 굴러가 바닥을 갈랐고, 먼지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걸어 들어왔다. 얼굴 전체를 쇠로 덮은 사내였다. 양손에는 사람 키만 한 쇠방패 두 장이 들려 있었다. 혈교 서열 8위, 철면사자 도곤.

"무림맹주 나와라! 천마검을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 주마!"

그 뒤로 삼백이 넘는 붉은 눈동자들이 물결처럼 밀려 들어왔다. 연무장 가장자리에 도열해 있던 맹의 제자 이백이 일제히 칼을 뽑았다. 이미 곳곳에 시체가 있었다. 장로 둘이 정문 앞에서 죽었고 제자 서른이 담장 위에서 쓰러졌다. 그러나 나머지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연무장 한가운데 남궁진이 서 있었다.

푸른 도포 자락이 밤바람에 흔들렸다. 손에는 새 검이 들려 있었다. 맹의 보고(寶庫)에서 꺼내 온 청명검이었다. 위강의 천마검에 쪼개진 지난 검보다 열 근쯤 가벼웠지만 날은 더 곧았다.

"천마검은 여기 없다."

"그럼 어디 있어? 무신 놈이 쥐고 앉아 있나?"

"그는 오지 않는다. 내가 오지 말라 했다."

도곤이 쇠 가면 뒤에서 크게 웃었다.

"이런, 맹주가 천하의 무신을 거절하셨다! 그래서 네놈 혼자 삼백을 막겠다고?"

"혼자가 아니다."

남궁진이 청명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맹의 문은 맹이 지킨다."

연무장이 터졌다.

도곤이 쇠방패 두 장을 앞세우고 돌진했다. 몸 전체가 철갑처럼 단단한 외공이었다. 맹의 제자들이 던진 암기가 방패에 맞아 쨍쨍 튕겼고, 칼이 닿는 족족 부러져 날아갔다. 도곤이 지나간 길에 제자 열이 뒤집혀 나동그라졌다.

"비켜라, 졸개들!"

남궁진이 한 걸음에 도곤 앞에 섰다. 청명검이 방패를 향해 내려갔다.

까앙!

불꽃이 터졌다. 방패에 한 치 깊이의 흠이 파였을 뿐이었다. 남궁진의 팔이 저릿했다. 철면사자는 외공의 극에 이른 자였고, 그 몸은 칼이 닿는 곳마다 쇠 벽이었다.

"하하하! 이것이 검성이냐! 제왕검형이라더니 방패 하나 못 뚫는군!"

"뚫는 검이 아니다."

남궁진이 한 발 물러서며 숨을 골랐다. 제왕검형 제일식 천지개벽은 정면을 누르는 검이었다.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싸움에서는 힘이 센 쪽이 이기고, 그 점에서는 도곤이 앞섰다.

그때 맹의 제자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맹주님, 뒤!"

남궁진의 등 뒤에서 은빛 채찍이 솟구쳤다. 아홉 갈래로 갈라진 채찍이 살아 있는 뱀처럼 목과 가슴과 허리를 동시에 감았다. 남궁진이 몸을 틀며 청명검으로 채찍을 쳐 냈다. 채찍 끝에 달린 갈고리가 어깨를 스치며 도포를 찢었다.

"어머나, 반응이 빠르시네."

붉은 비단 장삼을 두른 여인이 지붕 위에서 웃고 있었다. 입술에 독을 머금은 듯 검푸른 연지를 발랐고, 허리에는 아홉 개의 채찍 자루가 부챗살처럼 걸려 있었다. 서열 9위, 구미독후 설무영.

"무림맹주님은 소문대로 곧은 분이시네. 곧은 사람은 꺾을 때 소리가 좋거든."

“…둘째인가.”

"아니, 셋째. 아직 한 분 더 남았어."

설무영이 손가락으로 연무장 서쪽 담장을 가리켰다. 그곳에 커다란 승복 사내가 철장을 짚고 서 있었다. 머리를 깎았으나 얼굴에는 십 년 묵은 수염이 덥수룩했고, 눈동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서열 10위, 파계마승 곽오.

세 사람이 연무장을 삼각으로 에워쌌다.

“3대 1이다, 맹주.”

도곤이 쇠방패를 쿵 부딪쳤다.

"순순히 천마검의 행방을 대. 그러면 맹의 제자들은 살려 주마."

"거짓말이군."

남궁진이 짧게 답했다.

"너희는 한 명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서열을 위해 사람을 쓰는 자들은 다 그렇다."

"크크, 눈치도 빠르네."

곽오가 철장을 바닥에 찍었다.

"그럼 죽어라."

세 개의 기세가 한꺼번에 덮쳐 왔다.

그것은 싸움이라기보다 압사에 가까웠다.

도곤의 쇠방패가 정면에서 밀어붙이고, 설무영의 채찍이 아홉 방향에서 휘감고, 곽오의 철장이 머리 위에서 내리꽂혔다. 남궁진은 청명검 하나로 세 사람을 상대했다. 제왕검형의 방어초 천하무쌍(天下無雙)이 몸 둘레에 푸른 막을 쳤다. 그러나 막은 한 번 부딪칠 때마다 한 겹씩 얇아졌다.

"크윽."

철장이 왼쪽 어깨를 스쳤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곧바로 설무영의 채찍이 허벅지를 감았고, 도곤의 방패가 옆구리를 후려쳤다. 남궁진의 몸이 연무장 바닥을 십 장이나 굴렀다.

"맹주님!"

"비켜! 비키지 마라! 내 일이다!"

남궁진이 피를 뱉으며 일어났다. 맹의 제자들이 달려오려 했지만 삼백의 혈교 무사들이 연무장을 갈라 놓았다. 칼과 칼이 부딪치고 비명이 터지는 와중에 남궁진은 홀로 서 있었다. 한쪽 어깨가 처지고 도포의 반이 피로 젖었다.

숨이 가빴다. 눈앞이 가물거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머릿속은 맑았다.

식선루에서 위강이 한 말이 떠올랐다.

─ 이하성이 죽으며 서열이 열렸다. 천마검을 노리는 자들이 한꺼번에 움직일 거다. 맹이 가장 큰 표적이 된다.

그리고 한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 큰 사람이 되었네. 검이 부러져 있지만.

남궁진은 이를 악물고 청명검을 곧게 세웠다. 부러진 것은 검이었다. 그의 마음은 아직 곧았다.

“…스승님, 지켜봐 주십시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한림이 십오 년 전 서쪽 변경의 암자에서 해 주던 말이 생각났다. 칼은 이기려고 쥐는 것이 아니라 지키려고 쥐는 것이라고. 어린 남궁진이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제왕검형 제삼식: 천하귀일(天下歸一), 모든 길이 한곳으로 돌아간다]

남궁진이 청명검을 거꾸로 들었다.

검 끝이 땅을 향했다. 제왕검형의 정수는 공격이 아니라 중심이었다. 천하의 모든 검로가 결국 한 점으로 돌아간다는 뜻. 남궁진이 가문에서 배운 것은 검을 휘두르는 법이 아니라 서 있는 법이었다.

"뭐 하는 거야, 이 자식!"

도곤이 쇠방패를 앞세우고 짓쳐 들어왔다. 남궁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방패가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순간 청명검의 끝이 바닥을 한 번 톡 쳤다.

우웅.

연무장 바닥이 울렸다. 남궁진의 발밑에서 푸른 검기가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다. 도곤의 발이 그 선을 밟는 순간 균형이 무너졌다. 쇠방패가 허공을 때렸고 거구가 앞으로 쓰러졌다.

"어?"

남궁진이 한 걸음 옆으로 비껴서며 청명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렸다. 방패가 닿지 않는 틈, 쇠 가면의 턱 밑이었다. 방패 한 장이 무거워서 놓친 곳이었다.

서걱.

가면 아래로 검이 파고들어 목을 꿰뚫고 정수리로 빠져나왔다. 도곤의 눈이 크게 열렸다. 쇠 가면이 두 쪽으로 쪼개지며 그 안의 늙은 얼굴이 드러났다. 놀란 표정 그대로였다.

"이, 이게… 방패 밑으로…"

"쇠를 뚫을 필요는 없다. 쇠는 틈이 있을 뿐이다."

도곤의 몸이 쇠방패 위로 쓰러졌다.

"도곤 오라버니!"

설무영의 비명과 함께 아홉 갈래 채찍이 한꺼번에 날아왔다. 남궁진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채찍이 허리와 팔과 다리를 한꺼번에 휘감아 올렸다. 갈고리가 살을 파고드는 감각에 이가 갈렸다.

"잡았어! 이제 네놈도 끝이야!"

“…그래.”

남궁진이 피투성이 입으로 웃었다.

"잡혔구나."

그가 감긴 몸을 그대로 앞으로 당겼다. 설무영이 놀라 채찍을 끌어당겼지만 남궁진의 근력이 더 강했다. 아홉 가닥 채찍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설무영의 몸이 지붕에서 끌려 내려왔다. 갈고리가 남궁진의 살점을 뜯어내는 소리가 났다.

"이, 이 미친…!"

"맹주는 미쳐야 지킨다."

청명검이 설무영의 가슴을 꿰뚫었다. 입술의 검푸른 연지가 피에 섞여 번졌다. 설무영의 손이 채찍을 놓았고, 몸이 남궁진의 가슴에 기대 쓰러졌다.

“…이게, 곧은 사람의, 꺾이는 소리…”

그녀가 눈을 감았다.

곽오가 철장을 휘둘렀다.

도곤과 설무영이 연달아 쓰러졌는데도 파계마승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철장이 한 번 바닥을 찍을 때마다 연무장의 돌바닥이 두 치씩 꺼졌다. 남궁진은 이미 한쪽 팔을 쓸 수 없었고 한쪽 다리에서는 피가 샘처럼 솟았다.

"서열이라는 것은."

곽오가 입을 열었다. 깊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쌓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오. 선두에 선 자가 쓰러지면 다음 자가 올라가오. 그것이 혈교의 법이오."

“…네놈은 그 법이 마음에 드나.”

"마음에 드느냐고?"

곽오가 철장을 높이 들었다.

"나는 십 년 전 소림에서 파계당한 승려요. 부처 앞에서 수천 번 염불을 외웠지만 한 번도 응답이 없었소. 혈교의 법은 최소한 응답이라도 하더이다. 죽이면 올라가고, 죽으면 떨어지고."

철장이 내려왔다. 남궁진은 청명검을 들어 받았지만 팔이 무너졌다. 철장에 맞은 검이 두 쪽이 나며 불꽃이 튀었다. 곽오의 철장이 남궁진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쾅!

남궁진의 몸이 연무장 중앙의 석등에 처박혔다. 석등이 부서지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가슴뼈 몇 대가 나간 소리가 났다.

“…맹주님!”

제자들의 비명이 들렸다. 남궁진은 석등 파편 사이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야가 하얗게 흔들렸다.

곽오가 한 걸음씩 다가왔다.

"이제 끝이오. 천마검의 행방만 말하시오. 그러면 고통 없이 보내 드리지."

남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이 땅을 더듬었다. 부러진 청명검 반 토막이 손에 걸렸다. 한 자 남짓한 짧은 검날이었다.

곽오가 철장을 들었다.

"스님."

"뭐요."

"방금 부처 앞에서 응답이 없었다고 했지."

남궁진이 피가 흐르는 입가에 웃음을 걸었다.

"응답은 있었다. 네가 안 들었을 뿐이다."

"무슨 소리를…"

곽오의 말이 끊겼다. 목 아래가 서늘했다. 고개를 내려다보니 짧은 검날 하나가 자신의 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천하귀일의 마지막 초식은 검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검로를 한 점으로 모으는 것이었다. 남궁진은 처음부터 곽오가 다가오는 한 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런.”

곽오의 몸이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철장이 연무장 바닥에 굴러 쩡 하고 울렸다.

"서, 서열 일위가…"

곽오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 피 거품 속에서 웃었다.

"이미 정해져 있다고, 그분이… 말했… 천마검은 미끼요. 처음부터, 서열 일위는… 맹 안에 우리…"

그의 눈에서 빛이 꺼졌다.

연무장이 고요해졌다.

남궁진은 석등 잔해에 기댄 채 한참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쓰러뜨린 서열 8위, 9위, 10위의 시체가 연무장에 누워 있었다. 삼백의 혈교 무사들은 지도자를 잃자 흩어지기 시작했고, 맹의 제자들이 추격하며 뒤를 베었다. 새벽빛이 동쪽 담장 위로 희미하게 번져 오고 있었다.

"맹주님! 의원을 부르겠습니다!"

“…기다려라.”

남궁진이 손을 들어 제자를 막았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방금 곽오가 한 말을 들었느냐."

"예?"

"맹 안에 우리, 라고."

제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남궁진은 연무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남은 제자들의 얼굴, 죽은 장로 둘의 시체, 연무장 위쪽 누각에서 내려다보는 원로원의 그림자. 그리고 처음부터 이 습격에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한 명.

“…현산 장로는 어디 있느냐.”

"그, 그게. 습격이 시작되기 직전에 본청 서고에 들어가신 뒤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남궁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서고. 천마검에 대한 기록이 보관된 곳이지."

"예."

"전령을 불러라. 식선루로 보낸다."

남궁진이 피 묻은 손으로 품을 뒤졌다. 구겨진 종이 한 장이 나왔다. 그는 이를 악물고 떨리는 손으로 짧은 글귀를 적었다.

「도 대협. 맹은 지켰소. 그러나 맹 안에 내통자가 있소. 한림 선생을 절대 맹으로 데려오지 마시오. 그분의 정체를 아는 자가 이 안에 있는 듯하오.」

전령이 종이를 받아 말을 향해 달렸다. 남궁진은 석등 잔해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새벽바람이 연무장의 피 냄새를 천천히 씻어 갔다.

그의 머릿속에서 한림이 십오 년 전 해 준 말이 마지막으로 울렸다.

─ 진아야. 곧은 사람은 꺾이는 게 아니라 버티는 거야. 휘어도 부러지지만 않으면 돼.

“…스승님. 아직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남궁진이 중얼거렸다. 그의 곁에서 의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쪽 하늘이 환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