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단골손님]
16화 [단골손님]
정하립은 밤새 일흔네 구의 시체를 뒷산에 묻었다.
묻고 나서 구덩이마다 향을 하나씩 꽂았다. 위강이 새벽에 뒷마당으로 나갔을 때 산자락에 가느다란 향 연기가 일흔네 줄기로 피어올라 마치 향 공장이 불난 것 같았다.
“…하립.”
"예, 사부님!"
"이게 뭐냐."
"적이어도 사람인데요. 아무도 안 빌어 주면 불쌍하잖아요."
"향값은 누가 내냐."
"제 월급에서요."
"네 월급은 내가 준다."
"아, 그럼 사부님 월급에서요?"
위강은 대답하지 않고 돌아섰다. 정하립은 그 등을 보며 속으로 "허락하신 거다" 하고 좋아했다.
해가 중천에 오를 무렵 무림맹의 전령이 도착했다.
남궁진의 글씨는 피가 번져 알아보기 어려웠다. 위강은 두 번 읽고 접어 소매에 넣었다. 맹을 지켰다는 것, 맹 안에 내통자가 있다는 것, 한림을 맹으로 데려오지 말라는 것. 마지막 줄에는 알아보기 힘든 글자로 한 줄이 더 있었다.
「그리고 죽 한 그릇만 보내 주시오. 의원이 맹물만 준다오.」
위강은 한참 그 줄을 보았다. 그러고는 정하립을 불렀다.
"죽을 끓여라. 맹주 몫이다."
"예! 근데 사부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정하립이 쌀독 뚜껑을 열어 보였다. 바닥이 훤히 보였다.
"쌀이 떨어졌어요. 장을 봐야 하는데 어젯밤 소동 때문에 거리가 텅 비었고, 객잔도 사흘째 문을 닫아서 단골이 떨어지겠어요. 식선루는 사흘 쉬면 끝이라고 사부님이 처음에 말씀하셨잖아요."
“…….”
"문을 열면 안 될까요? 정말 잠깐만요."
위강은 이 층 난간에서 아래 홀을 내려다보았다. 시체가 일흔이나 나온 객잔에서 장사를 하자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설득력이 있었다. 평소처럼 행동하는 자리에는 평소처럼 사람이 온다. 적이든 손님이든.
“…열어라.”
"정말요?!"
"대신 문 앞에 검을 걸어 놓겠다."
"손님 쫓아내는 거 아니에요?"
"쫓아내려는 거다."
정하립이 의아한 얼굴로 문을 열러 갔다. 그는 사부가 문 앞에 걸어 놓겠다는 검이 천마검이 아니라 낡은 부엌칼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위강은 천마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부엌칼은 간판 대신이었다.
식선루 정오 영업 첫 손님은 서생이었다.
흰 모시 장삼에 대나무 부채를 든 사내가 문턱을 넘어왔다. 서른이 채 안 된 얼굴은 곱상했고 눈웃음이 지나치게 부드러웠다. 가볍게 목례하며 들어서는 그의 걸음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서문 나리!"
정하립이 반색하며 달려갔다.
"석 달 만에 오셨네요! 요즘 통 안 보이셔서 걱정했어요!"
"하립 군, 오랜만이네요. 바깥일이 좀 바빠서요."
서문이라 불린 사내는 창가 자리에 앉아 부채를 접었다. 위강은 홀 안쪽 주방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허리의 천마검이 울고 있었다.
우웅, 우웅, 하고 아침에는 조용하던 검이 칼집째 덜덜 떨렸다. 탁자 위의 젓가락통이 검의 진동에 맞춰 딸그락거렸고, 천장에 매달린 등롱이 한쪽으로 흔들렸다. 홀의 다른 손님이라면 지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홀에는 아직 서문이라는 사내밖에 없었다.
"검이 시끄럽네요."
서문이 부채 끝으로 천마검을 가리켰다.
"배고픈가 봐요. 십 년을 굶었으니까."
위강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구냐.”
"아이고, 삼 년을 드나들었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 서운하네요. 일단 앉아서 주문부터 할게요. 늘 먹던 걸로요. 닭국수에 파 많이."
"사부님, 서문 나리는 단골이세요. 삼 년 전 개업 달부터 한 달에 두세 번씩 꼭 오셔서요. 팁을 두둑이 주시고 설거지도 가끔 도와주시는데…"
"하립."
"예?"
"국수 면을 뽑아라."
"제, 제가요? 사부님이 안 하시고요?"
"내가 한다."
위강이 벽에 걸린 앞치마를 내렸다. 사흘 전 만마전으로 떠나며 벗어 던졌던 것을 정하립이 빨아 말려 걸어 둔 것이었다. 위강은 한참 손에 쥐고 있다가 천천히 허리에 둘렀다.
"서문 나리라고 했지."
"예, 서문야입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 주시면 영광이고요."
위강이 국수를 뽑았다.
반죽을 치대는 손은 만마전에서 천마검을 쥔 손과 같았다. 같은 손이 한 번은 목을 쳤고 한 번은 밀가루를 접었다. 반죽이 얇게 펴졌고 칼이 닿을 때마다 탁, 탁, 탁, 열두 번의 박자로 면이 가늘게 썰려 나왔다. 한 올 한 올이 머리카락 굵기였다. 삶는 시간은 정확히 일곱 번 숨 쉴 동안.
국물은 새벽에 정하립이 끓인 닭 육수였다. 간을 보던 위강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소금이 약간 모자랐다. 그는 한 꼬집을 넣었다.
"드시오."
서문야가 그릇을 받았다. 젓가락을 들어 면을 한 줌 건져 올렸다. 후루룩 한 입, 눈을 감고 천천히 씹었다.
“…똑같네요.”
“…….”
"삼 년 전 처음 먹은 맛이랑 한 끝도 안 변했어요. 무신께서는 이렇게 한결같으신 줄 몰랐네요."
위강의 손에서 국자가 멈췄다.
"그날 제가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요."
서문야가 면을 한 입 더 먹으며 말했다.
"한 입 먹고 생각했어요. 아, 이 사람은 정말로 은퇴했구나. 검 쥔 손이 아니라 불 쥔 손이구나. 그래서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죠. 건드릴 이유가 없었으니까."
“…….”
"그런데 사흘 전에 세상이 뒤집혔더군요. 만마전이 박살 나고, 이하성이 죽고, 단혁이 두 쪽이 나고. 이 국수 하신 분이 그걸 하셨다니, 사람이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정하립이 면 뽑던 밀대를 떨어뜨렸다. 쿵 하고 바닥에 굴렀다.
"서, 서문 나리가… 혈교 사람이에요?"
"아, 하립 군은 놀라지 마세요."
서문야가 다정하게 웃었다.
"팁은 늘 두둑이 드렸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소개가 늦었네요. 혈교 서열 일위, 천면서생 서문야입니다. 십 년째죠."
식선루 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일위.”
위강이 낮게 되뇌었다.
"이하성이 일위가 아니었나."
"아, 이하성이요?"
서문야가 부채를 펴고 얼굴 아래를 부쳤다.
"그 아이는 제가 세워 둔 일위였어요. 가장 시끄럽고 가장 잘 웃고 가장 눈에 띄는 아이가 일위인 척하면 나머지가 다 그 아이를 쫓거든요. 사람은 시끄러운 쪽으로 몰려가는 법이니까요. 덕분에 서열 십 위까지 한 번에 정리됐네요. 감사합니다, 무신님. 청소해 주셔서."
“…….”
"제가 하려면 십 년은 더 걸릴 일을 사흘 만에 해 주셨죠. 곽오가 마지막에 말하던가요? 서열 일위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위강의 손이 허리의 천마검으로 갔다.
"천마검은 미끼라고도 했지."
"절반만 맞아요."
서문야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미끼는 검이 아니에요. 검을 뽑을 사람이죠. 십 년 동안 아무도 못 뽑은 검을 뽑을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한림 선생을 구하러 올 만한 사람이라는 것도요."
“…한림을 미끼로 썼다는 거냐.”
"미끼는 당신이에요, 위강."
서문야가 처음으로 선배라는 호칭을 빼고 이름을 불렀다. 눈웃음은 그대로였는데 눈동자만 달라져 있었다.
"저는 당신이 와 주기를 십 년 기다렸어요."
위강은 천천히 앞치마의 끈을 풀었다.
"사부님…?"
"하립, 물러서라."
앞치마가 바닥에 떨어졌다. 위강이 천마검을 뽑자 홀 전체가 은빛으로 물들었다. 정하립이 후다닥 주방 문 뒤로 숨었다.
"손님은 여기까지다."
"아쉽네요."
서문야가 한숨을 쉬었다.
"아직 후식이 남았는데."
서문야가 젓가락 한 쌍을 집어 들었다.
“…젓가락이냐.”
"식당에서는 이게 제일 편해서요."
위강이 첫 걸음을 내디뎠다. 천마검이 사선으로 올라가 서문야의 목을 노렸다. 부상당한 몸이었지만 속도는 만마전의 어떤 자보다 빨랐다. 천마검의 은빛 선이 홀을 반으로 갈랐다.
그런데 검이 멈췄다.
서문야의 젓가락 두 개가 천마검의 칼날을 양쪽에서 집고 있었다.
“……!”
"이거,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서문야가 환하게 웃었다. 위강의 팔뚝이 저릿하게 울렸다. 검을 뽑으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젓가락 두 개가 쇳덩이 이상으로 단단했다.
"서문 나리, 탁자! 탁자는 안 돼요!"
주방 문 뒤에서 정하립이 외쳤다.
"탁자는 새로 산 거예요! 열두 냥 줬어요!"
"아 그건 미안해요."
서문야가 젓가락으로 검을 튕겨 냈다. 위강의 몸이 뒤로 한 걸음 밀려났다. 서문야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곧바로 서문야의 손이 탁자 위 그릇들을 쓸었다. 국수 그릇, 반찬 접시, 물사발이 한꺼번에 허공으로 솟구쳤다. 서문야의 젓가락이 그릇 하나하나를 때리자 그릇들이 암기처럼 쏟아졌다. 사기 파편이 총알처럼 날았다.
위강이 천마검을 휘둘렀다. 그릇들이 공중에서 반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갈라진 그릇 속에 든 뜨거운 국물이 폭포처럼 튀었다. 국물 한 방울이 위강의 어깨 붕대에 닿았고 살이 데는 소리가 났다.
"앗 뜨!"
정하립이 비명을 질렀다.
"사부님 안 뜨거우세요?!"
“…뜨겁다.”
"그래요! 국물이 육수라 좀 팔팔 끓었거든요!"
"네가 끓인 거다."
위강이 이를 악물었다. 서문야가 부채를 펴고 웃었다.
"역시 어디서 한 방울씩 맛을 보셔야 판단하시죠? 삼 년 동안 요리하신 분이니까요."
“…….”
"어서 맛보세요. 제 초식이 어떤 간인지."
위강은 대답 대신 오른팔을 뻗었다.
서문야의 젓가락이 위강의 팔뚝을 때렸다. 일부러 막지 않았다. 살이 찢어지며 피가 튀었지만 위강의 눈은 감겨 있었다. 서문야의 눈썹이 처음으로 올라갔다.
"맞으려고 맞으셨네요?"
“…짜다.”
위강이 눈을 떴다.
"십 년 묵은 소금이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간이 세다. 한꺼번에 끝내려는 놈의 간이다."
[문화후강 제팔식: 시염정미(試鹽定味), 소금을 맛보고 간을 정한다]
요리사는 먼저 간을 보고 나서 소금을 넣는다. 간을 보기 전에 소금을 넣는 요리사는 하수다. 위강은 일부러 한 번 맞았다. 서문야의 초식 하나가 몸에 닿은 순간 그 박자와 힘과 습관을 모두 몸으로 읽었다. 서문야의 젓가락은 일곱 번째 동작마다 반 박 빨라졌다. 그것이 십 년 동안 한 번도 고치지 않은 서문야의 버릇이었다.
서문야가 두 번째 젓가락을 휘둘렀다. 정확히 일곱 번째 동작이었다.
위강이 한 발짝 안으로 파고들었다. 반 박 빨라진 젓가락이 위강의 어깨를 빗겨 지나갔다.
“……!”
천마검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은빛 선이 서문야의 소매를 스치고 뺨을 훑었다. 대나무 부채가 두 쪽으로 쪼개졌고, 젓가락 하나가 칼날에 닿아 반으로 부러졌다. 서문야의 하얀 소매가 한 폭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뺨에는 가는 붉은 선이 그어졌다.
서문야가 손가락으로 뺨을 만졌다. 이하성이 그랬던 것과 똑같은 몸짓이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하하. 이래서 십 년을 기다린 거예요.”
"끝이다."
위강이 천마검을 서문야의 목 앞에 겨누었다. 그러나 서문야의 얼굴에는 겁이 없었다.
"그런데요, 위강."
그가 부러진 젓가락 한 쪽을 탁자 위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저는 지금 죽을 수 없어요. 아직 간이 안 맞았거든요."
"무슨 소리냐."
"보름 뒤 보름달 밤, 만마전에서 혈제(血祭)를 열어요."
서문야가 한 걸음 물러났다. 위강이 칼을 움직이려는 순간 그의 발밑에서 연기가 터졌다. 매캐한 회색 연기가 홀 전체를 가렸다.
"새 교주가 즉위하는 밤이에요. 후보는 이제 저 하나뿐인데, 즉위식에는 천마검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검이 당신을 골랐잖아요. 그러니 검을 든 당신이 직접 와서 제 앞에 서야 의식이 끝나요. 이기든 지든요."
"서문야!"
위강이 연기 속으로 칼을 휘둘렀지만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그날 한림 선생도 모셔 오세요. 아니, 어차피 오실 거예요. 그분이 와야 끝나는 일이거든요."
지붕 기와가 한 장 달그락 소리를 냈다.
"국수는 맛있었어요! 계산은 탁자 위에!"
목소리가 멀어졌다.
연기가 걷혔을 때 홀에는 부서진 그릇 조각과 쏟아진 국물, 그리고 탁자 위의 금화 한 닢만 남아 있었다.
위강은 한참을 서 있었다.
정하립이 주방 문 뒤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사, 사부님. 끝났어요?"
“…끝나지 않았다.”
"그, 그 금화는요?"
정하립이 금화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이 동그래졌다.
"사부님, 이거 금 한 냥이에요! 탁자 값 열두 냥이랑 의자 열한 개랑 그릇 서른 개 값이랑 다 합치면…"
그가 손가락을 접으며 계산하다가 얼굴이 하얘졌다.
“…정확히 그 값이에요.”
“…….”
"어떻게 알았죠? 방금 박살 난 거 다 계산해서 놓고 간 건가요?"
"그래서 더 기분 나쁘다."
위강이 천마검을 거두며 낮게 말했다.
정하립이 금화를 소중하게 품에 넣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사부님, 근데 서문 나리가 말한 한림 선생님 얘기는요. 그분이 와야 끝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모른다.”
위강은 앞치마를 주워 한 번 털었다. 흙먼지와 국물 자국이 묻어 있었다. 한참 손에 쥐고 있다가 다시 벽에 걸었다.
"올라가 보마."
이 층 계단을 오르는데 한림의 방문이 열려 있었다.
한림은 침상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눈동자가 멍하니 먼 곳을 향해 있었다. 홀에서 벌어진 소란을 모두 들은 얼굴이었다. 위강이 문턱에 서자 한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보름달이라고 했어?”
"그래."
"보름 뒤."
한림이 입술을 달싹였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한림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위강은 그것을 보았다. 사슬에 묶여 있을 때도, 부적에 손목이 타들어 갈 때도 떨지 않던 손이었다.
"한림."
“…그날이구나.”
"무슨 날이냐."
“…….”
한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위강의 소매를 쥐었다. 떨리는 손으로 아주 오래.
창밖에서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보름달까지 보름. 식선루 아래층에서는 정하립이 깨진 그릇 조각을 쓸어 담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