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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죽 한 그릇]

식선검귀 (食仙劍鬼) — novel.naver.com · All chapters

17화 [죽 한 그릇]

보름 중 열흘째 되는 날, 식선루 앞에 가마가 한 대 멈췄다.

가마꾼 네 명이 쩔쩔매며 가마 문을 열었다. 안에서 붕대를 온몸에 둘둘 감은 사내가 기어 나오듯 내렸다. 한쪽 팔은 목에 매단 천에 걸려 있었고, 한쪽 다리는 부목을 덧댔으며, 가슴팍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 와중에 허리는 곧게 펴고 있었다.

“…도 대협. 죽 한 그릇만.”

무림맹주 남궁진이었다.

정하립이 국자를 쥔 채 문가로 달려 나왔다.

"맹주님! 전갈 받고 끓여 놨어요! 근데 직접 오시면 어떡해요! 의원님이 열흘은 누워 있으라고…"

"의원이 맹물만 준다고 했잖소."

남궁진의 눈에는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사흘째 맹물이오. 죽 냄새가 꿈에 나왔소."

위강이 홀 안쪽에서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앞치마는 두르지 않았다. 천마검은 허리에 차고 있었다. 위강은 한참을 보다가 한 마디를 했다.

“…검성이 죽 때문에 가마를 탔다는 소문이 나면 맹의 체면은 어떻게 되냐.”

"소문은 내가 낸 것이 아니오. 내 제자들이 입이 가벼워서."

"앉아라."

위강이 자리를 가리켰다. 남궁진은 가마꾼의 부축을 받아 창가 탁자에 앉았다. 정하립이 큼직한 뚝배기 한 그릇을 내려놓았다. 닭을 푹 고아 만든 흰죽에 잘게 찢은 닭살과 대파를 올린 것이었다. 남궁진이 숟가락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손이 떨렸다.

한 숟가락.

남궁진이 눈을 감았다.

“…이게 사람이 먹는 음식이오.”

"그럼 맹물은 뭐였냐."

"모르겠소. 죄수에게 주는 것 같소."

"맹주 대접이 그 모양이냐."

"내 제자들이 내가 죽을까 봐 겁이 나서 그렇소."

남궁진은 숟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고 두 그릇째를 받았다. 정하립은 신이 나서 세 번째 그릇을 미리 푸고 있었다. 위강은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한 마디를 보탰다.

"짠 건 짜다고 하라."

“…짜지 않소.”

"짜다. 하립 손이 크다."

"사부님!"

남궁진이 숟가락을 든 채 웃음을 터뜨렸다가 가슴을 움켜쥐고 신음했다.

"웃게 하지 마시오. 갈비뼈가 나갔소."

세 그릇을 비운 남궁진이 숨을 돌렸다.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홀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깨진 탁자는 새 것으로 바꿨고, 벽의 칼자국은 천으로 가려 놨으며, 천장 서까래에는 검은 그을음이 번져 있었다. 서문야가 다녀간 흔적이었다.

"그 단골이 서열 일위였다고 했소."

"그래."

"삼 년 동안 맹이 놓친 것이 있었소. 식선루에서 혈교 일위가 국수를 먹고 있었다니."

"나도 몰랐다."

"도 대협은 알았어도 안 건드렸을 거요."

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궁진은 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맹 안의 내통자 말이오. 현산 장로로 짐작했는데 사흘째 행방이 묘연하오. 서고에서 천마검에 대한 기록 일곱 권이 사라졌소. 그리고."

남궁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한림 선생에 대한 기록도 한 권 사라졌소."

위강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림에 대한 기록이 맹에 있었나."

"십오 년 전부터 있었소. 서쪽 변경의 암자에 은거한 고인에 대한 일지였소. 내가 어릴 때 스승님을 따라 방문했던 기록이 그 안에 있었고."

“….”

"그 일지가 없어졌다는 건, 누군가 한림 선생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뜻이오."

그때 계단 위에서 낮은 목소리가 내려왔다.

"알고 있어."

한림이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홀 안의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한림은 사흘 만에 처음으로 혼자 걸어 나온 얼굴이었고, 하얀 얼굴에는 결심한 사람의 눈빛이 있었다.

"다 말해 줄게. 이제는 말할 때가 된 것 같아."

한림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한 발 한 발 짚는 발걸음이 불안했다. 정하립이 달려가 부축하려 했지만 한림은 손을 저었다. 홀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자 위강과 남궁진이 그를 가운데 두고 앉았다. 정하립은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위강."

"그래."

"십 년 전 내가 죽는 걸 당신이 직접 확인했다고 했지."

"그래."

"그건 맞아."

한림이 위강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나는 그날 진짜로 죽었어."

식선루 홀이 조용해졌다.

“…뭐라고.”

"심장이 멎고 숨이 끊기고 몸이 식었어. 당신이 틀린 게 아니야. 나는 정말로 죽었어. 그런데."

한림이 자기 가슴에 손을 올렸다.

"사흘 뒤에 다시 깨어났어. 혈교 지하 석실의 쇠사슬 위에서."

남궁진의 숨이 멎었다. 위강의 손이 허리의 천마검 손잡이로 갔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왜."

"그건 아직 못 말해. 정말로 아직은."

한림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전부 알지는 못하고, 아는 부분은 말하는 순간 당신에게 위험해져. 지금은 이것만 말할게. 나는 한 번 죽었다가 돌아온 사람이고, 십오 년 전 서쪽 암자에 있을 때도 이미 그랬어. 나이를 먹지 않는 게 아니야. 나이를 먹을 수 없는 몸이야. 그리고 혈교가 십 년 동안 나를 묶어 둔 건."

한림이 위강의 손목을 쥐었다.

"보름달 때문이야. 나는 매달 보름이면 약해져.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가. 혈교는 십 년 동안 그걸 모으고 있었고, 이번 보름이 그 마지막이야."

“…….”

"서문야가 혈제를 보름 뒤로 잡은 건 우연이 아니야. 그날 나를 제단 위에 올리려는 거야."

위강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식선루 처마 끝 풍경이 바람도 없는 홀 안에서 한 번 울렸다. 천마검이 허리에서 낮게 떨었다.

“…가지 않으면 되겠군.”

"안 가면 어떻게 돼?"

"그날 네가 제단에 못 오른다."

"아니. 안 가면 그들이 와서 데려가."

한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때는 하립이도 맹도 이 객잔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서문야는 그런 사람이야. 오지 않으면 오게 만드는 사람."

남궁진이 입을 열었다.

"선생. 하나만 묻겠소. 십오 년 전 선생이 나를 가르칠 때도 보름이면 약해지셨소?"

한림이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는 아주 오래 남궁진을 바라보다가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을 걸었다.

"기억하는구나."

"보름마다 암자 문이 닫혔소. 스승님이 그날은 가까이 가지 말라 하셨소."

"그래. 그때 진아는 문 앞에서 칼을 휘둘렀지. 나 들으라고."

“…그렇소.”

남궁진의 눈이 붉어졌다.

"나는 그날 선생을 지키려고 했소. 어린 마음에."

"고마웠어. 아무도 몰랐는데 너만은 알아줬으니까."

한림이 웃었다. 위강은 한참 말없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십 년을 알고 지낸 사람 곁에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식선루 지붕에 바람이 불었다.

한림은 한참 말을 한 탓에 지쳐 일찍 잠들었다. 남궁진은 객잔 일 층 작은 방에 눕혔고, 정하립은 부엌에서 아침 죽을 미리 끓이다가 졸고 있었다. 위강은 지붕 위에 앉아 천마검을 무릎에 눕혀 놓고 달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열흘 뒤면 보름이었다.

“…나 혼자서는 안 된다.”

위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십 년 전에도 그랬다. 혼자 해낼 수 있다고 믿다가 한림을 잃었다.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지붕 기와가 바삭 소리를 냈다.

위강의 손이 천마검을 쥐었다. 동시에 지붕 위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그 검 뽑지 마시오. 나요."

달빛 아래로 나온 것은 노인 하나였다. 흰 수염에 푸른 도포. 무림맹 원로원의 문장이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현산 장로였다.

“…찾던 사람이군.”

"그렇소. 기록을 훔친 것도 나요."

현산 장로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손에는 아무 병장기도 없었다. 대신 낡은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표지에는 「서변 은거 일지」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적혀 있었다.

"도 대협, 이것을 돌려드리려고 왔소. 그리고 하나 부탁이 있소."

"훔친 걸 왜 돌려주나."

"훔친 이유가 서문야의 손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오."

현산이 숨을 몰아쉬었다. 도포 자락 아래로 피가 번지고 있었다. 한참을 쫓겨 온 사람의 몸이었다.

"나는 맹의 장로이기 전에 십오 년 전 서쪽 암자에서 일하던 시종의 아들이오. 선생께서 우리 집에 아이를 구해 주셨소. 내가 그 아이요."

“…….”

"서문야가 맹 안에 심어 둔 내통자는 나 하나가 아니오. 장로 다섯이 더 있소. 그들이 나를 쫓고 있소."

현산이 책을 내밀었다.

"이 일지에 선생이 한 번 죽었다가 돌아오는 방법이 적혀 있소. 아니, 왜 돌아오는지가 적혀 있소. 서문야는 그걸 알고 있소. 그가 십 년 동안 한림 선생을 가둔 이유가 여기 있소."

위강이 책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현산의 눈이 크게 열렸다.

“…피하시오!”

위강이 몸을 비틀었다. 화살 한 대가 현산의 가슴에 박혔다. 곧바로 두 번째, 세 번째. 지붕 아래 어둠에서 화살비가 쏟아졌다. 위강이 천마검을 뽑아 화살을 쳐 냈지만 현산의 몸은 이미 지붕 위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일지를…!”

"하립! 한림을 방에서 못 나오게 해라!"

위강이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식선루 앞마당에 검은 복면 스무 명이 서 있었다.

맹의 문장을 가슴에서 뜯어낸 흔적이 보이는 푸른 도포들이었다. 장로 다섯이 직접 거느린 정예였다. 제각기 칼을 뽑은 채 위강을 에워싸고 서 있었다. 그 한가운데 흰 수염의 노인이 다섯 명, 가슴에 서문야의 은색 인장을 달고 걸어 나왔다.

"무신. 일지를 내놓으시오."

"그건 내 것이 아니다."

"그럼 현산이 들고 있겠군. 쫓아라."

위강이 천마검을 아래로 내렸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맹의 장로 다섯."

“…….”

"십 년을 맹에 몸담고 앉아서 혈교에 밥을 얻어먹었군."

"혈교가 아니라 서문야 공이시오. 우리는 새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소."

"새 시대."

위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새 시대에 너희는 있나."

"무슨 소리를…"

"곧 알게 된다."

위강의 천마검이 일 층 처마를 한 번 쳤다.

[문화후강 제구식: 개정지법(開鼎之法), 솥뚜껑을 여는 법]

솥뚜껑을 열 때는 조심해야 한다. 안에서 끓던 김이 한꺼번에 뿜어 나오면 얼굴을 데인다. 요리사는 뚜껑을 열기 전에 반드시 손목을 비틀어 김이 한쪽으로만 새어 나가게 한다. 위강이 천마검을 비틀었다. 위강의 몸을 둘러싼 은빛 검기가 한쪽 방향으로만 터졌다.

쾅!

스무 명의 복면 중 열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담장에 박히고 마당에 처박히고 처마 아래로 굴렀다. 남은 열이 칼을 뽑아 쇄도했지만 위강은 이미 그 사이를 걷고 있었다. 걸음마다 한 명씩 쓰러졌다. 목이 날고, 팔이 날고, 몸이 반으로 갈렸다. 정확히 세 호흡 만에 스무 명이 모두 쓰러졌다.

남은 것은 장로 다섯뿐이었다.

“…이, 이런.”

"하나씩 오겠나, 한꺼번에 오겠나."

"서문야 공이 약속하셨소! 우리는 새 시대의 장로가 될 거라고!"

"그랬나."

위강이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럼 그 약속을 확인해 보자."

다섯 명이 동시에 소매에서 단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위강은 천마검을 낮게 쥐고 한 번 돌렸다. 은빛 호선이 다섯 장로의 목을 한꺼번에 훑고 지나갔다. 다섯 개의 머리가 마당 위에 굴렀고, 몸이 한 박자 늦게 쓰러졌다.

고요가 찾아왔다.

위강은 지붕 위로 시선을 올렸다. 현산 장로가 처마 끝에 걸쳐진 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위강이 뛰어올라 그의 곁에 내려섰다.

“…끝났나.”

"끝났다. 일지는."

"저기."

현산의 손이 기와 틈을 가리켰다. 책이 기와 사이에 끼어 있었다. 위강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현산이 피 묻은 입으로 웃었다.

"선생께, 전해 주시오. 아이는 이렇게 컸다고."

"직접 전해라."

“…못 하겠소. 이제.”

현산의 눈이 감겼다. 위강은 한참 그를 내려다보다가 낮게 말했다.

"전하마."

일지는 위강의 손에서 아침이 올 때까지 펼쳐지지 않았다.

그는 책을 한림의 방 문 앞 작은 탁자에 올려놓고 밤새 문 앞을 지켰다. 동이 틀 무렵 정하립이 국을 들고 올라왔다가 사부가 문 앞에서 천마검을 쥔 채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내려갔다.

해가 뜨자 문이 열렸다.

한림이 문틀에 기대 서 있었다. 한참 탁자 위의 일지를 내려다보다가 위강을 올려다보았다.

“…읽었어?”

"아니."

"왜."

"네 입으로 듣고 싶다."

한림의 눈에 오래 담아 둔 것이 천천히 번졌다. 그는 일지를 집어 가슴에 안았다.

“…열흘 안에 말해 줄게.”

"그래."

"약속해."

"그래."

위강이 일어서며 한 마디를 보탰다.

"대신 그때까지 죽 먹어라. 맹주가 네 그릇이나 먹었다."

한림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눈가에 눈물이 맺힌 웃음이었다.

식선루 앞마당에서는 정하립이 시체를 치우는 중이었다. 장로 다섯의 시체 앞에서 정하립이 중얼거렸다.

“…향을 꽂을까 말까.”

"꽂아라."

위강이 이 층 창에서 말했다.

"저 중 하나는 내통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예?!"

"그래서 꽂는 거다."

정하립은 한참 서 있다가 향 다섯 개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