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무신(武神)의 동파육]
3화 [무신(武神)의 동파육]
나긋하게 내리쬐는 오후의 햇살 아래, 식선루 주방에서는 나직한 썰림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탁, 탁, 탁, 탁.
도위강의 손에 쥐인 정육 칼이 돼지 오겹살 덩어리를 잘라내고 있었다.
껍데기와 살코기, 비계가 정확히 층을 이룬 도툼한 고기 토막들. 사각형으로 정갈하게 잘려 나간 조각들은 모서리 하나 일그러짐 없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위강은 무쇠 솥 안으로 진간장과 팔각, 그리고 정성스레 다듬은 약재들을 쏟아부었다.
'음양의 조화를 맞추려면 불의 결을 다스려야 하지.'
위강이 오른손 손가락 끝을 아궁이 문턱에 살짝 대었다.
그러자 솥 아래에서 피어오르던 불길이 순식간에 실타래처럼 가늘어지더니, 솥 전체를 마치 비단으로 감싸 안듯 은은하고 촘촘하게 감싸기 시작했다.
강호에서 '삼매진화(三昧眞火)'의 극의라 불리는 무형의 불조절.
고기의 누린내를 날려 보내고 양념이 지방층 깊숙이 스며들게 만드는 최상의 화후(火候)였다.
달콤하고 짭조름한 향향이 주방을 넘어 객잔 홀 전체로 번져 나가기 시작할 무렵, 식선루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이번에 들어온 손님은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검은 칠사를 한 묵직한 대검을 등 뒤에 짊어진 사내. 칠흑 같은 도포를 걸친 사내의 눈빛에는 서늘하다 못해 피비린내 나는 살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사내의 정체는 마교(魔敎)의 십대 행동대장 중 한 명인 혈검(血劍) 사유신.
정파의 추적을 피해 변방으로 숨어든 그였지만, 삼 일 밤낮을 굶은 끝에 식선루에서 풍겨 나오는 미친 듯한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열고 들어온 참이었다.
'이 시골 촌구석 객잔에서 어찌 이런 진중한 불향이 나는 거지?'
사유신은 핏발 선 눈으로 주방 쪽을 쏘아보며 빈자리에 턱하니 앉았다. 그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객잔이 울리도록 고함을 쳤다.
"주인장! 밖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의 주인이 뭔지 당장 내오거라! 늦으면 이 객잔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테니!"
위강은 주방 안에서 국자를 든 채 무심하게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동파육(東坡肉)이오. 고기 익는 시간이 있으니 조용히 기다리시오. 으름장 놓는다고 불이 더 빨리 타오르진 않으니까."
"이 놈이 마교의 혈검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유신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허리의 검자루를 잡으려던 찰나, 위강이 쟁반을 들고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 위에는 진갈색 양념이 반짝반짝 윤기를 내뿜는 두툼한 동파육이 올려져 있었다. 젓가락을 대지 않아도 부드럽게 찰렁거리는 고기의 자태와, 목구멍을 자극하는 진하고 달콤한 향.
사유신의 침샘이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흥, 오만을 떨더니 요리 태깔은 제법이구나."
사유신은 검자루에서 손을 떼고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은 순간—
삭—!
씹기도 전에 혀 위에서 녹아내리는 육질.
이어 껍데기의 쫄깃함과 함께 푹 삶아진 비계의 고소함이 쏟아져 나왔다. 짠맛과 단맛, 그리고 약재의 그윽한 향이 혈맥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어…… 이, 무슨……!'
사유신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마교의 독문 마공을 익히느라 심장에 켜켜이 쌓여 있던 지독한 마기(魔氣)와 찌꺼기들이, 동파육의 따스하고 정갈한 진기를 맞닥뜨리자 순식간에 눈 녹듯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탁해졌던 단전이 맑아지고, 꼬여 있던 경락이 시원하게 뚫려 나가는 감각.
"이게 요리란 말이냐, 아니면 영단(靈丹)이란 말이냐!"
사유신이 감탄을 삼키며 미친 듯이 동파육을 젓가락으로 집어 삼키던 바로 그 순간.
딸랑—!
식선루의 문이 다시 열리며, 지난번 홍유면을 먹고 내상을 완치했던 화산파의 대장로 백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현의 뒤에는 화산파 3대 제자 중 으뜸이라 불리는 청년 고수 하나가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선배님! 지난번 은혜에 감사하여 다시 찾아뵙…… 음?"
백현의 말이 뚝 멈췄다.
그의 눈길이 객잔 구석에서 동파육을 허겁지겁 처먹고 있는 사내에게 닿았다.
"혈검(血劍) 사유신……! 마교의 사마귀 놈이 감히 어디라고 발을 디디느냐!"
"쯧, 화산파의 늙은 뱀 놈이 하필 여기서 알짱거릴 줄이야."
사유신이 입가에 묻은 양념을 소매로 쓱 닦아내며 짊어지고 있던 대검을 턱하니 뽑아 들었다.
백현 역시 소매 속에서 차가운 검기를 뿜어내며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정파와 마교의 숙적이 변방의 작은 객잔 한복판에서 마주친 것이다.
객잔 내부가 정마(正魔) 양파 절대고수들의 흉흉한 살기로 뒤덮이며 마룻바닥이 파르르 떨려 왔다.
"오늘 여기서 너를 베고 마교의 싹을 잘라주마!"
"크하하! 늙은이가 핏대가 세서 뇌수가 터지고 싶은 모양이구나!"
두 고수가 막 서로를 향해 쇄도하려던 그 찰나.
탁—!
주방 쪽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가 깔렸다.
"가게 내부 싸움 금지라 했을 텐데."
그 짧은 한 마디에, 두 고수가 뿜어내던 압도적인 살기와 검기가 찰나의 순간에 거짓말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
"이, 이건……!"
백현과 사유신의 몸이 공중에서 굳어버렸다.
마치 거대한 태산이 하늘에서 떨어져 두 사람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압도적인 중력.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형의 기개(氣概) 하나가 강호의 거물 둘을 그 자리에 옴짝달싹 못 하게 묶어버린 것이다.
도위강이 행주로 손을 닦으며 주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눈동자는 깊은 연못처럼 서늘했다.
"식선루의 첫 번째 규칙. 가게 내에서 칼을 뽑는 자는 그 즉시 쫓아낸다."
위강의 시선이 사유신의 대검과 백현의 검자루를 차례로 훑었다.
"너는 칼 집어넣고 마저 먹어라. 식으면 기름 굳는다."
"……."
"그리고 화산파 늙은이는 앉을 거면 앉고,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라. 내 바닥에 피 칠갑 하면 둘 다 젓가락으로 꽂아버릴 테니까."
천하를 오호라 호령하던 마교의 혈검과 화산파의 대장로가, 나란히 땀을 뻘뻘 흘리며 서둘러 검을 칼집에 쑤셔 넣었다.
사유신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젓가락을 들고 동파육을 먹기 시작했고, 백현은 얌전히 구석진 자리에 앉아 침을 꼴깍 삼켰다.
"……주인장, 나도 저 동파육 한 그릇 주시오. 화산파 장로의 이름으로 정당하게 돈을 내겠소."
"순서대로 기다리시오."
위강은 덤덤하게 돌아서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정파의 대장로와 마교의 행동대장이 식선루라는 조그만 객잔 안에서, 서로를 눈 흘겨보면서도 군소리 없이 국수를 기다리는 기이한 평화.
강호에서 가장 위험한 식탁이, 바로 이곳 식선루에서 완성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