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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정마합작(正魔合作)의 식탁]

식선검귀 (食仙劍鬼) — novel.naver.com · All chapters

4화 [정마합작(正魔合作)의 식탁]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동파육 한 접시가 백현의 탁자 위에 올려졌다.

윤기가 흐르는 진갈색 표면, 젓가락만 대도 살랑거리는 부드러운 육질. 백현은 침을 꼴깍 삼키며 천천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정파의 명색을 걸고, 마교 놈 따위와 한 공간에서 밥을 먹다니…….’

바로 옆 탁자에서는 마교의 혈검 사유신이 대검을 옆에 찬 채 미친 듯이 고기를 씹어 삼키고 있었다. 본래라면 당장 검을 뽑아 피바람을 일으켰어야 할 천적 관계. 그러나 이곳 식선루에서는 그 어떤 살기도 덤벼들지 못했다.

주방 입구에 스스럼없이 서 있는 도위강의 존재감 하나만으로도 객잔 내부의 법도가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현이 동파육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스르륵—!

혀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는 극상의 육질. 그리고 이어지는 간장의 달콤함과 약재의 은은한 향.

하지만 백현을 진정 놀라게 한 것은 맛 그 이상이었다.

‘이, 이것은…… 음양(陰陽)의 조화!’

고기의 성질을 다스리는 은은한 불길의 진기. 그 완벽한 배합 속에 화산파(華山派)가 자랑하는 매화검법(梅花劍法)의 잃어버린 오의(奧義)가 환영처럼 뇌리를 스쳤다.

유들유들하게 흘러가는 진기의 궤적이 곧 검세(劍勢)요, 완벽한 화후의 조화가 곧 검의 경지였다.

“크아아……!”

백현은 나지막한 탄성을 내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십 년 동안 막혀 있던 화산검법의 마지막 벽이, 고작 동파육 한 조각을 삼키는 순간 단숨에 깨져버린 것이다.

사유신이 젓가락을 멈추고 백현을 째려보았다.

“이 늙은이가 미쳤나. 동파육 처먹다 말고 왜 혼자 지랄이야?”

“마교의 사냥개 놈이 뭘 안다고 주둥이를 놀리느냐. 이 고기에 담긴 진기의 이치는 네놈 따위가 감히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뭐라? 이 늙은 뱀이 진짜 매를 벌고 싶어서……!”

두 사람 사이에 다시금 찌릿한 인후의 살기가 튀어 오르던 바로 그때.

딸랑—!

식선루의 문이 다시 한번 요란하게 열렸다.

이번에는 기괴한 복장을 한 사내 다섯 명이 객잔 안으로 들이닥쳤다.

화려한 비단 옷을 입었으나 품 안에서 서늘한 암기 냄새를 풍기는 자들. 흑도(黑道)의 정보 조직이자 살수 집단으로 유명한 하오문(下烏門)의 중간 간부들이었다.

“이곳이 요즘 소문이 자자한 은둔 고수의 객잔인가?”

하오문의 삼주채 채주, 독사(毒蛇) 가천우가 눈을 빛내며 객잔 내부를 훑었다.

가천우는 최근 변방 지역에서 흑살방이 박살 나고, 화산파의 고수가 얼씬거린다는 소문을 듣고 식선루를 탐색하러 온 참이었다.

가천우의 시선이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백현과 사유신에게 닿았다.

비록 두 사람이 기운을 죽이고 있었으나, 고수 특유의 오라는 완전히 숨길 수 없는 법. 가천우는 미소를 지으며 비단 부채를 촤르륵 펼쳤다.

“허어, 제법 그럴듯한 놈들이 모여 있군. 하지만 우리 하오문이 손을 대기로 한 이상, 이 객잔의 주인장은 순순히 우리 문파 아래로 들어와야 할 것이다.”

가천우가 손짓하자, 뒤따라온 살수들이 품 안에서 차가운 암기를 꺼내 들었다.

“주인장 나오시게! 하오문과 거래를 하든지, 아니면 이 식선루를 잿더미로 만들든지 선택해야 할 테니!”

가천우의 오만한 일갈이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기대했던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객잔 안에는 가혹할 정도의 적막이 흘렀다.

가천우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우뚱한 순간.

탁—!

젓가락을 내려놓는 소리가 동시에 두 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 개자식이.”

동파육의 맛에 몰입해 있던 혈검 사유신의 눈에 핏발이 서섰다. 마교 십대 행동대장의 무시무시한 마기(魔氣)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감히 내 식사를 방해해? 그것도 겨우 하오문 따위의 잡놈들이?”

화산파 대장로 백현 역시 소매를 걷어붙이며 시퍼런 검기를 불어넣었다. 막 화산검법의 오의를 깨달아 몸이 근질거리던 차였다.

“선배님의 요리를 잿더미로 만들겠다고? 네놈들의 목을 베어 화산의 매화나무 밑거름으로 써주마!”

“히, 히익……?!”

가천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눈앞에 있는 허름한 노인과 검은 도포의 사내가, 정파와 마교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괴물들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백현과 사유신이 당장이라도 가천우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려 쇄도하려던 그 찰나—

툭.

주방 안쪽에서 자그마한 국자 하나가 도마 위로 얹어졌다.

그 소리 하나에, 백현의 검기와 사유신의 마기가 순식간에 공중에서 파쇄되어 사라졌다.

“컥……!”

“윽……!”

두 거물이 가슴을 쥐어짜며 제자리로 턱 무릎을 꿇었다.

공기를 타고 밀려온 압도적인 은형의 무신 기개가, 객잔 전체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짓눌러버린 것이다.

가천우와 하오문 살수들은 그 기개에 휘말려 숨도 쉬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온몸의 뼈가 바스러질 듯한 압박감. 이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무력의 영역이 아니었다.

도위강이 주방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젖은 행주가 들려 있었다.

“내 객잔 안에서 목을 베느니, 잿더미로 만드느니 소란 피우지 말라 했을 텐데.”

위강의 무심한 눈동자가 바닥에 짓눌려 덜덜 떨고 있는 가천우를 향했다.

“하오문?”

“자, 잘못…… 했습니다……! 목숨만……!”

“청소 도구는 저쪽 구석에 있다.”

위강이 손가락으로 주방 옆 창고를 가리켰다.

“문짝 기름칠하고, 객잔 마루 전체를 깨끗이 닦아라. 손님들 식사 마치실 때까지 먼지 하나라도 날리면, 그대로 묶어서 아궁이 장작으로 쓸 테니.”

“예! 예! 청소하겠습니다!”

가천우와 살수들은 죽기 살기로 기어 들어가 빗자루와 걸레를 집어 들었다. 천하를 주무르던 하오문의 간부들이 순간적으로 식선루의 잡부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위강은 다시 백현과 사유신을 건성으로 바라보았다.

“너희 둘도 앉아서 마저 먹어라. 식으면 맛없어진다.”

“……예, 선배님.”

“알겠습니다, 셰프님.”

정파의 대장로와 마교의 혈검이 얌전히 제자리에 앉아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싸늘한 긴장감 대신, 다시금 고소한 동파육 향과 빗자루질 소리가 어우러지는 객잔 식선루.

도위강의 철칙 아래, 강호의 질서가 다시 한번 재편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