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독(毒)인가, 약(藥)인가]
5화 [독(毒)인가, 약(藥)인가]
이튿날 아침, 식선루의 마룻바닥은 마치 참기름을 바른 듯 반짝반짝 윤이 나고 있었다.
하오문의 간부 가천우와 그 수하들이 밤새도록 눈물을 흘리며 누더기 옷자락으로 바닥을 문질러 닦은 결실이었다.
“주, 주인장…… 청소를 마쳤습니다. 문짝 기름칠도 전부 했습니다.”
“수고했소.”
도위강은 아침거리로 끓인 맑은 장국 한 대접과 보리밥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먹고 가시오. 일 시켰는데 그냥 보내면 내 마음이 얹히니까.”
“가, 감사합니다……!”
하오문의 살수들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흩뿌리며 보리밥을 허겁지겁 마시기 시작했다. 가천우는 장국 한 모금을 들이켜는 순간, 또다시 몸속의 그을린 경락이 확 뚫리는 소름을 느꼈다.
‘이건 미쳤다. 이 객잔은 무림의 상식이 통하는 곳이 아니다……!’
식사를 마친 가천우는 품 안에서 암기 대신 전령용 비둘기 통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하오문 최고 등급의 비밀 묵찰에 붓을 들어 정성스럽게 적어 내렸다.
[긴급 상보: 변방 식선루(食仙樓)의 주인은 최소 신선(神仙)의 경지에 오른 은형의 절대자임. 하오문 전 문도는 이 객잔 근처 십 리 이내에서 검을 뽑거나 소란을 피우지 말 것. 위반 시 문형에 처함.]
그렇게 하오문의 비밀 정보망을 타고, ‘식선루’라는 세 글자가 강호의 이면으로 은밀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정오 무렵.
햇살이 기분 좋게 객잔 내부에 스며들 때쯤, 식선루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이번에 들어온 손님은 단정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품은 진보랏빛 비단 옷의 여인이었다.
허리춤에는 은은한 향을 풍기는 향낭이 달려 있었지만, 그 향낭 아래에는 수십 가지의 치명적인 암기와 독(毒)이 숨겨져 있었다.
사천당가(四川唐門)의 소문주이자, 강호에서 ‘독선(毒仙)’이라 불리는 여고수 당월하(唐月華)였다.
‘하오문의 비밀 묵찰에 적힌 장소가 바로 이곳이란 말이지.’
당월하는 서늘한 눈빛으로 객잔 내부를 훑었다.
단순한 촌구석 객잔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갈한 공기. 그리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조용히 찻잔을 기울이고 있는 늙은 사내—화산파 대장로 백현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백현 장로가 왜 이런 곳에……? 소문대로 정말 이곳 요리에 신통한 효과라도 있단 말인가?’
당월하는 당가 특유의 정교한 독공(毒功)을 익힌 자였다.
만병을 고치고 내상을 치유하는 요리라니. 당가의 상식으로는 ‘독을 써서 일시적으로 신경을 마비시키고 내공을 활성화하는 환각술’이거나, 강호에 금기시된 ‘마약 성분의 약재’를 썼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월하가 빈자리에 앉으며 냉랭한 목소리로 주방을 향해 말했다.
“주인장. 이 집에서 가장 기운이 깊다는 요리를 내와 보시지요.”
주방 안쪽에서 도위강의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맑은 삼계탕(蔘鷄湯)이오. 백숙 익는 동안 차나 마시며 기다리시오.”
약 십오 분 뒤.
위강이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뚝배기 하나를 쟁반에 담아 당월하의 탁자 위에 놓았다.
푹 삶아진 영계 위로 인삼과 황기, 그리고 푸른 대파가 자작하게 올려진 삼계탕.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서는 그윽한 한약재의 향과 고소한 닭고기 향이 번져 나왔다.
당월하는 숟가락을 들기 전, 품 안에서 길쭉한 은침(銀針) 하나를 꺼냈다.
사천당가가 자랑하는 만독검식(萬毒檢檢)의 은침. 세상의 그 어떤 독이나 마약 성분이 들어가도 찰나의 순간에 검게 변하는 정교한 물건이었다.
‘어디 보실까. 신선놀음인지, 아니면 간사한 약장수인지.’
당월하가 은침을 삼계탕 국물 깊숙이 찔러 넣었다.
스스스—
그 순간, 은침의 끝부분이 미세하게 붉은빛을 띠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
당월하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렸다.
은색이 검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침 끝이 붉은빛을 띤다는 것은, 국물 안에 존재하는 기운이 단순한 약재가 아니라 자연의 순수한 영기(靈氣) 그 자체라는 뜻이었다.
‘독도 아니요, 마약도 아니다……? 순수한 내공의 화후로 재료의 인삼과 닭의 영양을 극대화해 태극의 기운으로 묶어냈다고?!’
이것은 연단술(煉丹術)의 정점에 오른 도가의 신선들이나 할 수 있는 기예였다.
“……말도 안 돼.”
당월하는 홀린 듯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담백하면서도 깊은 국물이 혀를 적시는 순간—
쿠웅—!
당월하의 전신 혈맥이 거세게 요동쳤다.
어릴 적부터 사천당가의 지독한 만독을 수련하느라 장기 깊숙이 쌓여 있던 ‘독기(毒氣)의 찌꺼기’들이, 맑은 삼계탕의 국물을 타고 부드럽게 중화되기 시작했다.
늘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이 사라지고, 살결 아래로 맑은 기혈이 소용돌이쳤다.
“아……!”
당월하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옅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만독을 품어 늘 차갑기만 했던 그녀의 손발에 따스한 온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옆 탁자에서 찻잔을 기울이던 백현이 껄껄 웃으며 혀를 찼다.
“허허, 당가의 아가씨가 은침을 찔러 넣을 때부터 알아봤지. 선배님의 음식을 감히 독 따위와 비교하려 들다니, 무식하기 짝이 없구나.”
“백, 백현 장로님…… 이, 이 요리는 대체……!”
당월하가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뚝배기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주방 문이 열리며 도위강이 행주로 손을 닦으며 걸어 나왔다.
위강의 서늘한 시선이 당월하가 들고 있는 은침에 닿았다.
“다음부터 내 국물에 은침 찌르지 마시오.”
“예……?”
“쇠 냄새 배어서 국물 맛 버린다. 먹을 거면 그냥 먹고, 안 먹을 거면 나가시오.”
천하의 사천당가 소문주, 강호의 절대 고수들도 두려워하는 ‘독선’ 당월하가 그 자리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위강의 눈빛은 그녀의 독기 따위엔 관심조차 없다는 듯 덤덤했으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신(武神)의 오라가 객잔 내부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국물 맛을 해칠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월하가 황급히 은침을 집어넣고, 얌전히 숟가락을 들어 삼계탕을 먹기 시작했다.
사천당가의 소문주마저 길들여버린 객잔 식선루.
도위강의 요리가 하나씩 펼쳐질 때마다, 강호의 거물들이 하나둘 그 식탁 앞으로 무릎을 꿇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