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혈교의 문을 열다]
9화 [혈교의 문을 열다]
혈교 본산, 만마전(萬魔殿)으로 오르는 길은 삼천 개의 돌계단이었다.
첫 계단 앞에서 혈교 무사 서른이 길을 막았다. 위강은 앞치마를 벗어 던진 맨몸에 낡은 회색 무복 하나뿐이었고, 허리에도 등에도 병장기가 없었다.
"뭐야, 저 맨손은."
"식선루 주방장이라더니 진짜 요리사 아니야? 혼자 왔다고?"
위강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검을 빌리겠다."
무사 하나가 비웃으며 칼을 내밀었다.
"빌려 달라고? 그래, 가져가라. 목에 박아서 줄 테니!"
칼끝이 위강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위강의 손이 움직였고, 다음 순간 그 칼은 무사의 손이 아니라 위강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무사가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목에서 가는 붉은 선이 번졌다.
"고맙군."
흔한 철검이었다. 날은 무디고 균형도 맞지 않았다. 위강이 그것을 한 번 가볍게 털자 검이 울었다. 십 년 만에 무신의 손에 쥐어진 검이 반가워서 우는 것 같았다.
"검은 고르는 게 아니다."
서른 자루의 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위강의 검이 한 번 그어졌다. 휘두른 것이 아니라 그은 것이었다. 별빛 아래 은빛 선이 한 줄 번졌고, 서른 개의 목이 같은 높이에서 동시에 떨어졌다. 몸통들이 한 박자 늦게 계단 위로 무너졌다. 피가 계단을 타고 아래로 흘렀다.
위강은 그 사이를 걸어 올라갔다.
삼천 계단 위에는 계속 사람이 있었다. 이백 계단에서는 궁수 오십이 화살을 쏘아 내렸다. 화살비가 쏟아졌지만 위강의 검이 원을 그리자 화살이 모조리 튕겨 나갔고, 튕긴 화살이 도로 궁수들의 미간에 박혔다. 오백 계단에서는 마공을 익힌 호법 열둘이 붉은 연기를 뿜으며 덤볐다. 위강은 열두 번 검을 휘둘렀고, 열두 번째 호법이 쓰러졌을 때 그의 소매에는 피 한 방울 튀지 않았다. 천 계단을 넘자 계단 전체가 시체였다. 위강은 한 번도 뛰지 않았다.
한 명이라도 살려 두면 그가 뒤에서 한림의 사슬을 조일 수 있다. 십 년 전 전장이 그에게 가르친 단 하나의 진실이었다. 그래서 위강은 지나온 자리에 숨 쉬는 자를 한 명도 남기지 않았다.
만마전의 철문은 높이가 오 장이었고 문짝마다 피를 먹고 자란 듯 검붉은 녹이 슬어 있었다. 위강은 검을 어깨 위로 들었다가 내렸다.
콰앙!
철문이 세로로 쪼개지며 양쪽으로 무너졌다. 먼지가 가라앉자 거대한 대전이 드러났다. 천장은 아득하게 높았고, 벽마다 사람 뼈로 엮은 등롱이 푸른 불을 밝혔다. 한가운데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왼쪽은 팔 척 거구의 사내였다. 상체를 훤히 드러냈고 온몸이 쇳덩이처럼 벌어졌으며, 양손에는 사람 몸통만 한 철퇴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혈교 서열 4위, 철혈마왕 단혁.
오른쪽은 가늘고 긴 몸에 검은 장삼을 걸친 여인이었다. 허리춤에 열두 개의 비수가 별자리처럼 꽂혀 있었고 입술은 피처럼 붉었다. 혈교 서열 5위, 십이귀수 독요화.
단혁이 철퇴로 바닥을 찍자 대리석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크하하! 왔구나, 무신! 염라 그 얼간이가 네놈 심기를 건드렸다더니 정말 제 발로 기어들어 왔어! 밖의 아이들은 어쩌고?"
"전부 벴다."
단혁의 웃음이 멎었다. 독요화가 입가를 가리고 낮게 웃었다.
"삼천 계단이 조용하더라니. 십 년 전엔 천마검으로 우리 형제들의 목을 치던 분이, 이제는 주워 든 철검 한 자루라니. 삼 년이나 채소만 썰다 보면 손맛이 변하나 봐요?"
위강은 대전을 천천히 훑었다. 두 사람의 기운, 열두 개의 기둥, 가장 안쪽 어둠에 잠긴 계단 위의 빈 옥좌. 그 아래, 훨씬 깊은 곳에서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김한림은 어디 있나."
"우리를 쓰러뜨리면 알려 주지. 쓰러뜨릴 수 있다면 말이다!"
"시간이 없다. 길을 열어라."
"싫다면?"
"벤다."
그 순간 단혁의 모습이 사라졌다.
쾅!
팔 척 거구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짓쳐 들어왔다. 왼손의 철퇴가 위강의 정수리를 노리고 내리꽂혔다. 철혈마왕의 성명절기, 마산붕천(魔山崩天). 산 하나를 통째로 내려찍는다는 이름 그대로, 퇴풍만으로 대전의 등롱 십여 개가 꺼졌다.
위강은 피하지 않았다. 검을 비스듬히 세웠다.
까아앙!
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철퇴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정면으로 막은 것이 아니었다. 검면으로 철퇴의 힘을 받아 비껴낸 것이다. 빗나간 철퇴가 바닥을 때리자 대리석이 폭발했다.
"어딜 한눈파는 거예요?"
등 뒤였다. 독요화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는 순간, 은빛 세 줄기가 목과 심장과 단전을 향해 동시에 날아왔다. 독요화는 비수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비수를 따라 흐르는 듯했다. 몸이 허공에 뜬 채 낭창하게 휘며 두 번째, 세 번째 비수 다발을 이어 쏟아냈다.
위강이 고개를 약간 숙이자 비수 하나가 머리카락 한 올을 자르고 지나갔다. 몸을 반 바퀴 틀자 두 번째 비수가 옷깃을 스쳤다. 검이 위로 번쩍 올라가 세 번째 비수를 쳐 냈다.
"돌려주마."
비수가 독요화의 허벅지를 꿰뚫고 바닥에 박혔다. 던진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되돌아온 것이었다. 독요화가 휘청하며 이를 악물었다.
"독이 발려 있군. 음식에 이런 걸 넣으면 쫓겨난다."
“…건방진!”
2대 1.
혈교 서열 4위와 5위가 합공을 시작하자 대전은 전장으로 변했다. 단혁의 철퇴는 폭풍이었고 독요화의 비수는 그 폭풍 속을 헤엄치는 독사였다. 한 사람이 정면을 무너뜨리면 한 사람이 틈을 찔렀다. 십 년 동안 피를 나눈 자들의 호흡이었다.
철퇴가 좌에서 우로 휘감겼다. 위강이 몸을 낮췄고, 그 머리 위로 철퇴가 지나가는 순간 아래에서 비수 여섯 자루가 솟구쳤다. 위강의 검이 땅을 쓸듯 휘어 올라가 비수를 모조리 쳐냈다. 쇠와 쇠가 부딪쳐 불꽃이 연달아 터졌다.
"칫!"
독요화가 물러난 자리를 단혁이 메웠다. 철퇴 두 자루가 좌우에서 동시에 내려왔다. 쌍룡이 몸을 휘감는 듯한 압력이었다. 위강은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철검 하나로 두 철퇴를 한꺼번에 받았다.
콰르르릉!
위강의 발밑 바닥이 한 자 깊이로 꺼졌다. 무릎이 약간 굽었고 검날에서 쇠 갈리는 소리가 났다. 단혁의 입이 찢어지듯 벌어졌다.
"크하하! 힘이 예전 같지 않군, 무신! 삼 년 동안 국자만 휘두르더니 뼈가 녹았나!"
"그렇군."
위강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삼 년이면 짧은 시간은 아니지. 그동안 배운 게 하나 있다."
"뭐?"
"불 조절."
검 끝에서 푸른빛이 번졌다.
[병법: 문화후강(文火後强), 약불로 끓여 센불로 끝낸다]
위강이 식선루 주방에서 삼 년간 갈고닦은 것은 요리만이 아니었다. 십 년 전 무신의 검법을 불 다루는 이치로 다시 풀어낸 새 병법이었다. 국을 끓일 때 센불로 몰아치면 겉만 타고 속은 설익는다. 약불로 오래 우려야 재료의 기운이 스며들고, 마지막 한순간 불을 확 올려야 맛이 완성된다.
위강의 움직임이 변했다.
느려졌다.
단혁의 철퇴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데도 위강은 오히려 천천히 검을 저었다. 큰 솥을 젓는 듯한 둥글고 느릿한 궤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느린 검이 철퇴가 닿기 직전의 자리마다 먼저 가 있었다. 철퇴는 검에 스치고 비껴 나갔고, 비수는 검에 닿아 힘없이 튕겼다. 위강은 막는 게 아니었다. 길을 내주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건."
단혁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분명 전력으로 휘두르는데 철퇴가 자꾸 허공을 때렸다. 한 번, 두 번, 열 번. 헛손질이 쌓일수록 호흡이 거칠어졌다. 위강은 한 발짝도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물러나요, 단혁! 저자 박자에 말려들고 있어!"
독요화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비수도 이상했다. 던지는 순간 이미 어디로 튕겨 나올지 보였다. 둘이서 합공하는데 어느새 둘 모두 위강의 검이 정한 박자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단혁이 내려치면 독요화가 찌르고, 독요화가 빠지면 단혁이 메우는 십 년 호흡. 위강은 그 호흡을 한 박자씩 읽고 있었다. 삼 년 동안 매일 새벽 솥 앞에서 불이 오르내리는 박자를 지켜보던 사내가 얻은 눈이었다.
단혁의 철퇴가 내려오는 바로 그 순간, 독요화의 비수가 같은 자리로 파고들었다. 서로의 공격이 한 점에서 겹쳤다. 철퇴 풍압에 비수가 어긋났고, 독요화가 황급히 몸을 틀며 단혁의 옆구리에 어깨를 부딪쳤다.
"비켜, 이 멍청아!"
"네가 길을 막았잖아!"
위강이 만들어 낸 어긋남이었다. 합공의 호흡이 처음으로 깨졌다.
"약불 단계는 끝났다."
위강이 말했다.
"이제 센불이다."
검 끝에 푸른빛이 번졌다가 순식간에 흰빛으로 터졌다.
[문화후강 제일식: 열화일검(烈火一劍)]
위강의 몸이 사라졌다. 느림에서 빠름으로 넘어가는 간극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눈이 따라가지 못했다. 단혁이 본 것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칼끝의 흰빛이었다.
서걱.
단혁의 두 철퇴가 가운데서 반으로 갈렸다. 쇳덩이가 두부처럼 잘렸고, 그 뒤를 따라 검이 단혁의 가슴을 대각으로 훑었다. 삼 년 동안 우려낸 진기가 한 점으로 터지며 팔 척 거구가 어깨에서 허리까지 갈라졌다. 단혁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두 동강이 나 바닥에 쓰러졌다. 철퇴 조각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꽂혔다.
"단혁!"
독요화가 비명처럼 외치며 열두 비수를 한꺼번에 뽑아 던졌다. 십이귀수의 절초, 십이성락(十二星落). 열두 줄기 독광이 사방에서 위강을 포위했다. 피할 곳이 없는 완벽한 그물이었다.
위강은 눈을 감았다.
검이 열두 번 움직였다. 아니, 한 번이었다.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속도로 열두 방향이 동시에 베어졌고, 열두 자루의 비수가 허공에서 동강 나 바닥에 떨어졌다. 탁, 탁, 탁, 탁. 짤랑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독요화의 눈이 커졌다. 마지막 조각이 떨어지는 순간 위강은 이미 그녀의 코앞에 있었다.
“…어떻게. 십 년 전보다, 더.”
독요화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약해졌다는 소문이 맞는 줄 알았는데."
"약해진 게 아니다."
검이 그녀의 심장을 관통했다. 독요화의 붉은 입술이 무언가 말하려다 멈췄고, 눈에서 빛이 꺼졌다. 위강이 검을 뽑자 그녀의 몸이 단혁 곁으로 무너졌다.
"검을 내려놓았을 뿐이다. 다시 들면 이렇게 된다."
그는 쥐고 있던 철검을 내려다보았다. 날에 금이 가 있었다. 주워 든 평범한 검이 방금의 두 번을 버텨 낸 것만도 기적이었다. 위강은 금 간 검을 다시 쥐었다. 한림에게 가는 데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옥좌 뒤편에 숨겨진 계단이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계단 입구를 지키던 마지막 호위 여섯이 막아섰지만, 위강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여섯 번 검이 움직였고, 여섯이 쓰러졌다. 그 뒤로는 아무도 없었다.
한 발 한 발 내려갈수록 공기가 차가워졌다. 습기와 피 냄새, 그리고 그 아래로 아주 희미하게 스치는, 십 년 동안 잊으려 했으나 단 하루도 잊지 못했던 기운.
계단 끝에 거대한 석실이 있었다.
돌벽에는 수백 개의 쇠사슬이 매달려 있었고 그 한가운데 높은 석대가 서 있었다. 석대 위, 쇠사슬에 팔다리를 묶인 채 고개를 숙인 사람이 있었다. 길게 흐트러진 백발, 핏기 없는 손목, 그리고 그 손목에 감긴 사슬 하나하나에 새겨진 봉인의 부적.
위강의 걸음이 멈췄다. 목이 막혀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한림."
그 이름이 가까스로 입술을 넘었다.
고개를 숙인 이가 천천히 눈을 떴다. 흐려진 눈동자가 한참 만에 초점을 찾았다. 갈라진 입술이 움직였다.
“…위강? 정말, 위강이야? 꿈이 아니고?”
위강의 손이 떨렸다. 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천하를 피로 물들이던 그 손이 한 사람의 목소리 앞에서 떨었다.
"내가 왔다."
"바보. 왜 왔어. 함정이야. 어서 도망—"
"함정이라면 이미 밟았다."
석실 안쪽에서 낮고 느긋한 목소리가 울렸다.
"맞아요. 그런데 제법 오래 걸리셨네요, 선배님."
그림자가 움직였다.
석대 뒤편 어둠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스물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젊은 얼굴이었다. 흑단 같은 머리를 느슨하게 묶었고, 눈매가 길고 서늘했으며, 입가에는 장난기 섞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걸친 것은 붉은 선이 들어간 검은 도포 한 벌. 병장기는 없었다. 그러나 위강은 대전의 두 마왕과는 차원이 다른 기운을 느꼈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피부가 따끔거렸다.
"혈교주 후보 일순위, 혈세자 이하성."
사내가 가볍게 목례했다.
"십 년 전에는 어린 몸이라 멀리서 뵙기만 했는데, 이렇게 직접 뵙다니 영광이네요. 단혁이랑 독요화는 어땠어요? 아, 대답 안 하셔도 돼요. 위에서 소리가 다 들렸거든요."
그는 손가락 끝으로 김한림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한림이 얼굴을 찡그렸지만 사슬 때문에 피할 수 없었다.
"손 치워라."
위강의 목소리가 한 단계 가라앉았다. 석실의 온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하하, 무서워라. 그런데요, 선배님. 저는 선배님과 싸우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만든 게 아닙니다. 제안을 드리려고요."
이하성이 손을 거두고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이 사람을 살려 드릴게요. 풀어 드리고 의원도 붙여 드리죠. 십 년간 못 드신 약이며 영약도 얼마든지. 대신."
그의 미소가 깊어졌다.
"제 개가 되어 주세요."
석실이 고요해졌다.
"천하제일 무신이 내 개가 된다면, 혈교는 정파를 삼키는 데 피 한 방울 안 흘려도 됩니다. 선배님이 앞장서면 무림맹 따위는 하룻밤이고요. 저는 교주가 되고, 선배님은 그 곁에서 제 명령만 따르면 돼요. 어차피 선배님은 사람 목을 수천 번 쳐 본 분이잖아요. 방금 위에서 또 수백 개 치고 오셨고. 이제 와서 손 씻은 척하셔도 그 피 냄새는 안 지워져요."
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앉으라면 앉고,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으세요. 그러면 이 사람은 살아요. 아주 건강하게, 오래오래."
이하성이 손가락을 튕겼다. 한림의 손목을 묶은 사슬의 부적이 붉게 번쩍였다. 한림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만."
위강이 말했다.
"그만해라."
"그러면 대답하세요, 선배님. 개가 되시겠어요?"
위강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하성은 처음으로 웃음을 잃었다.
위강의 눈에는 분노가 없었다. 오히려 평온에 가까웠다. 삼 년간 식선루 주방에서 새벽마다 불을 보던 그 눈이었다. 국이 끓어 넘치기 직전, 가장 고요해지는 그 순간의 눈.
"나는 십 년 전에 이미 한 번 개가 되어 봤다."
위강이 낮게 말했다.
"전쟁의 개. 그 짐승이 되어 사람을 베고 또 베었지. 그 대가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그가 금 간 철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두 번은 안 한다. 그리고."
검 끝이 이하성을 겨누었다.
"내 앞에서 그 사람을 만지지 마라.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하성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이번에는 장난기가 아닌 순수한 흥분이었다.
"좋아요. 정말 좋아요. 그럼 개로는 못 쓰겠고."
그가 소매를 걷었다. 손목에 핏빛 문양이 뱀처럼 꿈틀거렸다.
"부러뜨려서 쓰죠."
석실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