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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는 야생이야

쌀먹러가 너무 예쁨 — novelpia.com · All chapters

초등학교는 야생이야

초등학교의 거의 모든 것이 익숙해질 무렵.   그러니까 내가 5학년이 되었을 때다.   “저는 반장으로 이채원을 추천합니다!!”   찬성 : 32반대 : 0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척척 투표가 진행되더니.   “좋아, 그러면 반장은 채원이로. 다들 박수!”   짝짝짝짝—   하기 싫은데 나 말고 다른 추천이 없어서 강제 선출 당해버렸다.   ‘와… 엄마가 좋아하겠네….’   내가 반장으로 밀린 이유는 초 단순.   “쟤야 쟤.”“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대.”“모델 출신이래. TV에 나왔다고 하더라.”“와, 어쩐지… 예쁘네.”   전생의 경험이나 기억들은 상당히 소실되었지만, 지식들은 다시 접하니 재차 떠올랐다.   그런 내게 초등학교 문제는 너무 쉬웠고.   시험 범위를 쭉 읽어보기만 해도 틀릴래야 틀릴 수가 없었다.   당연히 매번 100점을 맞아왔으며, 처음에는 양심이 조금 쑤신 것 같았으나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싹 날아갔다.   ‘부정행위는 아니잖아! 나도 공부했어!’   그래 봐야 열심히 하는 건 아니었던지라.시간은 텅텅 남았고.   “듀얼 할 사라아아암!!”   성적 1등을 핑계로 듀얼킹 카드 구매 금지를 해제한 덕에 해피한 듀얼 라이프를 학교에서 보냈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지. 응.’   그 천진난만함이.남들 눈에는 어떻게 보였겠냐고….   맨날 놀면서 공부까지 잘 해버리는 희대의 엄친아.1, 2, 3, 4학년 모두 반장을 떠맡았으며.생활기록부엔 ‘교우관계가 원만하며- 학업이 우수—’ 따위의 평가가 줄줄.   그 소문이 빠르게 번져, 학급 반장에 관심 있던 애들이 도전조차 하지 않은 거다.  학기 초에 내가 입을 닫고 있었어도 의미는 없었다.   그야.   “채워나 또 같은 반이야. 이건 운명 아닐까?”   5학년 반 배정에서 같은 반이 걸리자, 함박웃음을 짓던 김시연.   “반장, 얘도 듀얼킹 좋아한대.”   마찬가지로 무지개유치원 출신과 1, 2, 3,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애들 몇 명.   “……”   반장 선거를 하기 전부터 이미 너무나 자연스레 반장이라 부르는 애들이 많았다.   ‘이익…. 기껏 대장이라고 부르는 거 막았더니…!’   1학년 때부터 같은 유치원 애들 들들 볶아서 분명 금지했는데.   “반장! 2반에 듀얼킹 카드 모으는 애 있다던데?! 휘귀 카드도 많대!”   ‘대장’에서 앞 글자만 하나 바뀌었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   어째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심통이 나서 궁시렁거리면서도.   “듀얼킹 카드 모으는 애가 있다고?”   할 건 해야지.   희귀 카드는 못 참잖아.   “누구야. 가보자.”“이리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김시연은 대뜸 옆 반의 아이와 듀얼킹 카드를 교환하러 간 이채원을 따라갔고.   ‘채워니 뺨 쿡 찔러보고 싶다.’   양손 가득 카드를 펼쳐보는 채원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6년 넘도록 채원을 관찰해 온 건 자신뿐일 거다.   “으으으음….”   평범하게 카드를 쉭쉭 넘기면서 살펴보고 있는 듯하지만.   ‘저 핑크 돌고래가 마음에 드나 보네.’   시연은 정확히 채원의 취향을 꿰뚫어 봤다.   다른 카드들에 비해 눈길이 닿은 시간도 길고 몇 번을 되돌아왔으며.앙다문 입꼬리는 핑크 돌고래가 등장할 때마다 움찔움찔한다.   ‘저건 가지고 싶은데 참고 있는 표정!’   시연이 바라본 채원은.   귀엽고, 예쁘고, 샤랄라 거리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면서.말로는 투덜거리며 아닌척한다.   지금 하고 있는 머리 스타일도 보라. ac452d5ca45ffafe376528df3c6a2fd1.jpg 마법 소녀 루시.   채원은 죽어도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최애 캐릭터인 루시처럼 양 갈래머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도 어떻게 쿨하게 이 돌고래만 빼낼까 고민하는 중일 터.   ‘내가 도와줘야겠다.’   그래도 바로 도와주는 건 재미없으니까—   “앗! 채워나, 이거 귀엽다아.”“어…? 뭐 뭐뭐?”“이거이거 돌고래! 분홍돌고래 귀엽네에.”“그, 그런가? 흠…. 그 정돈 아닌데.”“그래애?”   눈알을 삥글삥글 돌리고 있는 채원을 본 시연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럼, 저거 나 주면 안 돼?”“어? 이거? 이거 쓰레기 카드야! 딴 거 줄게.”“에에? 아냐아냐 난 이게 좋아.”“어…. 어, 그…래?”   반사적으로 입술이 삐죽.   “너, 가질…래?”   시무룩하게 카드를 뽑아서 축 늘어진 팔로 시연에게 건넨다.   ‘읏, 귀여워!!’   장난을 너무 길게 치면 안 된다. 채원이 삐지면 은근 번거로우니까.   “아니다! 나 저게 더 좋아 보여. 돌고래 말고 저거 주면 안 돼?”“어!! 그, 그럴래? 힣. 보는 눈이 있네. 이게 특수효과가 있거든. 공격당하면——”   순진하게 확 해맑아져서 주절주절 떠드는 채원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유치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짝여서 관심이 갔고.   시원시원한 행동이 멋있어서 따라다니다 보니.굉장히 착하고 사려 깊다는 걸 알았으며.   무엇보다도 공주님처럼 예뻐서 좋았다.   가끔 이상한 부분에서 좀 특출나 보이긴 하지만, 그것마저도 매력이랄까.   “근데, 돌고래도 귀여우니까. 저건 채원이가 챙기면 안 될까?”“…그럴까? 흠. 그래, 뭐 나쁘진 않겠지. 흫.”   아마, 듀얼킹 카드 교환보단. TV에도 나왔다는 소문의 전교 1등을 구경하러 온 아이들은 보았을 것이다.   숨길 수 없는 그녀의 진실 된 입꼬리를.   시연은 서둘러 다가가, 사람 홀리는 미소를 남발 해놓고 눈치 없이 카드만 뒤적이는 채원과 팔짱을 꼈다.   ‘내 친구야! 뭘 봐!’   으르르르!   ‘얼굴에 봉다리를 씌울 수도 없고 참.’   번거롭고 복잡한 걸 싫어하는 채원을 위해 대신 주변을 경계해 주는 시연이었다.   왜냐고?학년이 올라가니 고백하려고 시동 거는 남자애들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부터 낌새를 보이는 애들은 많았다.그저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 뿐.   눈치 없는 채원이 몰라도 시연은 달랐다.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미리미리 채원을 자리에서 빼내곤 했다.   ‘우등생이라 인기 많은 줄 아는 게 유머지. 무슨 여자애가 저리 둔감해…?’   단언컨대 채원의 인기 비결은 그냥 외모다.그것도 날이 갈수록 화사해져서 놀라울 따름.   말투는 언뜻 까칠해 보여도 털털하고 쿨한데다. 남자애들 놀이도 줄곧 한다. 심지어 잘해. 운동 신경도 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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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은 전형적인 고백 공격 대상 0순위의 특성을 지녔지만.   “채원아, 다 봤으면 반에 가자.”“잠시만. 야. 너 이름 뭐야. 김철수? 그래, 너 다음에도 좋은 카드 생기면 말해라. 서로 남는 거 있으면 교환하는 거다? 나 카드 좋은 거 짱 마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응. 그래…!”   대부분 저렇게 부끄러워만 하고 접근하지 못했다.   아무렴.종족이 다른 게 아닐까 싶은, 저 사랑스러움을 뚫고 용기를 내는 건 어지간한 멘탈로는 버거운 일이리라.   종합하면,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는 전교 1등이자 학년의 아이돌.   ‘살짝 이런 느낌?’   그래서인지 5학년이 될 때까지 여러 차례 고백을 받은 김시연에 비해 이채원은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사정도 모르면서 ‘우효~ 김시연 또 찬 거야~? 죄 많은 여자~’하고 놀릴 땐 정말 꿀밤이 마렵기도.   종종 얄밉고 수상할 정도로 카드에만 관심이 많아도 좋은 친구다. —우리 앞으로도 평생 친구 하는 거다! 그렇게 새끼손가락까지 걸지 않았나.   ‘언젠간 내가 만든 옷 입혀 봐야지!’   열심히 연습해서 저 얼굴에 어울리는 옷을 입혀 보는 게 시연의 작은 꿈이다.   시연이 습관처럼 망상을 피워내고 있을 때.     드르륵—   “여기 혹시 이채원이라는 여자애 있나?”   낯선 남자애 하나가 뒷문에서 교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채원아.”“누가 채원이 찾는데?”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은 절로 고개가 채원을 향했고.   “아, 너구나. 오, 헛소문이 아니네. 너 예쁘다?”   느끼한 미소를 띤 남자애가 채원과 시연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약간은 껄렁껄렁하면서 덩치는 또래보다 살짝 크고.학년 내에서 본 적 없는 얼굴.   시연은 채원의 팔을 콱 잡았다.   절레절레.가지 말고 선생님을 부르자는 신호였다.   채원도 급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하던 와중.   “하하, 나는 은하초 6학년 1짱 장진솔이라고 해. 싸움도 잘하고 잘생겼고. 여기 있는 5학년 얼짱이 학교에서 제일 이쁘다길래 와봤어.”   방문자의 입이 열리자, 채원의 콧등과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지며 경멸이 스며들었다.   ‘헉, 이런 표정도 좋네.’   잠시 정신이 흐트러졌던 시연이다.       ***       세상에 얘 지금 뭐라니.   팔에 오소소소 소름이 돋았다.   얼짱? 얼짜아아앙?   내가 깜찍하고 어여쁘게 생긴 건 나도 안다.   ‘어떻게 몰라 나도 눈이 있는데.’   근데 그게 뭐. 그냥 생긴 게 생긴 거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다 보니 딱히 내색을 안 하는 거다.   얼짱은 무슨 얼어 죽을.어떤 놈이 그런 말 지껄이고 다니는 거야.   “아, 예.”   말이 곱게 나가질 않는다.   ‘봤으면 꺼지쇼.’   이씨,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억지로 얼굴 주름을 피는 동안 6학년 놈의 눈썹이 까닥거렸다.   “너 마음에 든다. 나랑 사귀자.”   ‘이씨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브.’   내 인생 최초의 위기다.   기분이 굉장히 드럽다.   멋진척하는 것도 꼴 보기 싫고.깝죽거리는 말투고 싫고.마음 같아선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리고 싶다.   ‘그러면 안 되겠지? 아니! 왜 안 되지? 이거 사실상 시비 걸린 거 아냐?’   부글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작게 심호흡을 이어갔다.   그래 한국은 동방예의지국.   한 학년 선배이니만큼 차분하게 거절하도록 하자.반장으로서 소란 피우지 말고.   ‘음…. 뭐라고 거절해야 하나….’   마침, 김시연의 고백 거절 장면을 직관했던 게 떠올랐다.   뭐라고 했더라. 대충.   “미안한데, 내 이상형이 아니라서요.”“…그럴 리가?”“……?”   ‘미친 새끼세요?’라고 할 뻔.   휴— 잘 참았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한 번 더 견뎌내는 동안 질문이 들어왔다.   “이상형이 뭔데?”   없는데.   오래 고민하면 이상해 보일까 봐 추상적인 걸로 아무거나 던졌다.   “헉! 소리 나게 게임 잘하는 사람이요.”   겜돌이 출신이라 겜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었거든.물론, 그게 애정은 아니지만 뭐, 암튼.   그렇게 말하고 나니 일시적으로 교실이 조용해진 듯했다.   ‘응?’   기분 탓인가?아니면 내 말이 좀 작았을지도.   “후후, 그래 알았어. 나 은하초 6학년 짱 장진솔. 너를 위해 내가 게임 실력을 키워오도록 할게.”“…짱 이지랄 우엑.”“뭐라고? 잘 안 들렸어.”“아니요. 그냥 우욱. 토 쏠려서.”“몸이 안 좋은가 보네. 가서 쉬어 탈 난다.”   이대로 저 역한 멘트를 듣고 있으면 아까 먹었던 점심이 올라올 거 같아서 빨리 사라졌으면 했는데.   다행히 녀석이 몸을 돌렸고.   그 제스쳐에 그만 방심해 버렸다.   놈은 발을 멈추고 다시 내게 고개만 돌리더니.   찡긋—   “아, 그리고 말인데. 다음엔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도록 해.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다 말하고. 이쁜 동생.”   한쪽 눈을 내게 찡긋거리는 걸 목격해 버렸고.   “야.”“…응? 나?”“그래 너 너, 이건 뭐, 피가 버터랑 마가린으로 이루어져 있나, 말할 때마다 왜 이렇게 오글거리게 하는 거야.”   도저히 참지 못해서 토해냈다.   ‘아우 개운해라. 속이 뻥 뚫려.’   내가 살기 위해서 내지르고 봤는데. 녀석은 의외로 침착했다.   오, 의외로 대인배…?그렇다면 약간 미안해지려—   “하, 앙칼지네, 아기 고양이.”   눈을 가늘게 치명적인 척 치켜뜬 그 개같은 얼굴과 마주친 순간.   정신 줄이 뚝 하고 끊겨버렸다.   쉬익—   왼손을 쭉 뻗어서 멱살을 잡고.   “에?”“이 꽉 깨물어라.”   퍼어억-! 퍽-! 퍽퍽퍽-!   “으억-! 자, 잠시만. 억-!”“고양이? 고양이이?? 너 따위가 감히 고양이를 능멸해애애!”   보이는 대로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너 죽고 나 죽자는 심경이었는데 얘가 생각보다 많이 약하더라.   “쉬익— 쉬익— 조빱새키가. 콱씨. 내 눈이랑 귀 썩는 줄 알았네.”“끄엑-! 흐윽-”   대여섯 방 꽂았더니 자칭 짱이라는 녀석이 땅을 기어다녔다.   ‘뭐야, 개 허접이잖아.’   짱은 무슨, 허세에 속을 뻔했네.   놈은 친구들이 양호실로 데려갔고.   나는 복도 그 자리 그대로 선 채 팔짱을 꼈다.   ‘음.’   사실 돌아가려고 했으나,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익숙한 선생님과 눈이 마주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왠지 튀는 거 같잖아.   “사고 쳤네, 이채원.”“....”   그러게.엄마한테 뭐라 하지….   격투기에 재능을 찾았다고 하면 봐주려나.